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공식 누리집 확인방법

박형준, 『저녁의 무늬』중에서

  • 작성일 2013-09-26
  • 조회수 1,786




박형준, 『저녁의 무늬』중에서

고모는 장구를 아주 잘 쳤다. 고모에게 장구를 배우러 인근 마을에서 올 정도였으니까. 고모네 집으로 가는 길에 담으로 넘어온 감나무가 서늘하게 빛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눈 바로 위에 큰 땀띠가 나 있었다. 가난하기도 했으나 병원에 가는 것이 죽으러 가는 일 외에는 엄두를 못내던 시절이었을 만큼 문명에 밝지 못했던 어머닌, 그냥 손으로 짜버렸다. 고모 아들이 양철 대문에 호랑이 그림을 낙서한 그 집 마루에서 고모는 장구를 쳤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고모. 얼마 후 고모는 죽었지만 그날의 풍경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여름 오후의 저무는 햇빛과 그늘진 마루에서 들리는 타악기 소리의 슬프고, 한편으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내 안에서 고동치던 리듬을 아마 떫은맛을 내는 감나무만이 알아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먹어서는 안 되는 닭고기를 먹었다. 약사가 닭고기를 먹으면 상처가 도진다고 했으니까...... 고모는 장구를 치고 나서, 공교롭게도 닭고기를 내왔다. 어둑어둑해지는 마당의 맨드라미가 하늘에도 피어 있고, 워낙 고기를 먹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때 나는 닭고기를 꼭 먹어야겠다는 이상한 집착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소금에 찍어 딱 하나 먹었던 닭다리, 고모와 어머니가 울고불고 하는 나를 말릴 때 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던 그 집착.
내 눈위에 땀띠가 생기던 날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본 밥상에서 출발되었다. 빨간 밥상보. 어머닌 내가 늦게 일어나는 날은 언제나 머리맡에 밥상을 놓아두고 밭에 일을 나가셨다. 그날은 왜였을까. 그 빨간 밥상보에서 누나들이 머리카락 뒤에 묶고 다니던 댕기가 떠올랐다.
(중략)
그 후 닭고기를 먹어서인지, 어머니의 무지 탓인지 닭벼슬 같은 상처가 눈 위에 자리잡았다. 그것 때문에 사춘기에 여자애들로부터 멸시당할까봐 그녀들을 멀리 했고, 취직할 나이가 되어서는 인상이 나쁘달까봐 백수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 작가_ 박형준 -- 시인.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지은 책으로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생각날 때 마다 울었다』, 산문집 『저녁의 무늬』 등이 있음.

● 낭독_ 정훈 -- 배우. 연극 '과부들', '봄날' 등에 출연.

● 출전_ 『저녁의 무늬』(현대문학)
● 음악_ signature collection /lite&easy mix2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배달하며 

타악기는 민중악기입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물건입니다. 때리는 행위와 반복적인 리듬, 가장 멀리까지 퍼지는 파장 같은 게 특징이죠. 값비싼 현악기의 귀족 특징과는 반대이어서 품위 대신 흥겨움이 기본입니다. 예전엔 웬만한 집에는 장구가 있어 가락도 모르면서 아이들이 두들겨보곤 했었죠. '여름 오후의 저무는 햇빛과 그늘진 마루에서 들리는 타악기 소리' 생각만 해도 아련하고 슬퍼집니다. 더군다나 이마에 종기(저자는 땀띠라고 돌려 말했지만 어림없는 소리죠)가 난 아이까지 있다면야······ 그러고보니 박형준 시인이 몇 년 전에 성형수술을 했다는데 이것 관련인지 모르겠어요.

문학집배원 한창훈

한창훈

추천 콘텐츠

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 관리자
  • 2024-06-27
최윤, 『사막아, 사슴아』를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21
방현석, 『범도』를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07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1건

  • 익명

    타악기는 민중악기. 억압받는 이들의 것. !! 목소리가 너무 좋으시네요 ~ 잘듣고 갑니다 !!!

    • 2013-09-27 19:00:38
    익명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