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소설
- 
							
								공지 [공지]한 편당 작품 최대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요?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843상세보기
- 
							 
                        
								소설 반쪽짜리 베가스죽음은 보라색이라고 배웠다. 소나기의 황순원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팔 년 만에 마주한 한국의 죽음은 흰색이었다. 눈이 내린 것처럼 보였다. 지난 겨울을 혹독하게 난 탓에 유월 중순인 지금까지 눈이 녹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울려대는 안전안내문자가 나를 현실로 데려다 놓았다. 폭염주의보. 현재 외부 기온 38도. 체감 기온 41도. 습하고 더운 기운이 훅 끼쳐와 나도 모르게 목덜미를 닦았다. 팔 위로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묻어났다. 식물의 채즙 같기도 하고 동물의 피 같기도 한 냄새가 났다. 죽음의 냄새. 지구상의 모든 상아를 멸종시킬 수 있는, 오로지 하나의 유전자에만 반응하는 편파적인 죽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상아들을 피해가며 뛰었다. 어떤 이는 얼굴에, 어떤 이는 발목에, 어떤 이는 등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결말은 비슷했다. 하얀 포자에 뒤덮인 채 속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진 형상. 탁하고 부연 눈을 한 사물 같은 시체들. 그 위로 내려앉은 녹지 않는 눈. 그게 내가 목도한 고향의 죽음이었다. 저기요, 상아를 아세요? 키는 이만하고요. 저랑 똑같이 생겼어요. 길을 가는 아무나를 붙잡고 애원했다. 준인지 진인지, 유엔 소속의 사람이 내 얼굴을 보더니 질겁하며 나를 떨어뜨려 놓았다. 양은 그 사람에게 허리를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제발 그만 가자고 했다. 내가 어떻게 가. 어떻게. 그래, 나는 갈 수 없었다. 온 지천이 상아였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닥에 깔린 하얀 포자가 되뿜는 빛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라스베가스에는 오지 않는 밤이. 상아와의 첫 기억은 욕실의 노란 조명 아래서 시작한다. 물론 상아가 어머니의 옆구리에 돋아나기 시작했을 때라던지, 심장이 생기던 때를 내 눈으로 봤다. 그러나 내가 두세 살 무렵의 일이었기에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머리가 매달린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걷던 어머니나, 온 집안에서 풍기던 분유 냄새 같은 이미지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 안 아파? 열 살을 넘길 무렵, 함께 씻던 상아가 내 다리 사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갈라져 있다고. 가뭄이 오래 이어진 땅처럼 틈이 벌어져 있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으니 확실히 보였다. 살갗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를 내장 같은 빨간 살덩이들이 겹겹이 채우고 있었다. 어머니의 몸에서도, 상아의 몸에서도 볼 수 없던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다. 징그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꼈던 건, 이유 모를 수치심이었다. 내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던 상아의 눈. 동그란 구슬 두 개가 박혀있는 것 같은 그 눈. 어머니, 나와 상아,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 눈이 나를 훑어보자 등줄기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다. 상아를 밀쳤다. 그만 쳐다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욕실 바닥에는 물기가 많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아가 넘어진 자리에는 비누 받침이 있었다. 상아도 이제 다른 상아들과 달랐다. 내가 가랑이 사이가 찢어 작성일 2025-10-31 작성자 이주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상세보기
- 
							 
                        
								소설 현대인을 위한 신화-도하(재업)*멘토님께서 재업을 요청해주셔서 재업합니다.1부라고 적긴 했지만 연재 계획은 없습니다. 연작 소설중 첫번째라고 생각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내가 여기서 쓰고 있는 예수의 이야기는 교회에 서 공인된 네 가지 복음서의 구절들을 그대로 나열 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복음서들의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신성불가침의 것이라고 보는 것 은 아니다. 플라톤, 필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은 후세에 저술을 남겼지만 예수 자신은 단 한 권의 책도 쓴 적이 없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경우와 달리 예수는 유식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한 것도 아니며, 다 만 글도 모르는 군중 앞에서 참된 삶의 길을 설교 했을 뿐이다. 게다가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기록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기록은 수없이 많았겠지만, 교회는 그 가 운데서 처음에 세 가지를 가려냈고, 나중에 한 가 지를 추가하여 네 가지 복음서를 확정했다.그러나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은 신학도 역사도 아니었다. 나는 나이 50이 되어서야 그리 스도인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나는 무엇인가?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 로 던지고 유명한 철학자들과 여러 문제에 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그 결과 나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라 는 존재는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이고, 나의 삶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으며, 삶 자체가 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나는 절망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 숨을 끊으려고도 했다.한편 나는 내가 아직 신앙을 유지하던 어린 시절 을 회상했다. 그 당시에는 삶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돈과 재산에 더럽혀지지 않은 채, 신앙을 굳게 지키던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도 삶의 의미를 잘 깨닫고 있었다.지난 날을 곰곰 생각해 본 결과, 나는 나의 처지 에 관한 저명한 학자들과 교수들의 대답이 과연 옳 은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가 주는 대 답은 어떤 것인지 다시금 알아보기로 결심했다.나는 그리스도교의 어떤 가르침이 사람들의 삶 을 인도하는지부터 연구했다. 실생활에 적용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의 원천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원천은 복음서들이다.나는 이 복음서들 안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그것은 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영혼에 관한 설명이었다.나는 빛을 몰랐고, 인생에는 확실한 진리가 없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빛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 빛의 원천을 찾기 시작했다.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 빛, 지금까지 1,800년 이상 동안 인류 전체를 비추어 온 이 빛, 예전에 나를 비추었고 지금도 비추고 있는 이 빛뿐 이었다. 이 빛을 아는 것 이외에는, 이 빛의 원천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되는지, 그 구성 요소들은 무엇인지, 무엇이 그 빛에 불을 붙였는지 등은 전혀 나의 관심 밖이었다.복음서들이 최근에 발견되었더라 작성일 2025-10-31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상세보기
- 
							 
                        
								소설 붉은 선, 푸른 선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하늘과 달이 아득하게 푸른 물빛으로 흩어지던 그 순간, 선오는 자아의 경계가 물처럼 풀려버린 기묘한 공허 속에 있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붕괴된 기억의 파편들 사이로 숨결이 서늘하게 스며들었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침대 시트와 소독약 냄새가 현실을 붙잡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불안한 촉감으로 남아 있었다. 얼마 전의 교통사고 후, 하루아침에 일상이 뒤집히고 소리와 빛이 모두 다른 이름을 얻은 듯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그것이 선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하..병원 생활 지루하다. 내 삶이 바람 앞 촛불이라지만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줄이야' 고통 자체도 견딜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먼 어딘가에서 슬며시 밀려오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완전히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희망의 부재는 속을 비집고 들어와 빈틈을 키웠고, 무심하게 반복되는 공허한 아픔은 선오의 마음을 거칠게 흔들며 서서히 갉아먹어 부숴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실들이란, 가끔씩 예고 없이 파고들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만들 었고, 선오는 그 불확실한 경계 안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버텨왔지만 이번만큼은 그 한계가 뚜렷하게 다가와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그때였다. 선오의 뇌를 한순간에 쥐어짜는 것처럼, 망치로 내리친 충격이 쏟아졌다. 두통은 폭풍처럼 밀려들어 머리 속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수만 개의 고통이 동시에 터져 나왔고, 팽팽하게 당겨진 시야는 물결처럼 일렁이며 사방의 윤곽을 지워갔다. 숨은 목구멍에 걸린 돌처럼 무거워졌고, 흉곽이 눌려 숨이 끊길 것 같은 압박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이 통증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그의 신경을 전부 잠그는 듯한 격렬한 파동으로 번져 손끝마저 얼어붙게 했다. 기억의 파편들이 뒤엉키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려지는 가운데, 선오는 입술을 깨물어 단말의 언어가 마지막 말이 되게 할 수는 없다고 절박하게 생각했다. 제발, 이대로 끝나면 안 된다고, 몸속 깊은 곳에서 절규가 올라왔다. 작성일 2025-10-31 작성자 초하루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상세보기
- 
							 
                        
								소설 언젠가는굳게 닫힌 문을 두드린다. 오늘도 답이 없다. 결국 답답해진 나는 주먹으로 벽을 치고는 소리쳤다."계속 그럴 거야? 이제는 괜찮아질 때도 됐잖아" "새로운 사람이 왔어 그 사람은 정말 괜찮아너도 알잖아 좋은 사람이란 걸" 그럼에도 끝내 답이 없다. 그저 문을 두드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빨개진 주먹을 부여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발, 이러면 우리만 안 좋을 뿐이야 그러니까... 문 좀 열어줘"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말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고 그 문이 다시 활짝 열리기를 바랐다. 작성일 2025-10-31 작성자 리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4상세보기
- 
							 
                        
								소설 광대와 막대사탕광대는 품 속 모든 사탕을 전부 내놓아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열기에 취해 멋대로 연주하는 음표처럼 제각기 다른 소리를 냈고 그 들쭉날쭉한 키들은 노란 굽의 광대가 내려다보기 좋았다. 광대는 안전선을 넘을 듯 몸을 붙이고 쭉 뻗어오는 작은 손들에 장갑 끝으로 하나하나 사탕을 쥐어주었다. 그의 분칠 위 두꺼운 입술화장은 작은 조소에도 쫙 찢어져 우스꽝스럽게 뒤틀렸고 땀과 향수가 섞인 체취를 압도했다. “자 이게 마지막. 나머지 애송이들은 다음에 기회에! 손가락이라도 빨고 싶다면 기꺼이 빌려주겠지만.” 마지막 무지개 막대사탕을 처분하고 광대는 익살스러운 인사와 함께 무대를 뛰쳐나갔다. 어두운 커튼 너머 아티스트 대기실에 작은 화장대. 주변 빛이 들지 않을수록 광대의 몸짓은 점점 작아졌다. 먼지 쌓인 그 안엔 하루 종일 잇몸이 마르도록 웃어 턱이 다 아픈 중년이 있었다. 대기실에 머물 때면 딱 세 마디만 하는. 절대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 그의 첫마디는 늘 똑같았다. 그의 언어는 단어가 아닌 탄식이었다. “하.” 그는 이질적 이도록 새빨간 곱슬머리를 벅벅 긁으며 의자에 주저앉아 화장대 앞에 널브러져 있는 전용 막대사탕을 잘라 물었다. 쓴맛도 짠맛도 안 나는 그저 몸에 안 좋은 맛이었지만 아직 화장도 지우지 못한 그에게 주는 최소한의 위안이었다. 그가 내뱉은 두 번째 마디는 연기가 자욱한 한숨이었다. 주둥이를 놓은 풍선의 김 빠지는 방귀 소리와 같은 높낮이였다. 광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5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 그의 휴식은 이제는 까마득한 닷맛처럼 숨 쉬는 구멍에 불과했다.“돌겠군”쿠바는 그의 비판을 받지 않는 유일한 브랜드였다. 그것을 물고 얼마 남지 않은 대기시간을 무시란 채 주간 신문을 꺼내 비난거리를 찾아 눈을 굴렸다. 생기라곤 찾을 수 없는 방은 타들어가는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광대의 민낯은 모두의 예상대로 초라했지만 그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희극이 아니라 다뤄지지 않을 뿐. 작성일 2025-10-30 작성자 연꽃담비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상세보기
- 
							 
                        
								소설 너무한데“정말 그렇게 생각하니?”걱정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한마디이며, 나의 이야기를 수선한 한마디 중학교 1학년 이찬흔히 말하는 불량 학생이다.‘집에나 가고 싶다.’다행히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직접적으로 끼치지는 않는다.‘드디어 집!’단지 집이 너무 좋을 뿐인 것 같다.“여자애?”찬의 집 창문에서 보이는 산 입구에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밤 10시에?”시간이 적절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찬과 또래 같았다. 하지만 중학생이 가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건 아득히 먼 도서관 끝자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올라가려는 것 같은데, 말려야 하나?’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불확실한 위험과 편안한 안락 속에서, 찬은 결국 안락을 선택했다.‘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까.’찬의 이야기는 다시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오늘도 찬은 학교를 간다.어제도 학교를 갔다.내일도 학교를 간다.어른들은 모두 같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것보다 더 성취하라고 한다. 그래서 찬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어쩌면 가장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편했다.‘오늘도 수행평가야? 국어?’한숨을 쉬는 학생들이 세상은 타인이 힘들다고 쉬게 내버려 두지 못한다. 왜냐고? 설마 모르는 거야?너도 타인, 아니었어?‘자야지.’만약 타인을 배려하는 세상이 된다면, 타인을 힘들지 않아도 될까? 아니, 않을 수 있을까?‘급식 시간!’급식 시간에는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도서관에서 40분이나 잘 수 있다. 찬은 역시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든 입구에서 가장 먼,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으로“저 애는?”유독 희미한 가로등이 밝아 보이게 만드는 여자아이밤 10시에 산 입구에 서 있는 여자아이“안녕?”종이에 사각거리는 연필처럼 감겨오는 목소리“너는? 그 어제 10시에 산 입구에 있던 애?”여자아이가 대답했다.“응. 난 ‘유하라‘라고 해. 너는?”찬은 당황했다. 중학생이 어두컴컴한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데 태평하다는 것 때문이다. 하긴, 요즘 중학생들이 그렇긴 한다만“나는, ’이찬‘이라고 해.”“그래? 만나서 반가워!”“근데, 너 여기는 어떻게 찾았어? 사람들이 찾지도 않는 곳인데.”하란은 달빛처럼 싱긋 웃었다.“그래서 온거야.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라서.”하란은 그대로 인사를 하더니 사라졌다. 다시 집에 가는 길, 찬은 하란을 만났다.“또 보네?”웃으며 인사하는 하란찬도 인사한다.“어? 안녕. 설마 산에 가는 거야? 지금 9시야.”걱정하는 찬에게 괜찮다는 한마디 계속 반복되는 나날들 “야. 가지 마.”찬이 또 산에 가려는 하란을 멈춰 세웠다.“왜?”하란이 물었다,“그야 위험하니까.”“다른 이유는?”하란이 산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찬은 고민한다.“잘못된 행동이니까?”하란이 흥얼거리는 것을 멈추고선 찬을 봤다.“정말 그렇게 생각하니?”하란이 찬을 보며 묻는다. 지금껏 보지 못한 하란의 모습이었다. 찬은 답하지 못했고, 하란은 은은한 달빛처럼 웃었다.“악한 것과 선한 것. 누가 정했는지 알아?”하란이 바로 작성일 2025-10-30 작성자 user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7상세보기
- 
							 
                        
								소설 송 01폼롤러로 종아리를 풀다가 문득 송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랑 영상 다 지워 줘. 그냥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 비복근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을 힘주어 누르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고작 한 방울이었는데. 댐이 무너지는 것처럼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수문을 열 때는 결코 망설여서 안 된다. 이제 종아리는 거의 밀가루 반죽 같았지만, 결코 멈출 수는 없었다. 얼굴에 엉망으로 달라붙는 머리카락이 땀 탓이라고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헬스장의 수많은 사람은 각자 저가 비친 거울을 들여다보며 덤벨이나 바벨을 의미 없이 들었다 놓았다. 근육을 억지로 찢고 붙이는 과정에서 정말로 근육은 비대해지는 걸까? 서로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송은 그렇게 말했다. 내 앞에 놓인 건 분명히 활잔데 송의 목소리와 움직이는 아랫입술이 들리고 보였다. 발색 립밤을 얹어놓아 번들거리는 입술이 음절을 뱉을 때마다 내가 여전히 송을 사랑한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말았다. 나는 흐물흐물해진 종아리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송은 이미 이별을 상정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지닌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찢을 수 없는 종아리를 가져서, 혹은 붙을 수 없는 종아리를 가져서, 영영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탈의실의 커튼을 열어젖히자 잠기지 않는 자물쇠가 달린 사물함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봤다. 샤워부스 하나의 문 뒤에 숨었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셔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탈의의 충동에 휩싸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듣고 싶다든가, 고맙다든가 하는 지루하고 신파적인 내용이 흘렀다. 어느새 들어온 옆자리의 누군가는 나의 세계와 분리된 채 머리를 감고 있었다. 나는 오빠가 딱 나만큼만 불행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던가. 말하지 않았던가. 여튼 나의 마음은 딱 그랬다. 송은 내 마음을 비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네가 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잘 지내, 라는 말을 주고받고, 휴대전화를 비누 받침 위에 올려두고, 소리를 죽여 울고, 발을 헛디디고, 벽을 짚으려다 손이 미끄러지고, 머리 위로 냉수가 쏟아지고, 쏟아지고, 쏟아지고……. 흠뻑 젖은 채로 밖으로 나오자 옆자리 사람이 어느새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벗은 옷을 탈의함에 던져넣었다. 나신이 된 채로 거울 앞에 서니 봉긋한 가슴의 모양이며 완만한 곡률의 엉덩이 같은 것이 삼십 대로 보이는 옆자리 여자와 언뜻 비슷한 것도 같았다. 충혈된 눈으로 여자와 나를 번갈아 힐끔거리니 음모를 말리던 여자는 황급히 드라이기의 전원을 껐다. 음모는 한쪽으로 휘어 여전히 펄럭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드라이기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탈의실 밖의 철 지난 대중음악 소리가 스며왔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이렇게 나 울고 불고……. 작성일 2025-10-30 작성자 이주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4상세보기
- 
							 
                        
								 소설 러브칩 2147 소설 러브칩 2147모스크바의 겨울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이제 그 차가움은 눈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공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147년, 신러시아 연방의 모든 국민은 태어나자마자 러브 칩을 이식받는다. 이 칩은 뇌의 화학 작용을 조절해, 정부가 정한 ‘이상적 짝’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든다. 사랑은 사회의 균형을 위한 ‘도구’로서만 존재했다. 그 속에서 알리나 체르노프, 국가연애청의 데이터 분석가는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직무는 매일 수천 명의 ‘사랑 수치’를 검토하며, 오작동한 러브 칩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사랑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면, 그녀는 차가운 명령을 내렸다. “정서 리셋 승인합니다. 사랑 수치 102 초과.” 그녀의 목소리엔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녀의 칩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날까진. 그날, 모스크바 하층 구역의 전송 데이터에서 이상한 감정 패턴이 포착되었다. 알리나는 현장 조사를 위해 보안 요원들과 함께 낡은 지하철 폐선로로 내려갔다. 그곳엔 오래된 광고판, 낡은 네온 불빛, 그리고 금지된 문구가 낙서처럼 새겨져 있었다. “사랑은 선택이다.” “삭제하세요.” 알리나가 명령하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눈은 살아 있었다. “그 문구, 알고는 있나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이상하게 따뜻했다. “난 이반 카르포프. 칩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인간이죠.” 알리나는 즉시 리더 디바이스를 꺼내 신원을 스캔했지만, 결과창은 “데이터 없음.” 그는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며칠 뒤, 알리나의 칩이 이상 신호를 보냈다. 감정 패턴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자신의 이름 옆에 뜬 경고 문구 — “비인가 사랑 반응 감지.” 그녀는 몰래 자신의 신경 기록을 분석했다. 그리고 거기서 ‘이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번 스쳐 지나간 눈빛, 단 한마디의 말, 그 짧은 순간이 그녀의 뇌를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의 말이 칩보다 강했다. 이반은 자유구역에서 알리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러브 칩을 억제 장치로 감싼 채 그를 찾았다. “이건 불법이에요. 나도 알아요.” “불법이라도, 진짜일 수는 있죠.”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반은 작은 장치를 꺼냈다. “이건 해킹 코드예요. 당신의 칩을 ‘자유 모드’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단 한 번뿐이에요.” 알리나는 잠시 망설였다. 러브 칩이 없는 세상은 혼란이고, 파괴였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완벽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내 사랑이 나의 것이 되게 해주세요.” 그 순간, 알리나의 머릿속에서 전류가 흐르는 듯한 빛이 번쩍였다. 정부의 시스템과 연결된 그녀의 칩이 해킹되며, 모든 감정 수치가 폭발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진짜 심장이 뛰었다. “이게… 사랑인가요?” “그래요. 통제되지 않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거죠.”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층의 중앙 AI ‘모스크바 코어’가 즉시 반응했다. “러브 칩 4412 작성일 2025-10-30 작성자 나르시스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상세보기
- 
							 
                        
								소설 카운트 종착역“내가 너보다 더 돈이 많고, 시간이 많으며, 긍정적이라면 어떨까? 적어도 ‘행복할 권리’를 쟁취할 기회를 얻어볼 수 있을까?”이것은 너의 이야기성공이 아닌‘노력’을 바라는 너의 이야기 “아니. 그럴 리가.”나는 무시한다. 그 애를 부러워하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나’라는 아이를 말이다.‘내가 쟤보다 잘났어.’그리고 이런 나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이 세상에서 부러워해야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 믿고 있다.‘절대로 무너지지 않아.’그러니 속아 넘어간다. 이 ‘나’라는 자신이 더 이상 ‘나’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한다는 것을 모른다.1초나는 카운트를 센다. 끝나지 않을 숫자를 위해 일단 정수로 세기로 한다.‘어디까지 세면 끝이 보일까?’끝의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끝이라는 종착역이 나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없을 수도 있으나 있길 바라는 아니,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름을 붙여볼까...?‘가장 단순하며, 어감이 좋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름하여 종착역을 찾기 위한 카운트“카운트 종착역”2초이렇게 조금씩 세서 언제 도착할까? 이런 생각이 한 만 번 만큼 천 번 들고, 이 생각이 도 백 번 들면 언젠가는 도착하지 않을까?’이제 98번만 더 세면 100초인가..? 아. 아닌가?‘이제는 잘 모르겠다. 1초 다음이 2초인 것도, 밤의 전이 아침인 것도,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헷갈린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나는 ’삶‘을 가지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닌 왜 나는 살아있게 된 건지 모르겠다.3초’왜 나를 살아있다고 할까?‘잠을 자기 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혹시 모른다. 천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을 수도 있다. 단지 천장과 같은 색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0시 0분 1초” 나는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켠다. 그리고 시간을 본다.’내일이다. 아니, 이제는 오늘인가?‘정확히 2초 전은 23시 59분 59초였다. 그러므로 오늘이었다. 하지만 2초가 지났다. 이제 어제의 오늘은 없다. 내일의 오늘만이 남아있다.4초’역시. 좀 더 빠르게 세는 결정이 더 좋았을까?‘카운트아직도 끝나지 않는다.설령 이 이야기가 끝난다고 해도나는 아직도 끝까지 세기를 위해 노력을 찾기 위해 카운트를 센다. 5초 6초 7초 8 . 작성일 2025-10-29 작성자 user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8상세보기
- 
							 
                        
								소설 섬들리지 않아도 그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신상 정보 같은 것들을 늘어놓는 그를 보며 앞에 놓인 것이 파스타인지 갈비탕인지는 소개팅의 지루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옆 테이블의 말소리에 뭉개지는 대화를 적당히 알아듣는 척 하던 내 귀에 그의 직업이 걸렸다. 파일럿. 말간 국물에 후추를 치던 손을 멈췄다. 흥미가 일었다. 한국 땅에 발 붙이고 있는 시간이 이틀이 채 안 된다는 말에 나도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칠 년 동안 다섯 개의 회사를 지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가 하는 일은 늘 비슷했다. 옷 먼지가 가득한 창고에 쌓인 비슷한 옷에 다른 이름표를 붙이는 일.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을 제자리에 못 박혀 서있으면서도 나는 허공을 떠도는 기분을 받곤 했다. 결혼이라도 하면 발붙이고 사는 기분이 날까. 그런 생각으로 소개팅을 연달아 잡았다. 다들 안정감을 결혼의 이점으로 들이밀곤 하니까. 떠다니는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뜨거운 국물이 흘러나오자마자 교정기를 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치아 뒤에 길게 붙은 철사 끝이 턱을 움직일 때마다 볼 안쪽을 찔러댔다. 고기에서 나는 건지 입안에서 나는 건지 모를 비릿한 피맛이 났다. 한참이나 삶아 거의 흩어지는 정도의 살덩이를 씹으면서도 고통을 느끼는 나의 연약함이 지겨웠다. ……라는 섬이 있거든요. 그가 내뱉은 어색한 발음이 낯설지 않았다. 머리 속 어딘가가 가려운 기분으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 그 위를 지나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암초인 줄 알았다, 얘기를 늘어놓으면서도 그는 쉬지 않고 먹었다. 입을 열 때마다 더운 기운이 끼쳤다. 지금은 가라앉았대요, 완전히. 무신경한 말투가 부정확한 발음을 타고 날아왔다. 나는 그제야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단단한 사랑니로 날고기를 뜯어 먹는 그 섬의 원주민과 그들을 동경하던 어린 나를. 뭉툭한 혀 끝을 어금니 뒤에 집어넣었다. 사랑니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미끈한 잇몸만이 느껴졌다. 사랑니를 뽑아낸 게 일 년도 넘은 일인데, 여전히 잇몸은 방금 막 파헤친 듯 너절한 상태 그대로였다. 불규칙한 표면을 훑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잇몸이 아물지 않는 건, 내 턱 깊은 곳에서 두번째 사랑니가 올라오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사랑니가 다시 한 번 잇몸을 뚫고 나오는 날, 물에 잠긴 섬도 다시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습기 찬 바닥에 의자 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천천히 드시란 말을 건네며 나갈 채비를 했다. 내 앞에 놓인 그릇에는 갈비탕이 반 이상 차있었다. 그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섬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다. 섬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치아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무딘 혀를 대신 채워 물고는 그를 따라 일어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뒤통수를 보는 순간, 목구멍에서 선명하게 맴돌던 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급하게 혀를 이리저리 꺾어보고, 너절한 잇몸을 뒤져봤다. 두번째 사랑니라도 찾으면 가라앉은 섬의 이름이 기억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나 작성일 2025-10-29 작성자 이주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79상세보기
- 
							 
                        
								소설 할라피뇨 알레르기세상의 빛이 숨죽이는 시간, 영혜는 밤 아홉시의 지하철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고된 하루의 끝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끝나고 나면 영혜는 초록으로 잠긴 지하철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2호선과 파릇한 모자를 쓴 사람들, 그 사이에서는 언제나 녹색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찬 자리에 몸을 욱여넣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흰색 마스크 뒤편으로 올라오는 커다란 기침을 참아내는 일은 당연스레 자리하고 있었다.*** 저는 할라피뇨를 껴묻거리로 가져갈 거예요.두꺼운 마스크가 영혜의 얼굴을 드리우던 것은 불과 이 주 전의 사건 때문이었다. 소셜 미디어의 발명 이후, 사람들은 병신짓을 구분하는 방법을 잊은 것처럼 보였고 수아는 이들에게 유행의 기준점 정도로 자리매김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난데없이 모두를 미래의 장례식에 초대하며, 동창회 참석 인원보다 한참은 넉넉하게 가져온 초대장은 영혜의 손에도 돌아갔다. 쟤는 이름 모를 사람을 장례식에 초대하는 거 아닐까? 영혜의 눈동자는 그저 수아를 여유롭고 또 여유로운 한심한 이십 대로 비쳤다. 담임 선생님은 수아에게 혹시 아픈 거냐고 근심스럽게 물었지만, 수아는 그런 일은 전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선생님, 체육시간 때 제 모습 기억 안 나세요? 물론 고삼이라 온전히 체육 할 시간은 별로 없긴 했지만요… 선생님은 그녀의 유쾌하고 격렬한 반응에 언제나 똑같은 한 마디를 남겼다. 수아는 여전히 엉뚱하구나? 그녀는 마치 그런 말을 들으려고 사는 사람처럼, 새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었다. 영혜는 그날의 수아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도 무한리필 고깃집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전부 인사를 건넸으리라, 그렇게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고삼의 수아를 기억해 냈다. 급식을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고학년의 특권을 뒤로 하고, 매일 닭가슴살이 정갈하게 놓인 도시락을 싸오던 그녀. 고기 한 점 먹지 않아도 이만육천 원이 아깝지 않은 수아. 친구라는 관계 속에 묶이고 싶던 그녀. 영혜는 수아가 너무 부러웠던 나머지 망각해버렸다. 심장을 간지럽히는 그 얄팍한 감정을.*** 수아의 인스타그램에 40초짜리 짤막한 영상이 업로드된 건 동창회가 끝난 뒤였다. 저는 제 무덤에 할라피뇨를 껴묻거리로 가져갈 거예요. 영상에는 도무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장과 함께 우스꽝스러운 할라피뇨 모자를 쓴 수아가 등장했다. 저는 껴묻거리가 실제로 작용할 거라고 믿어요. 물론 그것이 저의 종교라기보다는… 이를테면 노후 대비처럼, 죽음 이후를 최대한 대비하고 싶다는 거죠.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혹은 천국에 간 사람의 무덤은 어떨까? 항상 생각했어요. 죽어서도 죽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며 존재하기는 싫어서요. 천국에 갈 사람과 무덤은… 어느 것도 파괴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다 제가 생각한 게 할라피뇨 모자였어요.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전 유행의 중심에 서 있잖아요. 패션은 언제나 모든 걸 파괴하고, 뭐 작성일 2025-10-29 작성자 dlwjddus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31상세보기
- 
							 
                        
								소설 이십, 이십일...어둠을 뚫고 귓속으로 들어오는 얇은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깼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전 네 시 이십 분. 평소보다 일렀다. 잠에 든지 세 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알람이 울기까지는 두 시간이 남아있었다.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린 식은땀의 찜찜함을 견디며 몸을 일으키자 더운 공기와 뒤섞인 톱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요했다. 나는 침묵 저변에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제까짓것도 닭이랍시고 다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솜털 날개를 펼치고 삐이, 삐이 우는 가냘픈 소리. 번번이 나를 공황에 빠뜨리는 울음 소리 대신, 오늘은 언니의 목소리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나 좀 일으켜 줘.” 암막 커튼으로 만들어진 인공 어둠을 헤치고 언니의 깡마른 손을 맞잡을 때까지 언니는 바닥에 앉아 그 말만 반복했다. 흐릿한 언니의 목소리는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병자처럼 들렸다. 언니는 내게 매달리듯 몸을 일으켰다. 한순간 내 오른손에 실린 언니의 무게가 더 가벼워진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사라지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났다. 언니는 태연히 밤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무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언니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십이 죽었다고 말하는 언니의 얼굴에는 미묘한 애틋함과 설렘이 서려있었다. 이십은 언니가 스무 번째로 데려온 병아리였다. 온몸이 초록색으로 염색된 수컷 병아리. 언니가 중학교 앞에서 삼천 원에 파는 이십을 데려온지 일주일되는 날이었다. 또, 또였다. 내가 굳은 입을 어물거리는 사이 언니의 휴대폰에서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언니는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약 봉지를 꺼냈다. 봉지에 담겨있는 정제약 다섯 알을 언니는 물도 없이 삼켰다. 나는 언니의 목울대를 따라 내 속이 함께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분명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고작 돈 몇 푼에 자신의 삶을 팔아 남기지 말라고 했는데. “어지럼증이 심해짐.” 언니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훌쩍 현관문 밖으로 나섰다. 이십일을 사러 가는 것이다. 언니의 몸 상태를 기록하는 가혹한 일은 내게 미루고. 나는 바로 옆에 놓인 언니의 기록 수첩을 집어들면서도 이십이 누워있을 것이 분명한 종이 박스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집어든 다음 순간, 애석하게도 나는 보고야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묘할 정도의 생기를 내뿜고 있던 이십이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거기에 있었다.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스무 번의 실험조차 언니에게는 부족했던 걸까. 스무 번의 죽음을 겪고도 구태여 스물한 번째 죽음을 만들어 내려는 언니가 괴이하게 느껴졌다. 닭장 같은 입원 병동에서는 매일같이 누군가가 죽었다. 바퀴 달린 침대 위에 누워있던 사람이 숨을 거두면,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울었다. 일주일, 한 달, 혹은 일 년이 넘게 자신 안에 고여있던 감정을 펑펑 흘려버린 사람들은 희미한 통쾌함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해소의 대상이 된 시신은 거칠고 지저분한 채로 남아있다가 천천히 치워졌다. 작성일 2025-10-28 작성자 이주나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33상세보기
						선택하신 작품으로 월장원 선정을 하시겠어요?
 목록 아래에 있는 '월장원 선정 저장하기'
						버튼을 클릭하시면 월장원 선정이 완료됩니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