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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살아갈 자유와 죽을 수 있는 자유 (영화 『씨 인사이드』 비평문)
인간은 자신의 삶을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인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 맞부딪히는 지점에 놓여 있다. 특히 ‘존엄한 삶’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안락사를 단순히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으로만 바라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 된다. 결국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죽음의 선택 자체를 넘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씨 인사이드(The Sea Inside)』는 실제 인물인 라몬 삼페드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한 남자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자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아메나바르는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은 물론 편집과 음악까지 직접 맡았는데, 한 사람의 시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은 라몬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이 영화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다. 라몬은 젊은 시절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게 된 뒤 오랜 시간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의 방에 난 창문은 하필 그가 사고를 당한 바다를 향해 있는데 이 창문은 영화 내내 반복해서 등장하며 라몬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동시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사고의 기억을 매일 떠올리게 하는 이중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법과 사회가 바라보는 생명의 가치와도 충돌한다. 영화는 라몬의 선택을 단순히 옳거나 그른 것으로 판단하기보다,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라몬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말하는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몬에게 죽음은 단순히 삶을 포기하고 싶은 욕망이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에 가깝다.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살 수 있는 자유’와 ‘죽을 수 있는 자유’라는 개념 역시 이러한 라몬의 생각을 대변한다. 이 개념은 대사로만 설명되지 않고 영화 속 단 하나의 상상 장면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압축된다. 푸치니의 아리아의 ‘네순 도르마’가 흐르는 가운데 라몬은 침대에서 일어나 복도를 달려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카메라는 그의 시점이 되어 갈리시아의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까지 날아간 뒤 훌리아와 입을 맞춘다. 영화 전체에서 라몬의 몸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려지는 장면은 이 순간이 유일하다. 그것이 오직 상상 속에서만 허락된다는 사실은 라몬이 되찾고 싶어 하는 자유가 걷고 뛰는 신체적 자유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감각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선택을 인간의 자유로 인정한다면, 자신의 삶을 더
작성자 시유레 작성일 2026-09-07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감상&비평
영화 <원더>-세상을 마주하는 용기
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 2번, 책으로 1번 봤다. 영화로 봤을 때의 감동이 더 컸기 때문에 영화로 비평을 쓰려한다. 마지막을 어기의 이야기로 장식하기 위해 누나인 비아의 이야기로 먼저 시작하겠다. 비아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이 쌓여갔다. 그녀도 물론 동생을 아끼고 좋아했지만 온 가족의 관심이 안면기형을 갖고 있는 동생한테 쏠리는 데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티 내지 않고 꿋꿋하게 참아냈다. 비아가 뭐라고 하면 가족들이 더 힘들어할 걸 알기에 짐이 되지 않으려 늘 노력했다. 비아도 아직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일 뿐인데 투정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그녀가 안타까웠다. 성숙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인데. 그렇지만 비아의 행동이 옳은 행동일까? 맞다, 아니다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만 비아 혼자 그 모든 상처를 짊어지는 것은 가족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짐이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그녀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큰 문제는 비아의 친구 미란다와의 일이었다. 미란다는 비아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는데 그러다 보니 비아의 가족과도 잘 알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미란다는 여름 캠프를 갔다 오더니 비아를 피하게 된다. 비아는 당황했고 나 역시 그녀의 태도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그러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유가 나온다. 미란다는 부모님의 이혼 등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다, 캠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비아의 따뜻한 가족(어기 포함) 이야기를 마치 자기 가족의 이야기인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자신에게 동생을 위하는 희생적인 누나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사람들의 동정을 얻으며 결핍을 채우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비아를 마주하기 부끄럽고 미안해 의도적으로 피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미란다의 행동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미란다는 비아의 화목한 가족이 부러웠던 것이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비아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고 생각해봐도 좋겠다. 물론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도, 잘한 선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아에게 말하고 사과했으면 됐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란다에게는 그 방식이 최선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 보면 어떨까? 미란다도 그저 가족의 사랑이 고팠던 미숙한 아이였으니까. 둘의 화해는 학교 연극에서 이루어진다. 미란다가 주인공을 맡고 그 대역을 비아가 맡았다. 미란다가 객석에 온 비아의 가족을 본 후, 비아에게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며 무대에 서게 해 줬다. 비아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미란다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미란다는 여전히 그들과 잘 지내기를 바란 것 같다.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주던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과거, 친구의 가족을 소재로 삼아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미란다가 현재, 주인공이 될 기회를 포기하고, 자신이 한 번도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비아에게 자리를 넘기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작성자 캔디 작성일 2026-08-30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감상&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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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trophy 작성일 2026-08-29 좋아요 0 댓글수 4상세보기 -
감상&비평
김승옥론: 부끄러움을 마주하다.
서론1) 탐구 배경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이 질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질문에 한 번에 답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묻는다면 머리가 아팠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재밌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라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역사를 좋아했고,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읽었다. 카뮈의 소설은 정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다. 알베르 카뮈처럼 나의 생각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면, 나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욕망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남자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주위에 소설을 쓰는, 아니 글을 쓰는 친구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노트북에 초고는 쌓여만 갔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은 무의미했다. 학교 내에서는 백일장을 포함하여 이러한 문예행사가 아예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고립된 무인도에 갇혔다. 그때 쯤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소설은 나의 생각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와 문학에 대한 교류를 하지 못하여 외로움을 겪던 차에 나는 온라인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약 100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소설을 쓰기 보다는 작품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토론을 하던 중 어떤 사용자가 민음사 책의 표지 하나를 올렸다. 이름은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파란색 표지에 그려진 한 외로운 노인과 안개. 나는 그 사진에 매료되었다. 그것이 김승옥과의 첫 만남이었다. 민음사는 원래 외국 문학 전집만 발행한다고 생각하고, 한국 문학도 나오는지는 몰랐기에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바로 구매했다. 그리고 첫 문장은 나의 마음을 점령하기에 충분했다.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리는 그의 문체는 문체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던 나에게 모범답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문체보다도 김승옥이라는 작가가 형성한 하나의 거대한 철학적 세계였다. 이라는 작품에서 드러난 '자기세계'의 개념 이후 현대인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 멸망해가거나 몰락하는 인물은 분명 무언가 그의 철학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 거대한 세계는 무엇일까. 마치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가. 김승옥 작가의 소설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답을 절대 정해주는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만 하더라도 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질문만 던지지는 않는다. 실존주의도 인간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고, 칸트도 인간 존엄성에 따른 의무를 부여한다. 그러나 김승옥은 항상 소설을 애매하게 끝낸다. 의 주인공 ‘나‘는 윤희 누나가 범죄에 연루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놓고서는 그저 마을 주위를 서성이며 여러 생각을 하며 끝이 난다. 소설 에서는 주인공의 욕망을 결국 실현하지 못한 채로 다시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간다. 김승옥은 이런 애매한 상황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작성자 노스텔지아 작성일 2026-08-23 좋아요 0 댓글수 3상세보기 -
감상&비평
조세희, 윤흥길, 김애란의 '집'
유사한 소재와 다른 서술 조세희의 문학세계가 투쟁과 서늘함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면, 윤흥길의 문학 세계는 다정함과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결말부는 “꼭 죽여.”로 끝난다면 윤흥길의 『장마』는 “모든 걸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니까. 또한 난장이의 딸은 철거민 입주권을 구매한 사람을 증오하는데,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철거민 입주 권리를 산 사람이다. 연작에서는 철거민 입주권을 구매한 권력자를 절대적 악인으로 상정하고 선과 악의 대립적 구도를 구성함으로써 권력의 폭압에 대한 정서적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윤흥길은 철거민의 광주대단지 입주권을 구매한 엘리트층의 권씨라는 인물이 경제적으로 몰락한 상황을 묘사한다. 권씨는 대학을 나왔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영광을 기리면서 정장과 구두를 신고 공사장에 출근한다. 권씨가 자신을 도시빈민과 구별짓는 태도나 철거민의 입주 권리를 구매한 점에서는 전형적인 경제적 약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매일 구두를 닦는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며, 조세희의 작품들이 드러낸 사회적 모순은 결국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권씨처럼 연민하게 되는 개인들의 집합일 수 있다.조세희뫼비우스의 띠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_30p.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살기가 너무 힘들다.”아버지가 말했었다.“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지섭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써 보냈다. 그곳 관리인 로스 씨가 답장을 보내올 거야. 후년에 우주 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달에 가게 될 거다.” _72p.(…)“로스 씨의 편지를 받기 전에 보여줄 것이 있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올려 보여주마.” 집이 무너진다는 것. 지금은 죽은 여자가 ‘나’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새겨진 채 굳은 시멘트, 오랜 시간이 걸려 손수 지은 집, 집이 부서지는 순간까지 숭늉을 먹는 식구들. 급속한 근대화로 인한 마을 공동체의 붕괴, 고유한 기억이 담긴 공간이 소멸하고, 빈터가 되고, 수몰되는 순간은 한국 문학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현진건의 『고향』, 문순태의 『 징 소리』등 20세기 문학은 전통 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해 해체되어야 했던, 서구화와 근대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총력을 다해 추진하던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김애란의 『 침묵의 미래』는 집과 고향과 거기서 쓰이던 언어의 붕괴가 한국 사회를 넘어서 세계의 섬과 숲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로 시선을 확장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고향과 언어를 ‘중앙’에게 빼앗기고 중앙이 만든 집에 살며 중앙의 언어를 쓰게 되는 것은 비단 소수 민족 사회뿐 아니라 도시적 삶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포착한다.남아
작성자 Marllin Zero 작성일 2026-08-21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감상&비평
상실하는 사람들(모든 사람)과 함께
누구에게나 무언갈 잃어버린다는 게 유쾌한 경험이진 못할 것이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간에, 잃음의 경험은 당사자를 상처입히고 변화시킨다. 지우개나 잃어버리면 그나마 낫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살면서 지우개보단 더 소중한 것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상실은 단순히 우리를 방황하게 만들지만은 않는다. 임선우의 소설집 <<지상의 밤>>에는 이런 잃어버림의 상처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프랑스식 냄비 요리>, <사랑 접인 병원>, <동네 친구>, <지상의 밤>에선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한겨울 따뜻한 실내에서>와 <유령 개 산책하기>에선 반려동물을 잃은 인물을 볼 수 있다. 언급한 모든 작품의 중심인물들은 다른 존재를 잃고 나서 그 이후로 여러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를 잘 볼 수 있는 작품이 <프랑스식 냄비 요리>다. 이 작품은 환상적인 방법으로 이별의 과정과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연인인 ‘단’과 이별한다. 단순히 관계가 끊어지는 게 아니라 단의 형태가 액체로 변하여 갑작스러운 이별의 과정을 겪는다. ‘나’는 단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단의 요청으로 고민 끝에 그를 빵으로 만들어 먹음으로써 그와의 이별을 맞이한다. 액체가 된 단이 점점 증발하는 것과 ‘나’가 그런 단을 먹는 건이별과 그 과정의 은유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을 섭취함으로써 단이 ‘나’의 일부가 됐다는 것이다. 단순히 신체적인 합일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단계에서도 ‘나’는 단과 융합된다. 단의 습관이나 취향 등이 ‘나’에게로 복사된 것이다. 이는 밀접했던 어느 이와 헤어지고 난 다음에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을 흔적이자, 그와 함께했던 시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특한 점은 그 변화를 이별 이후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에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령 작중 시를 쓰는 단의 특징은 이별 전까진 주인공 게 아니었지만, 단으로 만든 빵을 먹은 이후에야 주인공도 시를 쓰는 습관을 갖게 된다. 이는 작가가 관계 그 자체보다는 이별이 가져다주는 변화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식 냄비 요리>와 달리 관계로 인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사랑 접인 병원>이다. 이 소설은 서로의 신체 일부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두 사람을 동일화시키는 접인 수술을 소재로 사람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김애주와 박민철의 이야기였다. 둘은 접인 수술로 서로가 동일화됐던 부부였지만, 도리어 그 접인 수술로 변한 김애주의 모습을 이유로 이혼한다. 이는 의도적인 독자를 위한 빈칸이다. 채워놓는 건 독자의 몫으로,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이별(김애주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조금 시간이 결렸을지언정, 큰 문제는 없었다)이나 억지로 서로에게 끼워 맞추는 행위의 결과 등 다양하게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
작성자 금안백 작성일 2026-08-21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감상&비평
지상에서 맞는 환상적인 삶
은유게임이란, 아무 단어를 제시어로 던졌을 때 그 단어의 본질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유의어와 반의어를 말하는 것으로 최근 친구들과 하기 시작한 게임이다. 얼마 전, 혼자 은유게임을 하다가 ‘상실’을 제시어로 던졌다.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삶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이 단어는 분명 게임의 답이 맞는데, 유의어와 반의어 중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좋은 은유는 어느 쪽의 말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이 찾아왔다. 삶은 상실과 유사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상실과 반대인 말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같은 성질’과, ‘다른 성질’을 넘어선 본질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상실과 삶은 본질적인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고, 보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는 것. 잃음과 얻음이 한 판의 유리장처럼 서로 붙어 있어 떨어트릴 수 없는 것. 한 쪽을 바라볼 때 다른 쪽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삶과 상실의 동일한 면이었다. 그렇기에 삶은 즉, 상실이 될 수 있다. 삶은 상실이라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상실을 통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또 얻어간다. 임선우 작가의 소설집, 을 읽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상실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햇빛에 비춰 보는 다각면의 보석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 속에서, 환상적인 장치 속에서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상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궁금증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평을 쓰고자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실이 삶이고, 삶이 상실이라면, 결국 그게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카페에 앉아 유리창의 얼룩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결국 반대편의 거리를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생의 목표하는 지점들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한 것이 아니라 사실 긴 터널과 같이 이어져 있다. 소설집에서 사용되는 환상적인 장치들은, 독자가 익숙하다고 여겼던 세상과 몰입하는 것을 계속해서 깨트리며,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독자를 타자화시키면서, 독자는 인물들이 목표하는 띄엄띄엄한 지점들이, 멀리서 보았을 때 전부 이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촉수에 닿으면 인간이고 동물이고 전부 해파리로 변”하는 “변종 해파리”의 출현은, 인물의 상황이 실화가 아닌, ‘지어낸 이야기’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만든다. 그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수’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히키코모리가 된 사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도둑질을 하다가 해파리 변신 대행업체를 찾아간 사건은, 삶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소설의 마지막 결론을 위한 하나의 수순처럼 느껴진다. 즉, 이 소설집에서 나타나는 ‘상실’은 ‘환상’과 결합하는 순간 ‘잃었다’는 의미보다 ‘생겨남’의 의미로 연결되게 된다. “변종 해파리”의 출현 전까지, ‘수’의 ‘현실적인’ 상황들(히키코모리, 아버지의 돌아가심,
작성자 방백 작성일 2026-08-20 좋아요 0 댓글수 2상세보기 -
감상&비평
이별은 무엇으로 남는가 — 임선우의 『지상의 밤』 수록 단편 「프랑스식 냄비 요리」에 대하여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고래 작성일 2026-08-20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감상&비평
익숙한 대상이 변화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 『지상의 밤』의 상실과 위로
상실은 어떤 조건에서 성립되는가?상실의 뜻을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상실(喪失)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2.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그렇다면 상실은 정말 무언가가 없어지거나 관계가 끊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음에도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곤 한다. 관계가 이전과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것만으로도, 이전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상실과 상실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표준국어대사전은 상실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상실감(喪失感)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의 느낌이나 감정 상태.즉 상실이 어떠한 대상이나 관계의 소실을 가리킨다면, 상실감은 그 소실을 경험하는 주체에게 발생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 정의 역시 상실감이 어떠한 조건에서 발생하는지까지 설명하지는 않는다.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가 실제로 사라졌는가와 무엇인가가 사라졌다고 느끼는가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수 있고, 대상 역시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전의 관계나 이전의 상태를 잃었다고 느낄 수 있다.그렇다면 상실감은 단순히 ‘무엇인가가 없어졌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때 우리가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지상의 밤』에서 상실은 대상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상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을 때도, 그 변화 자체를 상실로 받아들인다.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도 아니고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잃었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관계에서도 낯설지 않은 감정이다. 사람의 마음과 관계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는 때때로 그 변화만으로도 이전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고 느낀다.그러나 여기서 변화와 소멸을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관계의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은 이전의 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상대방이라는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상의 밤』의 인물들은 변화한 대상을 이전의 대상과 연속된 존재로 받아들이기보다, 변화가 일어난 순간을 하나의 단절로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대상의 소멸에서 비롯된 상실이라기보다, 자신이 알고 있던 대상의 모습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데서 비롯된 상실감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이 질문은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어쩌면 인물들이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타자 그 자체가 아니라, 타자에게서 자신이 발견하고 사랑했던 특정한 모습일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이해한다. 오랜 시간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는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어느 순
작성자 미빈 작성일 2026-08-20 좋아요 0 댓글수 3상세보기 -
감상&비평「 비눗방울 퐁」 -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이유리 작가의 작품세계1.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의 기억 속에서 재생되고, 타인을 사랑할 때 인간의 행동과 생각들이 감각적으로 서술됨2.초월적, 비인간 존재와의 상호작용3.동거 후 이별로 시작되는 구조가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남. 첫 만남부터 시작하는 타 소설과의 차별점으로, 인물이 이별 전 이야기를 회상하고 변화할 계기를 마련하는 서사적 기능을 함. 독자로 하여금 동거 커플의 역사를 궁금해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음. → 다른 소설집에 수록된 ‘이구아나와 나’도 비슷한 구조.4.‘우리 집’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임.5.SF 요소가 가미된 작품들에서는 공통적으로 감정이나 기억을 다루는 상용화된 기술(크로노스, 감정전이, 기억-담금주)을 상상하고, 상실과 이별의 고통을 기술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 에서는 이러한 기술들을 적극 지지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 경제성과 효율성에 기초한 사고관을 가지면서 주인공과 결혼 또는 연애 직전 단계에 있는 남성들이다. 그리움을 다루는 과학기술적 방편에 대한 주인공과 남성들의 견해 차이는 주인공이 남성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될 때 중요한 문제가 되므로 깊은 관계를 맺기 전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이어지는 작품 속 ‘기억-담금주’는 ‘나’가 취하고자 하는 그리운 상대의 시절만을 재현하거나 감정을 제거하거나 이식하는 것을 넘어, 혀 끝에도 댈 수 없던 씁쓸한 기억과 감정을 우리고 발효시키면 달큼한 술이 됨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헐벗은 상태’의 아픈 기억을 오래도록 재구성하다가, 그것이 담긴 술을 버리지 않고 집 한편에 놓아두었다. 문득 술이 담긴 커다란 유리병을 돌이켜보고 들이켜보니 달콤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칠맛이 느껴지는 것은 인간 삶의 미묘한 성질이다.*이는 김초엽 작가의 , 과 연결되는 주제의식이다. 급속한 기술 발전 이전과 이후를 모두 겪어본 2030 작가들이 포스트 휴먼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영원하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 인간을 원했잖아 이제 어떻게 할래?’라는 질문을 탐구한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슬픔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소셜미디어와 항우울제 등 행복이 판매되고 소비되는 현재,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온 문학계의 시선은 웃음소리 가득한 세계를 새로운 고통으로 비춘다.표제작 「 비눗방울 퐁」-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그리고 그다음 순간이었다, 옆에서 퐁 하는 소리가 난 것은. _278p.집에서 그것을 유현의 오른 팔목에 감고 시험 삼아 몇 걸음 걸어 보니 과연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고 있는 우리 모습이 슬프고 또 동시에 우스워서 울다 웃다 했음은 물론이었다. _249p.삶의 덧없음은 조선시대 때부터 가사를 통해 노래되었던 유서 깊은 모티프다. 21세기의 이 소설은 어려운 한시를 인용하는 대신 그 덧없음을 ‘퐁’ 하고 터지는 인간 비눗방울로 형상화했다. 유현의 현재 연인인 ‘나’와 전여친 혜령은 죽기 직전에도 농담을 건네는 사이다. 덧없지만 서로의 눈물을 닦
작성자 Marllin Zero 작성일 2026-08-20 좋아요 0 댓글수 2상세보기 -
감상&비평마음에 묻힌 상문을 사무치며 나아가기
1: 그냥 살아가기 2022년의 가을이었다. 내가 건강했던 그때. 나에게 노랗고 작은 한 마리의 생명이 길거리에서 내 삶으로 따라 들어 왔다. 이름은 토리, 길거리를 떠돌던 노란색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따라왔다. 하지만 그가 온 뒤로 내 삶은 여러 잡음을 쉬지 않고 내고, 잡음이 쉬지 않게 들려왔다. 그렇다. 기침 틱 혹은 고양이 알레르기 아니면, 기관지염 천식 등이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카센터를 운영하고 자신의 일터에서 사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에게 그를 두었다. 그러던 2024년과 2025년을 통과하던 어느 날 토리는 카센터와 집에서 나오는 대범한 가출을 했고,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작고 노란 천사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가 마치 세상을 떠나 무지개다리로 건너간 것 같아서. 그가 떠나고 나는 그와 나에 관한 생각을 여럿 했다. 나는 그에게 좋은 주인이었을까. 우리 집에서 산 몇 달이 행복했을까. 애써 이런 질문에 “그래, 괜찮았을 거야.”라고 답하며 삶을 나아가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때때로 꿈에서라도 그를 만나면 그에게 괜찮아 보일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수없이 상상한다. 죽은 존재가 나를 다시 만나러 오지 않기를. 나를 기다리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죽은 자의 세계인 사후 세계에서 편히 살기를. 상상하며 그린다. 그때 상상과 희망 그리고 그림을 연결해주는 것이 있다. 바로 무지개다리다. 2:무지개다리 무지개다리는 말 그대로 무지개로 이루어진 다리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무지개는 대기 중 수증기 [물방울 입자]가 프리즘처럼 작용하여 태양광의 가시광선을 굴절시키고 분산시키며 만들어진 빛의 현상이다. 그렇기에 무지개는 누군가가 건널 수 있을 만큼의 단단한 존재가 아니다. 반면 다리{橋}는 차량과 같은 사물 혹은 동물을 받쳐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물이다. 그렇기에 다리는 단단함을 기본값으로 가지는 사물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서 볼 때, 무지개다리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무지개다리는 사람마다 생각하고 그려내는 것이 다르며 구체화 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다리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비슷한 의미를 지닌 채로 일상생활에서 이 단어를 쓰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공유된 부분 중 비슷하게 겹친 부분을 모아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이를 볼 때 무지개다리의 의미는 죽은 반려동물이 사후 세계에서 주인을 만나러 오는 장소 혹은 기다리는 장소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세계의 모습은 각각 다르게 묘사되고 그려낸다. 그러면서 떠난 이들을 마음속에서 그려낸다. 그런 점에서 상상은 하나의 힘을 만들어 낸다, 상상을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시간으로 치환함으로써 슬픔과 아픔을 사무칠 수 있게 하는 시간과 공간의 배경을 준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솔직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에서 받은 여러 아픔을 그 속에서는 치료하고 나아갈 수 있다.
작성자 송희찬 작성일 2026-08-20 좋아요 0 댓글수 6상세보기 -
감상&비평AI는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 ‘난 입이 없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만한다’를 읽고, 그리고 ‘The Amazing Digital Circus’를 보고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손석호 작성일 2026-08-20 좋아요 0 댓글수 2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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