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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학
취조실의 문이 열리고 나카무라(40대/남)가 들어온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동주(20대/남)는 말 없이 방에 난 조그만 창문만 바라본다.- 저는 정말 모릅니다 나카무라 씨.나카무라는 아무 말 없이 앞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다.- 윤동주 씨 아버지, 윤동균 씨.동주의 눈빛이 흔들린다.- 어제 사망하셨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동업자를 말하면 살려드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습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네요.- 그렇군요.나카무라가 취조실의 뒤편의 1인 옷장 크기의 문을 연다. 안에는 사방이 못과 송곳이다.나카무라가 손짓한다. 안에 들어가는 동주.- 그럼 수고하시죠.나카무라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겉옷 안주머니에서 조심스레 편지를 꺼내는 나카무라. 하트 모양 스티커가 편지 봉투에 붙어있다. 열어보니 한국어로 되어있는 시. 이마를 찌푸리며 중얼거리는 나카무라.- 시네요?나카무라의 몸이 들썩인다. 동주의 눈이 작은 창구를 통해 보여진다.- 애인 분이 시를 다 쓰시나 봐요.- 무슨 소리를!- 봉인지까지 편지 봉투 옆에 고스란히 붙여두셨는데, 연인이 아니시면... 애정하시는 분이구나.- 조용히 하시고, 동업자가 생각나는 것 같으면 말하세요.- 한글은 아세요?나카무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내가 한글도 못 읽을 사람 같아!- 시 쓰는 법은 아시나요? 도쿄대에서 시를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출판 전에 이곳으로 끌려들어왔지만요.나카무라가 숨을 거칠게 쉬다가 동주 앞으로 다가간다. 시를 구멍 앞에 가져다 댄다.- 안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오.- 안으로 주시면 종이가 오염되고 찢어질 겁니다. 저를 풀어주세요.자리로 돌아가는 나카무라. 편지를 책상에 두고 허리를 숙여 보다가... 허리춤에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읽고 바로 다시 들어갑니다.- 네, 감사합니다.편지를 읽는 동주. 눈을 깜빡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카무라를 쳐다보곤,- 답시를 쓴다고 하셨어요?- 무슨 문제 있소?- 아니 한글도 모르시는 분이...- 뭐라고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저...분은 뭐라 했습니까?- 종이하고 펜 주시면 가타카나로 적어드리죠.안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는 나카무라. 적는 동주. 건넨다.- 고맙소.- 네.동주가 고문실 문을 가리킨다. 망설이는 나카무라 ...- ...왜?- ... 그... 시 좀... 쓰신다고...?- 뒷면에 시집 몇 권하고 준비물 써두었습니다. 내일 수업까지 가져오세요.- 무슨 수업은 수업이야! 큰일 날 소리!말 없이 나카무라를 바라보는 동주.- 그... 래도 일단 가져오긴 해보지.문 앞의 경비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의자에 앉아있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경비. 문 뒤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나카무라의 소리치는 소리에 몸이 움찔하며 제자리로 간다.문 안, 둘은 대화한다. 책상 위에는 시집이 여러 권 있다.- 그래! 호수 같은 마음! 그거야! 호수처럼 넓은 마음인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나? 호수가 내 마음이라고! 나카무
작성자 김장르 작성일 2026-10-11 좋아요 0 댓글수 2상세보기 -
소설
Hey Human!
아무개씨의 마음도 모른 채, 내리쬐는 햇빛.그 아래, 아무개씨가 그림자를 흘리며 걷고 있다.너무나 강한 햇빛에 그가 흘린 그림자는 얼마안가 마르고는 땅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아무개씨가 걸었다. 그림자가 흘렀다. 햇빛 아래서 말라 사라진 그림자는 얼마 뒤 다시 그의 발치에 나타났다.하지만 아무개씨는 신경쓰지 않았다그가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오아시스.삭막하고 황량한 빌딩들 사이로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빛을 난반사하는 연못이 보인다.아무개씨는 그 오아시스 앞 벤치에 앉아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이윽고, 30분 정도가 지나 누군가가 아무개씨 앞에 서서 무언갈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밥은, 그래. 밥은 잘 먹고 다니지?""뭐, 밥이야, 그치 뭐, 그것도 밥이라 한다면 말야. 잘 먹고 다니지?""허어, 여전하구만 넌.""칭찬으로 들을게.""그래서? 왜 부른거야?""아니, 뭐 딱히 별 일이 있는 건 아니고, 네게 줄게 있어서.""나한테 뭘 준다고?""그래, 이젠 내겐 쓸모가 없기도 하고.""그게 뭔데?""일단 따라와봐."아무개씨는 일어서서 오아시스 옆의 오두막으로 누군가를 인도한다.아무개씨는 문을 열어 안 쪽을 내보이고는 누군가가 먼저 들어가기를 권하는 듯 손짓을 했다.누군가는 안으로 들어갔으며, 아무개씨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오두막의 문이 닫히고, 난, 10분 넘게 그 오두막의 문을 바라보았다.21분 쯤 되자 아무개씨가 문을 열곤 재빠르게 닫았다. 어딘가 후련한 듯한 표정을 한 아무개씨. 그는 기지개를 펴며 다시금 황량한 빌딩 사막으로 걸어갔다.그림자는 햇빛에 마르기 직전 왠지 모를 철분 냄새를 맡았다.------"Hey Human! 이 앞은 Human의 바람에 날려 모습마저 지울 도시롭니다! 부디 조심하시길!"귀 속을 강타하는 안내의 말. 난 귀를 틀어막고 어딘가로 계속 걸어가는 아무개씨를 바라보았다.그가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그의 웃는 표정."네, 맞아요""그런건가요?""그럴 수 밖에 없겠네요""제가 죄송합니다.""제발 그것만큼은 부디...."------난 바람에 날려지지 않도록 내 몸을 끌어안고 아무개씨를 필사적으로 따라갔다.아, 그렇다. 그의 머릿속까지도. 그 심상세계.잿빛 하늘 아래에서 아무개씨는 어느 다리에 다다랐다.아무개씨는 그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홧김에.곧 그림자는 그와 단절되었다.그림자는 다리 난간에서 좀 떨어져 도로로 갔다.그림자는 보았다.햇빛에 아른거리는 난간을 가린 보차도 분리대.그리고 분리대의 기둥과 기둥사이를 또 다시 가리는 무언가.거미.거미줄.아, 아른거리네.아른거려.난 뭘 하고 있던 걸까?내 그림자는 어디로 간거지?뒤를 돌아보니 햇빛이 모든 것을 적시고는, 차만이 무심하게 지나갈뿐.거기에 내가 흘린 것은 일절 없었다.어째서? 난 아무개씨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그 표정은 어딘가 애처로웠을 지도 모른다.그림자가 말한다."전부 너 때문이야.""네가 있었기 때문에, 내 주인은 날 잃어버린거야."난, 화답했다. 화답을."너, 너야말로 네 몸의 냄새를 맡아보는 게 어때? 그, 그 철분냄새를!"대답은
작성자 dls 작성일 2026-10-1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밝은 미래
소원을 적자는 것은 민서의 아이디어였다. 자신이 해외여행을 갔을 때 본 등불축제를 모방하잔 것이었다. 선생님이 제안을 수락하며, 우린 차례대로 펜을 들었다. 홀쭉한 빨간 풍선 위로 검은 선들이 그어지고, 나는 차례를 기다리며 뭐라 적을지 고민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변치 않는 소원이 하나 있었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소원이라기엔 어딘가 초라한 바람. 어느덧 펜과 풍선이 손에 쥐여졌다. 빨간 바탕에 범벅된 소원들을 훑어보았다. 고등학생답게 입시에 관한 것들, 오래 살게 해주세요, 부자 되게 해주세요 등의 평범한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난 여백을 찾아 펜촉을 가져다댔다. 차마 ‘좋은 집’이란 말을 쓸 수는 없었다. 신축 아파트에 사는 민서 앞에서만큼은 더욱. 진심을 살짝 우회했다. ‘밝은 미래!’ 선생님의 휴대폰 화면 위로 두 개의 점이 움직였다. 하나는 화살표 모양의 우리였고, 붉게 명멸하는 점은 풍선에 매달린 GPS 장치였다. 우린 선생님의 차를 타고 풍선을 쫓아 달렸다. 풍선에 매달린 카메라의 회수가 목표였다. 지금쯤, 저 구름 언저리를 날고 있지 않을까. 보이지 않았다. 과학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오늘 아침 헬륨풍선을 하늘로 띄웠고 한 시간의 간격을 둔 채 뒤쫓기 시작했다. 예상대로라면 풍선은 두 시간가량을 비행하다 압력차로 터질 것이다. 이후 소형 낙하산이 펼쳐지고, 무사히 낙하하겠지. 이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다. 새벽 여섯 시, 야간 근무를 마친 아빠가 막 퇴근하고 누웠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이 낡고 좁은 집에 방음이란 없었다. 엄마도 여덟 시 출근이었으므로 난 방해되지 않게끔 조용히 움직였다. 혼자 바나나를 까먹고, 옷을 입고,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 좁은 마당을 가로지르고 고지서 쌓인 대문을 넘어. 발걸음은 그제야 산뜻해졌다. 집합지는 학교운동장이었다. 모이는 인원은 선생님을 제외해 세 사람으로 나, 민서, 윤재. 나머지 부원들은 방학인 만큼 다양한 이유로 불참했다. 나도 학원을 다녔더라면 못 왔겠지. 도착하니 민서와 윤재가 먼저 와 있었다. 선생님은 승용차를 끌며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휴대폰 속 붉은 점이 움직이기를 멈췄다. 선생님은 화면을 흘겨보고는 난감하네, 중얼거렸다. 붉은 점은 K시 위에 멈춰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예상 착륙지가 아닌 점만 분명했다. 본래라면 지금 창밖의 풍경과 같은 농촌이어야 했는데. 뒷자리에서 한창 떠들어대던 민서가 앞자리로 고갤 쭉 내밀며 말했다. K시라는 곳도 있었어? 윤재도 나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생소한 이름이었다. 선생님이 기억을 더듬으며 설명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최근에 개발된 신도시라고. 난 파란 바다와 햇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고층 빌딩을 상상했다. 차는 그 신도시를 향해 달렸다.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창문에 이마를 붙이고 바깥 구경하다, 거의 다 왔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난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이 무색하게 창밖은 여전히 농촌이었다.
작성자 구포대교 작성일 2026-10-10 좋아요 1 댓글수 2상세보기 -
소설
숲속에서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그는 지나가는 길목에 서있는 소년이고, 세상은 그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소년 역시 세상이 바라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 소년은 끝이 궁금하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뭐지?라며 끝없이 되풀이 하는 것보다는 그냥 직접 들여다 보고 싶다. 그 끝이라는 것을. 그 어둠이라는 것을. 그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스스로에게 밤마다 묻는다. 누군가 답에 주기 전까지. 이게 맞는걸까? 하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 너무 흔한 질문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씩 툭툭 내뱉는 말이니까. 하지만 소년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진짜로 궁금해 했다. ‘네가 맞다고 생각하면 맞다고’만 대답하는 사람들의 무심한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목덜미를 스쳤다. 얼음장 같은 손가락이 피부를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입 안에서 내뱉는 한숨은 하얀 김이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아니, 이제 그만. 소년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냥, 걸음이 닿는대로 걸을 뿐이었다. 낡은 운동화 밑창이 땅을 디딜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처음엔 아스팔트의 단단함이었다. 딱, 딱, 딱. 규칙적인 리듬.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발밑에 채이는 것은 더 이상 아스팔트가 아닌 낙엽과 흙이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숲이란, 소년이 상상한 것 보다 거대했다. 어둠 속에서도 나무들의 윤곽이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줄기들, 서로 얽혀 천장을 이룬 가지들. 코끝에 닿는 것은 축축한 흙 냄새와 나무껍질의 쓴 향이었다. 멀리서 부엉이 한 마리가 울었다. 날카롭고 긴 울음소리가 어둠을 타고 흘러왔다. 그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숲에는 있었다. 그것의 존재감일까? 아니면 그것 안에 존재하는 무한함일까?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은 작은 점으로 변해 있었다. 주황빛 가로등,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창문의 노란 불빛. 그것들이 하나의 희미한 빛덩어리가 되어 멀리서 깜박였다. 언젠가 소년의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그 점은 그저 작은 먼지처럼 보였다. 우주에서 바라본 우리 지구의 모습처럼. 소년은 얼어붙은 손을 들어 마을을 가렸다.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은, 더 버틸 힘이 있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지 않았을까? 하지만 후회는 뒷전에 둬야 한다. 소년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숲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신음하며 밤을 밝히는 것 같았다. 소년의 숨소리, 나무들의 삐걱거림. 이 모든 것이 소년의 귀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아스라이 별이 쏟아져 내렸다. 이슬 맺힌 잎사귀를 스치는 그 빛뭉텅이들은 고요하게, 조용히 어둠을 밝혔다. 뭔가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소년은 뭔가가 나오기를 바랐다. 답이든, 그게 무엇이든지 소년은 그것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자신에게 답을 줄수 있는 무언가를. 하지만 숲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이었고 어둠도 그저 어둠이었다. 소년은 천
작성자 비보 작성일 2026-10-09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극과 극
시위가 한창인 올공 집회, 철왕(50대/남)이 탐탁찮은 표정으로 미선(40대/여)를 쳐다본다. 빨강색인 철왕과 다르게, 미선은 파란 옷을 입고 파란 피켓을 들었다.●어이, 좀 가시지.●저도 당당하게 신고한 시위거든요?●야, 됐어. 놔 줘 철왕아.옆에서 갑선(50대/남)이 그의 팔을 붙잡는다. 철왕이 씩씩대며 갑선의 팔을 쳐낸다.시간경과. 철왕은 미선이 쉬고있는 정자로 다가간다. 이어폰 꽃고있는 미선.●우리 얘기 좀 합시다.미선은 안 들리는 척 눈을 감는다.●아니, 허가고 자시고, 우리 나와바리에서 이러는 건 아니지. 암묵적인 룰이란게 있잖습니까.●...눈썹을 찌푸리는 철왕. 이어폰 줄을 뺀다.●어...? 이거 임영웅이 노래 아니야...?●남자가 임영웅을 알아요?●알지! 얼마나 좋아하는데!●그럼 이번 '미스터 트로트'도 보셨겠네?●임영웅이 분량이 너무 적단 말야...끊임없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다음 날, 여전히 1인 시위중인 미선. 철왕은 그녀를 보고 가만히 응시한다.정자,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갑선이 쳐다보고 있다. 서로 웃는 걸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갑선. 곧이어 철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난 표정으로 갑선 벤치에 앉는다.●왜 시위를 멈추지 않는거야! 참 이상한 여자군!갑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철왕을 쳐다본다. 시선 의식하고 갑선 쳐다보는 철왕.●왜? 뭔 문제라도 있냐!●아...니...야...말끝을 흐리는 갑선.올림픽 공원 잔디. 돗자리를 펴고 철왕, 미선이 앉는다. 서로 한쪽씩 이어폰 끼고 노래를 즐기는 미선. 갑선은 그런 미선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바닥에 놓여있는 미선의 손을 천천히 붙잡는 갑선. 눈이 커지는 미선이지만, 저항하지 않는다. 깍지를 끼려는데...일어나는 미선.●나... 이제 가볼게. 곧 시위 있어서.●잠깐만! 우리... 커피 먹고 갈래...?●뭐? 커피가 얼마나 비싼데. 너 공병 4일은 주워야 해!●괜찮아. 저번에 갑선이한테 스타벅스 쿠폰...미선이 경악한다. 뒤늦게 눈치채고 말을 멈추는 철왕.●뭐...? 스타벅스...? 그 극우일베내란 회사...?●아니, 그게 아니라.뒤를 홱 돌고, 떠나는 미선. 붙잡으려는 철왕인데...●가지마.철왕, 소리가 들리는 곳에 갑선이 서 있다.●둘이 소풍하고 앉았네? 나라가 중국인에게 빼앗기는 상황에서? 영상 다 찍었어. 철왕아, 우리 세계로 다시 돌아와. 지금 잡으러 가면, 애국보수 4050 채팅방에 폭로할거야.철왕, 분노로 얼굴이 굳는다.●제발, 부탁할게. 돌아와줘.눈을 감고 고민하는 철왕. 숨을 한번 내쉬고, 갑선을 등지고 달려간다!그런 철왕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갑선.단체 집단 시위장에서 멍하게 있는 미선. 저 멀리서, '미선아'라고 외치는 목소리. 빨강 외투에 '윤어게인'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철왕이다! 입을 막는 미선.●저 자식 뭐야!●저 새끼 잡아! 죽여버려!철왕에게 야유하는 시위대. 철왕은 미선만을 바라보며... 시위대를 헤치고 미선앞에 선다. 울먹이는 철왕과 미선. 철왕은 미선을 껴안는다. 축하하는 건지, 야유하는 건지 모를 시위대의 탄식 소리.암전.
작성자 김장르 작성일 2026-10-09 좋아요 0 댓글수 3상세보기 -
소설
단지 여생의 이야기
내가 매일 듣던 말."이거 보기 드문 미친놈이네..?"여자에게 놈이라니. 누가 말한 건진 기억 안나지만, 그 사람은 성교육을 다시 받아야겠다. 일반병원에서도 못한다고 했던 내 이빨 신경치료. 대학병원에서 3개나 했는데, 나 지금 어려서 그렇지 나중에 이암생기면 어떡해? 이에 암이 생기는 거니까 뇌암으로 번지면 어떡해? 아니 그보다 납치당하는게 빠르려나? 갑자기 이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거는 신이 내린 예고인가? 그만큼 확실하게 미래는 일어날거라는건가? 아차 라면 물이 끓는다. 이제 면을 넣을 순서이다 지금 내 앞에서 끓고 있는 면은 자신을 삶아가며 고유의 형태를 잃어간다. 지우개 지우듯이 아니고 불규칙적으로. 나도 다를 건 없다. 나도 날 수차례 잃어가고 결국 풀려버린 면처럼 결국 불행으로 퍼졌다. 어두운 밤. 조명하나에 의지해서 다 불은 라면을 먹는 삶이란. 불행은 지금까지도 라면 김처럼 피어나고 있고 김이 너무 뜨거워서 나는 내 표정이 사물처럼 굳어갔다. *너는 옥상에 걸터앉아 변명을 말하는 쓸쓸한 돈키호테"이리와 같이 별보자""싫어 거기 위험해"무언가 다 해치워 수백차례 잔잔한 꽃처럼 가는 너의 눈. 옥상과 낭떠러지 경계 평화롭게 흔들리고 있는 두 다리. 말로 설명할 순 없는 감정이지만 널 보는 내 마음은. 아름다웠다 신에게 구원 받을 것 같은 모습 마음 한 켠으로는 당장 저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달려야 하나 떠올라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추악한 것이 그러지 말란다."부럽다""뭘.. 오늘 날씨가 유독 예쁘네"
작성자 뉴비 작성일 2026-10-09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비행기와 나와 소녀의 상관관계
어린시절의 기억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행기 모형을 손에 쥐고 마구 흔들어 보던, 머릿속의 영상이다. 왠지 누런색으로 시야 바깥쪽이 채워지는 것만 같은, 어렴풋하게 가려운 소리가 귀를 찌르고 밀려오던 시간.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눈을 떠보면 나는 버스의 창가 자리 한 군데에서 나무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잎들의 자세한 사정을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몇 줄기만큼의 무늬가 있을까, 그것은 직선일까 곡선일까, 근원인 나무에게 얼마큼의 봉사를 했길래 저렇게도 매몰차게. 등등의 시덥잖은 의문들. 머리를 기대면 달달달달 떨려오는 버스는 질주하는 도중이지도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괜스레 뒤를 돌아보고 손을 뻗지만, 금방 보인 벌레에 그 손은 스르르 떨어지고 만다. 내 귓가엔 어떠한 음악도 들려오지 않는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삭막하고 그것은 조금이라도 즐거워질 수 없는, 사람의 인생이 시한부와 같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눈을 감았다. 합일병원에 곧 도착한다는 공지가 울렸다. 먹먹하다. 그렇게 들린 ‘합일’이라는 그 단어는 이상스럽게도 나의 열의에 숨을 불어넣었다. 정류장까지 한두 걸음을 남겨뒀을 때, 나는 하차벨도 누르지 않고 버스기사가 놀랄 만큼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귀가는 따분하지만…, 그런 일은 거듭 다른 길로 새어서 영원히 뒤로 미뤄버리면 그만이다. 주머니에서 낙오된 짐이 없는지 겉을 문질러 보면서, 버스 뒷문의 계단을 밟았다. 정류장의 이름은 합일병원이었고 동명의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 사이엔 간극이 존재했다. 발걸음을 옮기며 네온사인에게 놀림받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보면 가끔 이미 잊어버려 떠올릴 수도 없는 추억에 몸뚱아리가 잠겨 버리고 마는데 그 무정부적인 신체의 반응이 싫지는 않다. 서서히, 힘이 빠져 간다.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릴 즈음에, 나는 합일병원의 건물 앞에 도착하게 된다. 병원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천장등의 새하얀 빛은 번지르르하고 각막을 파괴할 듯한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들 사이로 비치는 환자들의 실루엣이 병마처럼 존재감을 짓눌렀기에 바라보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병원의 몸집이 보정을 과히 한 사진처럼 주욱 커진다. 아무도 내게 알려준 적이 없고 그 시기에 대한 기억도 흐려서 내가 입원했었던 병원이 어디의 어떤 곳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래선지 병원 앞에만 서면 이렇게나 건물을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로만 나는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번 머금다 보면 한약도 달아진다고, 억수가 치고 천둥이 칠 것만 같던, 침묵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동시에 눈물 흘려야 했던 그날의 의무감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 편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쉬며 하아얀 괴물의 뱃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뛰지 마세요! 부모님 어디 계시니!” “…화장실.” 접수처의 풍경은 소아과가 있는 곳이라면 흔히들 쿵쿵대는 소리가 풍기고 로비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횡단하는 아이가 꼭 하나쯤 보인다. 마스크도 끼지 않고 자글자글한 주름을 드러낸 할머니들은
작성자 anaud9 작성일 2026-10-08 좋아요 1 댓글수 5상세보기 -
소설불씨의 영들
형태 없는 수증기 위를 두 팔 벌리고 뛰는 건 정말 기분이 좋다. 오로라와 같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켜져 있는 불의 모양새가 있다. 첫 번째로 만난 아이는 하나였다. 키가 조그맣고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하나의 불은 노랗고 밝으며 불꽃의 꼬리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항상 망원경을 들고 다니면서 별의 이동을 관측했었다. 두 번째로 만난 아이는 유영이었다. 안경을 쓴 차분한 아이였다. 유영의 불은 가운데의 주황 불씨가 둥그렇고 커다랬다. 커다란 렌즈가 박힌 카메라를 들고 밤하늘을 찍어댔다. 특히 오로라를 좋아했는지 오로라의 사진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곳을 떠난 아이는 조금 특이했다. 백아라는 아이는 불꽃의 모양이 푸른색에 화살표 모양처럼 날카로웠다.그 아이는 하나와 유영이 보다도 머리가 높았고, 웃음기가 적었지만 다정했다. 백아는 아버지가 남긴 나침반을 늘 몸에 두르고 있었다. 매일 안개가 걷히면 나침반을 쭉 뻗어보았다. 고장 난 나침반은 좀처럼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나침반 침 뒤에 자석이 문제였다. 뒤판을 열어 몇 번을 확인해도 이상은 없었다. 백아는 나와 오로라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늘 자랑해주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과학자고, 지구 자기장에 반응하지 않는 특수한 자석을 발명해냈다 한다. 자신도 그런 아버지같이 훌륭한 남자가 되고 싶다고 나른하게 웃는 아이가 좋았다.어느 날은 눈이 오고, 다른 날은 비가 오고, 오늘은 안개가 심하게 꼈다. 안개들이 손잡는 날이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앞이 뿌예지는 건 그리 달갑지가 않다. 하지만 백아는 달랐던 것 같다. 오히려 안개가 끼는 날이면 열정이 넘쳐 드라이버를 들었다. 한순간 궁금해서 물었다. 나침반으로 무얼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고치는 거냐고. 그 아이의 입꼬리가 올라갈 듯 올라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또 하나의 발명품을 찾을 거라는 그 아이의 말에 마음이 쓰였다. 아버지를 이리 좋아하는 영인데, 어쩌다 그리되었을까. 해결책을 점지해주고 싶어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날씨가 바뀌었다. 항상 짧디 짧은 만남은 한 영의 희망으로 마무리 지어졌다.흔하지 않게 찾아오는 태풍이었다. 구름이 제각각 흩어지고 오로라가 모습을 감추었다. 구름속에 쌓여있는 백아가 태풍을 가르고 나침반을 들고 섰다. 백아가 저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구름 안으로 들억라 소리쳐도 백아는 나침반에 집중했다. 은색의 머리카락이 거친 바람에 날려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항없이 날아오는 구름을 헤치고 백아의 근처에 다다랐다.백아의 어깨를 잡자 그 아이가 소리쳤다. 기쁨의 함성이었다. 나침반이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나의 눈을 쳐다보았다. 여태 만난 아이들 중 가장 반짝이는 광이었다. 백아는 나침반이 다시 멈추기 전에 길을 찾겠다며 떠나겠다고 했다. 하나와 유영이 보다 이곳에 오래있었던 아이가 이제 불을 찾아 걸어갈 떄가 되었다. 그 아이는 나를 한번 안고 나침반
작성자 푸른그 작성일 2026-10-07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사광(死煌).
어느 한 사람이 있었다.그는 걷고 있었다.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마치 운해 속을 걷는 것처럼,마치 나의 심상 속을 헤매는 것처럼,마치 나와 타인과의 실에 엉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처럼,그는, 유랑하고 있었다.------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순백 속을 그저 멍하니, 반달눈을 치켜뜬 채 걷고 있었다.그렇게 하염없이 걷던 와중, 사람의 윤곽이 슬그머니 그 모습을 드러낸다.당신이었다.당신은 언제나와 같이 손을 흔들며 내게로 뛰어왔다.마치 토끼처럼.마치, 사냥꾼처럼.난 잡힐 수 밖에 없었다.당신의 손에 내 손이 포개어진 그 순간을 난 잊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당신은 그까짓거 별 것 아니라는 듯 나를 등진 채, 마치 이어진 손과 손이 독립된 존재마냥 당신은 그저 달려간다.사막의 사구를 관통해나가고, 삼림을 주파해나가며, 당신이 나를 이끌어 도착한 곳은 어느 오두막.그 오두막이 나와 당신의 새로운 집이다.이 곳에서 새로운 살림을 차리고, 나와 당신의 새까만 머리가 새하얗게 바랠 그 때까지 이 오두막 앞의 의자에 앉아있겠지.당신은, 천진난만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드디어, 드디어 왔어. 우리들의 돌아올 곳이."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언젠가는 멀리 떠난다는걸까.난 비탄에 빠져 당신에게 말한다."나로선 고작 오두막 앞 나무에서 벌목 후에 돌아올 곳이 될 뿐이야."그러자 당신은 말했다."하지만 난 아닌걸, 난 머나먼 곳에서 이 곳으로 돌아올거야."난 물었다."어째서?"그러자 당신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에 힘을 주며 입술을 꾹 닫았다.그러곤 오두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난 그 문을 여는 당신의 뒷모습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보고 있었다.당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심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당신의 몸이 눈에 뒤덮여간다.당신은 괜찮은걸까.난 외쳤다."무슨 일이야! 거기서, 그 오두막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그러자 당신은 나지막히, 담담하게, 서리가 내려앉은 그 입술을 조심스레 움직이며 내게 말한다."당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내가 머나먼 곳에서 돌아올 때 당신은 어쩔거야? 날 기쁘게 반길거야? 아니면 문전박대하려나? 어느 쪽이든 난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하지만, 난 다가갈 수 있어. 당신이 눈보라 속에 있든, 모래 폭풍 속 한 가운데 있든, 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어. 봐, 이것 봐."난 한 걸음 씩 발을 내딛었다.하지만 발을 그렇게 내딛을 때마다 오두막과 나와의 거리가 점점, 마치 요술이라도 쓴 것처럼 확장되어갔다."난, 난 널 구할 수 있어. 다리 너머에서 널 바라볼 수 있고, 높디 높은 빌딩 위에서 너만을 찾아 낼 수 있다고!"이 말을 마지막으로, 난 홧김에 눈을 꾹 감고 힘껏 달렸다.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달리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녹음이 만연한 지평선이 아름답게 비추는 평원이 보였다.오두막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있었다.내 발치 주변, 수많은 쥐들이 죽어있다.하늘에서 죽은 새들이 비처럼 쏟아진다.이윽고 저 녹음의 지평선을 차츰차츰 가리며 안개가, 높
작성자 dls 작성일 2026-10-07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초목, 사람, 무희
나는, 초목(草木)이다.두꺼운 뿌리로 이 땅에 선 채, 때로는 두툼한, 때로는 얄팍한 가지를 이리저리 뻗으며 나 자신을 표명한다.그 가지에서부터 돋아난 풀빛으로 햇빛을 가리며 색다른 아름다움을 그대의 눈에 선사한다. 만연한 녹빛 사이 새어나오는 햇빛은 또 다른 요기가 된다.아, 그대여. 그대는 평원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뿐만이 아닌 이런 녹빛이 만연한 곳에서조차 녹빛이 아닌 햇빛을 찾는구나.벤치에 앉은 그대에게, 난 말한다."그대여, 그대는 여기 앉아 대체 무얼 누리고 있는거요?"그러자 발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여기 있으면 햇빛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요.""정녕 일광욕을 영위하고 싶다면 이 만연한 초목을 벗어나, 저기 저 넓디 넓은 평원에 가면 될 것 아니요?""...."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정곡을 찌른 걸까?괜히 자부심에 빠져있다보니 주변을 잠시 잊고 있었다.벤치를 다시 확인해보니 그대는 없었다.그대는 이미 울창한 초목들 사이를 거리낌없이 주파해가며 평원으로 나가는 모습, 그 윤곽만이 보일 뿐이었다.하지만 윤곽이 보인 것도 잠시, 수많은 초목들 사이로 새빨간, 바람 하나 불지 않는데도 혼자 일렁이는 무언가가 보인다.그대는 햇빛 아래에서 장렬히 타들어가며 내게 외친다."이게 나요. 이 모습이 초목들 사이에서 벗어난 나란 말일세! 아!"난 그대가 재가 될 때까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나는, 초목이기 때문에.------나는, 사람이다.두꺼운, 불룩 튀어나온 배와 두툼한 다리로 이 땅에 선채 얄팍한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나 자신을 표명한다.그 팔에서부터 돋아난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각기 다른 나 자신을 표명하며, 색다른 자신을 그대의 눈에 선사한다.만연한 군중들 속 새어나오는 견해 하나 하나는 또 다른 고통이 되어 파도처럼 모두에게 덮쳐온다.아, 그대여. 그대는 평원에서 빌딩의 높고 좁은 마천루 너머로 보이는 햇빛을 누리는 것뿐만이 아닌 이런 풍진이 만연한 곳에서조차 햇빛 아래의 인간을 찾는구나.회사에서 자기 자리를 찾은 그대에게, 난 말한다."그대여, 그대는 여기 앉아 대체 무얼 누리고 있는거요?"그러자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그대는 답한다."여기 있으면 나 또한 풍진의 먼지가 되어 타인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요.""정녕 타인의 눈을 갖고 싶다면 그대의 현안(賢眼)과 바꿔 끼우면 되는 일 아니요?""...."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내가 정곡을 찌른 걸까?괜히 초조함에 안절부절 못하다보니 주변을 신경쓰지 못했다.자리를 보니 그저 빙빙 돌아가는 의자만이 있을 뿐이었다.그대는 보이지 않았다.그대는 수많은 회사 자리를 거리낌없이 주파해나가며 창문을 깨곤 그대로 뛰어내렸다.난 이상할정도로 천천히, 하지만 왠지 모를 죽음의 예감이 맴도는 그대를 바라보았다.그대는 구름 위, 탁 트인 파란 하늘 아래에서 몰락해가며 내게 외친다."이게 나요. 이 몰락은 결국 세상의 상승기류에 의해 하늘에서 떨어져 진정한 내가 되는 몰락과 전락의 나란 말일세! 아!"난 그대가 흙으로 돌
작성자 dls 작성일 2026-10-06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업 앤 다운
어두운 구석에서 작은 백열 전구가 깜박거렸다. 다운은 의자에 앉아 천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라디에이터가 진동하며 검은색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고인 액체가 끈적하게 신발 밑창에 달라붙었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모니터가 조용히 오래전에 방영됐던 영화를 재생하고 또 재생했다. 화면 속 어린 소년은 파란 요정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애절한 목소리가 스피커 사이로 새어나왔다. 다운은 고개를 돌렸다. 저 장면을 본 지 며칠째였다. 모니터는 고장 난 듯 같은 부분만 계속 반복했다. 소년이 간절히 빌고, 요정이 침묵하고, 다시 소년이 빌고… 화면이 번쩍이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가 금세 다시 되돌아왔다. 창문 너머로 회색 연기가 끝없이 피어올랐다. 공장 굴뚝들이 하늘을 더럽히고 있었다. 거리에는 줄 선 사람들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꺼질 듯 말듯 하던 전구가 꺼지며 어둠을 몰고왔다. 다운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현관문을 열고 소포를 들여왔다. 3개월 동안 잊고 있던 청구서였다. “청구서가 밀렸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다운은 세금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고 있었다.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 다운은 조용히 주먹을 쥐며 외투를 챙겼다. 구겨진 주름 사이사이에서 먼지가 풀풀 풍겨 나왔다. 머리가 아파왔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화악 달아올랐다. 일을 구한다는 것은 큐에게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큐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눈앞으로 큐의 차가운 미소가 스쳐지나 갔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문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콧속으로 지겨운 흙먼지가 몰려 들었다. 다운이 녹슨 철제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층층이 쌓여진 컨테이너 건물들에서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튀어나왔다. "다운! 정말 오랜만이네. 어디 숨어 있었어?" 미라가 전자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웃었다. "그냥... 집에 있었어." "집에만? 몇 달 동안? 미쳤나?" 미라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일자리가 얼마나 귀한데. 로봇들이 다 가져가서." "그래서 나왔잖아." "큐한테 가는 거지? 조심해. 요즘 큐 성격이 더 나빠졌어. 로봇들이랑 일하는 게 많아져서 그런가." 다운은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선택이 있어?" "글쎄... 공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물론 로봇들이랑 경쟁해야 하지만." "그건 더 싫어." 미라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긴 해. 예전엔 그래도 사람이 우위에 있었는데." 다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하늘을 흘깃 쳐다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높은 빌딩과 컨테이너들에 가려져 사이로 드문드문 회색 구름만 보였다. 굴착기와 중장비의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거대한 드릴이 콘크리트를 뚫을 때마다 네온사인들이 번쩍였다. 파란색과 분홍색 홀로그램 광고들이 먼지구름 사이로 일렁거렸다. 위대한 도시는 공사를 끝낸 적이 없었고, 멈출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작업복을 입은 인간들이 무거운 철판을 옮기고 있었다. 이마 위로 땀이 줄줄 흘렀지만 그
작성자 비보 작성일 2026-10-05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소설
9월의 어느 날
내 이름 아이오딘 무림 제일의 고수가 되겠다고 선언한 지 어언 9년 9년 동안 왼발 털기, 오른발 털기, 양발 털기 권법, 제자리뛰기 권법, 줄넘기 권법, 뒤로 걷기 권법을 마스터했다 오늘은 회오리 권법에 입문했다 빙글빙글 돌며 주먹을 날리다니 멋지지 않은가 그것과 별개로 쌈박질이 그리워졌다 유치원 시절에는 자주 싸우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쌈박질의 달인이었다 양팔을 늘어뜨린 채 머리를 빙빙 돌리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묶을 수 있는 단발 길이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 나는 알았던 것이다 무림의 제일고수가 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이런 내게도 두려움이 있었다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든 다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잘난 내게는 바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림을 없애자 그래 지구멸망이다 와하하 젠장 죄송합니다 수업 중에 딴생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더 겸손해지겠습니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작성자 아이오딘 작성일 2026-10-05 좋아요 0 댓글수 4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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