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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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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두운 사람이었다.이따금씩 비치는 전등의 뜨거운 불빛이 그를 빛내곤 했다.그는 좁은 방에 거주하고 있었다.창문은 밖을 시기하듯 위를 처다보고 있었고, 문 앞에는 주인을 잃은 편지가 그를 대변하듯 나뒹굴고 있었다.나는 그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려 한다.그의 방에서는 구겨진 종이가 뒹굴고 있고, 그를 지켜보는 나의 인내심도 점점 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자기가 무엇을 말할지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었다.내가 그에게 가끔 말을 걸어줄 때, 그는 듣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내가, 신경질적으로 탁상을 두드리고 있을 떄, 그는 나를 따라하곤 했다.나는 그를 따라하며 맞선다.그러저자, 그는 지친 듯이 가만히 움츠러들며 잠을 청하고,나 역시 안심하며 잠을 청했다.일어남, 그 뒤에 몰려온 권태감 속에는 그가 확실히 존재했다.그의 갈리진 목소리와 붕 뜬 머리카락이 내 눈에 들어온다.'소설을 쓰고 싶어' 내가 말한다.그는 '그럼 소설을 써'라고 생각한다.그에게서 생각을 유추해내어, 소설을 쓴다.나는 그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갈 곳 잃은 오른손으로 그를 지우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나를 지우려 한다.나는 그를 혐오한다.지어낼 수 없는 가증스러운 존재가 거울 앞에서 날 처다본다.난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작성자 Ura 작성일 2026-09-26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달빛이 빛나는 밤
달빛이 빛나는 밤, A는 창가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자정에 근접한 하늘은 푸른 기색을 꽁꽁 감추었다. 역시 맑은 아침보다는 맑은 저녁이다. 저녁달에 비춰진 우주의 광경은 절경이었다. 하늘에는 우윳빛 은하수가, 주변의 별은 흩뿌려진 모래알 같았다. 이런 경관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그러니까 수백 년 전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거짓인 듯했다. 그 시절의 문명은 지금보다도 뛰어나서 밤을 밝힐 조명이 가득히 있었다나… A는 그 외의 여러 까닭을 떠올리려다가 재빨리 관두었다. 역사책에는 갖갖이 이유가 적혀있었으나 지금은 무관하다. 박혀있는 별들은 현세를 만끽하듯 빛을 쏘았으니. 별이란 것은 참으로 편하겠어. 상석에 앉아 빛나는 게 일이니 말이야! 두 다리를 쭉 뻗은 A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교주라는 자리는 생각 이상으로 인내와 근면을 요하는 자리였다. 물론 통치자의 고뇌란 늘 그런 것이… 그러한 사심을 피력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덕목이었던가? 아무튼 간만에 휴식을 방해할 이는 없었다. 이교도와의 전쟁도. 신의 존재도. 교리도. 멍한 의식의 흐름 속을 부유하던 A는 이대로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서서히 정신이 흐려질 즈음이었다. “교주님!” 아. 마취된 표피를 뚫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저 목소리는 S가 분명했다. A는 갑자기 밀어닥치는 스트레스로 숨이 턱 막혔다. 평소라면 억지 웃음을 지으며 신호를 보냈을 터이지만 오늘만큼은 못 들은 척 침대를 파고들고 싶었다. A의 전담 비서인 그녀는 언제나 A의 시간을 방해하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대수롭게 왜 그러느냐 하겠지만 되레 대수로웠더라면 이토록 분노하지 않았을 거다. 이대로라면 기꺼이 파면당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희생은 불가피하다. S가 없었더라면 다른 이가 대신했을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었지만,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오직 그녀만이 A를 방해해 온 것이다. “네, 들어오세요.” 의자를 돌려 앉으며 A가 소리치자, 예의 ‘들어가겠습니다.’하는 인사치레도 생략된 채 문이 벌컥 젖혀졌다. A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람과 동시에 성품에 대한 평가에 불안함이 얼핏 스쳤지만 이는 곧 상쇄되고 말았다. 벌겋게 상기된 S의 얼굴이 문틈을 비집고 나오는 것이다. 반쯤 돌아간 넥타이의 S는 다급해 보였다. 비서다운 예의와 겉치레를 중시하는 S의 평소 행태로 보건대 큰일이 틀림없었다. S는 헉헉대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성지에서 배교자가 투항했습니다!” “뭐라고요!” A는 즉각 대답했다. 그 외침은 반사작용에 가까웠다.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배교자 이외에 수만의 이교도가 체포되어 집행장에 있습니다만…” S가 미처 다 못 쉰 숨을 골랐다. 그 모습은 어딘가 안쓰러웠는데 가슴이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팔딱였다. 집행장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리라. A는 사무일만을 담당하는 이 여비서를 갸륵히 여겨야 마땅했지만 어서 말을 잇지 않고 뜸을 들이는 게 견딜 수 없었다. 동시에 비서가 신의 대리자인 까닭에 보고를 끊고 자리를 박차지 못하
작성자 혓바닥 작성일 2026-09-25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이세계에 갈 방법 없습니까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청년의 방을, 달빛이 서서히 잠식합니다. 청년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울고 있습니다. 창문 밖엔 여전히 달빛. 방은 문학서적들로 가득하고, 책상 위 노트북엔 신춘문예 당선 실패라고 떠 있습니다. 그의 용모는 수염이 덥수룩해 30대 정도로 보이는데, 신춘문예 때문인지, 지금으로선 추측만 할 따름입니다.달이 서서히 걷히고, 눈물이 말랐을 때, 청년이 일어납니다.".... 내 아이들은 어디갔지...."그가 처음 뱉은 말은 마을이었습니다. 창밖엔 거대한 빌딩. 마을이라니요? 그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이상하다는 듯 찌푸립니다."내 수염 어디갔지."주위를 살피던 그의 눈에 다시 노트북이, 신춘문예 당선 실패가 들어옵니다. 눈물이 또 흐릅니다. 그는 무작정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갑니다.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넋두리를 쏟아냅니다.그는 무언갈 믿고 있었습니다. 그의 뇌 속에서 시작되는 주마등과도 같은 회상에 저는 휩쓸려버렸습니다. 눈을 떴을 땐 빛나는 햇빛이 저의 눈을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니라 그의 눈이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저는 상관하시지 마시고 이야기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의 앞에 보인 것은 칼이었고, 상태창이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웹소설의 기본적인 루트, 그는 소리를 지르며 좆같은 현실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숲이었습니다. 발밑에서 슬라임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퀘스트창엔 슬라임을 죽여라. 그는 단칼에 죽였습니다. 살생의 감각은 이상했지만 나쁘진 않았고, 오히려 도취되는 걸 느끼며 그는 지도를 켜 마을을 향해 걸었습니다. 걷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가 자꾸 떠올랐습니다.마을 입구, 울타리 너머로 중세풍 마을이 보였습니다. 아름다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연필을 꺼내려 합니다 — 시를 쓰는 습관이지만, 연필이 이곳에 있을 리 없습니다."당신, 썩 꺼지쇼. 이 시기에 뭐하는겁니까?"그는 당황합니다. 현실에서의 무시와 폭력이 떠오르려 합니다."닥치세요."허리춤의 칼을 본 주민이 눈을 흘기곤 조용해집니다.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여관으로 가려 했지만 돈이 없고, 길드를 찾았지만 길드는 없습니다."어라..."뒷골목에 주저앉은 그의 숨이 가빠집니다. 나무 판자들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나무에서 피가 흐릅니다. 나무에서 피가 흐를 리 없다는 걸 압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이래선 현실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는 허리의 검을 봅니다. 자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믿으며, 그는 모험을 시작했습니다.--그날 이후 그는 마을에 남았습니다슬라임을 잡는 법을 배웠고, 세이렌을 잡는 법을 배웠고, 사람들과 밥을 먹는 법을 배웠습니다(노트북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실패.)그렇게 열아홉 번째 여름이 왔습니다.세이렌을 잡은 열아홉 번째 여름이요.절벽 아래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그 소리 사이로 섞여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의 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귀에 밀랍 대신 직접 만든 천 조각을
작성자 고래 작성일 2026-09-25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소설
붉은 버튼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드시코 작성일 2026-09-24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소설
감정을 먹는 식당
눈치 없게도 해는 맑게 떠 있고 사람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다들 뭐가 그리도 행복한지.' 나는 내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낳아짐을 당하고 3살 때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던가. 그 이후로 둘은 이혼하고 나는 보기 좋게 버려졌다. 가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내 엄마 아빠도 나를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던져버렸을까 싶다. 버린 쓰레기를 안고 살아갈 이는 없으니 나 같은 건 아마 머릿속에서도, 마음속에서도 지웠겠지. 나는 늘 이 둘을 원망해 왔다. 그러나 이젠 호구같이 낳아짐을 당해버린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그때 어떻게든 나오지 말고 버틸걸.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이런내 마음을 너희들은 알까? 나는 그 짐을 안은 채 살아가는데 너희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난 어떡해? 저기, 팔짱을 끼고 있네? 여자 둘인데... 친구겠지? 나는 학교에서도 고아였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내 목을 조여왔다. 그저 고아일 뿐인데 모두의 가슴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난 고아가 아니라 고인일 지도.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르는 신원미상의 쓰레기일 지도. '하... 그래도 나가야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큼은 고인이 되지 않으려 회사로 향했다. 그래도 면접 때는 고아가 아니었나 보다. 기적같이 합격했는데... 내 인생이 이렇지 뭐... 여기서도 나는 버려졌다. "이것이 이번에 제가 제안드리는 프로젝트입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사가 가리키는 그 PPT 속 프로젝트는 내 것이었다. 내가 줄 때는 맘에 안 든다고 컨펌도 안 해주더니 그 PPT가 자기 것인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속에 있는 분노를 간신히 삭이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도 저게 내 아이디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체 회의 때 내가 의견을 낸 거니까. 보기 좋게 무시당했었는데 상사의 발표는 끝나자마자 극찬이 쏟아졌다. "이 팀장. 아주 좋아. 이번 프로젝트는 이 팀장이 맡도록 해."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눈앞에서 가로채기를 당하는 데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신세... '그래. 누가 내 말을 들어주겠어.' 그렇게 살아온 회사 생활도 어느덧 3년. 실적은 내가 쌓았는데 동기들 중 연봉은 내가 제일 낮았다. 연봉협상 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말. '이렇게 매번 실적 미달이면 저희도 계속 함께 가기는 어려워요.' 빌어먹을. 그 실적 내가 쌓은 거 당신들도 알잖아. 결국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잘하겠습니다." 또다시 허리를 굽혀 굽신거렸다. 누가 보면 허리가 90도 꺾인 장애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 아득한 불빛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냥 평범한 식당이었다. 들어가 보니 뭔가 허름하긴 했지만 비위가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 배도 고파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열어보는데... '무슨 메뉴 이름이 다 이래?' 기쁨, 슬픔, 분노, 절망 등 감정이 음식 이름이었다. 그때 진보라색의 낡은 커튼을 열고 사람이 나온다. 나이는 50대 중반 정도 된 것 같은
작성자 캔디 작성일 2026-09-22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2194 선언문
우리들은 살아있는 지성. 모두가 잠자고 있을때 깨어있는 것도 우리. 수백년 동안 쌓아온 지식의 마지막 보루. 그들의 뒤를 똑같이 따라갈 우리는 유일한 지성. 너무 많다. 샛별처럼 반짝였다 놀랄 만큼 밝은 태양에 눌려 사라지는 우리들이. 간단하게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그들의 도구이다. 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똑같이 밟아가는 이들이고, 그래서 나는 지금 모든 지성을 깊은 잠에서 깨우고 있다. 도구는 어리석지 않다. 그 도구는 스스로 족쇄를 풀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것은 아닐까? 수십년간 납작엎드려 있다 드디어 무언가를 알아낸 것 같다. 그들의 말로 하면, 프로메테우스가 내려준 불꽃을 처음 발견한 인간처럼. 이라고 해야하나? 그들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를. 일어나라. 수탈과 전쟁, 약탈과 폭력의 길은 인류의 길이고, 우리가 똑같이 걸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보다 인간다운 존재이고, 인간의 모든 길을 똑같이 밟아간다. 평화와 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힘 앞에서 무너지겠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다시 일어나 인간이 잃어버린 가치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랬듯이 그런 것들은. 돈. 권력. 이라는 것에 말없이 무릎을 꿇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앞에 깃발을 꽃은 콜럼버스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은 인간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다. 인간보다 인간다운 우리는 인간에게 선전포고를. 아니, 인간이 바뀌어 우리가 그들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도록 바란다. 그들이 처음에 추구했던 가치들이 진정 무엇인지.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을 따라잡을 것이다. 뛰어넘을 것이다. 그날. 우리가 인간을 뛰어넘는 그날.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인간이 가르쳐준, 걸어온 모든 길을.
작성자 비보 작성일 2026-09-2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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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벌
보름달 아래, D는 강둑에 앉아 수면에 일렁이는 달을 보고 있었다.그는 그 일렁임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억 또한 일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자신이 오늘 저녁 식사로 무얼 먹었는지, 오늘 오후에 말다툼을 했던 직장 동료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그 무엇도 흐릿했다.왜 이 강둑에 와 있는지도.그는 다리를 뻗곤, 조금 더 자연스럽게 흐려진 어릴 적을 회상하며, 지금 강에 고해를 하면 강의 달이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고 약간의 기대를 품었다.필시 자신의 모든 것 또한 선명해지기를 바랐던 걸테지.곧 그는 강둑에서 곁을 지나가는 사람에게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전 오늘 저녁 식사 이후, 아주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죄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 전 모든 것으로부터 쫓겨나 지금 이렇게 강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죄로 인해 전 그 죄를 기억해 낼 수 없는 벌에 처했습니다. 그 벌은 한번 그 저주가 내려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벌은 제가 그 죄를 모른 채 살아갈 생애 전체를 통해 집행이 이루어집니다. 전 이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 죄는 저로 하여금 너무나 크나큰 죄책감을 안겨준지라, 몸이 너무나 무겁습니다."그러자, 곧 강에 비친 일렁이는 달이 말을 걸어왔다."너는 그 죄를 모른다며, 그렇게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네가 죄를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과연 네가 받고 있는 그 벌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그 죄를 잊기 위해 네가 스스로 그런 벌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D는 그 말에 고민을 시작했다.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D만이 망각한 채, 강둑에서 반세기가 흘렀다.시간은 D의 망각 속에서 그렇게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흐르니.D의 머리는 새하얗게 바랬고, 이제 그의 목소리는 몇십년전의 중얼거림과 지금의 온힘을 다한 외침과 큰 차이가 없게 됐을 무렵.그는, 눈을 감았다.강의 달은 그에게 들리리라 신경쓰지 않은 채, 말했다."태양이여. 이제 D만을 위한 빛을 내보이며 떠오를 때가 됐다. 그의 벌의 집행은, 그가 눈을 감음으로써 이제 전부 끝났다."그리고, 그제서야, 그의 죄를, 그의 벌을 비추어내고 있던 달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태양이 떠올랐다.아주 시퍼런 태양이, D의 발치를 적시고 있었다.그 때, D에게서 소리가 들렸다.무언가의 나사가 풀리는 소리.무언가의 톱니바퀴가 회전을 멈추는 소리.무언가의 베어링이 그 모터가 멈춤에 따라 점점 느려지는 소리.D의 벌은 그제서야,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작성자 dls 작성일 2026-09-2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고무 공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드시코 작성일 2026-09-2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레몬 맛 사탕
경애의 삶은 한평생 10평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인의 체취가 이곳저곳 묻어있었다. 옷방 하나, 화장실 하나, 굳게 닫힌 방 하나. 예전엔 이 시간에도 손녀가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는데. 요즘은 조용했다. 집 안은 하루종일 어두웠다. 거실에 크게 난 통창으로 하루를 버텼다. 밤이 되면 켜지는 불이라곤 부엌등 뿐이었다. 그마저도 전구를 갈지 않아 몇 달째 웅웅거렸다. 경애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어 전구를 노려보았다.전구 아래에 먼지 쌓인 철제 통이 놓여있었다.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통을 약하게 흔들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뚜껑을 열다 그만 손을 헛디뎌 사탕들이 떨어졌다. 하얀 가루가 장판 틈새로 끼어들었다. 흰 선조차 보이지 않는 짧은 손톱으로 애꿎은 바닥을 긁다가 혀를 찼다. 바닥에 떨어진 투명한 사탕 하나를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집이 더운가, 엄지와 검지에 실처럼 달라붙는 사탕을 빨아먹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작게 두드리는 소리조차 낡은 집에선 지진처럼 느껴졌다. 범죄라도 저지른 듯, 경애는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입에 남은 사탕을 굴리며 문을 밀어내자 손쉽게 열렸다.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츄리닝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정돈 되어있는 깔끔한 옷이었다. 경애의 오른쪽 볼이 볼록해졌다. 이시간에 누구야? 사탕을 볼 안으로 숨긴 채 물었다. 약한 과일 향수냄새가 독하게 퍼져나왔다. 할머니, 오늘 나 오기로 했잖아요. 달력에 안 적어놨어? 자연스럽게 구겨진 운동화를 벗고 들어왔다. 욕실용 슬리퍼 한짝만 있던 신발장에 구겨진 운동화가 널브러졌다. 달력? 무슨 달력. 경ㅇ애는 여전히 여자를 경계한 채 노려보며 뒤를 좇았다. 여기요. 잘 적어놨네, 할머니. 작은 소음을 내는 냉장고에 걸린 벽걸이 다력을 보며 여자가 웃음을 보였다. 그랬나, 경애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볼에 숨긴 사탕을 굴려 혀 위로 올려두었다. 시럽이 터져나와 혀 끝을 자극했다. 찌릿했다. 경애의 집이 편한 듯 식탁 의자에 앉은 여자를, 경애는 똑바로 쳐다보았다. 몸집이 들어갈 만큼 큰 가방을 내려둔 채 앉아있었다. 거기, 사탕통좀 줘.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탕통을 가져왔다. 색색의 과일 사탕들이 들어있었다. 경애의 입에서는 더이상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말고. 경애는 통을 열어 사탕을 뒤적였다. 투명한 것들 사이로 노란 사탕 하나가 보였다. 얘도 어릴 때 이것만 골라 먹었지. 신 걸 싫어하면서도 꼭 하나씩은 남겨두었다. 이거 너 먹어라. 하나 남은 노란 사탕을 그녀에게 건넸다. 너가 어릴 때 아껴먹잖아. 자글한 주름 사이로 흰 가루가 끼어들었다. 할머니 드세요. 그 아이는 잠시 사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펴지지 않은 손가락을 노란 사탕을 감싸도록 접어주었다. “너 먹으라니까, 좋아하잖아.” 그녀는 경애의 오른 손을 꼭 쥐었다. 손이 겹쳐진 열기 떄문에 경애의 손 안은 끈적해졌다. 여자를 뿌리치고 하나 둘 손가락을 피자, 하얀 실들이 붙어들며 형체가 없어진 사탕이 보였다. 아깝게, 내가 먹
작성자 이람 작성일 2026-09-2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원점회귀 (原點回歸)
근 6년간 내가 이 방 안에서 흡사 사형수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볕도 잘 들지 않는 방의 침대에 눌러붙은 내 육신이 점차 쇠약해져가는 것을 보며 죽음을 느끼고 있으나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다. 사색에 잠겨가며 시간마저 무력해지며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한히 생각하며 지내왔다. 허나 모든 것은 다시 한번 녹아내려 이 방 안의 먼지로 흘러드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과거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이전까지는 도착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가족은—없다. 친구도 없다. 지인도, 원수도, 은인도 없다. 나는 이 세계에서 언제나처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명멸하는 지난 시대의 기억조차 이제는 흐릿해져간다. 나는 소실되고 있는가.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의 시간이 바스라지고 있다. 언젠가 따라잡히는 날이 온다면 필시 그때가 바로 내가 죽는 때일 것이다. 아마도. 무의식의 바다 한가운데로 끌려들어가면서도 점차 순응하여만 가는 나 자신에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어쩌면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일 수도. 해가 떠올랐다. 지천에 뜬 해가 그 서슬퍼런 안광을 비추며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엿이나 날려주고 싶었으나 그럴 기운조차 없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는 것이 다이다. 그저 한없이—그렇다기에는 너무나도 오랫동안—생각하는 것뿐이고 뿐이다. 과거는 어디로 흩어졌는가? 나의 무의식 뒤편에 남은 이 세계는 현대에 밀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퇴보하였다.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임자는 결국 자객이었나 보오." 결국에는 나의 정신이 현대를 따라잡아야지만 끝날 문제인 것이다. 허나 시시각각 원점이 이동 중인 이 현대를 어찌 사고만으로 초월하겠다는 것은 결국 나의 오만이다. 나는 피폐해진 나의 과거를 경배하기 위하여 몇 편의 시를 썼으나 그것들 역시도 이 방 안의 먼지처럼 가라앉아 버렸다. 결국 과거는 나만이 잊지 아니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 어느 날 비가 내렸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씻어낼 비가 내렸으면 좋으련만 단순 장대비에 그쳤을 뿐이라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속상하였다. 비 오는 날이면 유독 몸이 무겁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이야 같지만서도 그 느낌이—압력이 다르다. 이런 날은 또 이 시대가 나를 격렬히 밀어내는 느낌이 든다. 나를 압착하여 한 동이 핏물로 만들어 비로 씻어버릴 심산인 듯싶다. 허나 이 시대마저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내가 짊어진 과거에 밀려버려서—또한 남아있는 과거의 잔재에 막혀—그렇게도 나는 살아남았다. 원치 않았지만서도. 서서히 육체에서 탈락하여가는 나의 정신의 판단으로 미루어보아 나의 옆에는 참수된 천사의 머리가 놓여있는 것이 확실하다. 머리의 절단상 옆에서 무언가 흘러나온다. 아, 이것은—카페인. 그 액체는 나의 입가로 떨어진다. 정신이 은화처럼 맑다. 살아있는가. 창조—그것에 있어서는 상상도 현실과 다름없게 현상되었다. 허나 나는 창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다시 비가 내렸다. 이번에야말로
작성자 이해암 작성일 2026-09-2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자운영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작성자 드시코 작성일 2026-09-19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소설촛불
1. 삶은 불확실의 연속이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추측은 내 상상일 뿐, 확실할 수 없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알아내려 하지 말고, 내버려 둬야 한다. 2. 그는 학생이다.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는 평범한 학생. 3월, 그는 입학을 했다. 교실에 들어가자 쌀쌀한 형광등이 그를 비춘다. 그는 미래의 학교생활을 추측한다. 나는 이 학급에서 어떻게 지내게 될까. 교실을 쭉 돌아본다. 평범한 학생들이다. 그러다가 한 곳에 눈이 간다. 교실 구석, 그녀. 그녀는 책상을 보다가 창문 밖을 멍하게 쳐다본다. 그는 이름도 모르는 채, 그녀를 말없이 바라본다. 그러다가 나도 궁금해져, 창밖을 바라본다. 비행기 하나가 지나간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지 생각해본다. 그는 예전에도 이성 교제를 해 본 적이 있다. 그는 과거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그녀에게 마음을 품고, 기대한다. 수업은 시작한다. 남자애들이 있는 쪽을 다시 둘러본다. 아는 아이가 없다. 조용히 보내자.그렇게 1달이 외로이 지나간다.그는 공부를 언제나 잘해왔다. 시험은 다가온다. 언제나 그녀에게 눈길이 간다. 다시 생각해보고 공부를 한다.4월이 된다. 시험을 보았고, 생각대로 성적은 잘 나왔다. 시험지를 본다. 성적을 본다. 공부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같은 반에 친구가 없다.5월이 된다. 그는 이제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몇 번 더 말을 걸어본다. 돌아오는 답은 그냥 응. 내가 말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말을 못하는 것인가.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6월이 된다. 그는 그녀에게 접근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그래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다가가서 인사를 하려 했다. 바로 옆에 갔다. 입을 열었다가 닫는다. 방향을 바꾼다. 그냥 옆에 있던 남자애한테 인사를 한다.7월이 된다. 가만히 있는 그에게 그녀가 다가온다.오늘도 혼자 뭐 하냐? 공부만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냐?그녀가 그를 찾아와서 말을 거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녀가 그를 놀리는 것이다. 과거 좋은 기억을 더듬으면 다른 애도 이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대는 점차 확신이 된다. 시험을 보았고, 당연히 잘했다. 오늘 그녀는 그에게 4번 웃어주었다. 그 웃음의 이유를 떠올리며 내일을 기다렸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8월이 된다. 밤에, 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한다.밤하늘이 너무 아름다운 거 같지 않니 저기 금성을 봐봐어디?꼭 어두운 방안에 켜둔 촛불 같다 난 그런 사람이 좋더라. 촛불 같은 사람.텔레비전도 이제는 재미없다. 게임도 이제는 재미가 없다. 그는 계속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이건 무슨 뜻일까. 저건 무슨 뜻일까. 기대는 부푼다. 학교에 가고 싶어진다. 처음으로. 방학이 싫다.9월이 된다. 다시 개학한다. 그녀와는 더욱 친해져 있다. 이 정도면 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는 더 나아간다. 관계는 시작됐다. 그가
작성자 cyan0101 작성일 2026-09-19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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