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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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한 편당 작품 최대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요?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551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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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계단
언제부턴가 눈을 뜨면 항상 이곳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계단과 그 위에 넘어진 듯 누워있는 나.계단은 딱 발 두개 들어갈 정도로 얇았다. 그리고 손으로 만지면 물렁하게 잡혔다. 하지만 내가 밟고 올라갈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계단의 끝에는 문이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저 끝에 하얗게 빛나는 문이 있다고.검은 캔버스 위에 하얀 선으로만 그린듯한 얇은 계단. 그건 끝없이 이어져있었다.처음에는 나도 느껴지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문은 커녕 빛조차 비춰지지 않았다.내가 이 곳에서 발견한건 크게 세가지가 있다.하나, 이곳에서는 먹거나 자지 않아도 괜찮다. 에초에 먹을 것도 없고 불규칙적으로 눈을 떴다가 감으면 내 몸은 계단 위에 널부러져 있었으니까.둘, 먹거나 자지는 않아도 되지만 피로는 여전하다.계속 계단을 걸으면 어느샌가 다리가 아프고 저릿한 느낌이 들어 잠시 쉬기도 했었다.셋, 이곳에서는 다치지 않는다. 언제 한번 계단을 올라가는것에 지쳐 누웠다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냥 끝없이 떨어지다가 다시 이 자리에 안착했다.그 외에 계단에서 넘어져도 피부 하나 까지지 않았다.내가 할 것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문을 향해 앞으로 걸어가는것. 아니 에초에 할 수 있는것도 없었다.계단에서의 흐름은 꿈처럼 이상하게 흘러간다.하늘에서 뜬금없이 유성이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불기도 하며 비가 내리기도 하는 등 자연현상이 나타난다.온곳에서 시끄러운 괴성이 들리고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아니면 갑자기 세상이 밝아졌을 때도 있었다. 그 때는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꾸욱 감아도 감은 눈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하지만 대다수의 시간이 그저 계단밖에 없었다.그렇게 계단을 걸어갈 때, 이상하게 차가운 감각이 들더니 하얀 문 바로 앞까지 끌려간적이 있었다.문을 열려고 했을 때, 나는 다시 쓰러져 버렸지만 말이다.나는 그 때가 한번만 더 오길 바라며 끊임없이 걷고있다. 언젠가 저 문을 열고 나간다면, 난 어떻게 될까.....나는 하얀 문에 도달했다. 하지만 끝끝내 문을 열지 못했다.문에 손을 갖다댈 때마다 손 끝부터 끝내주는 감각이 밀려들어왔지만,이내 들려오는 말소리에 나는 문을 더 굳게 잠글 수 밖에 없었다."저새#@는 또 왜 @!러#@!^*데?""저새끼라니, 말조심해. @#^%.% #@^&""나는 저런거 #@% 적 없어. 어디서 저딴$#@ 튀@^$%^@&*는.. 쯧."두 남녀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계단에 이불과 배게를 챙겨 누웠다.끊임없이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어찌됐든 지금. 난 이곳이 편안했다.검은 배경 속에는 쌀알같은 별들이 반짝였다.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계단 위에서 잠을 청했다.
작성일 2025-09-19 작성자 구운복어회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상세보기 -
소설 익사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너의 책상 위에는 국화 한 송이만 놓여있었다.나는 국화대신 분홍 막대사탕 하나만 놓았다.딱히 그게 싫다는건 아니였다.모두가 네 사인은 의사(縊死)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너는 네 수많은 물음에 삼켜져 죽었으니, 그것은 분명 익사였다....너는 항상 궁금한 게 많은 아이였다.레몬에서 신맛이 나는 이유나, 새로 자란 손톱은 왜 하얀색일까 정도의 궁금증이었다.하지만 가끔은 나도 알 수 없는 질문도 많았다.생명체는 왜 만들어진걸까? 라던지, 왜 인간만 이렇게까지 발전했던걸까? 같은,나는 그럴때마다 대답하지 못했다. 레몬이나 손톱같은 가벼운 질문같은건 가볍게 검색해도 알 수 있었지만, 그런건 아무도 모르니까.사람들이 너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릴 때, 나는 사진 속 너를 바라보았다.아, 이제 더 귀찮게 질문하는 애 없겠네.이상할정도로 마음이 차분했다. 너와 가장 친한 친구라는걸 알어본 아주머니가 함께 세례하는걸 보러 가겠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이유는 나도 몰랐다. 그냥.. 보고싶지 않았다.장례식에서 나와 짐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며 주머니를 뒤적였다.주머니에 있는건 새하얀 종이 쪽지 하나였다.네가 죽은걸 몰랐을 때, 그러니까 어제 학교에 갔을 때.조회시간 전 나는 항상 아무도 없을 때 들어왔다.나는 의자에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1교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책상 서랍에 손을 넣었다.그 때 손에 걸린게, 이 작은 쪽지이다.네가 죽은건 조회때 알았다. 선생님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서 들어와 우리에게 말을 전했다.네가 죽었다고.다시, 나는 버스 안 유리창에 고개를 툭 기대 쪽지를 바라봤다.---진짜 진짜 마지막 질문!내가 가장 좋아하는게 뭐게?---"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입에서는 퉁명스러운듯 짜증섞인 답이 나왔다.어차피 말한다고 해도 듣지 못하는주제에,버스가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는 무거워지는 몸을 지탱해 발걸음을 움직이며 버스에서 내렸다.아파트로 들어가 엘레베이터에 탔을 때도 나는 쪽지를 놓치지 않았다.방에 들어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쪽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나는 이 문제의 정답을 안다. 정답은 물음.너의 온 세상이 물음표 투성이였으니까,나는 구겨진 종이를 펼쳐 닳아버린 연필로 답을 써내려갔다.너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던 연필심이 툭 부러졌다.나는 갑작스레 숨결이 무거워져 고개를 숙였다.눈앞이 흐려져 눈을 감았다 뜨니, 바닥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이딴거나 물어보고 난리..좀 더 길게 시간을 끌만 한 걸 넣어뒀어야지.일주일, 아니 한달은 고민하게. 아니지, 이왕이면..평생 모를만 한 걸로 쓰지 그랬어.
작성일 2025-09-18 작성자 구운복어회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44상세보기 -
소설 연정에 낙화
유난히 춥던 겨울폭설이 쏟아지던 날시리던 겨울바람을 맞으며 들은 네 말에 얼어버리는 듯했지"나 떠나야 돼. 아무리 빨리 와도 내년 이맘때일 거야"애써 담담한 표정을 하는 널 보니 울 수조차 없었다나보다 더 아플 것은 네가 분명하니까 뒤돌아 가는 네 뒷모습이 사라지자 왠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네 앞에선 담담한 척 기다리겠다 말했지만 네 모습이 사라지자 눈물은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네 발자국 주변을 물들였다. 내가 널 굉장히 사랑했다는 표식처럼 너만 생각했었다. 줄리 너도 마지막 한걸음이 떨어지는 순간 까지도 나를 기억했을까?나 없이 보내는 첫 봄에 너에게_그렇게 유난히 시리고 아프던 겨울이 지나갔다.노란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어오르며 봄을 알리는 듯이 네가 없이 봄은 시작되었지. 네가 없으면 흐르지 않을 듯했던 시간이었지만 너무도 평범하게 흘러갔고 네가 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꽃구경이 한창이었을 텐데.누가 꽃인지도 모르게 꽃들 속에 파묻혀서 봄을 즐겼을 텐데. 여러 아쉬움과 친구들의 꼬드김이 있었지만 아직은 마음은 너를 향해있었다. 나를 두고 간 네겐 더 아픈 시간 일 것을 아니까. 도무지 못 버티겠다고 말하고 돌아오고 돌아오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 아니까. 혼자 지냈어. 봄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혼자 있었지. 온종일 쓸쓸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어. 혼자 실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거든. 줄리, 그곳에도 꽃이 피었는지?시원한 느티나무 밑에서 같이 있는듯한 너에게_영원할 것 같던 꽃잎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고 가지엔 푸르름이 돋아나며 햇발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지. 너도 알고 있는 그 나무 밑이야. 엄청 커다란 느티나무 말이야. 초여름치곤 뜨거웠던 날씨 탓에 네가 귀여운 투정을 부렸던 그 나무 아래야. 눈을 감고 느껴지는 선선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있으니 꼭 네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게 보이는듯해. 아직은 네가 눈에 선하게 그려져. 너와 함께했던 곳들에 네가 있는 것 같아. 얼른 돌아와. 줄리, 친구들에 성원을 못 이겨 바다로 놀러 왔어. 일렁이는 바다의 표면엔 윤슬이 나릇 하게 떠다녀. 저기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지나면 네가 있는 곳이 나올까?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윤슬을 따라다니다 보면 네가 보일까? 줄리, 네가 있는 곳에도 예쁜 윤슬이 일렁이는 바다가 보이는지?이다음에 같이 사진 찍고 싶은 너에게_푸르기만 하던 것들은 제 풀에 꺾여서 어느새 옷을 갈아입어. 울긋 불긋하게 옷을 입기 시작한 나무들을 보면서 다들 단풍구경이 한창이야. 몇 주 없을 가을 이어서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고 놀러 다녀. 곳곳에서 긴 코드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지. 너도 코트가 참 잘 어울렸는데. 여름보단 쓸쓸해진 날씨고 내 마음 한편이야. 하지만 책 읽기는 좋은 계절이지.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 러닝을 하다 은행을 밟았는지 지독한 냄새가 가시질 않아. 작년 가을엔 네가 은행을 밟았었지. 냄새가 퍼지며 얼굴을 찡그리던 네 표정이 그려지지 않아. 사진으로 남겨 두었어야 하는데. 찾아보니 우리가 가을에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더라. 네가
작성일 2025-09-18 작성자 Limit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상세보기 -
소설 매연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스카이 학사, 석사, 박사... 이른바 '1등급 인간들'. 몸은 점점 커지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내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열여덟에 대한 동경심도 김이 식어 갔다. 사실, 내 정신은 길을 잃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열다섯,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그닥 분위기가 좋지 못했지만, 덕분에 난 공부를 꽤 잘하는 축에 속했다. 난 그런 나 자신이 좋았다. 삭막한 도시에서 싹을 틔워내는, 비유하자면 그런 뿌듯함이 내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싹이 꽃을 피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난 꾸준한 내가 좋았지만 세상은 날 자꾸만 독촉했다. 어서 떡잎을 솟아내라고, 봉우리를 맺으라고, 꽃이 피려면 멀었냐 물었다. 아스팔트 아래 묻힌 줄기들은 열등한 것들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어느 날, 꾸준함이 게으름으로 비춰지기 시작했을때 부터 난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나는 잎들에 대한 부러움이 자라났다. 그 부러움은 어느새 동경이 되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학원 수업을 마친 평일의 늦은 밤엔 길거리를 전전하며 짙은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아이들이 있었다. 막상 그 아이들을 비추는 빛의 근원은 아직 불이 켜져 있는 학원가의 LED 조명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 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보였다. 그 아이들이 내 눈 바로 앞을 지나갈 때는 탁하고 쓰거운 냄새를 퍼트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잠시 뒤 코끝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향수 냄새는 상쾌하고 달큰했다. 그 요상한 괴리가 내 마음을 자꾸만 부풀렸다. 그 아이들은 규칙성이 없었다. 항상 가는 곳 따윈 없었고 순서도 제각각이었다. 매일같이 지나가는 곳은 우리 학원 건물 앞 거리가 유일했다. 매일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집을 반복하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인생이었다. 커지는 부러움에 한심하다 욕하고, 미래를 꿈꾸지 않는 놈들이라고 되뇌어도 봤다. 젊음에 국한한 자유로움일 뿐이라고. 하지만 너무 멋진 말이지 않은가? 그토록 짧은 청춘을, 모두가 그리워하는 인생의 파릇함을 내 뜻대로 살아간다는 게... 응, 너무 멋진 말이었다. 젊음과 자유, 그 두 단어의 조합이 자꾸 내 마음에 펌프질을 해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펑.*** 난생처음 학원을 제꼈다. 학원 선생님께는 통보식 문자를 하나 보내놓았다. 그리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골목, 그리고 작은 호프집, 그리고 다시 길거리.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 중 가장 깨끗하고 긴 것을 집어 주머니에 넣고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와 그 바로 앞에 자리한 호프집 앞에 섰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조심스레 문을 밀자 위에 달려있던 작은 종이 찰랑거렸다. 카운터에 올려진 작은 상자에서 라이터를 몰래 빼 온 후,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거리를 달렸다. 알록달록한 간판들과 까만 전선들이 뭉텅이져 오묘한 빛깔을 냈다. 보랏빛의 밤거리를 달리던 다리는 백색 조명이 드리우자 익숙하게 한 빌라 앞에 멈춰 섰다. 평소라면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발걸음을 멈추
작성일 2025-09-18 작성자 고래잠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4상세보기 -
소설 영화관에서
영화관에서 나는 내가 이 세상의 엑스트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대게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아빠의 권유로 숙모가 운영하는 독립영화관 겸 독립 서점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 나는, 찜통 같은 더위를 피해 좁은 영화관은 찾으면서도 지루함을 참지 못했다. 나는 수능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도 영 적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과 과목이 약한 탓에 반강제로 문과 계열을 택하게 되었지만 문과 쪽에서도 특별히 흥미를 느끼는 과는 없었다. 그나마 관심이 가는 것이 경영학과였는데, 그 작은 관심마저도 사업할 생각 없으면 얼른 그만두라는 담임 선생님의 일갈 덕에 사라졌다. 공부를 썩 잘하는 편도 아니라 성적이 나오는 대로 합격한 대학교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국문학과인지 문예창작인지 하는 과를 나온 숙모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학과를 나온 작은 아빠가 나를 불러들이기 전까지, 나는 이번 여름 방학도 전처럼 시간 낭비만 할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나를 달콤한 유혹으로 꼬드겨 영화관으로 초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발소리에 집중해 눈을 감고, 관심도 없는 책을 펼쳐 아무 문장이나 읽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나는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고정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과 이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세상의 엑스트라였던 것이다. 주인공도, 하다못해 주인공 옆의 분량 많은 조연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 끔찍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실패에 무던해졌다고 생각했고 나의 그 무감각이 좋았다. 그런데 내가 틀렸던 걸까. 흐려져가는 내 존재감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끔찍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숙모의 영화관에 들어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했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한때는 정말로 즐거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버린 꿈이었다.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이유로 내가 놓아버린 과거의 꿈이었다. 내가 나를 이 세상의 엑스트라로 만들었다. 너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작은아빠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인생에 늦은 건 없어. 적어도 꿈은 그럴 수 없어. 늦었다고 생각되면 바로 시작하면 돼. 작은아빠는 내 고민을 진지한 태도로 들으시더니 그렇게 대답하셨다. 그 말을 듣자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이상하게 숨통이 트였다. 누군가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작은아빠는 나이 들어 미술을 시작한 이들을 내게 알려주며 조언해 주셨다. 당장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미술 자체가 중요했다. 현재의 내게 성공은 미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꼭 대학을 그쪽으로 가지 않아도 미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미래를 그리는 일이 더 이상 절망적이지 않았다. 미래를 놓지 않는다는 것. 미래를 바라보는 그 힘이 멈춰 있던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작성일 2025-09-17 작성자 도연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59상세보기 -
소설 마지막 질문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너의 책상 위에는 국화 한 송이만 놓여있었다.나는 국화대신 분홍 막대사탕 하나만 놓았다.딱히 네가 싫다는건 아니였다....너는 항상 궁금한 게 많은 아이였다.레몬에서 신맛이 나는 이유나, 새로 자란 손톱은 왜 하얀색일까 정도의 궁금증이었다.하지만 가끔은 나도 알 수 없는 질문도 많았다.생명체는 왜 만들어진걸까? 라던지, 왜 인간만 이렇게까지 발전했던걸까? 같은,나는 그럴때마다 대답하지 못했다. 레몬이나 손톱같은 가벼운 질문같은건 가볍게 검색해도 알 수 있었지만, 그런건 아무도 모르니까.너를 추모하고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내 서랍에는 쪽지 한 장이 있었다.---마지막 질문!나와 네가 친구가 된 이윤는 뭘까?---멍청한 말투에 그에 답하듯 틀려버린 맞춤법 , 이거 너지?나는 종이에 작게 글씨를 썼다.그리고 작게 접어 주머니에 넣어뒀다.<이윤는이 아니라. 이유는이야, 멍청아.>이제 네가 질문했으니, 내가 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나는 너의 자리에 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뭘까, 네가 이 질문을 한 이유도 정답도 모르겠다.한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는 아니였다.지금은 고2이고, 공부를 해야 하니까.하지만 내가 지금 책을 본다고 해서 집중이 잘 될까? 정답은 '아니'다.고민할 게 많아서 그런지, 시간은 어느새 12시를 지나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오늘은 밥 못먹겠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작게 중얼거렸다.자리에서 일어나 너의 자리로 갔다. 너의 죽음을 각인이라도 시켜주듯 책상 위 놓인 한송이의 국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는 힌트를 얻기 위해 너의 자리를 지나쳐 사물함으로 갔다.아직 장례식도 끝나지 않아서인지 너의 사물함은 그대로였다.사물함을 열자마자 있는것은 노란 포스트잇 이었다.---여긴 없지롱! >_< 네 힘으로 찾아봐~---장난끼 가득한 메모, 나는 알게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뭐가 좋다고 웃고 난리야.."노란 포스트잇을 떼자 아직도 네 온기가 남아있는 듯이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보였다.이러면 누가 이걸 알아본다고..포스트잇을 주머니에 넣고 사물함 문을 닫았다.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내가 혼자서 찾아야 하나 보다.길게만 느껴진 수업이 빠르게 지나고, 학교가 끝났다.평소처럼 문 앞에서 너를 기다리다가, 이내 네가 없다는걸 깨닫고 발걸음을 옮겼다.내 손은 자꾸만 너를 확인하려는 듯이 주머니 속 쪽지와 포스트잇을 번갈아가며 만지작거렸다.집에 돌아가서도 머릿속에는 질문에 대한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다.그야 너의 마지막 질문이니까,나는 내 방에서 너에게 닿은 모든것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먼저 침대 아래에 쌓인 선물상자를 열어보기로 했다.네가 준 생일선물들은 하나같이 다 너의 취향에만 맞아있었다.그럼 나도 그에 반격하듯 내가 관심있는 물건들을 너에게 주었다.그렇게 서로 주고받은 선물은 5개가 넘어있었다.얇게, 하지만 길게. 우리는 딱 그정도의 싸움을 했었다.온 방 안을 뒤져보아도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나오지 않았다.나는 일단 책을 펴고 공부를 시작하려 했다.이번 질문의 시간은 길고, 나는 그렇게 조급해 할 필요가 없었다.그렇
작성일 2025-09-17 작성자 구운복어회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55상세보기 -
소설 작별
작별그녀는 병원 문을 힘껏 열고 달려 들어갔다. 병실 문을 벌컥 열자 이미 의료진과 의사가 침대 곁을 둘러싸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짧고 단호한 한마디가 가슴을 내려앉게 했다.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그녀는 간신히 서서 침대 위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선생님!” 발걸음을 옮기려던 의사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울부짖었지만, 돌아온 것은 안쓰러운 눈빛과 등을 두드리던 손길뿐이었다. 이내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병실을 떠났다.닫히는 문과 함께 병실 안에는 울음소리와 절규가 퍼져 나갔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마지막까지 편안한 미소가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웃을 수 없었다.장례 절차가 끝난 날, 장례식장을 나서며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발걸음 사이로 한겨울의 바람이 파고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춥다, 옷 단단히 입어라” 하고 전화해 줄 어머니가 이제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겨울은 유난히 냉혹했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핸들에 얼굴을 묻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귓가에는 “먼 길 고생했다, 밥 먹고 가라”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눈물을 닦아내고는 집으로 향했지만, 골목은 낯설 만큼 고요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무너져 내리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가, 그렇게 드러눕지 말아라. 먼지 다 묻는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번졌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으며 천장을 보며 어머니를 불렀다.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낯선 방이었다. 창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여섯 시. 희미한 불빛과 함께 밥 짓는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홀린 듯 몸을 일으켜 부엌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익숙한 뒷모습이 있었다. 프라이팬에서는 계란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여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일어났냐. 밥 먹어라.” 주름진 얼굴, 따스한 눈빛.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였다.“엄마…?” 떨리는 목소리로 다가가 품에 안기자, 익숙한 온기가 전해졌다.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어머니는 “아이고, 내 새끼” 하며 다독였다. 그 온기에 모든 슬픔이 녹아내리는 듯했다.그러나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다시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방 안은 싸늘히 고요했다. 밥 냄새도, 따뜻한 품도 없었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현실은 여전히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차갑던 병원 복도, 식어가던 손길, 장례식장의 겨울 바람까지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뺨을 타고 흐른 것이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었다. 발끝에 닿는 차가운 마룻바닥이 꿈이 끝났음을 알려주었다.창밖에는 평범한 아침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혹독했던 겨울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그 꿈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사무친 그리움이 만들어낸 깊은 무의식이었다는 것을. 꿈속의 어머니는 여전히 따뜻했고, 여전히 자신을 안아주었다.그녀는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다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작성일 2025-09-17 작성자 dlwnsgml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6상세보기 -
소설 외계인
"엄마, 나 이거 질리는데 그만 먹으면 안 돼?"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항상 내가 말할 때마다 들리는 소리, 그건 분명 나의 목소리였다.그 아이는 분명 완벽한 외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록색 피부, 얼굴의 반쯤은 되는 크고 기괴한 눈, 머리에 달린 더듬이 같은 무언가, 물에 퉁퉁 불은 듯한 발걸음 소리까지.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꺄아악!"내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자 외계인은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나를 따라했다."꺄아악."철퍽. 철퍽. 외계인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나는 잔뜩 겁에 질려 두 눈을 꾸욱 감았다. 죽는 건가? 이대로는 싫어..! 기분 나쁜 발걸음 소리가 내 앞에서 이내 소리를 멈췄을 때, 나는 서서히 눈을 떠 조심스럽게 외계인을 올려다봤다.외계인은 나를 빤히 보더니 외계인의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이끼 낀 듯 초록색인 피부가 밝아지더니, 이내 나의 모습으로 바뀌었다.작은 의문인건.. 나의 어릴 적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서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향해 달렸다. 나를 따라오는 찰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서서히 가쁜 숨을 내쉬었다.그때, 내 뒤에 무언가 부딪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어린 모습의 내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외계인이 있었다.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외계인을 확 밀쳤다. 그러자 외계인은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나는 약간 매스꺼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를 밀쳤다. 내가 어린 나를,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은 나를 밀쳤다.표정을 살짝 구기고 외계인을 쳐다봤다. 그때, 외계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너 뭐야?"내 말을 듣기는 한건지 외계인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냅다 바닥에 있는 돌을 들어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댔다."뭐하는거야..!"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외계인의 손에 있는 돌을 뺏어들었다.그러자 그 외계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배고픈건가..?"너, 나 따라와."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외계인을 배불리 먹이면 나를 그만 따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외계인의 손을 잡아 끌었다.집 앞에 다다라 외계인에게 속삭였다."여기서부터는 조용히 해야 해, 알겠어?"외계인이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고 믿을 뿐. "다녀왔습니다."낡은 철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다녀왔다는 인사에 비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거실에서 들려오는 뉴스 소리에, 몸을 움츠리며 천천히 방으로 향했다. 발에 달라붙는 장판을 뒤로하고, 방문을 열어 외계인을 들여보냈다."여기에서 기다려."조심조심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울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또 뭐 먹으려고? 살이나 찌지 마, 너 어렸을 땐..."길어지는 말소리에 나는 눈을 꾸욱 감았다 뜨며 말했다."응, 알았어 엄마."짧게 대답하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대신 부엌 식탁에 놓인 식빵 한 봉지를 조심스레 가져갔다.철컥- 방 안에 들어가 문이 닫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하아.."그러고
작성일 2025-09-16 작성자 구운복어회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91상세보기 -
소설 너와 나 그리고 이 우주
오늘 이 세계가 끝난다면 난 뭘해야할까바다를 보러갈까, 아님 친구들이랑 마지막을 같이할까그것도 아니면 하늘에 있는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러갈까분명 친구도 가족도
작성일 2025-09-16 작성자 솔바람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46상세보기 -
소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얇은 옷 안까지 들어오는 무더운 열기가 여름이 왔다고 알리는 날. 이런 날씨에도 학교를 가야하는 것을 애써 부정해보며 시원한 바람 부는 선풍기 앞에 앉는다. 방금 전까지 내 몸을 뒤덮혔던 땀이 식어가니 조금은 편안해진 듯 했다. 그러나 편안한 행복도 잠시 뿐이였다. 엄마가 요리를 하던 중 멍하니 선풍기 앞에 앉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다가왔다. 미처 빨리 눈치채지 못하고 일명 사랑의 매를 맞아 등이 얼얼해졌다. "야 이 놈의 기지배야, 얼른 학교 안 가냐!"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투덜대며 맞서려다 다시 들어올리는 손에 다급히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했다. 이 어린 양을 때리려 하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맞서 싸우기엔 내 힘이 약해 마지못해 움직인다는 듯 밍기적거리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오니 나를 맞이하는 건 시원한 바람이 아닌 미지근한 바람이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옷을 벗어 내던지고 싶은 열기다. 무거운 열기를 뚫고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학교로 향했다. 땀 뻘뻘 흘리며 간신히 교문 앞까지 도착했다. 원래 이렇게 학교가 멀었나 생각이 들 만큼 벌써 진이 다 빠진 듯 했다. 그래도 다행인건지 학교 안으로 들어서니 조금은 더위가 가라앉은 공기가 느껴져 다시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교실에 도착해 들어오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는 지 서늘한 바람이 나를 맞이해 방금 전의 더위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오히려 몸이 떨릴 정도였다. 내 책상에다 가방을 내려두고서 에어컨 바람이 잘 드는 중간 자리로 가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성일 2025-09-16 작성자 잊혀진 writer 좋아요 0 댓글수 2 조회수 70상세보기 -
소설 백야의 소실점
쿨럭, 쿨럭. 가냘프게 토해내는 기침 소리가 방을 메웠다. 눈은 요란하게 창밖을 나부끼고 살을 에는 한기는 어긋난 창문 틈 사이로 삐져나왔다. 나는 이불을 조심스레 쌓아 올리고 그 아래 누워 계신 어머니께서 움찔할 때마다 못내 죄송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한때 어머니의 말씀처럼 쉬이 지나가리라 믿었던 기침소리가 귀에 박혀오는 울음같이 느껴졌다. 마치 단말마처럼, 끝이 있는 것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하게 말이다. 이불 사이 비죽 나온 파리한 낯을 바라보며 메마른 종잇장 같은 손을 바닥에 주저앉아 조심스레 쥐어잡았다. 지독한 병은 어머니의 그 허연 손등 위로 피 한방울 흐르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 덜컹 덜컹 . 청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였지만 다시금 귓가를 울려오는 바람은 창문도 철장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께서 깨시지 않게끔 발소리를 죽이며 방을 나왔다. 누런 방바닥에 발이 닿을 때 마다 빙판을 밟는 듯 서늘 했지만 대충 바닥에 늘어진 파카를 걸쳐 입곤 칠이 잔뜩 벗겨진 쇠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빌라 안인데도 바깥보다 더 매섭게 바람소리가 울려왔다. 벽, 다시 벽••• 끝없이 부딪치면서도 깨지지 않는 소리가 자꾸만 거슬렸다. 후―.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뺨이 추위에 얼얼했다. 바람이 숨을 토해낼 때마다 열리는 낡은 유리문 탓에 눈이 이리저리 날려오고 있었다. 나는 보기 싫게 늘어진 눈을 운동화 밑창으로 쓸어낸 뒤 현관으로 올라왔다. 깨진 바닥 타일 사이엔 흙과 녹은 눈이 뒤엉켜 있었다. 문이 바람에 열리지 않게 등을 살짝 기대고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며 파카 주머니를 뒤졌다. 구겨진 전단 한 장 그리고 담배 한 갑과 라이터. 전단은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는 담배 곽을 열었다. 돗대였다. 담배 끝을 살짝 물고 불을 붙였다. 씁쓰름한 향에 미간이 찌부러지고 입에 매달린 종잇장은 속처럼 타들어갔다. 바람은 인정사정없이 눈발과 함께 불어왔고 뒷꿈치는 점점 에여왔다. 어차피 막아 봤자였다. 나는 벌컥 문을 열고 얼굴을 얼어버릴 듯한 한기를 느꼈다. 삽시간에 쌓인 눈이 세상을 허옇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더 쏟아져라. 땅을 모조리 메워라. 속에 꽉 들이찬 비명이 피를 쏟으며 눈과 함께 쓸려 나갔다. 필터를 깊게 빨아들이며 얼어붙어 부러질 것 같은 무릎 관절을 움직여 쪼그려 앉았다. 연기가 멀건한 하늘을 향해 섞이며 나는 백야에 온 듯한 낯선 기분이 들었다. 서서히 얼굴을 들이 미는 옅은 태양 빛에도 허연 눈은 제 몸을 살라 빛을 담아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광경에 나는 얼마 만에 순수한 모습을 보았나 싶었다. 빌라 앞은 항상 자판기 커피나 담배꽁초, 사람들의 자취로 꽉 차 있었다. 다만 지금은 이렇게 허연 모습이라니. 조약한 순수함이 얼마나 가련한지. 녹아내리면 또다시 사라지고야 말 우스운 감정이 뱃속에서 우글거렸다. 독한 마음도 결국 현실 앞에선 무너져내리고야 만다. 밤낮 가릴 것 없이 벽돌을 나르고 트럭을 몰았다. 누구나 내게 독한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고 휴일 하루 없이 숨 막히게 살아왔지만
작성일 2025-09-15 작성자 탈피 좋아요 0 댓글수 3 조회수 161상세보기 -
소설 불청객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 것은 이틀 전이었다. 단체 발송된 부고 문자 한 통과 아빠가 보낸 대여섯 통의 문자가 알림창에 나란히 떠 있었다. 내용은 비슷했다. 엄마는 사망했고, 동시에 죽어 있었다. 나는 고인이 편하게 가시도록 명복을 빌어야 했고, 자식 된 도리라면 이번만큼은 좀 씻고 밖에 나와야 했다. 휴대전화는 전화 오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확인하지 않았지만, 아마 아빠였을 것이다. 더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잠에서 깨니 햇살이 창문을 뚫고 방을 산만하게 적시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입안이 말라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기분 나쁜 침의 맛이 느껴졌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오후 세 시나 네 시 즈음일 것을 알았다. 일어나서 하는 일은 다시 눈을 감고 자거나 컴퓨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누웠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를 반복했다. 나의 하루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이른 시각 끝났다. 오후형 인간의 하루는 짧았기에, 하루 한 끼를 먹고 잠과 컴퓨터로 시간을 축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재수 공부하겠다며 서울로 올라와 변두리 값싼 방을 잡고 폴더폰을 개통한 후에도, 나의 케케묵은 습관은 그대로였다. 서울에서 이 가격으로 이 정도 집 못 산다는 말을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아빠와, 서울은 공기가 다르다며 애써 말을 돌리던 엄마를 보며 한 다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있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인터넷 강의를 보겠다며 산 컴퓨터로 이런저런 영상물을 종일 보았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광고 페이지, 영화 리뷰를 보며 시간을 죽였다. 눈과 머리는 항상 욱신거렸다. 각종 문제집과 노트는 두어 번 펼쳐본 후 휴대전화와 함께 구석에 던져 놓았다. 휴대전화의 전원은 충전조차 되지 않아 언제나 꺼지기 직전이었지만, 컴퓨터 화면은 쉴새없이 돌아가며 빛을 방출했다. 차가 많고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의 새벽은 다른 곳보다 더웠고, 나의 방은 아마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몇 도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기력을 회복한 나는 불을 끄고 인터넷 창을 들락날락 거렸다. 마우스 클릭, 창 열고 닫기, 재생 버튼과 일시 정지 버튼. 그게 전부였다.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얼굴은 기억 나지 않는다. 눈에 뻐근하게 박힌 텍스트는 검은자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제서야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엄마는 사흘 전 죽었다. 새벽에 일어나 하늘을 보는 것과,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하늘은 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 새벽 하늘과 아침 하늘은 역시 닮아 있는 듯 다르다. 땅과 하늘이 뒤집힌 듯 검푸른 하늘이, 어느새 둥글게 갈라지며 붉은 빛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꼭 저녁 하늘을 뒤집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오후형 인간인 나는 아침형 인간보다 새벽 하늘을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새벽은 내가 보통 잠드는 시간이기에, 이에 대한 기억은 그리 뚜렷하지 않다. 쌀쌀한 공기가 하늘과 함께 데워질 때면, 땀을 흘리며 잠에 들었다. 쓰레기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작성일 2025-09-15 작성자 손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4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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