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감상&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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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감상&비평'에는 형식을 갖춘 비평문만 올려야하나요?작성일 2023-07-25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4 조회수 3721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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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 우리 킹키들의 혁명! (뮤지컬 『킹키부츠』비평문)
“우리는 얼마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을 뮤지컬 『킹키 부츠』는 화려한 쇼와 강렬한 넘버들 속에 담아낸다. 무대 위에 펼쳐진 빨간색 하이힐부츠와 에너지 넘치는 군무는 관객을 압도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체성과 인정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단순한 유쾌함으로 기억하기보다, 인물들이 서로를 밀어 올리고 충돌하며 완성해가는 하나의 성장 서사로 받아들였다. 『킹키부츠』는 특정 인물의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은 특별함을 문제 삼는 사회 속에서 그 특별함을 어떻게 수용하고 함께 설 수 있는가를 묻는다. 높은 굽의 빨간 부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편견 위에 올라서기 위한 상징이 된다. 무대 위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그 과정은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특히 뮤지컬이라는 형식은 이 메시지를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또 『킹키부츠』의 넘버들은 단순한 흥겨운 삽입곡들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폭발시키고 관계의 균열과 화해를 가시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넘버들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증폭시키며, 관객 또한 그 리듬 속에서 스스로를 비춰보게 된다. 그렇기에 『킹키 부츠』는 화려한 쇼를 넘어 인정받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질문이자 위로로 남는다. 특히 각 넘버는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서사의 방향을 깊이 있게 이해 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킹키부츠』의 메시지는 특정 인물의 독백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작품은 롤라와 찰리 그리고 공장 노동자들까지 이어지는 관계의 흐름 속에서 특별함을 어떻게 인정하고 함께 설 수 있는가를 점층적으로 확장시킨다. 특히 각 인물의 변화는 대사를 통해 설명되기보다 넘버를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찰리와 롤라 그리고 집단으로 확장되는 노동자들의 서사를 따라가며 각 인물이 넘버를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특별함의 인정’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구체화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찰리는 작품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를 동경했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그대로 따르고 싶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원하지 않았던 공장을 물려받게 되고, 그 공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과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 사이에서 갈등한다. 전통과 책임, 그리고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찰리의 모습은 관객에게 익숙한 현실의 초상을 닮아 있다. 그러나 찰리는 처음부터 특별함을 이해하는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롤라를 만났을 때조차 편견과 당혹감 속에서 쉽게 균형을 잃는다. 찰리의 서사들은 불안에서 확신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그 첫 번째 균열은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에서 드러난다. 이 넘버는 경쾌한 템포와 밝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가사 속에는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담겨 있다. 멜로디가 위로 상승했다가 다시 내려오는 구조는 찰리의 흔들리는 감정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 찰리는 아버지가
작성일 2026-03-14 작성자 시유레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8상세보기 -
감상&비평 우리를 통과하는 삶-손미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를 읽고
일기를 쓰는 것과 수필을 쓰는 것 그리고 그 외 서정과 산문을 쓰는 일은 많이 다르다. 일기는 말 그대로 저자만이 글의 유일한 독자라는 점에서, 정제되지 않고 날것의 문장들이 나와도 상관없으며 자유롭게 쓰이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한 수필 역시 정의대로 라면, 자유롭게 쓴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글을 수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필이란 독자가 글쓴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도 있다는 점에서 글에 대한 정제와 객관화가 필요한 문학 장르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항상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이나 자기 자신을 끝까지 응시하고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글로 써내야 하지만, 이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수필을 넘어 장르별 규격이나 필요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타 문학 장르에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많은 작가가 자신에 경험을 가지고 소설, 수필, 시와 같은 문학 장르를 개척해 나간다. 이런 부분은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의 문장 청소년 문학상 수상 작품들은 날 담으려고 했던, 공통점이 있다. 2024년 5월 시부분 월장원이자 20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시부분 우수상인 와 2025년 12월 소설 부분 월장원이자 21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소설 부분 장려상인 역시 출발점은 내 일상과 무뎌지지 않은 결핍들이 스스로 변주하면서 나온 응어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내 글을 읽는 글틴의 전현직 멘토들과 더불어 문장청소년 문학상 심사위원들도 똑같이 느꼈다. 21회 심사평을 맡은 양선형 소설가와 20회 심사평을 맡은 김이듬 시인의 심사평은 다음과 같았다. “무빙워크를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함께 투시하려는 긍정적인 의지와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제20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시부분 심사위원 김이듬 심사평 中 “자신을 위로하는 ‘스노볼’이라는 은유가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픔과 상처와 정직하게 대면하려는 인물의 태도가 미더웠고, 세심하게 문장을 닦아내려는 노력 또한 소설의 큰 장점이었습니다”-제21회 문장청소년 문학상 소설 부분 심사위원 양선형 소설가 심사평 中 두 작품의 심사평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부분은 ‘자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세는 상처와 결핍이 만들어낸 응어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고 바라봤는지 이야기한다. 나는 이 두 글을 쓸 때만큼은 어쩌면, 살아가는 순간마다 기침과 자퇴했던, 나 자신에게 여러 번 눈물을 보이기도, 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루만져진 자세가 그저 마주였다. 그 바라봄으로 쓴 작품은 늘 외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인 나 자신만 알고, 나의 세계에서 해소되지 못한 응어리 같아서, 그저 일기로 보일 때가 그러지 않을 때보다 많다. 이처럼 자신을 마주하면, 객관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문학으로 표현하는 일과 그 문학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전파되는 갓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는 상처가 다듬어지고, 견뎌지고, 일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감의 언어로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기에. 만약 윗글을 읽고
작성일 2026-03-09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79상세보기 -
감상&비평 우리 마음에 남은 단종의 이야기와 마음
이 글은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2026년, 한창 코로나 이후로 극장가가 무너져 내리고 한국 영화들이 해외의 유명한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에 무너져가고 있던 시기 드디어 파묘 영화의 뒤를 이어 한국 천만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바로 리바운드 같은 영화를 제작한 장항준 감독님의 라는 영화가 그 주인공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극장가에 올라오고 난 이후 나와 나와 같은 사학과 친구들은 오랜만의 역사영화라는 사실에 많은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아주 많은 걱정도 있었다. 역사영화라는 것이 너무 사실을 중시하여 제작을 만들게 되면 뭔가 새로운 느낌의 영화가 만들어지겠지만 관객들이 너무 많은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또 너무 전쟁 같은 호화찬란한 분위기에 관점을 맞추어버리면 CG 효과를 많이 사용해서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겠지만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고, 원래 사실과는 다른 역사 이야기를 두고 와야 해서 국민들에게 잘못된 역사의 진실들을 알려줄 수 있는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걱정들을 하며 친구들과 설렘 반 걱정 반을 안고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우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주변 관객들은 화장실에 가서 슬프게 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조선시대 세조의 반란으로 인해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 단종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이다. 많은 사람이 세종대왕, 태종 이방원 같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은 잘 알고 있지만 단종 같은 인물은 재위 기간도 짧으며, 워낙 영향이 없기도 하며 역사책에서도 한 줄 정도 서술되고, 시험에도 잘 나오지 않아 우리의 머릿속에는 잘 남아있지 않는다.이 영화가 많은 기억속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4명의 인물이 분위기를 잡으며 영화를 이끌어갔기 때문이다. 먼저 유해진 배우님의 역할인 충신 엄홍길과 유지태 배우님이 연기하신 조선시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으며 배신의 아이콘인 한명회, 박지훈 배우님이 연기하신 조선시대 쫓겨난 왕 단종, 전미도 배우님이 연기하신 단종을 지키는 궁 사람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중간부터 엄청난 카리스마로 영화에서 많은 임팩트를 만든 이준혁 배우님의 금성대군 역할까지 배우들의 엄청난 영향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역사 중독자로서 칭찬하고 싶은 점은 바로 한명회 역할에 너무 적절한 배우님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항상 매번 드라마에 나오는 한명회 역할에 배우는 통통하고, 진짜 얼굴만 봐도 배신자 이미지로 정말 야비한 이미지로 나오는 것이 정말 많은데 사실 한명회의 이미지는 예전 드라마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정말 다른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한명회 나오는 사극을 보게 되면 나와 친구들은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아주 컸다 이라는 것을 보게되면 한명회의 이미지는 큰 키에 멋있는 얼굴에 이목구비가 확실히 보이며, 우람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서술이 되어있는데 이번 영화에 나온 한명회가 딱 신도비명에 나오는 한명회의 모습과 비슷한 이미지라 너무 몰입이 잘되고 재미있게 봤었다. 또한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엄홍길이
작성일 2026-03-08 작성자 역사 좋앙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9상세보기 -
감상&비평 타자로부터 비추어지는 '나'라는 거울의 고찰■글에 들어가기에 앞서한 몇 달 전쯤에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을 처음 본 것 같다. 솔직히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하고 나의 평점을 올려두지 않은 영화였다., 등 타르코프스키 영화에 나는 평점을 매기지 않았다. 아직 평가하기엔 너무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즉 아직 내가 평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타르코프스키 작품 중 내가 평점을 매긴 작품은 비교적 쉬운 작품인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시도해 보고 싶었다. 이 어려운 영화를 이렇게 완벽하게 해석하기는 거의 쉽지 않다. 나는 여러가지 해설책을 참고하고, 나의 옅은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나만의 비평문을 완성했다. 워낙 철학적, 심리학적 개념이 많이 나오다보니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의 해석에 성공해서 뿌듯하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보겠다.■타르코프스키의 의도는 무엇인가?먼저이란 작품의 줄거리조차 정리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정리를 조금 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알렉세이이다. 알렉세이와 그의 어머니 마루샤, 알랙세이의 아내 나탈리아, 그리고 주인공의 아들 이그나트까지가 주요 인물이다. 물론 중간 중간 중요한 인물들이 나오긴 하는데, 생략하도록 하겠다. 작품 장면 하나, 하나를 설명하기 전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사실 타르코프스키는 장면 하나를 깊게 분석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르코프스키가 말하는 영화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이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영화관에 가는 이유를 이렇게 서술한다.사람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영화관에 가는가? 무엇이 그들을 두 시간 동안 스크린 위의 그림자 놀이를 쳐다볼 수 있는 컴컴한 방 속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만사를 잊고 즐거운 오락을 원하고 있는 것인가? 관객들은 혹시 특별한 종류의 마취제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인간은 보통 잃어버린 시간, 놓쳐 버린 시간, 또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 타르코프스키 79p즉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거나,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폴 리쾨르라는 철학자는 미메시스 3단계라는 것을 제시했다. 1, 2단계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3단계에 가서는 결국 독자가 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해야 한다. 결국 최종 목적지는 그것을 향유하고 시청하는 관람객에게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저 그것에 연결다리를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책은 독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독자의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독자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책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경험을 통해 살아왔기에 모두 다르게 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그래서 이라는 영화는 불규칙한 장면과 타르코프스키의 어린 시절을 무의식적으로 조합한 후 20번이 넘는 재편집을 거친 영화로, 일반 사람이 이해하기엔
작성일 2026-03-02 작성자 노스텔지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98상세보기 -
감상&비평 여성에게 주어진 사랑, 그 이후의 삶 :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읽고월장원 선정
로맨스를 다룬 이디스 워튼의 소설, [여름]에 대한 가장 역사적(또한 현재까지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여자 주인공인 채리티가 자신의 성적 욕망과 사랑을 마주하고 점점 성숙해지는 “성장 소설”. 1917년 미국, 아직 여성 참정권도 허용되지 않던 시기. 여성의 성적 욕망과 사랑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이 소설은 파격적이었고, “인습과 전통에 맞서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는 여성을 묘사하며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미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채리티는 자신의 욕망을 직면했으나, 그 끝을 보지 못했다. 현실의 벽에 욕망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채리티는 결국 로열(이하 **후견인)과의 결혼에 만족해야 했다. 100년도 전에 발간된 소설이니, 물론 지금의 생각만큼 파격적인 전개는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뒤표지는 이 결말을 “성장”이라고 소개한다. ‘채리티’는 기독교적 의미로 사랑을 상징한다. 이 소설을 읽은 뒤, 난 채리티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인물들과 상황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하여 후견인의 사랑을 거절했으며, 하니와 함께 정열적인 ’사랑‘을 했다. 몸과 마음이 취약해져 후견인과의 반강제적인 결혼을 진행하기 전까지는, 채리티가 늘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계기로 하여 움직였으니, 남자들의 사랑에만 휘둘리던 당대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성격은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여름]은 결말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한 소설이다. 채리티는 본인의 원래 꿈이었던 자립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후에서야, 후견인과 결혼하게 된다. 혼약의 진행마저도, 신부에게 주어지는 강제성을 묵인하는 목사와, 당사자인 후견인/채리티 단 셋뿐인 공간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몸과 정신이 취약해진 채리티가 제대로 거부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해치우듯 벌어진다. 자신이 결혼했고,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한 뒤에야 후견인에게 안정을 느낀 채 끝나는 결말을 우리가 “성장”한 것이라고 읽을 수 있을까? 난 아닌 것 같다. 혹자는 후견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리티가 성숙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포기와 체념이었고, 그토록 갈망하던 자립이 사라진 최후의 선택지였으며, 남성의 보호 아래서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부장제 구조에 순응한 결말이다. 여성 참정권조차 없었을 당시에는, 단순히 여성의 성적 욕망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당당히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겠지만, 이 소설을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결국 가부장제 안에서 사랑과 성적 욕망을 절제 당하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여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여성에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에 있어 나는 잘못됨을 느꼈다. 만약
작성일 2026-02-28 작성자 방백 좋아요 0 댓글수 3 조회수 385상세보기 -
감상&비평 왜 우리는 악인을 사랑하는가?
왜 우리는 악인을 사랑하는가?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보면 사건의 전개를 위해 악역이 등장하는 경우가 부단하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그 악역을 신랄하게 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악역도 존재한다. 그들의 악행에서 정당성을 찾기도, 칭송할 부분을 찾기도 한다. 동시에 그들을 사랑하는, 흔히 말해 그들을 ‘최애’로 삼는 이들까지 생겨난다. 왜 우리는 이들을 사랑하는가?왜 이들을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되는가?‘미워할 수 없는 악역’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심지어 이러한 ‘악역’에 대한 사랑은 현실 속 ‘악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대에 범죄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팬클럽이 만들어지는 기묘한 현상이 종종 발견된 것과 같은 사례들이 그 예시이다. 이에 나는 의문을 가져 그 답을 창작물 속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통해 찾아보고자 했다. 또한, 악인에 대한 사랑은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하는지, 이 글을 통해 고찰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들을 사랑하는가?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개연성’이 존재하는 악역, 즉 필연적으로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인 ‘필연적 악인’에게 특히나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필연적 악인’은 모두 사연을 지닌다. 이러한 악인은 과거의 어떠한 사건 또는 환경이 악행을 촉발하는 형태를 자주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 과거 사연이 인물의 악행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한다면 우리는 그 악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여주인공 ‘트리사’가 그 대표적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총 3편으로 구성된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결합한 영화이다.1편인 <메이즈 러너>에서 ‘트리사’는 공간 내 인물 모두가 과거 기억이 사라진 채 존재하는 곳인 ‘글레이드’에 마찬가지로 기억을 잃은 채 떨어진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토마스’와 깊은 유대를 다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트리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트리사는 선한 역으로 묘사된다.1편 후반부에서는 트리사가 일종의 치료제를 투여받는데, 그것이 2편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에서 그녀의 기억을 복구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하여, 2편의 극이 전개되며 조금씩 기억을 되찾은 트리사의 내적 갈등이 나타난다.<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계관에서는 인권을 탄압하지만,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남을 기술을 가진 ‘최후의’ 문명을 가진 ‘위키드’라는 단체가 존재한다. 극에서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주인공 일행의 인권을 무시한 채 주인공을 비롯한 사람들을 그저 조직의 이익을 위한 바이러스의 ‘치료제’로만 여긴다. 이는 주인공 토마스 일행과 위키드가 극 속에서 대립하는 원인이다.그러한 과정 속에서 과거 자신이 위키드의 백신 연구원으로 일하던 기억을 되찾은 트리사는 자신과 유대를 다지던 친구들을 배신하고 위키드로부터 도망친 동료들의 위치를 알린다. 그 결과 토마스 일행의 주 구성원이었던
작성일 2026-02-28 작성자 양양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189상세보기 -
감상&비평 다정한 괴물의 투시-백은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을 읽고
시집을 배달받은 뒤,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다. 포장 상자를 열어 주문한 시집을 확인하는 일. 시인의 세상이 아무 문제 없이 시집으로 도착했는지 바라보게 된다. 그 세상이 설령 불안정하고, 생각과 달라 보여도. 도착한 순간만큼은 아끼고 끝까지 응시하게 된다. 포장지에 감싸진 이야기를 뜯어내기 전까지. 그 속에 다정이 들어 있는지, 아픔이 담겨 있는지 몰라서. 시집을 하나의 세상으로 바라본다면, 백은선의 시집 대다수는 삶의 다정함과 삶의 냉혹함을 함께 보여주는 견딤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녀의 시가 주로 들어내는 삶을 견디는 방식은 침묵과 미룸이다. 시집 , 이 두 삶과 세상에는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연작의 형태를 보인다. 특히 은 제목부터가 그녀가 말하는 침묵을 제목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中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 폴란드 폴란드 새가 날아가는 순간 새는무언가 놓고 가는 거 같고 하얀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믿었다불타는 나의 폴란드 아름다운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웃고아이들은 손과 손을 겹쳐 흔들리지 않는 탑을 만들지 소리 없이 날개를 접는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 너는 눈과 코와 입을 잃었고 그 뒤로 떠내려간 입이 부른 노래가 가장 긴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물속에서 영원을 구할 때찌를 드리운 노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당신이 결국 갖게 될 미래라고, 그 말은 둥근 포물선을 그리며 퍼져나갔지, 그것을 절망이라고 부르려 했지만 젖은 종이에 쓰인 말은 알아볼 수 없고 알아볼 수 없기에 완성되는 폴란드 폴란드계속 그네는 흔들리고 꽃은 하양을 무력한 것만이 유효하다는 믿음은 손쉽게 이루어지면서도 부서지기 때문에 너는 그럴듯한 기분으로 태도를 지키기 좋았지, 시 안에서 꽃이 다뤄지는 방식으로, 미래처럼, 절망하기 위해 태어난 포즈는 늘 호응받기에, 너는 줄곤 들여다보았지, 들여다보지 않는 순간에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그것이 바로 흔들림이라고 적었지 손과 손을 놓고 멀어지는 연인들처럼다리 위에 매달린 기쁜 숨처럼 -49~51p 위 시는 표제작이자, 연작시인 세 편 중, 여는 시의 일부다. 시는 놀이터에서 화자가 ‘그네 아래’를 흰 꽃이라 주장하며 ‘폴란드’라는 인물을 연속으로 호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놀이터라는 장소는 쉽게 말하는 유년과 어린이 상징이기 때문에, 화자가 놀이터에서 생각하는 폴란드는 아이이며, 그 아이는 삼 연에서부터 날아가는 새와 동일시된 존재로 묘사된다. 머물러 있지 않고, 화자 곁을 떠나는 존재로. 아이가 부모 혹은 어른의 곁을 떠난다는 것은 대체 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 번째는 아이가 성장하여 한 사람이라는 개별적인 사람으로 독립한다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요절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 연작 중 여는 시 부분은 후자의 의미가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불타는. 나의 폴란드”라 구절로. 이렇게 ‘폴란드’를 망자라는 이미지로 바라볼 때, 첫 연의 “그네 아래는 하얀 꽃이다”라는 구절과 뒤에 나오는 노인과의 대화와 물
작성일 2026-02-28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144상세보기 -
감상&비평 <탈출기>로 바라본 몽우리돌처럼 단단한 독립의 열망
우리가 영화관을 보면 볼 수 있는 영화들,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그려낸 영화들이 가끔씩 우리의 가슴을 울리곤 했다. 대표적으로 [밀정], [박열], [암살], [동주], [영웅] 등이 있고, 드라마로는 [미스터션샤인]과 같은 작품이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이 온전히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뤘다기 보다는 당시 일제강점기를 배경이나 가상의 이야기로 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억압당하고 핍박당했던 그 일제강점기의 시기가 아주 가끔 일상의 한 구간 스며들며 뭉클함과 열정을 전달해준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는 미화된 부분도 있는 것이고,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는 영화는 찾기 쉽지 않다. 독립운동가가 어떤 거사를 치르고, 어떤 활동을 했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그들의 삶, 그들의 하루가 궁금했다. 약 35년간의 긴 겨울을 버텨온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본다.김동우 작가의 은 여러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나는 그 중 러시아, 네덜란드 편을 읽기로 했다. 러시아 지역 특히 그중에서도 만주, 간도, 연해주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궁금했다. 그들은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사건은 주로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나 좀 역사를 아는 사람은 자유시 참변정도까진 알 것이다. 이 책에선 연해주, 연추, 해삼위, 헤이그,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자유시, 하바롭스크 지역의 독립운동가들과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중간, 중간 작가가 찍은 사진들도 있어서 더욱 실감이 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김동우 작가는 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 그리고 까지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알려지지 않은 국외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고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 찍은 사진으로 독립운동이 아니여도, 국외 여행기 책을 저술하고 있다.페치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페치카를 내가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국내에서 개발한 인디 게임이었다.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을 개발했다기에 굉장히 놀라서 바로 그 게임을 다운로드 받았는데, 표트르라는 가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담은 게임이었다. 페치카는 러시아, 만주 등 추운 지방에서 쓰는 난방 장치로 돌, 벽돌, 진흙 따위로 만든 난로를 의미하는데, 그 페치카의 별명을 가진 사람이 바로 ‘최재형’이었다. 실제로 최재형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거사를 도운 인물 중 한 명이다. 최재형은 이 책에서 이라는 부제로 등장한다. 당시 연해주 거주 한인 수는 1907년 경에는 4만 6천여명, 1914년 경에는 8만 4천여명까지 늘어난다. 미등록 한인까지 포함하면 거의 10만명에 가까운 한인들이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재형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인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난로라 불리던 그 사나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최재형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와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에 매우 먹고살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가족은 최재형이 아홉 살 때 지신허에서 정착하게 된다.
작성일 2026-02-27 작성자 노스텔지아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50상세보기 -
감상&비평 중국과 제조업
중국은 현재 제조업 중심 국가이다. 그리고 컨테이너나 볼트같은 제조업 제품을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할 정도로 많은 생산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점유율 속에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과 기업의 과잉 생산이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중진국들이 슬 제조업 자리를 빼앗고 선진국들에게는 무역수지가 불균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이건 중국의 욕심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공포라고 볼 수 있다.세계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다른 나라 상품과 경쟁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낮은 가격과 높은 질이다. 이러한 방식은 냉전이 끝난 이후인지만 이러한 방식은 냉전이 끝난 이후인 탈냉전시기인 자유무역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기에 가능했다.하지만 중국은 알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무역수지가 비대할정도로 불균형하거나 특정 산업이 특정 국가에게 종속된다면 이건 산업 전체를 넘어서 국가 전체의 위기로 해석될 것이다.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경제 블록(EU, USMAC)과 여러 국가들은 관세를 높이거나 리쇼어링을 할 것이다.중국은 이러한 상황을 매우 두려워할것이다.그리고 중국은 이러한 상황에서 위와같은 정책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설려고 했다.태양광이나 배터리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성과가 나왔다.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국 재고와 부채가 만들어낸 악순환을 만들게 되었다.
작성일 2026-02-18 작성자 리지소어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25상세보기 -
감상&비평 사람들이 칭송하는 나의 악몽 - [한로로 - 0+0]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이기적이었을 수도 있다. 나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나에겐 참 안 좋은 기억이다. 중학교 3학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해온 환경동아리가 있다. 어쩌다 보니 동아리 선생님 앞에서 밴드부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권유를 받았고, 우리 지역 문화의 집에는 나로 인해 만들어진 중등 밴드부가 새로 생기었다. 12월에 생긴 동아리는 나의 1년 중 3분의 2를 전부 차지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한 팀을 이루어 활동 한 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 이라 생각한다. 나는 모든 동아리 팀원들이 나와 맞지 않았다. 그냥 같은 밴드부로써 들어주는 말이었지. 남들을 욕하는 태도. 노력도 없이 참 많은 결과를 바라는 것과 책임감 없는 행동 그리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가치관 등. 나와 맞지 않는 점은 참 많았다. 사실 난 밴드부 생활을 하면서 나에겐 안 좋은 철칙이 있었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다수가 원하고 말한다면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하자."라는 철칙. 하지만 나의 그런 철칙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연 1주일 전에 곡을 바꾸자 말한다던가. 다들 열심히 하는데 투정만 부린다던가. 자기들은 되고 나는 안 되는. 힘들고 재미도 없는 밴드부 활동이 계속되며 나는 그냥 체념했던 것 같다. 공연을 준비하며 이번에는 무슨 곡을 할까 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요새 유행하는 한로로의 노래를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입춘. 그 마저도 다른 밴드부가 한다고 일주일 전에 바꿨고. 최종 결정된 곡은 한로로의 비틀비틀 짝짜꿍. 참 나와 맞지 않은 노래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불렀다. 다음 공연에도 아이들은 한로로, 한로로 노래를 불렀다. 팀원에 절반이 한로로의 팬이었다. 난 그게 싫었다. 우리 수준에 맞는 곡을 선정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연을 망치는 것. 이번엔 또 어려운 곡을 선정하고 "이번곡 부르기 너무 힘들다"는 둥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러니까 한로로 해줬잖아?" 몇 달 뒤. 쌓이고 쌓인 게 점점 진물이 나고. 나만 희생하는 밴드 생활에 지칠 무렵. 아이들은 동그라미인데 나만 세모라는 이유로. 싸움이 나고. 또 나만 사과하고. 사과받지 못한 채. 그대들 잘못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독박을 쓰고 밴드부를 나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로로 가 싫어졌다. 정확히는 한로로를 좋아하는 그대들을 싫어한다. 한로로 노래를 들으면 그대들이 생각났다. 그럼 또 상처 속에 소금이 뿌려지고 하루에 절반 이상을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한로로 노래를 듣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듣기만 하면 짜증이 막 올라왔다.알고리즘에 가끔씩 뜨는 한로로 노래를 계속해 넘겼다. "노래 자체는 참 좋은데.." 사실 위에 사연이 없었다면 한로로를 정말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반복된 넘김 속에도 입에 맴도는 멜로디는 참 좋았다. 듣고는 싶은데 또 듣고 싶진 않고. 모순적인 나날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한로로의 '0+0'을 한번, 가능하다면 3번 이상. 듣고 밑에 글을 보시는 걸 추천
작성일 2026-02-18 작성자 문휘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96상세보기 -
감상&비평 완성되지 않는 사랑 - 리도어 <사랑의 미학>과 프롬의 사랑론
우리는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면 시작되고, 식으면 끝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과연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의 저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에 대해 사랑을 배우고 훈련해야 할 의지적 태도로 보았다. 사랑은 단순히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을 위해 선택되어야 하는 의지적인 행위라는 것이다.리도어의 은 제목부터 사랑을 하나의 태도이자 형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사랑을 배워야 할 태도로 본 프롬의 관점과 겹쳐 보인다. 그렇다면 사랑은 정말 기술처럼 숙련될 수 있는가. 은 그 질문에 대해 완성 대신 반복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미숙함과 흔들림, 끝내 능숙해지지 못하는 상태까지도 사랑의 한 형태로 드러낸다.노래를 틀면, 시작과 동시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의문의 음성이 들린다. 그것을 잘 들어보면 이러한 말이 들린다그 어떤 사랑은그들에게서믿어 의심치 않은 지금지켜주시길 바랍니다소망합니다이 속삭임은 단순한 도입부의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태도를 압축해 보여주는 문장에 가깝다.'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소망합니다'라는 표현은 사랑을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보호하고 유지해야 할 어떤 상태로 놓는다. 이는 프롬이 말했던 의지적 사랑과도 맞닿아 있다. 사랑은 저절로 타오르고 식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지속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선택하고 다짐해야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렇다.부풀린 사랑에 속아요뒷걸음치는 내 모습 알아요내가 나를 괴롭혔네요어둠이 떨어져도 난 몰랐죠'부풀린 사랑에 속아요'라는 가사는 사랑의 환상을 직시한다. 사랑은 종종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대한 집착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녹여내고 있다.'내가 나를 괴롭혔네요'라는 고백은 그 환상이 결국 자신을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사랑은 더 이상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선택과 태도의 문제로 이동한다풍선에 매달린 듯해가 떠오른다면옅어진 우리를 채울 거예요꽃잎은 졌다 해도'풍선에 매달린 듯'이라는 표현은 사랑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땅에 발을 디딘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해가 떠오른다면 / 옅은 우리를 채울 거예요'라는 구절은 앞서 서술된 위태로운 상태에서도 회복을 기대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에 맡겨진 상태가 아닌 다시 채워보려는 의지의 문제로 이동한다. '꽃잎은 졌다 해도'라는 인정은 이미 소멸을 한 번 겪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소멸 이후에도 다시 채워지기를 바라는 태도는 사랑이 단순히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무너짐과 회복을 동시에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사라짐을 향하면서도 다시 생성되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힘으로 작동한다.떠내려간 마음이 예정 없이 찾아와요사라진 흔적만 가득한데특히 '떠내려간 마음이 예정 없이 찾아와요'라는 구절에서 사랑은 통제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되돌아오는 형태를 띤다. 그리고 그 끝에는 '사라진 흔적만 가득한' 상태가 남는다.그늘이 떨어져도 난
작성일 2026-02-17 작성자 율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60상세보기 -
감상&비평 어른으로 가는 길에 포개진 여러 겹의 어린 삶- <짱구는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을 보고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곁을 지켜준 친구 같은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의 짱구. 심심해서 텔레비전을 돌려 볼 때, 깊은 생각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쉰다는 의미로, 텔레비전 속에서 라는 이름으로 송출되는 짱구 가족의 삶을 들여다가 보았다.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비슷한 경험이 하나라도 있을 거다. 굳이 짱구가 아니더라도. 유년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웃으면서 봤을 때가. 그렇게 우리를 웃게 해 준 인물들을 어른이 되거나, 성장했을 때 텔레비전 속에서 마주하면 어떤 생각이 들지.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은 인물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짱구 같은 경우 보통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짱구는 여전히 다섯 살이라는 것을.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대로 있는 기분과 혼자만 자랐다는 자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가 다섯 살의 짱구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작품 외적으로 보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성우의 교체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더빙 기준으로 볼 때. 2026년 현재 짱구의 부모인 짱구 엄마와 아빠 모두 성우가 바뀌었다. 짱구 아빠를 맡아준 오세홍 성우는 극장판 22기 부터 우린 그의 목소리를 짱구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 그는 2015년 5월에 사망하였기에. 짱구를 오랫동안 사랑해 왔던 사람들의 기억에 있는 짱구 아빠의 목소리는 극장판 21기 에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다.또한 오세홍 성우와 비슷한 사례로 짱구 엄마. 봉미선의 성우인 강희선도 건강상의 이유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결국 떠나게 됐다. 이는 짱구와 인물들의 나이는 멈춰있지만, 그들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은 한 명씩. 녹음했던 목소리로만 남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들이 남긴 캐릭터의 자리는, 후대 성우들이 대체하여 에피소드를 나아가고 있다. 하나의 캐릭터와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도, 떠난 그들의 자리를 후대들이 뒤로한 채, 캐릭터에게 그리고 그 목소리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숨을 놓는다. 짱구를 보며 웃고 떠들었던, 아이들이 10대가 되고,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도 짱구와 함께했던 순간을 생각하며 기쁠 수 있게. 그렇기에 는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극장판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특히 자연과 문명 그리고 보호의 관계를 주목한 8기 이나 시대와 계급을 초월하는 전국시대의 슬픈 로맨스를 보여준 10기 와 같은 극장판들이 그러하다. 이 두 극장판 역시 훌륭한 극장판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가족애와 우정 같은 긍정적인 감정과 더불어 불평등과 차별 같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함축되어 담겨있다. 그러나 이 두 영화 같은 극장판 명작의 대다수는 ‘짱구’라는 캐릭터에서 오는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9기 은 다르게 다가온다. ‘짱구’와 함께 크는 시청자. 즉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은 흔히 말하는 ‘향수병’을 소재로 만들어진 극장판이다. 여기서 말하는 향수란 그리움이라는 감정에서부터 촉발된 잔
작성일 2026-02-11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241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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