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10대 감성쟁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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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공지]한 편당 작품 최대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요?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4731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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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금정로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바다 향기가 콧 속으로 들어온다. 영금정로 5길 8-1번지에 사는 나는, 나오면 반기는 대나무 숲이 있다. 대나무에 싱그러움과 바다의 짠기가 공존하는 이곳, 위에는 등대가 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스으읍냄새를 맡아본다.두그은 두그은 두그은 두그은.걷기 시작한다. 밑으로는 건어물 백화점이 보이고, 지리산 건어물 백화점이 풀네임인데 지리산에 건어물 파는 곳이 있던가? 걷는다. 대나무 숲이 눈에 보인다. 바람이 머리를 스친다.촤르륵 촤르륵.대나무끼리도 스친다. 느낌이라는 말 싫은데, 참 좋은 듯 하다. 이럴 때면 글을 쓰는데, 원고지를 집에서 안챙기고 왔다. 그러나 조바심 나지 않는다. 가던 길을 갈 뿐이다. 내리막길인 이 대나무 길을 걷다보면, 호빠 소주 클럽 간판과, 마사지 샵이 보인다. 대나무 숲의 소리가 겹쳐지고, 이상한 소리가 밑에 집에서 들리는 듯하다. 헐떡거리는 숲소리인데, 운동을 하나보다. 계속 산책을 한다. 이곳엔 그림이 그려진 벽화들이 보인다. 누가 그린건진 몰라도 참 잘그렸다. 그림 하나 하나가 순수함과 묘한 현실성이 있고, 현실성 안에 순수함 안에 타락하지 않은 때묻지 않은 그 순결함이- 원고지 놓고왔다. 집으로 달려가다 멈췄다. 두근두근두근 스으읍 두근두근두근허억허억허억... 겹쳐지는 것 같다. 무언가 환상에 사로잡힌다. 여자와 남자가 몸이 섞이는데, 어디서부터가 나인지 모르겠다. "정신차려." 집으로 달려갔다. 들어가다 마당에 있는 마루에 앉아선 528hz 주파수 동영상을 들었다. 눈을 감고, 양반다리로 앉으며, 숨을 쉬고, 내 쉰다. 스으으읍두근두근두근.후우...두근두근두근.*오늘은 동명항에 왔다. 동명항에 낚시터 체험장이 있다. 이사온지가 1개월은 되는듯한데, 처음 보는 곳이다. 오늘도 산책을 하다가 보여서 왔다. 총 3만원, 미끼와 낚싯대 하나, 비싼건지 안비싼건지 모르겠다. 낚싯줄을 던진다. "던지지마세요!" 넵.... 낚싯줄을 천천히 내렸다. 바람이 불었고, 바닷 바람과 함께, 짭쪼름한 맛이 목을 스쳤다. 목이 쾌쾌했다. 미세먼지인가? "오늘 미세먼지 좋아서 괜찮다던데." 누군가 말했다. 대나무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요?" 잠시 정적이었다. 낚싯대는 반응이 없다."네, 오늘 미세먼지 완전 좋데요.""어딜갈까요?""모르겠어요." 손목이 저릿하다."괜찮아요?""누구세요?""저는, 저죠 뭐."바닷바람이 불었다. 낚싯대에서 신호가 왔다, 낚시줄을 당긴다. 아니, 낚싯대를 감는다. 빙글빙글 돌린다. 빙글빙글 세상이 돌다가 보이는건, 목소리가 사라졌다는 명제였다. 우럭인가 우럭, 매운탕이나 해먹을까. 매운탕을 먹기에는 속이 허한데, 속이 허하니 목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두근두근두근두근멈추질 않는다. 촤라락. 대나무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기분탓이다. 이곳은 낚시체험장이다. 이걸 말하지 않으면 좌표가 고정이 안될 것처럼 불안한 기분이다. 어떻게 지평자표계를 고정하셨죠? 낚싯대가 있으니까요. 낚싯대가 실체인가요? 모르겠어요. 바닷바람이 코를 스친다. 목이 쾌쾌하다. 어서 대나무 소리, 부르릉-자동차는 없다. 자동차는
작성일 2026-03-28 작성자 고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7상세보기 -
소설 이방인의 언어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구로는 밝게 빛났다. 시장에 불빛 속은 중국어가 들렸고, 또한 한국어가 들렸다. 시장 상인에 말이 격해지며, 중국인이다. 손님에 말은 차분하며, 한국인이다. 이유로는 중국어를 하고, 한국어를 하기 때문에. 손님에 이름은 이혜성이었다. 상인에 이름은 이한솔이었다.이한솔은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다. 이한솔에 출생지는 북경으로, 중국에선 한국 사람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았고, 이한솔은 항공권을 끊었다. 사무치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일찌감치 끝나고 말았다. 경주 첨성탑을 보러 갔을때 였을까. 아름다움을 연필로 저술하고, 저술에 첫문장은.['아름다움'을 뛰어넘는 고독함이 존재한다.] 였다.이한솔은 계속해서 썼다.[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신경 안쓰고 각자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대의 세상은 개인주의다. 헌데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를모르겠다. 무엇일까. 흐르는 피때문에? 모르겠다. 다만, 중국보다는 좋다. 그것이면 된거 아닐까.]이한솔은 핸드폰이 없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아니!! 당신 아니, 저거 가격좀 깎아달라니깐? 아니 이 가격이면 다른 가게에선 곱절은 싸 곱절은!"이한솔에게 흘러들어온다. 흘러흘러 귀로 들어가고, 나간다. 나가는 사이 다른 소리가 섞여든다."이한솔씨. 당신 그거 아니야. 여기서 지금 이렇게 일하는거 불법 취업이야."이한솔은 이 소리가 어디서 나왔는가, 둘러봤는데 이혜성에게서 나오는 소리임이 분명했다."나는 50살에, 강남 출신이고, 중국인 엄마아빠지만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인이야. 니는 듣기만 하고 말은 못하는 중궐런이야 중궐런!"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니가 뭔 자격으로 이러는데, 너 당장 니네 나라로 가, 니네 나라가서 손가락질 받고! 맞고! 피흘리고, 피 흐르며 눈물도 흐르고, 고독하게 썩어가라고!!"꿈인가.이혜성이 뺨을 때렸다. 뺨이 얼얼했다. 동료들은 도와주지 않는다. 이한솔은 맞을 뿐이다. 친구들이 겹쳐지며, 친구가 이한솔을 때린다. 이한솔은 어느새 중국이었고, 친구들은 각목을 들고, 이한솔을 때리고 있다. 이한솔은 눈에 보이는 광경에 기이함을 느껴고, 구로의 일은 꿈이었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귀로는 이혜성에 말이 들려온다."너, 진짜 안깎아준다고? 계속 맞아라 계속 맞아 어? 이 찐따 이 씹창놈애 새끼야!!"엄마는 울고 있다. 이한솔은 금방 집을 나간 아저씨를 봤다. 아저씨는 삼성 폰을 쓰고 있었고, 바지를 벗고 달려나갔다."창년에 아들아!! 넌 여기에 있어선 안된다!""어디있을까요."한국어가 나오는 이한솔이다."도대체 어디 있을까요.""어,어?"이혜성은 약간 당황한듯 목소리를 멈췄다. 하지만 바로 말을 이었다."걍 세상에 있지마!! 너는 세상에 이방인이다!!!"탁- 탁- 탁-이혜성에 목소리가 들려오고 친구들이 때리는 각목소리가 들려오며 엄마의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아들... 엄마 죽을까... 아니 너만 없었다면... 아니야...""야 이 씨발 새끼 말좀 해봐 어?"중국어가 한국어로 들린다."깎아 달라고!!!"한국어가 중국어로 들린다. 이한솔은 소리
작성일 2026-03-27 작성자 고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2상세보기 -
소설 엄마는 괜찮아
하은아. 오늘도 늦게 들어왔지? 학원 다니느라 너무 힘든 거 아닌지 모르겠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 엄마는 괜찮아. 요즘 좀 회사 일이 바빠서 하은이한테 미안하네. 집 왔으면 피곤하다고 바로 자지 말고 밥 차려놨으니까 데워먹어. 사랑해 우리 딸. 편지 옆에는 국그릇과 밥그릇이 약간 식어있었다. 나는 그릇을 들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잠깐 돌렸다. 그러자 금방 김이 모락모락 나며 갓 한 듯 따스해진다. 밥과 된장찌개를 한입씩 입으로 밀어 넣으며 아직도 일하고 있을 엄마를 떠올린다.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방으로 들어가 내일 갈 학원 숙제를 한다. 한참을 책을 보다 보니 피곤해 잠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본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눈 밑까지 피곤이 내려온 엄마 얼굴이 눈앞에 보인다. 엄마는 내가 눈을 뜨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 옆에 쭈그려 앉는다. “이불 덮어주려고 했는데... 깨워서 미안.”“아냐 괜찮아. 엄마 이제 들어온 거야? 안 힘들어?” 나의 물음에 엄마는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안 힘들어. 엄만 괜찮아.” 하은아. 우리 딸 하은이. 벌써 이렇게 커서 잘 사는 모습 보니 너무 좋다. 언제 이렇게 커서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하고... 우리 하은이 어렸을 적이 아직 새록새록한데... 엄마가 우리 하은이한테 도움은 되지 못하고 짐만 돼서 너무 미안해. 엄만 괜찮으니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너 살고 싶은 대로 살아. 사랑해 우리 딸.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인 편지 옆에서 엄마는 곤히 자고 있었다. 엄마 표정은 평안해 보였다. 심전도 음이 주기적으로 들린다. 소독약 냄새로 가득 차 약간은 기분 나쁜 공기 속에서도 엄마는 깨지 않았다. 평안한 표정과 달리 몸에는 기계장치들이 잔뜩 붙어 엄마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의 이불을 살짝 덮어주자, 엄마가 희미하게 눈을 뜬다. 내가 옆에 있는 걸 보고 눈으로나마 웃음을 짓는다. 잔뜩 주름진 손을 떨며 겨우 내 손을 붙잡아 내 손바닥에 검지로 무언가를 써나간다. 엄마는 괜찮아. 미안해 우리딸. 엄마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너무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눈이 너무 서글펐다.
작성일 2026-03-27 작성자 밍맹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6상세보기 -
소설 종이 위 이름
0쾌락을 위해 개인은 어디까지 무시될 수 있을까.인터넷에서도, 현실에서도—매우 지독한 독사 같은—그들은 본인을 즐겁게 만들어줄 자극과 쾌락을 위해서라면 진실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멍청하게 휘둘려 누군가를 몰아간다.그것은 과거부터 이어진 인간의 습성일까? 아아, 그때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더라면!1오늘의 숙제는 62쪽부터 64쪽까지다. 혼자서는 도저히 공부에 집중되지 않아 친구들과 학교 도서실에서 모였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이기에, 내 옆에는 늘 공부를 도와주는 친구 다은이가 있었다(그녀의 설명은 재밌지만, 가끔은 그 열정이 과해져 따라가기 힘들 때가 있다).딸깍, 딸깍.생각할 때마다 볼펜의 버튼을 누르는 건 나의 습관이다. 다은이에게 생일 선물로—지금도 내 필통에 들어있는 검정색—무소음 볼펜을 선물 받을 정도다. 고치고 싶은 습관 중 하나지만 이미 들어버린 습관은 영구치처럼 내 몸에 자리 잡나 보다.학교 도서실은 내가 학교에서 제일 애정하는 장소 중 하나다. 창문 너머로는 사계절 내내 체육관에서 뛰어노는 남학생들이 보이고, 책장에서는 모든 시대와 국적의 작가들이 티타임을 가진다. 거기에 늘 잔잔한 클래식 음악까지! 아, 마침 때맞춰 숙제가 끝났구나. 학원 시작까지 7분 정도 남았으니, 약간만 빠르게 걸으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학원에 도착했지만,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것도 나의 습관이다. 정확하게는 책상 밑으로 몰래 핸드폰을 보는 것까지일까. 어찌 됐든, 나는 요즘 화제가 되는 모 유명인이 올린영상을 틀어 본다.3분도 되지 않는 짧은 영상의 내용은 단순했다. 외출하기 전 화장을 할 뿐인 영상, 나는 이 사람이 비난받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낙인이란 게 이래서 무서운 거겠지.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던 끝까지 비난받는다. 선한 일을 하면 재수 없는 위선이라고, 악한 일을 하면 역시 그런 사람이라고, 중립적인 일을 하면 그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생각 없이 물어뜯는 군중이란!선생님의 발걸음이 가까워지고, 나는 급하게 핸드폰을 껐다.21교시는 언제나 힘들다. 하필이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역사라니. 몇 세기 전에 일어난 다른 나라—아니, 제국일까?—의 일을 외워야 하는 이유는 대체 어째서인가! 다행인 건 내 자리가 맨 뒷자리여서 편하게 마음 놓고 엎드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그래, 아침이니까 졸린 건 당연하지. 수업 시간은 10분도 남지 않았고, 이 정도면 잠시만 눈 붙여도….“선생님, 쟤 자요.”그 목소리에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으나, 이미 선생님을 포함한 교실 모두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된 뒤였다. 최정현, 내가 교실에서 제일 기피하는 대상이다. 눈에 띄고 싶어서 발악하고 사회성도 부족한 그런 녀석, 아마 교실의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이리라 추측한다.표현할 수 없는 그 짜증남, 그리고 불편함!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은 특히 거슬린다. 학교에 대한 불만일까? 아니면 나에 대한?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2교
작성일 2026-03-27 작성자 정한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3상세보기 -
소설 아몰퍼스
아마도 너는 나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차 안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카탈로니아 반도의 카다케스 해안가에 이르자 나를 태운 택시의 운전자는 더 이상 진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카다케스의 험준한 지형이 많은 자동차들을 사고로 이끈다는 것이 그 이유었다. 차에서 내려 근방을 둘러보며 나는 운전자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이 근방의 풍경은 형언할 수 없는 형태로 심히 뒤틀려 있었다. 풍화로 인래 깎여 내려진 바위들은 마치 편집증을 연상케 하는 여러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채 울부짖었다 예컨대 나의 우측에 있는 낮은 절벽은 소용돌이 모양을 지닌 채 수많은 구멍들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광경을 확인한 후 짧게 웃으며 말했다. “페드로, 자네는 지금부터 가도 좋아.” 운전자는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 “아니, 더비 씨, 저 곳을 혼자 가시게요?”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저 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수가 있어요.” 페드로의 만류에 나는 잠시 동안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만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이런 곳에 오기로 한 이유가 있지 않나. 나는 그의 군살 박힌 양손 가득히 스페인 페소를 쥐어 주며 그를 돌려보냈다. 그의 눈빛은 주저했으나, 곧 허탈하지만 매혹적인 돈의 아우라에 씌어 그의 몸이 차를 돌리도록 방관하였다. 혼자 남은 나는 신발을 벗어 근방 소용돌이 모양의 돌에 올려두었다. 돌의 구멍이 나의 신발과, 그를 넘어, 내 영혼을 삼킬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맨발인 채로 나는 내 앞에 놓여진 무궁한 지평을 향해 나아갔다. 이곳의 시간은 다른 곳과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시계를 보며 나는 신발을 벗어놓는 데 꼬박 1시간이 흘렀음을 확인했다.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나는 태양이 노을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이미 태양이라는 자연의 심판자의 입에 빨아들여진 후였다. 이 정도 공허함이라면 도시라도 집어삼킬 만했다. 곧 지평을 거울 삼아 물결치던 대폭발의 탱고는 모든 것을 삼킨 태양과 함께 추락해 사라졌고 지평선은 하나의 칠흑이 되었다. 어둠이 나를 감싸며 나를 지배했던 화염을 끄자 비로소 내 안의 눈이 눈을 뜨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기억 저편에서 울부짖던 이름을 불렀다. 나오코. 수많은 파도들이 오고 갔지만 그녀의 존재만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의 파도와 기억의 압력이 내 안의 그녀를 풍화해 소용돌이의 기이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그녀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았다. 지평에는 결국 나와 달만 남았다. 붉은 달이 내게 말을 걸듯 빛을 비추었다. 그리고 나의 기억은 거기서 끝난다. 새벽빛이 밝을 즈음 나는 페드로의 방으로 쓰러지듯 걸어들어갔다.
작성일 2026-03-26 작성자 한새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9상세보기 -
소설 버섯작성일 2026-03-24 작성자 jin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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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J'accuse...!
습적동씨에 대한 이 이야기는 나의 여느 소설들처럼 과도히 압축적이고 그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내가 미처 온전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부분이 필히 있을 것이다. 기괴하다 해도 좋고 괴기하다 해도 좋다. 내가 실로 두려워하는 무언가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그를 적어 보여주는 것 외에 내가 따로 풀어 설명하는 것은 옳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독자 모두의 삶에 죄의 삯 따윈 없길 바라며... 적동이는 한녀를 싫어한다. 방금도 그의 관련한 강변을 간신히 막아 세웠다. 물론 그가 좋은 친구고 심성이야 그 나이 때 여느 아이와 다를 것도 없지만 지금의 언행은 따로 대단한 당위가 필요할 만큼 심했는데, 이는 곧바로 설명하겠다. 당장에 우리가 섣불리 적동이를 말리거나 추궁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당장 눈앞에 맥주캔을 까 놓아둔 것 때문인데, 다만 그가 마시는 것은 보지 못했고 어쩌면 아예 마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씨발 한국 여자들은 좋은 종자가 없어…” 그는 거의 위협하듯이 끊임없이 맥주캔을 바꿔 잡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뭔 놈의 나라가 저능아 마라탕충 아니면 페미밖에 없지? 씨발…” 적동이의 수전증이 도졌다. 그러자 그는 그냥 맥주캔을 배수구 쪽으로 던져버렸다. 순간 옥상에 교복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씨발거…” 고등학교 2학년 습적동은 훌륭한 학생이다. 스스로는 중국-투바인 혼혈이라고 주장했는데, 종국에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지금까지 그는, 그러니까 과학고에 합격하여 한 달 정도 살다가 생활이 잘 맞지 않는 이유도 있고 또 의대 진학에 대한 생각도 있어 자퇴하여 이 학교에 온 후부터 아주 착실하게 공부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무관하게, 또 그의 이전 표현을 빌리자면(지금이라고 입장이 바뀌었을 리는 없다) 필연히 어느 이성의 특정한 개체에(혹은 개체들) 대하여 대단히 흥미를 느꼈는데, 그가 곧 그 개체에게 느낀 흥미는 일반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가 냉소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어느, 혹은 일반적인 신비주의의 잔재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되었든 그것은 사랑으로 분류되었으며, 적동이라고 크게 이견이 있지도 않았다. 적동인 절대로 대단한 미남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 미남이라 떠올렸을 때 바로 떠오르는 상도 아니고 대단히 튈 구석 같은 건 하나도 없었을뿐더러 심지어는 살집이 약간 있어 보이기 까지 했다(다만 체형적으로 그럴 뿐이지 실제론 약간 저체중이었다). 그러나 가끔 대단한 미인들이 범부들과 어울리다가 심지어 연인이 되기까지 하는 경우처럼 겸손하거나 겸손하지 않은 미남들이 여러 사람에게 주는 모종의 위선적인 불쾌감으로 자유로웠으면서, 진솔하고 순수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그런 평범한 남성상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적동이는 연애를 어떻게 할 진 모르겠으나 어느샌가 어느 이상적인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을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다만 적동이가 사랑했던 그 인간은 대단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물론 그녀라고 아주 이상적인 미인의 상이었던 건 아니었지
작성일 2026-03-24 작성자 기능사 좋아요 1 댓글수 1 조회수 145상세보기 -
소설 흰들레1"저기 진주가 있어."선희는 추상적인 말도 간단하게 했다. 희고 둥글다 해서 모두 진주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은혜의 논리도 소용없었다. "그럼, 눈송이라고 하자."그렇게 그들은 오지도 않은 겨울을 맞았다. 새하얀 민들레밭을 지나 구 형상의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청결을 위해 꽃씨를 날리지 않는 노란 민들레만 들여놓았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민들레 꽃씨를 보고 싶었던 은혜는 선희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에 진주 목걸이가 나부끼자, 선희는 목에 손을 짚었다.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은 은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다. 선희는 바람에 추위를 타는지 소매를 포갰다. 은혜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씨를 흩뿌리고 초라해진 노란 꽃대를 흰민들레가 감싸는 것처럼 선희도 은혜를 안았다. 몸의 중심을 잃을 정도로 따스하게. 심장이 흔들렸다. 선희는 언젠가 함박눈을 따뜻한 존재로 조명했다. 이를 부정하는 은혜에게 그녀가 말했다. "온도는 상대적인 거야."그녀는 함박눈이 온기를 품는다면, 누군가 그것을 믿는다면, 콘크리트 건축물 역시 무언가를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끈한 표면의 카페 외벽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손을 가져다 대니 먼저 느껴지는 것은 온기보다는 빛의 촉감. 산란하는 것은 적어도 제 열기에 녹을 일은 없었다. 둥근 경계 안에 얼마의 민들레가 피어 있고, 밖에서는 그보다 많은 꽃씨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두 형상은 언뜻 상이한 것 같다가도 때로는 사뭇 닮아 보였다.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기지 않아 산책을 마쳐야 했다. 앞서 걷던 은혜가 주저앉은 선희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선희는 꽃씨를 모두 잃고 이파리마저 내비친 민들레밭을 응시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그녀의 머릿결을 타고 흘러 콧잔등에 맺혔다. 물에 젖어 뭉쳐버린 머리카락처럼 어딘가 비어 있는 공간에는 무상감이 깃들어 있었다. 은혜는 언젠가 저 자리에 다른 꽃씨들이 날아들 것이라고 선희를 위로했다. 그들은 비에 젖어 수척해진 마음을 차로 녹였다. 은혜의 노란 민들레차와 선희의 흰 민들레차는 색감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은혜가 보기에 선희의 찻잔은 생기가 없었다. 노란 찻물이 깊게 우러나는 동안 모든 기력을 소진한 흰 꽃을 보는 듯했다. 주변을 물들이며 스스로 옅어지는 소멸의 과정이었다. 은혜는 화병에 담긴 꽃이 함박눈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녹지 않는 눈에 대해 말했다. "그건 눈이 아니야."그러면 뭐냐는 은혜의 물음에 선희는 작은 목소리로, "흰들레."했다. 2고등학생으로서 첫눈이 온 날, 교실에는 은혜뿐이었다. 보건실에 갔다는 선희가 돌아오지 않았다. 은혜는 걱정스레 선희를 기다리다 책상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너무 늦은 것 같아. 선희의 목소리로 시작한 편지는 어느덧 그녀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처음 보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흰들레, 그것은 선희의 첫 소설이었다. 아이가 홀로 살던 섬에는 민들레가 우후죽순 피어있었다. 민들레를 불며 놀던 아이는 병에 걸린 이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잊
작성일 2026-03-22 작성자 아기호랑이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12상세보기 -
소설 융점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소금을 몇 봉지 샀다. 유독 하늘이 맑았던 날에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지. 지친 몸을 엉망이 된 침대에 구겨 넣으면 연약해진다. 가끔은 해충이다. 거울은 명백히 흰색이다. 쓰지 못할 캔버스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홀로 거리를 떠돈다. 태양이 나만을 노려보는 것 같아 기분이 울적해진다. 나는 대체로 울적한 기분을 즐기지 않는다. 유쾌한 아이러니다! 나는 이런 아이러니를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좀 나아진다. 발걸음을 떼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어 나는 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지 않을 것이다. 몸이 피로하면 다시 기분이 좋지 않아진다. 걸었다. 어디론가 도착할 때까지 걸어야 했다. 나는 항상 꽤 멀리 와버린 이후에야 도착점을 정해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나는 걷는다. 걸을 때는 발바닥에 부딪히는 땅이 재밌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소리도 크나큰 유희다. 스포트라이트가 역하다. 혼잣말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 자칫하면 경찰이 내 집에 들이닥쳐 옷과 재산을 모조리 빼앗는다…. 그럴 일이 없다. 나는 범죄를 저지를 용기가 없다. 그러고는 비가 오기를 기도한다. 맑은 날이 싫었다. 마구잡이로 칠해놓은 구름이 보기 싫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나는 가끔 비가 오는 날 천천히 녹아내려 하수구로 흘러가는 꿈을 꾼다. 사지에 힘이 풀리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이 좋은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비가 오는 날에는 노래를 흥얼거려도 좋다. 장화를 신고 물을 마구 튀겨대도 좋다. 맑은 날에는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장화를 신을 수도 없다. 편한 공간에 있을 핑계를 만들 수도 없다. 대체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맑은 날보다는 비가 오는 날에 효율이 높다. 나는 효율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효율은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비가 올 때마다 나는 우산을 몇 개씩 챙겨 외출한다. 벤치에 앉아 우산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낀다. 우산을 나눠주지는 않는다. 나는 그만큼 선량한 사람이 아니다. 우산을 쓰지도 않는다.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 여전히 맑은 하늘에게 역정을 내었다. 하늘이 맑아 마치 동전 무리가 빛나는 착각을 했다. 타박거리는 소리 찰박이는 소리와 어쩌면 강수 확률을 따지는 것보다 창을 깨고 하늘을 보는 것이 더 낫다. 돈이 한 푼 없어도 절도는 인간 되지 못한 행위다. 그렇다면 인간을 포기한다. 인간이 박탈당한다. 인간으로 있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유기체는 계산한다. 무기물은 계산된다. 바코드 스캔 소리가 귀에 꽂힌다. 가게로 들어서면 무기물이 계산된다. 유기체가 계산된다. 손등에 바코드가 있다. 소금 몇 봉지와 생수를 샀다. 삶을 유지하는 데 소금과 물이 필수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것이 어떻게 내 삶을 유지해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나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손등을 들이밀었는데 계산원은 내가 공짜란다. 마침 내가 나를 살 돈이 없었기에 나는 실실 웃으며 가게를 나선다. 이제 나에게는 돈이 없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작성일 2026-03-21 작성자 폭주성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4상세보기 -
소설 이미 구겨진 종이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벌떡 일어나 공책을 펼쳤다. 2주가 지나 있었다. 쓰레기통엔 구겨진 종이가 쌓여 있었다. 정갈하게 꽂힌 연필들도 보였다. 방에 불을 켜니 너무 밝아 조그마한 전등을 켰다, 옛적에 썼던 작품들이 보였다. 문득 TV 소리가 들려오고, 엄마가 바깥에 있는 것을 자각했는데, TV 소리는 꺼지고 발걸음 소리가 내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멈칫하곤 방문을 살폈다. 끼익— 하고 열리는 방문에선 엄마가 보였는데, 엄마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보였다. 손가락질로 연필을 가리키는 엄마였고, 이번에는 시계를 가리키셨다. 새벽 12시였다. 시계 소리가 들렸다. 따귀소리도 들렸다. 침대에 누웠다. 엄마가 한숨을 내쉬고, 전등을 끄시고 나가셨다. 이제 방은 정적이었다. 다만, 디지털 시대이니만큼 핸드폰으로 글을 썼다. [구로구에서 한 아이의 삶이 시작됐다. 시작은 외계인의 침공부터였고, 피가 흘렀…] 문장을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가 최근에 버릇이 되어버린 습관들이 나와버렸다. 습관이라기엔, 그렇게 쓰면 속이 뭐랄까, 시원했다. 다만, 핸드폰 화면이 눈을 찔렀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고, 글을 쓰면 나 자신이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데 그 느낌이 다시 들기 위해선 글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책상 위 책을 한 번 봤다가 덮었다. 공책을 다시 펼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광명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귀에는 서울말만 남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렸을 적 자전거를 타다가 목소리가 아예 나가버려 목이 쉬었는데,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씨익 웃는 입꼬리들이 보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다 목소리도 나가고, 뇌진탕 때문에 조퇴를 자주 했었다. 어느새 따돌림은 선을 넘었고, 은근슬쩍 내 다리에 발을 걸어 넘어뜨릴 때도 있었다. 문득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놈들이 보였고, 내가 주먹으로 그놈들을 쓰러뜨렸다. 비릿한 피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일어나니 병실이었다. 그때 이후로 글을 쓰면 피가 나왔다. 항상. 자전거를 타던 그때. 목소리가 나가도 계속 탔던 그때. ** 충청남도 서산. 할머니의 한복 가게. 기다란 봉에 줄. 사정없이. 그때의 구로는 판자촌이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 됐다. 주말마다 왔다. 팔자인 발. 주름진 옷. 주말마다. 주말마다. 주말마다. 주말마다. 때린 장면이 기억 안 난다. 때린 장면이 기억 안 난다. 묘사를 쓰는 내 손은, 아버지의 폭력을 기억했나 보다. 친구들은 나를 때리지 않았다. 다리를 걸 뿐이었다. 정신을 잃을 뿐이었다. 언어 폭력을 당할 뿐이었다. "너 왜그래." 아버지의 목소리는 항상 그랬다. 크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다리가 걸렸다. 바닥이 먼저였고, 웃음이 그다음이었다. "멍청이냐?" 누가 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다들 웃고 있었다. 냄새가 났다. 코피를 흘리는 내 모습. 냄새가 났다. 코피 맛이 났다. 고독도 맛이 있었다. 학원을 빠진 날, 선생님은 다른 학생 이름을 불렀다. 다음 날 갔다. 고등학교는 구로 고등학교, 버스로는 10분 거리, 걸어가면 20분 거리인 그곳을 나는 버스 타고 갔다. 버스에 타서
작성일 2026-03-21 작성자 고래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6상세보기 -
소설 캐리커처 그려드립니다!
이마, 관자놀이, 턱 등 안 짚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고민해봤지만 답은 결국 하나였다. 눈치를 너무 많이 봤나. 살면서 처음으로 서류 전형을 통과해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대답은커녕 면접관 얼굴조차 한 번을 못 보고 나왔다. 버스의 창문을 타악기 삼아 머리로 연주하며 도착한 집. 면접 때부터 꽉 쥐었던 주먹이 그제야 펴졌다. 손바닥 주름이 피가 스며들어 잘 보이지 않았다. 손톱이 살가죽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분 전환할 겸 TV를 틀었다. OCN에서 특선으로 캐스트 어웨이를 방송하고 있었다. 무인도에 갇힌 남성의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 작중에서 그는 손을 다쳐 피칠갑을 하게 됐다. 심지어 배구공에 붉은 손자국을 찍어 표정을 그리는데, 윌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며 자신의 친구로 삼아 적적함을 달랜다. 나는 (비록 허구지만) 남성이 부러웠다. 내 삶은 그 자체로 무인도였다. 학창 시절부터 눈치를 심하게 보던 탓에 기껏 만든 친구마저 나를 기피했다. 남성처럼 갇힐 기회조차 없었다. 영화가 결말에 다다를 무렵 휴대폰이 작게 울렸다. 잠금 화면이라 요약된 메시지였지만 '안타깝게도'라는 말을 담기에는 충분했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 시간을 주지 않는 단호함. 나는 굳이 리모컨의 위로 가기 버튼을 마구 눌러 채널을 변경했다. 분명 예상한 결과였지만, 예상 못한 감정이 들었다. 얼마 후 손을 리모컨에서 떼었다. TV에는 난생처음 보는 채널이 틀어져 있었다. 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자막에 캐리커처 장인이라고 쓰여있었다. 저도 처음에는 막 눈치만 보기 바빴어요. 하지만 손님들과 교류하며 극복할 수 있었죠. 홀린 듯이 인터넷에 캐리커처를 검색하자 진입장벽이 낮다는 글이 주를 이뤘다. 눈치 보는 성격을 고칠 수 있겠는데. 나는 커튼을 걷었다. 창밖은 빛만 쏟아지고 있지 않았다. 팔랑이며 떨어지는 벚꽃잎 사이로 보이는 인파. 봄을 맞아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노점만 들어왔다. 대부분 음식 장사였지만 그 사이사이 그림을 전시해둔 가판대도 보였다. 나는 그대로 온라인 쇼핑앱을 열었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때마다 인터넷 쇼핑앱에게 고마움이 들었다. 현실이었다면 분명 드는 것조차 벅찼을 테니까. 그림 받침대의 이름이 이젤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당연히 배송받은 이젤, 4절지, 마커, 그리고 간이 의자를 들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선 내게 손님이 올 리 없었다. 심지어 합법적인 절차를 밟느라 그새 더 생긴 불법 노점에 밀려 벚나무 하나 없는 곳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장당 삼천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과 축제 기간의 시너지는 엄청났다. 캐리커처 한 장 그려주세요. 첫 손님의 캐리커처를 그릴수록 내 눈치 보는 성격이 빛을 발했다. 부담스럽지 않게 보면서도 표정을 세심히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야구였다면 던지는 공마다 볼 판정만 받았을 정도로 내 선은 의도보다 더 밖을 향했다. 그림은 완성됐으나 나는 선뜻 손님에게 건네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얼굴. 다 그리셨어요? 손님의
작성일 2026-03-21 작성자 판타지찬양론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9상세보기 -
소설 초봄에서 초혼으로
내가 나를 쓰기로 했던, 봄이 다가올수록. 나무는 자라고 그늘은 깊어졌다. 큰 나무 밑에 작은 뿌리들은 그늘이 깊어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내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나를 떠나보낸다. 봄이 깊어질수록 작아지는, 그늘에서, 자란 나무들. 멀리 돌아가 살아내려고 한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인간은 인간을 떠나는 거처럼. 내 이름을 내가 세 번 부른다. “통희탄, 송희탄, 송희찬.” 나는 아무 말 없이 베여갔다. 희연은 아무 말 없이 상처 났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글에 송희찬을 불러드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야. 나를 닮은 송희연과 우린 그렇게 믿었다. 우리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 꼭 살아내자. 쏟아내자.” 너의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의 졸업식이 진행되기 전부터, 우린 봄을 이겨낼 준비를 했다. * 센서등이 혼자 깜빡거린다. “아, 봄바람이 또 바람맞아 왔나.” 뜻도 없고 재미도 없는 농담을 허공에다 이야기했다. 혼자 있게 되면 혼잣말이 익숙해지고, 자주 나온다던데. 상대가 없는 말은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혼잣말할 때면, 청자는 단 한 사람도 아닌 허공이라는 것에 가끔은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혼자 말하고 있으면, 생각은 정리되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지만, 생각보다 생각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희연이 딱 와서 장난치면 좋을 텐데. 희연이 등교한 뒤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에 시작을 알리듯 봄을 끝내려고 늦게 내렸다. 이러다가 며칠 전에 핀 목련까지 다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목련이 저물면 봄도 같이 지는 것 같은데. 희연이 늦게 끝나는 목요일이라, 나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숏츠를 넘기다가 가끔은 이런 내 모습이 민망해 방에 들어가 짧은 단상들을 엮어 버린다. 그래야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거 같아서. 내 모습을 내가 모를 때가 가장 좋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생각할수록 지금의 모습이 가장 잘 보였다. 침묵이 작은 방 하나를 맴돌 때, 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밖의 봄비처럼 잔잔하지만, 침묵 속에서 우렁찬 전화벨 소리였다. 올 사람이 없는데. 아이들과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엄마, 아빠는 일이 바쁠 시간이고, 담임이었던, 사람이 전화 올 일은 더욱더 없으니까. 그때 단 한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귀와 눈가에 맺혔다. 바다. 그것도 거센 제주 바다에서 태어나 물질로 익혀진 날카로운 목소리. 제주 용순 할망.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겹쳐 들렸다. 그렇다. 전화 속에는 친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용순 할망이 있었다.“희찬아, 엄마는 점심은 차려주고 갔나?”그녀의 첫마디는 엄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도. 그러면, 나는 형식적으로 현실만 말했다.“네, 차려주고 갔어요.”감정도 없이 소리로만 그녀에게 답했다. 나 역시 오늘도. 뼈 없는 물의 언어를 그녀에게 뱉었다. 엄마가 그냥 나갔으면 그녀가 엄마를 잡아 먹으려고 했겠지. * 센서등이 깜빡였다.
작성일 2026-03-20 작성자 송희찬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188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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