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감상&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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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감상&비평'에는 형식을 갖춘 비평문만 올려야하나요?작성일 2023-07-25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337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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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비평 소우주(Live) — 작은 숨을 끌어안아 주는 노래이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대단한 메세지를 바로 알아챘다기보다는묘하게 ‘살았다‘는 느낌이 조금 돌아왔다.하루가 고단하게 끝난 날이면나는 습관처럼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곤 한다.이 곡이 주는 위로는 화려함이 아니라오히려 담백함에서 온다.노래는 우리가 흔히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조용히 끌어온다.누군가의 작은 불빛,가만히 머물고 싶은 밤공기 같은 것들.그런 사소한 순간들을 하나로 모아“너도 우주처럼 소중하다”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엮어 낸다.라이브 영상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보이는 건멤버들이 크게 꾸미지 않은 표정이다.힘을 과하게 주지도 않고,여유를 부린 듯하면서도어딘가 절박하게 진심을 건넨다.반복되는 멜로디는듣는 사람이 숨을 고르듯 따라 부르기 좋게 되어 있고,클라이맥스에서 관객들이 조용히 합을 맞추는 순간은그냥 잘 부르는 노래를 넘어서서로를 살피는 의식처럼 느껴진다.곡을 분석해보면,멜로디는 단순하지만 안정적이고,보컬의 질감이 미묘하게 흔들릴 때곡의 메세지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감정이 텍스트 보다 먼저 전달된다는 말이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곡 전체가 “괜찮아, 여기 있어도 돼”라고 말하는 듯하다.물론, 누군가는 이노래가 다소 감성에 기운다고 말할 수도 있다.서사가 분명한 이야기 대신감정의 이미지에 의존 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빈자리가 좋아 보인다.각자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들어설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결국 는 누군가에게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은 감정’을 허락해 주는 노래다.특히 청소년에게는스스로를 과하게 증명하느라 지칠 때,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방 같은 곡이 된다.그게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도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성일 2025-12-14 작성자 Malissa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6상세보기 -
감상&비평 글을 쓸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소설을 쓸 때 중요한 건 이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항상 의심하면서 존나 생각없이 글을 생산할 줄 알아야된다고 생각한다.너무 자의식에 빠진거 같으면 갈아엎는다(너무 편한 방법인가 무섭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무슨 뜻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가 아니라 이게 필요한가?이다.지금인가? 싶을 때 그 선을 보고 달려든다.그 선을 찾기위해 노력한다.'감상', 비평이라 여기 올린다 ㅎㅎ
작성일 2025-12-11 작성자 윤도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9상세보기 -
감상&비평 강요된 질서 속 사라지는 존재에 대해
일상적 폭력과 개별성의 상실 1997년 계간지 창비를 통해 발표된 한강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는 1인칭 남편 시점을 통해 아내의 변화를 관찰하며 가부장적 사회 속 여성의 자아 상실과 현대사회 속 소통의 부재를 드러낸다. 소설 속 아내는 줄곧 남편을 통해 서술되어오다가 마지막 독백(엄마에게 부치는 편지)을 통해 남편의 시선을 거치지 않고 처음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아내는 떠나는 사람이다. 자신이 태어난 시골을 떠나 도시로, 도시를 떠나 해외로 가고 싶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화자인 남편을 만나게 되고, 남편과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해외에 가기 위해 모았던 퇴직금을 전부 아파트 청약에 넣게 된다. 처음 아내는 아파트에서만큼은 살 수 없다고,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높은 섬에 갇혀 내려갈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자신의 심정을 남편에게 호소했지만 남편은 아내의 이런 호소를 묵살했고, 아내는 서서히 병들어 갔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멍들이 나기 시작한 아내는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차라리 먼 데로 가, 우리" 모든 힘을 쥐어짜낸 마지막 한마디. 남편은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가 내민 마지막 손을 뿌리쳤다. 아마 그때 남편이 한 거절은 아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마지막 남아있던 '자신'을 잃고 더 이상 주장을 펼치지도 남편과 싸우지도 않았으리라. 아내는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고 부조리한 세계 속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에 견딜 수 없었던 아내는 결국 인간의 질서를 벗어나 식물이 된다.폭력이란 무엇인가 이 소설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일상적(비가시적) 폭력을 소설적 알레고리를 통해 표현해낸다. 리얼리즘과 초현실의 결합은 이를 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폭력은 무엇인가? 폭력의 정의에 대해, 또 폭력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에 대해 이 소설은 탐구한다. 폭력은 늘 강제성을 동반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발생, 즉 부조리의 성격을 띤다. 그렇다면 부조리란 무엇일까? 부조리란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할 때 발생하는데, 원래 세상은 정해진 것 없이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의 시점에서 보는 세상은 늘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강의 소설에서의 폭력이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만든 질서에 적응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여기서 인간의 질서란 원래 무질서한 세계에 의미를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행위인데, 이는 강력한 부조리의 발생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폭력은 무엇이 있을까? 필자자는 개별성의 무시를 떠올렸다. 한강이 말하는 폭력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정상 혹은 비정상이라는 말로 우리는 개별성을 무시당한다. 실제로 정상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우리는 한 가지 분야가 아닌 다양한 곳에서 정상을 강요당한다. 어디에서는 정상인 사람이 특정 공간에서는 정상이 아닐 수 있다. 또 지금의 시대에 정상인 사람이 다른 시대, 다른 세대에 가면 정상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정상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야
작성일 2025-12-11 작성자 최진규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6상세보기 -
감상&비평 김소월의 시 다시 써 보기
이 비평은 어쩌면 모욕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김소월(김정식)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른다기보다는 시대적인 배경 등을 잘 알지 못한다.그러므로 나는 왜곡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나는 악하다. 그러나 나는 쓸 것이다. 나는 쓸 것이다. 나의 경험을 조금 적겠다.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나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서는, 내가 너무 역겹다고, 그 사랑하는 사람에 비해서 그 앞에 설 가치도 없고, 단단히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자학의 심연에 빠진다. (몹시도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말이지만 그 사람의 앞에 서면은 나는 항상 그렇게 된다. 정말이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나는 '괴물'같이 된다 내 손은 털복숭이에 손톱은 날카롭고 목소리는 투박하며 잘 들리지 않아 매번 그 사람을 난처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나에 비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나는 동경하고 또 내 전全을 바쳐 사랑하고 싶다가도 한쪽에의 사랑이라면 모를까, 그 사람에게 마음을 바라는 것은 분수의 어긋나는 일이라고 또 자학해, 나를 대장간의 망치로 두드리듯이 비하의 언어를 쏟아낸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몹시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가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실제 경험이다. 짝사랑하는 이가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멀리 사라져가면 나는 은근히 씨익 웃기도 한다, 이 웃음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를 비웃고 있는 것인가? 울면서 웃는다는 건가? 사실은 "그럼 그렇지. 내가 무어라고? 저 사람은 나와는 다르다. 나는 역겨운 괴물일 뿐이다.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할 이유가 단 한가지도 없다." 그리하여 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게 되었다.에서 기억에 남는 시어는 '역겨워'이다. 역겹다라는 말을 쓰는 것은, 김소월이 이 시에서 나타난 사랑을 몹시 비관적으로 봄을 알 수 있다. 시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화자 외에 다른 누군가를 '임'이라고 해 보자. '임'이 화자를 떠나는데, 임이 자신을 역겨워해서 떠난다고, 혹은 그렇지 않아도 본인을 역겹다고 말하는 것에서 몹시도 자학적인 말인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바라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꽃을 뿌린다는 것은 아주 아무렇지 않은 상태(순응이라고 해도 되겠다.)에 이른 것이다. 화자는 이 비극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있다. '죽어도'라는 시어에서 그 정도가 격함을 알 수 있다. '역겨운 나'라는 말을 사용할 때이다.에서는 죽음에 초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화자가 미쳤다고도 할 수 있다. 만사의 무의미에 정신이 나간 것이다.에서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볼까요.'라는 비관의 마음도 다시 드러난다. 이라는 시에서는 그가 삶을 아름답고 깊고, 큰 의미가 담긴 무엇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김소월이라는 사람이 시를 쓸 때의 가정을 '가'라고 이름 붙이면 '가'는 이룰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에 정신을 놓았고홀린 듯이 시들을 작성해놓은 것이다. 내가 김소월 시인이 세상을 비관하고 있다(혹은 그런 화자로서 시를 썼다)라고 느낀 것은을 읽고 나서였다. 또 말하기에 이상하고
작성일 2025-12-10 작성자 드시코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7상세보기 -
감상&비평 비주류의 목소리로 비주류를 말한다 – 히피쿤다 <Tundra>를 듣고
히피쿤다가 대중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작년 겨울,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랩:퍼블릭>을 통해서다. 그녀는 99' Nasty Kidz를 이루는 멤버 드레인케이와 함께 출연하여 극한의 협동랩을 선보인 바 있다. 한국 힙합씬에 여성래퍼는 비주류이며 혼성듀오는 없다시피 하다. 히피쿤다의 등장은 그런 메마른 바닥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방송에서 재치 있는 가사와 유려한 플로우로 청자들에게 이름을 각인해뒀던 그녀가 정규 1집 를 들고 찾아왔다.전술했듯 한국 힙합씬에 여성은 분명한 비주류다. 스월비나 재키와이 등의 래퍼들이 고평가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히피쿤다는 자신의 성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앨범을 특별화했다. 5번 트랙 <채식주의>는 남성성을 고추에 은유하며 살아남기 위해 절대 채식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유쾌한 곡이며, 3번 트랙 와 7번 트랙 <너랑 하는 게 내 소원>에선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적 대상화를 고발한다. 택시 아저씨가 담배 끊으래서달리는 중간에 문을 걍 열어재껴입덧처럼 토하고 20을 던져줘 근데내 뱃속엔 애가 설자리 없어박아줘 빨아 내 신음 소리에만 귀가 다 밝아진저리 나니 더해봐 더빡통가사 싫대 내 말은 이해도 못 하면서 中 히피 너도 남자나 좀 만나러 가 화도 식혀일만 하다 시간 다 놓치고 젊은 처자 실격건물주 아들이래 27살 미용실에서 일해압구정이 직장이고 키는 oh 꽤 훤칠해 <너랑 하는 게 내 소원> 中 이 대목에서 히피쿤다의 랩스킬에 관한 칭찬을 빼놓을 수가 없다. 위와 같은 가사를 내뱉으며 그녀는 빠르지 않게, 소위 말해 귀에 박아 넣는 식의 쫀득한 플로우와 발음을 구사한다. , 에서 귀에 때려 박는 속사포를 구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플로우 변화를 통해 히피쿤다는 앨범 내 호흡을 조절하는 동시에 전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그녀는 힙합씬의 비주류인 여성의 목소리로 비주류를 말한다. 1번 트랙 <파수꾼>에서도 자신을 몇 안 되는 파수꾼이라 칭하며 비주류를 자처했다. 저 아래서도 난 살아 中 아마추어들 내가 괴물 되기를 강조그건 되는 게 아냐 오래전부터 여기 차 있어 中 앨범 대부분의 노래에서 히피쿤다는 비주류를 노래한다. 그것이 여성이든, 힙합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곳은 척박한 황무지다. 타이틀곡 에서는 그녀가 지나왔던 벅찬 삶을, 웨스턴부츠를 신고 설원을 걷는 발자국으로 묘사한다. 가사를 강조하는 플로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가사전달력이 발휘된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훌륭한 앨범이지만 아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피처링의 부조화를 얘기할 수 있다. 루시갱은 그나마 같은 여성래퍼로서 노래 속에 잘 녹아든 편이지만 다른 피처링들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타이틀곡 의 후렴구를 부르는 서울부인의 김경호는 안 그래도 갑작스런 컨트리풍 사운드에 매력적으로 녹아들지 못했다. 감안하고 봐도, 결론은 앨범은 훌륭하다, 로 귀결된다. 그러나 완성도에 비해 해당 앨범을 향한 주목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유튜브 조회수가 700인 노래도 존재한
작성일 2025-11-29 작성자 구포대교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266상세보기 -
감상&비평 생명을 감싸는 사랑을 품는 정-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을 중심으로
1:사랑을 말하는 시-진은영 , 이병률 ㅡ사람들은 사랑을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사랑을 심하게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나는 사랑을 사랑하기 시작했고개인적입니다{중략}꽃을 떨어트린 줄기가 땅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것이 땅콩입니다그것을 줄기로 치느냐 뿌리로 치느냐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사랑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헷갈려 하지만요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사랑은 이성적으로 나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중략}사랑을 감각하지 않는다면우리는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을 텐데어떻게 이러고 삽니까사랑이 후방에라도 있는 겁니까ㅡ 이병률 中ㅡ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별들은 별들처럼 웅성거리고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중략}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쓴잔을 죄다 마시겠지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ㅡ 진은영 中'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시집을 제일 먼저 떠올리곤 한다. 나 같은 경우, 진은영 시인의 시집 와 이병률 시인의 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특히 진은영 시인의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과 이병률 시인의 작품 속에 있는 은 '사랑'의 이미지와 그와 관련된 진술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 말하는 사랑의 특징은 비슷하다. 바로, 다채로운 색감, 양면성이 있는 존재.ㅡ이병률 시인의 시에서는 '사랑'을 땅콩으로 비유한다. 그는 땅콩의 생물학적 관점에서 이를 발견한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부르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쪽을 보면 기쁨이지만, 다른 면을 보면 슬픔이자 아픔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추상어인 '사랑'의 양면성이다. 또한 그의 시뿐 아니라, 진은영 시인의 시에서도 '사랑'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그녀는 청자를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하고 있으며 이를 응원하듯 '별들은 별들처럼 웅성거린다'고 한다고 첫 연에서 말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라고 화자는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담겨 있는 슬픔은 자신의 슬픔만이 아니다. 마지막 연 앞에 두 행에서 화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라고. 이 말처럼 화자는 고백하는 타자를 위해, 타자도 고백하는 화자를 위해 그들의 슬픔을 함께 나눈다. 즉 사랑은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것. 아픔조차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시에서는 이야기한다. 이는 즉 자신의 아픔을 나누어야 기쁨과 화해가 된다는 사랑의 양면성을 다시 한번 더 비추고 있다.ㅡ2:사랑을 말하는 뮤지컬 영화 ㅡ이와 같이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주면서, 사랑의 구성 중 '정'을 보여주는 뮤지컬 영화가 있다. 바로, 2025년도 토니상 수상작인 뮤지컬 의 영화 버전이다.ㅡ 2-1: 인간에게 받은 행복과 상처 같은 사랑영화는 뮤지컬 원작처럼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로맨스 성장 이야기다
작성일 2025-11-2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324상세보기 -
감상&비평 백치들을 다그침
오랜만에 긴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그간 혹자, 혹은 독자라 부르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애정과 존중은 너무 깊이 파묻은 탓인지 잠시 옆에 치워두고 싶다. 한국어에 대한 오랜 고민이 있었다. 내가 읽어온 한국어는, 특히나 문학에 있어서 의지의 표출이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본질이라기 보다도, 더 큰 맥락을 대표하기 위해 존재했다. 상록수와 수난이대를 읽던 내게 아몬드나 그 엇비슷한 표지들의 요즘 책들, 그러니까 말 그대로의 픽션들은 내게는 너무도 난해한 것들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외계의 스토리들, 그리고 낯선, 그러니까 엉뚱하리만치 이상한 단어들을 가져와다 쓰는 서평들을 읽다보면 그 소설들은, 또 문학은 현실의 프라모델이라기보단 또봇이라거나 카봇이라거나 하는 대중적인 메카물의 피규어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즐기거나 즐기지 않건간에, 사유라거나 깊이라거나 하는 단어들, 그러니까 해설하자면 적어도 500쪽은 되는 책들에서나 기대하고 찾던 작가들 본연의 누적된 생각들은 뜨고 지는 사조들의 저편으로 이미 사라졌다고밖에는 내게 남아있는 결론이 없다. 예수가 말했듯 비판받기 싫다면 비판하지 말아야하므로 나는 나의 주장을 만듦에 있어 어느정도는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어는 단지 문학의 필요가 전혀 없는 맥락이다. 한국 문학의 세련된 학풍, 그리고 여러 비평, 발문, 서평등으로 지껄여지는 공명은 한국어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또 괴이하게 스스로 발전하며 작동한다. 한국 문학의 고요하고 정제된, 말하자면 연구된 문장으로서의 문학은 어쩌면 고도의 완곡한 풍자극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한국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텍스트는 작가들의 불평불만은 고결하게 풀어낸 보여주기식의 자기고백이나 오덕들의 엔터테인먼트라고밖에 할 수 없는 픽션들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다. 우리 백치들은 우리가 마치 이전 사조들보다 위대한 걸 건축해 낸 것 마냥 떠든다. 무슨 소설집이 넷플릭스보다 재밌다느니 토마토가 심장보다 단단하다느니 하는 모든 것, 또, 굳이 꺼낼 필요는 없겠으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다는 등의 모든 너무 자기의식적인 나머지 병신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아냥으로까지 들리는 개소리들말이다. 말해왔던 바지만, 엔터테이너로서의 길을 갈 사람들을 응원한다. 열심히 해라. 사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선 차라리 작가 기획사를 차려서 사업을 하는게 훨씬 낫지 않을까도 싶지만 우리 백치들은 그럴 염치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말이다. 나는 문학의 구성요소로서의 메세지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없지만서도, 은연중에 문학은 근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지만 중심적이며 추상적인 메세지가 있어야 여운이 남는다거나 더 완결적인 작품이 된다거나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쓴다면 쓰는 거다. 쓰는 것에 대해 연역적으로 선행하는 목적같은 건 있을 수 없으며 쓰는 것은, 그리하여 적히는 것 그 자체로 온전한 목적이며 메세지다. 기껏해봐야 로맨스물, 단순성장물 쓸거면서 페미니즘, 기후변화같은 것들을 찍먹하는 걸 나는 순수히
작성일 2025-11-20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2 댓글수 2 조회수 445상세보기 -
감상&비평 잃어버린 총체소설에 관하여
우리 문학이 점점 짧아진다. 오랫동안의 사견이었으나, 단지 사견으로 끝날 주장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렇다. 당장 어느 서점에 가더라도, 대하소설은커녕 엄지손가락보다 두꺼운 소설들도 곧장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하소설은 대가 끊겼다. 2000년대 초에 나온 것 역작들만 옛 독자들이 알아볼 뿐이고, 등단 수십 년을 바라보는 옛 작가들의 추억 이야기가 이제는 정말로 대하소설의 일몰이라고 밖엔 볼 수 없다. 실제로 교보문고에서도 그러한 장편 중에선 (당연히 경장편들은 제하고) 조정래와 김진명, 무라카미 하루키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부다하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현대의 트렌드는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거나 대중의 테이스트가 너무 스낵컬처에만 맞게 퇴화했다거나 하는 분석은 차치하고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대하소설, 더 나아가, (대하소설은 그 자체로는 그냥 플롯 구조가 완만한 거대한 소설이라는 뜻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총체 소설의 필요성을 알아야만 한다. 총체 소설은 사학이다. 역사를 재구함에 있어 기타 사료와 수량화된 자료들만큼이나 그 맥락을 증언하는 것은 문학의 존재다. 토지가 그러했고, 한강의 여러 작품이 그러했으며, 한국 문학의 원초를 거슬러가 본다면 역시나 같은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이므로 그것이 실체적인 진실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실체적인 진실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작가는 집필의 의지와 과거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사투하고 공부하고 또 갈등해 나가야 한다. 또 그렇게 작품이 발표된다면 그것은 다시 공격받고 다른 매체, 어쩌면 다른 소설로서 반박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야말로 역사에 기여하는 올바른 방법이다.총체 소설은 그러한 이유로 맥락을 충분히, 그리고 최대한 완전히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다. 혹은 필요했다. 그러나 요즘의 사조는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굳이 역사 소설이라 표현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굳이 과거사만을 위한 총체소설일 필요는 없으므로) 소설의 필요성은 다양한 의미에서 무시된다. 짧은 가방끈으로 뭐라 할 말이 있겠냐마는 현대의 도그마는 역시나 개인이다. 더 나아가 사회의 대비로서의 개인이다. 집단의 안티로서의 개인, 수량화된 전체 속에서 억눌리어 살아가는 개인, 무채색의 수많은 ‘개체’들 간에서 억눌리어 살아가는 개인이다. 비단 캐릭터가 여러 명 등장하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오로지 개체에서 개인으로 정체화되어야만이 성립한다. 그런 과정에서 개인이 얕아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클리셰를 그대로 쓰는 작가가 어딨겠냐마는 독자들이 원하는 건 이해 가능한, 또 그렇기에 정상적인 형태로 감정적인 주인공이지 까발려진 타자가 아니다. 그러나 사학이기보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길을 문학이 택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남을 것이냐하는 걸 생각해야 한다. 우리 인간군(군체로서의 개체들, 나는 사회라는 개념을 싫어한다)이 고민해야 할 것을 고민하지 않은 세대로 남아도 되느냐고, 정말 그래도 되느냐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혹자는 사회가 정말 필요한 것
작성일 2025-11-10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19상세보기 -
감상&비평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안녕」의 가사 중심 감상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저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안녕. 」은 일본의 밴드 '츠유'의 곡으로, 정규 1집 〈역시나 비는 내리네〉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곡의 소재는 죽음, 그중에서도 자살이다. 뮤직비디오의 배경과 캐릭터에 탁한 진분홍색, 청람색, 회색에 가까운 보라색 등 칙칙한 색조가 사용되었고, 가사는 매우 비관적이다. 어릴 적부터 죽여 왔던 생명들은 셀 수 없이 많고자그마한 생명들을 매장하곤 태연히 웃으며 귀로에 올랐어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제일 먼저 죽는 건아아 나여서 다행이구나곡의 초반, 화자는 이미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부터 생명들을 셀 수 없이 죽였다고? 살인마?' 하고 의아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화자가 죽인 '생명'은 우리가 평소에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캐릭터(양갈래를 한 소녀)가 손가락을 바닥에 대고 흙장난을 하는 듯한 일러스트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자그마한 생명들'이란, 평소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것들, 예컨대 개미나 공벌레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을 포함해서 현재까지도 우리는 셀 수 없는 '살생'을 해 왔다. 길을 걸음으로써. '제일 먼저 죽는 건 나여서 다행'이라는 부분은 화자의 (아마도 위의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의미한다. 이미 자그마한 생명들은 죽었지만, 내가 더 살아 있으면 더 많이 죽기만 할 테니 (내 세대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죽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런 식의 자기 비하와 우울감, 자기혐오가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대목에서 이미 자신의 죽음을 결심해서 마음이 편해진 듯한 모습도 보인다. 화창한 주변의 공기가 짙어서존재 가치를 빼앗는 거야주변이 화창하고 공기가 짙다고 해석하면 어렵다. '주변의 화창한 공기가 짙다'라고 해석하면 조금 쉬워진다. 주변의 공기는 화창하고, 그 분위기가 짙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고 쓸모있어 보인다. 나만 빼고. 그래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주변의 화창한 공기, 즉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생명선 같은 건 쓸데없이 길 뿐이라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주름이야속마음이 시시한 인생관을 한탄하고 있어귀를 찌르는 이상(理想), 뱉어내 버리고화자의 생명선은 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길하다고 받아들여지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도에 그치는 일이다. 그런데 화자의 소망은 '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길기만 한 생명선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뮤직 비디오에서 소녀는 자신의 손, 또는 그 위의 손금(생명선)을 바라보고 있다. 더 자세히 보려는 듯이 반대쪽 손으로 손께를 짚으면서. 어째선지 그 끝에서는 꽃(잎)이 피어나고 있다. 생명선을 잘라내는 데 성공한 걸까? 속마음이 '시시한 인생관'을 한탄하고 있다. 자기의 인생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소녀의 인생관이 어떻길래 그럴까? 위키백과에 의하면, 인생관이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또는 '인생은 무엇인가
작성일 2025-11-07 작성자 아이오딘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327상세보기 -
감상&비평 기능사 난해시 개론 -청소년기 무명작들을 중심으로-
요즘 시 게시판에서 멘토링으로 배우고 느는 바가 적은 것 같아 이참에 스스로의 시론을 되돌아보고 미학을 정리해보려구 합니다. 멘토링욕을 돋우기 위해 극히 자아도취적인 표현을 썼으니 이점 참고 바랍니다. 기능사는 글틴에서 단연 가장 개성있는 글을 쓰는 작가 중 하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글은 천방지축이고, 대부분의 경우에선 그 난해함이 그 불규칙성, 그리고 의미의 발산을 더욱 확신케 한다. 그는 언젠가 스스로 유치한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글을 더욱 어렵게 쓰는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난해한 시들이 그런 다다이즘으로만 비치진 않는다. 그것들은 더욱 높은 층위에서 시의 가능성을 질문하는데, 그 중엔 특별히 예로 들어 설명할 것이 있다. Ignorabimus Op.64저쪽 굴 끝엔 이그노라비무스*들이 삽니다 산다고 하긴 좀 뭐 하죠 아인슈타인**과 힐베르트***의 시체나 처리하는 게 전부인 한량들이니 토막 내어서 묻어버리지 않으면 아마 그들도 버티기 힘든가 봅니다 그들의 시체는 그러기보다도 단단한 번뜩이던 그들의 눈빛은 대단한가 봅니다 중절모를 썼을 땐 몰랐겠지만 백 년씩이나 그들을 잘라내고 있으니 그들은 굴밖을 나와서 은하수를 볼 자격 따윈 없습니다 그들은 울어야 합니다 그들은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신이 되기에는 아무래도 그들의 우울증은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였고 괴델은 병신*****처럼 죽었다죠 YHWH는 금세 숨어버렸습니다 뿌옇게 떠버린 먼지 속으로... 칸토어******와 플랑크*******는 아무래도 몰랐을 겁니다 YHWH는 분명 그들이 신이라 불렀던 것을 두려워했겠죠 --- 아주 재밌는 꿈이 있습니다 제 신실한 아내에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야겠군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질색할 테니 말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세상이 마인크래프트같이 그저 물리엔진 속 세계이고 우리가 그저 컴퓨터라면 우리 머릿속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들면 그 속의 인간은 우리를 인지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두렵습니다 YHWH의 상상일 뿐이라면 어쩌냔 말입니다 난 그를 비웃습니다 그가 인간이거나 아니기 전에...*19, 20세기에 존재했던 철학사조. 진리따위는 알 수 없을 거란 입장이 특징적이다.**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것이다.****독일의 물리학자 불확정성 원리의 주창자다.*****오스트리아, 미국의 수학, 수리철학자. 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하다.******우리를 위해 칸토어가 만들어준 이 낙원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내쫓을 수는 없으리라*******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설득을 통해 패러다임이 되기보다는 반대자들이 죽고 그에 친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며 기존의 원리를 대체한다.Ignorabimus는 그의 난해시 중에서 특기할만한 한쪽 끝에 있다. 특별히 이 시에 있어선 전에 기능사가 Ted에게 부탁한 설명문이 있다. 저는 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해서 감히 뭐라 말할 권리가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그냥 몇가지 와닿은 부분과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이라도 몇가지 써보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수학
작성일 2025-11-03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1 댓글수 4 조회수 619상세보기 -
감상&비평 내가 킁보다 걘을 더 좋아하는 이유
밑에 세줄 요약 있음공부 집중 좆도 안되니까 씨잼 얘길 생각해본다.내가 킁보다 걘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뭐라 해야될까.일단 킁과 걘의 주제는 똑같아 보인다. 약에 취하고 사람들과는 낯 설고 회개해야 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거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한 지는 않다.킁과 걘의 차이점은 음악을 전개하는 구성방식이라 생각한다.둘다 제이키드먼이 프로듀싱한거라 사운드의 차이도 별로 크지 않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킁은 좀 더 노래 구성방식(앞으로 플롯이라 부름)이 멜로디하고 대중가요(포크송) 느낌이다. 예시는 뭐 아무노래나 상관없는데 킁 타이틀 포커페이스를 들 수 있다. 벌스 훅 벌스 훅 브릿지 훅 ? 의 구성이었나? 하여튼 그냥 대중가요에 흔히 있는 플롯의 형태다. 킁의 노래 대부분이 이런 느낌이다. 변주된다 해도 크게 벗어나지 않음. 하지만 여기서 걘이 좀 더 나아갔다고 보는 면이 여기서 나온다. 걘의 플롯은 좀 더 난해하다. 그래서 더 호불호가 강한데 걘의 수록곡 걍의 플롯을 살펴보면벌스 반 훅(일단 훅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하나의 비슷한 방식 가사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으로 돼 있다.일반적인 포크송의 플롯도 있긴 하지만 그땐 멜로디가 없다. 같은 가사와 음을 반복하기만 한다. 중간중간 조금씩 뭐가 갑툭튀 한다던지 자세히 들으면 재밌는 요소들도 많긴 하다. 하지만 이지리스닝을 한다면 노래가 씹 3~4분 동안 같은(거의) 가사만 반복해대는 노래랑 벌스와 훅의 밸런스와 멜로디가 잘 짜여진 노래랑 비교한다면 확실히 킁이 더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왜 걘을 더 높게 치냐 묻는다면 씨잼의 노래 장르는 한국적으로 소화한 싱잉, 멈블, 멍청 랩이라 볼 수 있다. 이 멍청이 중요하다. 씨잼의 바뀐 음악에는 멍청한 야마가 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 애매한 말을 던져야 하는데 킁은 너무 똑똑하다. 이미 킁은 대중들에게 한국에서 새로 시도한 장르를 친숙하게 먹여주기 위해 대중적인 웰메이드 멜로디로 무장했고 그래도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좋게 세뇌? 시킬 수 있었다.나는 바뀐 씨잼의 음악스타일은 잘 짜여진 멜로디도 어울리는 편이지만 멍청한 야마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씨잼은 킁을 통해 대중들이 익숙해졌으니까 좀 더 자기가 하고싶은 방향(난해한)으로 가기 시작했고 그게 킁이다.대중적인 포크송의 플롯을 버리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갑자기 한 구절만 반복하다가 이 때 사운드를 딱 멈춰버린다던지 걘에서 씨잼은 더 자유로워졌다.씨잼이 자유로워지고 하고 싶은 걸 더 함으로써 조금 난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이게 씨잼의 바뀐 음악에 더 맞는 플롯이라 생각하기 때문에나는 걘을 더 좋아한다.세줄요약:1. 킁과 걘의 차이점은 대중적인 멜로디의 진위여부다.(킁이 대중적인 멜로디임)2. 씨잼의 바뀐 음악 스타일은 플롯(멜로디가 노래의 개성을 죽인다)이 더 자유로워야 한다.3. 걘이 킁에 비해 더 자유롭다. 그래서 나는 걘을 더 좋아한다.그냥 심심해서 아무렇게 나 쓴 글이다. 욕 써도 되려나?
작성일 2025-11-02 작성자 윤도원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363상세보기 -
감상&비평 방황하는 청춘에게 전하는 이야기-내 심장을 쏴라를 읽고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는 2009년 제5회 세계 문학상 수상작으로, 수리희망병원을 배경으로 삶의 운명에 맞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가는 두 청춘의 이야기이다. 조현병으로 강제 입원한 이수명과 탈출을 갈망하는 류승민. 둘은 너무나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지지만 점차 비밀을 터놓으며 서로의 삶을 향해 길을 찾아가게 된다. ‘시간이 없어. 그래서 미치겠어.’ 탈출 시도에서 실패한 승민은 과거를 회상하며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자유롭던 패러글라이딩. 광활한 안나푸르나. 그는 유산 상속 다툼에 휩쓸려 잃게 된 자유를 되찾고자 한다. 비록 약물 투약으로 인해 시력이 악화되어 갈지라도. 운명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승민의 이러한 발버둥은 수명에게 숨기만 하던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준다. ‘와, 다 와. 날 죽여보라고, 자식들아!’ 눈이 모두 먼 것처럼 연기하던 승민은 수명과 함께 보트장으로 뛰어들어 짜릿한 추격전을 벌인다. 승민은 차가운 안개비에 사방이 보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다. 되려 휘청거리는 보트 위에서 그는 소리친다. 이제껏 참아왔던 모든 욕망을 토해내듯이. 혹은 다신 없을 자유를 만끽해 보듯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 하루하루 없어져 가는 희망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승민의 모습은 다가올 미래에 불안해하는 청춘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결말로 이끈다. ‘이제 빼앗기지 마. 네 시간은 네 거야.’ 수많은 실패와 도전 끝에 활공장에 도착한 승민은 수명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병의 진실을 마주한 그에게 이제 더는 목소리에 흔들리지 말라고. 아프고 쓰라린 과거가 있을지라도 앞으로 다가올 삶을 향해 나아가라고. 곁에 있는 수명에게 제 시계를 넘겨준 그는 드디어 부조리한 세상에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며 꿈을 이룬다. ‘제게도 활공장이 필요했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수명은 정신 보건 심판위원회에서 승민과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말한다. 자신도 이제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다고. 이로써 퇴원을 선고받은 그는 승민의 말처럼 병원 밖으로 나가 세상을 마주한다. 수명은 멀어진 세상을 두려워하며 걸음을 멈추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는 승민이 건넨 시계를 움켜쥔 채 총구를 들이대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과녁을 들이댄다. 그리고 소리친다. ‘컴 온,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 수리희망병원에서 승민이 자유를 외치며 부르던 그 노래를. 자신을 죄어오던 운명을 거슬러, 자신의 인생을 상대하기로 결심하면서.---------------------------------이 책은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서사 전개와 생생한 장면 묘사로, 책을 덮는 독자에게 알 수 없는 벅참과 씁쓸함을 남긴다. 그렇기에 나는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서야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책은 방황하는 청춘에게 짜릿하고 웃음 가득한 이야기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다만 헤매고 주저앉는 나날들이 있더라도 한 발을 내놓아 보라고. 더 이상 스스로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질주해 보라고
작성일 2025-11-01 작성자 서벽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658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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