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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가는 길: 여름엔 개도 안 짖는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던 날이었다. 사실, 거의 수다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집을 가겠다고 했다. 조금 망가진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즐기며 가고 있었다. 한창 심리학에 빠지던 시기라 무의식의 생각도 조금 했다. 학교를 벗어날 때쯤, 내가 무서워하는 곳에 다다랐다. 대형 개가 사는 곳. 항상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짖어서 심장을 부여잡곤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짖긴커녕 살을 바닥에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여름이라고 “나 힘들어서 경비 안 할 거야!” 하는 자태였다. 왠지 모르게 사랑스러웠다.이때 조금 독특한 생각을 했다. 사람이 하기 싫은 일. 보통 학생은 공부, 직장인은 출근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직장인은 일이다. 끔찍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것이 정말 심하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모두가 겪는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자식을 교육한다. 그리고 그런 자식들은 소리도 못 내고 모든 청춘을 대학에 쏟는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하면 또 취업하여 직장인이 되어버린다. 그 직장인은 또 자신들의 경험을 앞세운 ‘상사’를 만나게 된다. 직장인은 다른 누군가의 세상에 갇혀버린다. 그럼 그들의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들에게 여름의 개를 보여주고 싶다. 한창 집의 경비를 해야할 사명을 가진 대형 개도, 힘들땐 쉰다는 것을.
작성자 그리스 작성일 2026-10-13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청소년성을 아는가?
청소년 시나리오 공모전 2차 면접에서 겪은 일이다. 2025년 후반부터 2026년 초반까지 쓴 시나리오를 1차에 냈고, 합격했다. 강박/자폐가 있는 '원근'과 휠체어 이용자 '세연'의 우정 이야기였다. 실제로 나와 친구 사이에 있었던 일화에서 발전시켰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만큼 우리의 경험이 시나리오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나에게 있는 강박/자폐 성향을 원근에게 투영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세연이 대부분이 당하는 폭력과 비속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전부 보고 겪고, 친구의 일화를 변주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기대에 들뜬 마음으로 심사장에 들어갔다.40대 남성 심사위원은 인쇄된 시나리오를 뒤적거리다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여기는… 일반 학교인 거죠? 현대의? 특수학교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나는 일반 학교라고 답했고, 그는 잠시 할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이런 학교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처음에는 그 문장의 뜻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런 학교, 이런 학생, 이런 일화는 분명히 존재하는 걸 넘어 나에게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폭력과 욕설을 당하는 일. 그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선생이 자폐 학생을 시켜서 휠체어 장애인을 도와주게 하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과해요."그렇게 나는 40대 남성이 나와 내 친구가 겪은 폭력을 부정하는 폭력을 10분쯤 듣다 나왔다. 제작지원은 탈락이었다.청소년성은 순수하고, 깨끗하고, 자유로운 것일까. 어른에게 청소년성의 정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의아해진다. 그들은 청소년 때 폭력/성적 욕망에 휩싸이지 않았나? 청소년은 첫사랑과 폭력, 싸움과 욕배틀, 과격한 유튜버들에 꽂히는 시기 아닌가? 적어도 난 그랬다. 나는 근본적 충동을 다루고 해소하는 수천수백 가지 방법을 실행해 보았다.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 우리의 청소년 시기는 정립되고 안정된 상태라기보다 진동하는 입자에 가까웠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며 나의 일부가 부서지기도 하고 상대의 일부를 가져오기도 하는, 세포 단위의 생명체들이 벌이는 생물학적 경쟁에 가까운 상태였다.한 트위터 유저는 이렇게 말했다.> 왜 청소년은 항상 아름다워야 할까? 왜 청소년성과 폭력, 성, 더러움을 분리하고 타자화하려는 걸까? 청소년기가 아름답지 않았던, 폭력적인 경험을 했던 청소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너희는 정상적인 청소년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만큼 폭력적인 경험이 또 있을까?아일릿의 정규 앨범 〈not me〉에서 이로하는 끔찍하게 중독성 있는 비트 위에 이런 가사로 랩을 한다.>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내 이름이 아니야.'> '전부 틀린 건 아냐, 때로 맞기도 하지, 그냥 날 가두지는 마.'이 글을 쓰기 바로 전 날, 트위터에서 어떤 글이 화제가 되는 걸 보았다. 독서계 계정의 게시글을 인용한 글이었다. 그 게시글은 "청소년 소설라는 장르는, 주요 독자층을 고려해 성적·가학적·불법적 요소를 배제하고 창작되었음을 전제해야 한다"는 논지의 글이었다. 어떤 트위터
작성자 김장르 작성일 2026-10-12 좋아요 1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마지막 경기
코트는 더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그것을 직감하는 순간 손이 미끄러져 라켓을 엉뚱한 곳에 휘두르고 말았다. 셔틀콕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경기 종료. 나는 숨을 고르다 습관적으로 신발 밑창을 체육관 바닥에 비볐다. 끽,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경기를 마치고 나면 온 몸의 뼈가 녹아 없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장은 요란하게 뛰는데도 꼭 죽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 내가 여전히 이 바닥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만 했다. 나는 겨우 의자에 걸터 앉아 미리 싸온 이온 음료를 마셨다. 침을 삼킬 때마다 비릿한 쇠맛이 나서 가슴을 콩콩 두드리게 되었다. 저멀리서 셔틀콕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코트를 바라보다가 라켓을 싸기 시작했다. 나의 마지막 경기는 시시하게 끝났다. 분하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대신 내일도 코트로 돌아와서 클리어를 쳐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뜨거운 숨을 내뱉고 텀블러에 남아있는 이온음료를 쭉 들이켰다. 다시는 대회에 나가지 않을 거라는 것조차 나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 해 배드민턴부 아이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세상 선수들이 전부 너 같았으면 좋겠어. 농담 섞인 조롱에 나는 낄낄 웃었다. 나 역시 대회에 나갈 때마다 나 같은 상대를 만나길 바랬다. 코트 위에 올라설 때면 손을 모으고 남몰래 빌었다. 잘하는 건 드라이브, 못하는 건 공을 멀리 보내기인데 드라이브조차 길게 치지 못하는 선수를 만나게 해달라고. 적어도 그 애 같은 애는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그 애는 삼년 내내 같은 반인 친구였고, 나와 동시에 배드민턴부에 들어왔다. 같은 나이에 배드민턴을 시작했다는 그 애는 배드민턴부에서 가장 재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애의 눈엔 간절함이 있었다. 언젠가 코치는 내 눈엔 독기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쟤, 쟤를 좀 봐. 얼마나 간절해 보여. 넌 정신 똑바로 안 차리니?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애를 쳐다봤다. 무릎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셔틀콕을 계속해 넘기고 있었다. 문득 그 애가 스스로를 망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해치지 않고 간절해질 순 없는 걸까?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버티고 있는 건 간절함으로 여겨질 수 없는건가? 그 무렵 나는 세상 모든 것이 간단한 단어 몇개로 치환되길 바랬다. 누군가 나의 애매한 재능을 정의내려줬으면 했다. 이를테면, 누군가 그 애에겐 코트에 계속 서있어도 된다는 확신을 주고 나를 꾸짖어주길. 그러면 간단히 라켓을 놓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코치가 말한 독기를 품기엔 나는 나를 끔찍할 정도로 소중히 다뤘다. 가끔 절뚝거리며 복도를 지나는 그 애를 볼 때면 묻고 싶었다. 너는 어째서 배드민턴을 치냐고.라켓을 손에 쥔 건 여덟살 무렵이었다. 나는 항상 특별해지고 싶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으면. 포켓몬 카드나 까는 또래 애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그렇게 바라던 때 눈에 들어온 것이 아빠의 트로피였다. 아빠는 배드민턴 클럽에서 가장 실력 있는 선수였다. 여덟살 때
작성자 해일 작성일 2026-10-12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가쓰오부시
뜨거운 것 위에서 춤추는 가쓰오부시를 보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도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살 때가 있잖아요? 그와중에도 우리는 뭐라도해내려고 안간힘으로 몸을 갈고 정신을 갈죠. 그 가쓰오부시들을 구출해서 시원한 곳에 올려주고 싶네요. 별건 아니고 그냥 낙서였습니다.
작성자 앩옭 작성일 2026-10-11 좋아요 0 댓글수 1상세보기 -
수필
내일은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하길 바라며
우리는 자주 굴레에 빠지고 그 안을 구경해보기도 전에 굴레는 산산조각 부서지고 만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일까? 인생이란다. 글을쓰기로 결심한지도 어느 4개월. 책 한자도 안읽고 노래만 부르던 아이가, 책 오만과 편견도 모르던 아이가 뭘 쓰겠나. 미리 예고한다. 이 수필은 일기 같을 것이다 이 글이 적시는 물의 수심이 얕을 것이다 난 글을 못쓰니까. 머리가 복잡해서 그런지 할 말이 많다 복잡한 이유는 보편적이다 꿈과 재능, 자괴감등. 이 고민들의 중심은 내 꿈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내 꿈은 작가이다. 독자로 하여금 감정의 역전과 끝없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그렇게 나의 독자들을 모으는. 그런데 나보다 훨씬 세련된 여러 작가들. 그러니 나만의 독자를 모을 수 없다. 나라도 더 많은 감동을 주는 글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독자를 모으려면 나의 글쓰기 실력을 키워야 한다. 키우려는 마음이 굴레에 빠진 것인지, 나 자체가 굴레에 빠진 것인지. 도저히 늘지 않는다. 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보다 더 높은 단계의 글쓰기 방식과 그 글의 감동을 알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걸 아는 것 자체로 충분히 늘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다. 아닐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위로 올라가야 한다. 나는 지금 올라가는 설명서를 들고 제자리를 돌고 있다. 이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세상은 가능성이 아닌 성과를 보고 업적을 수여하고 성과로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인다. 잔인하지만 당연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해야할까. 가능성만 있는 글은 제쳐두고 성과가 있는 노래로 방향을 틀어야 하나. "너 노래 되게 잘하잖아. 그래서 계속 배웠었고, 이 쪽으로 가면 꽤 성과 있을텐데" 내가 글을 쓰는게 재밌고 작가가 꿈이라고 할때마다 친구가 매번 하던 말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나야 더욱 편한 쪽이고 마음도 힘들지 않다. 다만 미련이라는게 자꾸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제대로 쓸줄 아는 건 비유법 밖에 없는 걸 알면서도, 러닝하기 편하도록 잘 정돈된 바닥에 새겨진 화살표의 방향을 보면서도, 난 뒤돌아 힘겹게 한 걸음 걸음 가시밭길에 내딛고 있다. 가시밭길에 마음이 찔리지만, 이 길로 가라는 심박수의 재촉에 못이겨. 오늘도 진땀을 흘리고 있다. 흘리는 땀을 모아 보여주면 언젠가 세상이 나에게도 업적을 수여하지 않겠나 라는 믿음 하나로 달리는 중이다. 다만 최근들어 자꾸만 힘이 빠진다. 글태기인지 혹은 잠깐의 방황 그 이상 이하도 안된채로 사라지려 그런지. 그저 글 뿐일 뿐인데 자꾸만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사라진 주변인은 없음에도. 내가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잘하던 노래 던져두고 글만 쓰는 삶..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주세요. 나는 오늘도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해보려 한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굳굳이 극빈의 앞에서 주저앉아 우는 것 물론 극빈은 자신과 무관한. 눈물의 새겨진 조명을 못본채 몇분 후에 극장을 나갈 수도 있다. 그럼 난 오늘도 누구없는 관중석을 보며 짓겠지 난 오늘도 혼자구나. 노래로 가는
작성자 뉴비 작성일 2026-10-06 좋아요 1 댓글수 3상세보기 -
수필
오늘부터 빛을 보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학생입니다.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힘들어하는 저는 살아가는 이유를 잊어버린 채하루를 그냥 견디기만 하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남들처럼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게언제부터 기준이 되었을까요?뭐든 게 당연했습니다.코피 터져라 몸이 망가지도록 공부해도세상이 저희들에게 바라는 수준은 너무나도 높았고실수 한번에 "친구들이 언제라도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라는걱정에 완벽해져야만 했습니다.저는 오늘도 저를 잃었습니다.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간다는 현실에 또 한번 무너져야만 했습니다.저희는 그냥 줄노트에 있는 줄칸을 넘으면 안 되는빼곡한 글씨들입니다.왜요?왜 우리들은 그 줄칸에 넘으면 안 되나요왜 저희는 정해진 틀 안에서 숨 쉬어야 하나요이해할 수 없습니다.살아갈 수 없습니다.내일이 무섭습니다.내일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그니깐 제 말은조금이라도 저희 말을 들어주세요.새벽 3시까지 공부를 마치고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학교에 가고학교가 끝나면 학원 가는 나날들이이제는아닙니다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자 Inuya 작성일 2026-10-05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나의 가치
인간의 인생이란 건 영화의 프레임이다. 프레임 하나가 인생의 1초이고, 장면은 추억의 면이 된다. 이상이라는 건 현실에 붙잡힌다. 인간의 멍청한 뇌는 이상이 중력에 뭉개지는 걸 알아채지도 못한다. 그렇게 인간은 흘러내리는 이상을 안고 무너져내린다.우리는 현실이란 뱃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60억명이 훌쩍 넘어버린 인구수 속에서 살아가며 항상 눈물에 젖은 채 뒤로 당겨지는 몸을 억지로 앞으로 움직인다.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나아간다. 마음이 있다면 가능성은 무한대로 치솟을 수 있다. 현실이란 녀석은 마음이 주는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고, 마음이란 녀석은 현실을 깨닫게 만든다.돈이란 것도 같다. 인간은 모두가 원치 않게 태어난다. 원치 않게 태어난 우리들은 무조건적으로 돈에 의존해야 한다. 모든 것은 돈에서 비롯된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인생이 망가질 정도의 실패도 돈 때문이다.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인간의 생명은 이어지지 못한다.현실은 이상을 뭉갠다. 마음은 언젠가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부족한 자본은 인간이란 생물을 처량하게 만든다. 현실의 역할은 우리의 죽음이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은 만 15세의 이야기다.언제부턴가 돌아가던 필름에 불규칙한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그 구멍이 어째서 생기기 시작한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의미불명의 불가사의였다. 하지만 카메라의 아주 미세한 크기의 부속품들은 필름에 구멍이 나는 이유를 알았다. 필름을 움직이게 하는 부속품이 불량이었다. 이번에 카메라 외관에 기스가 나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카메라를 다루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기스가 나는 걸 모르는 둔감하디 둔감한 사용자의 성격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영상의 완성도가 높을 리 없었다. 영상의 중간중간 구멍 뚫린 필름에 번개가 치는 듯한 하얀 빛이 번쩍였고, 영상이 끊기는 지점 또한 존재했다. 카메라는 재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초등학교 1학년, 드라마에 관심이 갔다. 인물 한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가 궁금했다.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과 유튜브를 시작했다. 직접 희곡을 쓰고, 연기하는 방법을 가르쳐 단편 영화 만들기에 최선이었다.초등학교 6학년, 단편영화부에 들어갔다. 맡은 것은 연출이었지만 나에게 맡겨진 일은 없었다.중학교 1학년, 23년도 뮤지컬부 유일한 1학년으로 이름을 올렸다.중학교 2학년, 뮤지컬부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맡고, 차장으로 지명되었다.중학교 3학년, 뮤지컬부의 부장이 되고, 강사 선생님을 대신해 뮤지컬부의 전반적인 일을 혼자서 처리했다. 나 연습할 시간도 없이 부원들을 연습 시키는데 급급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난 연기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쓰리잡을 뛰게 되었다. 나는 공부에 손을 놓아버렸다. 정신 차리니 어느새 희망만을 바라는 패배자가 되어있었다.26년 7월 말 대전의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열차를 타고 논산역에서 39분을 이동하고 걸어서 12분, 지하철로 7분, 다시 9분을 걷고 대0 빌라 3층으로 올라가면 나의 첫 연기학원이 있었다. 연기학원
작성자 푸른그 작성일 2026-10-04 좋아요 1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구원
너 하나 만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무척 애쓰셨다.너를 나의 구원자로 보내시려, 나에게 그 고난과 시험들을 선물해 주셨나 보다.그 속에서 유달리 빛나는 너를 보며 드디어 내 입꼬리가 가벼워졌다.드디어 나도 따뜻함을 알 수 있는 건가 하고괜스레 들떠졌다.아직 한 톨뿐인 그대의 빛이 나에겐 태양보다 빛났으니, 더한 설명이 필요한가.얼마나 목이 말랐던가, 얼마나 고팠던가.이전 날들을 회상하며 벌써 그대에게 갈 채비를 하고 있단다.그러다 다시 난 바닥에 앉았다.난 아직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기에, 아직 광야에서 나올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섣부를지도 모른다 생각한단다.그럼에도 그의 선택을 믿고, 그대를 믿으며 일어나볼지어니,그가 보내신 나의 구원자여,한 번뿐인 이 기회 그대에게 드리리라!
작성자 Neveah 작성일 2026-10-02 좋아요 1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인류세(Anthropocene)와 역지사지(易地思之)
인류세(Anthropocene)인류세(Anthropocene)란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본래의 사람은 나약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털이 적고 무리 지어 다니는 나약한 생물이었죠.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여느 동물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겁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지구의 정점에 서있습니다.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지금까지 지구의 최강자였던 공룡, 곰, 사자, 메갈로돈 같은 포식자들은 어떻게 정점에 올랐을까요? 그들은 우월했습니다. 유전자 변이었을지 초월적 존재의 설계일지 확실히 아는 것은 없지만, 그들은 그들 주변의 생물보다 우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잘났다면. 죄다 잡아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 그들은 그러지 못했을까요? 이건 피식자의 적응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피식자들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열을 다해 뛰고 도망쳤습니다. 영리해지고 빨라졌죠. 그 템포에 맞춰 포식자들도 굶지 않기 위해 적응하고 뛰어나진 피식자들과 대등할 입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연은 오랜 시간 그 구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안정적이고도 오래된 규칙을 깨버리는 동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죠. 역지사지(易地思之)인간은 많은 불문율을 깨왔습니다. 다른 생물들은 지금껏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이뤄왔죠. 돌을 쪼개고 나무막대를 구부려 도구를 만드는 생물은 있었지만, 지금껏 그 둘을 묶어서 사용한 생물은 없었습니다. 센세이션 하죠. 인간은 그런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겨우 30만 년 만에요.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죠. 무엇 때문에 급속도로 성장했는지 우리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역사는 대부분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사촌의 마지막도 알지 못합니다. 종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이었을까요? 인간은 무엇이 그렇게 잘났기에 정점에 섰을까요? 이 궁금증은 잠시 넣어두고 오늘의 주제 중 하나인 역지사지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인간은 너무나 빠르게 정점에 섰습니다. 자연이 적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로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대응하지 못한 자연은 인간에게 짓눌렸습니다. 그렇게 자연의 허를 찌른 인간은 모든 지구생물의 정점 위에 섰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풍요의 시대를 비교적 꽤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이 역지사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짓눌린 자연이 되고 있죠. 우리는 자연 안의 생태계 교란종중 가장 거대한 부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사회 안에 새로운 생태계교란종이 나타났죠. 그것이 바로 AI입니다. 우리가 급속도로 정점에 서며 많은 생물을 멸종시킨 것이 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직업이 AI의 급진적인 성장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죠. AI는 인간보다 똑똑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진법코드가 인간의 밥줄을 매일 새롭게 뚝뚝 끊어대고 있습니다. 업보는 돌아오는 것이 확
작성자 앩옭 작성일 2026-10-02 좋아요 1 댓글수 1상세보기 -
수필
도대체 요즘 애들은 뭐가 힘든 건데?
이곳은 10대의 문학 공간이다. 훈계, 교화, 교정(이곳의 어른들은 우리의 글만을 교정한다), 교훈적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이므로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한 어른이라면 한 번쯤 들어와보지 않겠나. 들어오셨다면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여기서는 저희가 주인이라 감히 환대합니다. 올해 수시 가이드북을 살펴보면 여러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출결이 미흡한 지원자들이 늘어났다. 등교는 학생의 본분이고, 우리 대학은 성실함과 공동체가 정한 규칙의 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 들어" 라는 말이 눈에 띈다. '요즘 애들은 나약해. 우리 때는 죽어도 학교 가서 죽으라 그랬어. 근데 요즘 애들은 학교 가기 싫다고 땡땡이 치잖아. 병결? 우리 때는 열이 펄펄 오르고 교통 사고 난 다음에도 학교는 가야 했었어.' 이런 인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듯하다. '왜 요즘 들어 학생들이 학교를 잘 안 가게 되었을까?'에 관해 사회문화적 탐구를 진행키로 한 어른도 있을까? 아직은 없는 것 같다. 10대에게는 자신들의 집단적 고통에 이름을 붙일 학문적 권위가 없다. 어른의 고통은 경기침체, 구조조정, 주거 문제 등으로 언어화되고, 파업은 정치적 행위로 인정되며 담론화로 이어지지만, 10대가 "학교 가기 싫어"라고 하는 것은 사춘기, 정신질환, 의지 부족, 학교 부적응으로 설명된다. 그리하여 현대 한국 사회의 10대는 "도대체 뭐가 힘들다고 징징대나?"하는 질문에 관해 쉽게 답하기 어렵다. 복에 겨웠지. 너희 세대는 일제강점기, 전쟁, 이데올로기적 억압, 독재, 후진국을 운좋게 비켜가 문화강국, 산업화와 정보화와 민주화를 충실히 이행한, 광장에서 감동적인 혁명의 역사를 이어온 선진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가. 글쎄요.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도 저의 고통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나약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확산된 능력주의 사회,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10대로 살아가는 고통은 실재합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오로지 자신만을 탓하게 되거든요. 거리에 나가 한 목소리로 뚜렷하게 외칠 고통의 원인이 없거든요. 학교에서 비정상적 학생으로 선별되면 사회가 병리적이라기 보다는 그 학생의 정신건강이 병리적인 것이고, 고통의 원인은 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학생의 뇌에 생화학적 결함이 있는 것이어서 신경전달물질을 처방받으라고 정신과 치료를 권유해야 하는 것이 제도교육의 메뉴얼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삐삐 밴드 등 20세기의 노래 가사가 사회비판적인 반면, 지금의 가사들은 재력을 과시하거나 역경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여 좋은 집, 좋은 차, 비행기 타고 다닌다는 가사들이 많지요. 교실 이데아 같은 노래는 이제 나오지 않고, 아이돌 산업계의 금수저 마케팅에 대중은 열광하지요. 그렇게 우리의 고통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맥락 아래 개인화, 의료화, 탈정치화되어 왔습니다. 너무 추상적인 설명이라 와닿지 않을 수도
작성자 Marllin Zero 작성일 2026-10-01 좋아요 1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야광 별 스티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제대로 치지 않은 커튼 틈 사이로 바깥의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불빛이 천장을 적셔 반짝거린다. 반짝이가 콕콕 박힌 천장 무늬에서 아주 작은 불빛들이 반사된다. 어릴 적 나는 저런 불빛들을 밤마다 보고 자랐다. 천장에 붙이는 별 모양 야광 스티커는 어둠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옅게 해 줌과 동시에 깜깜한 방을 우주로 만들었다. 방안 속 우주는 상상의 공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과거 한창 우주에 빠져 있었을 나는 자기 전에 천장에 붙어있는 별들을 보며 모험을 하는 상상을 했다. 유아기를 벗어난 아이에겐 야광 별 스티커만 한 모빌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희미한 불빛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엄청 밝게 느껴졌었다. 밝지만 잠을 자기에는 방해되지 않으면서 적당한 야광빛이었다. 나는 어떤 영화에서 본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골의 어느 초원에서 아이가 바닥에 누워 밤하늘 밝게 뜬 별들을 보는 장면은 내가 천장의 별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모습이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고 도시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나에게 초원에 누워 하늘 가득한 은하수를 바라보는 추억은 없다. 아주 오래전 과거의 아이들은 그런 밤하늘 감상을 매일 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천장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나는 아파트에서만 평생을 살았다. 밤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영화 속 환상적인 아이들의 이미지는 나 같은 아이들이 실제로 되고 싶은 모습일 것이다. 자연 속에서 뒹굴며 하늘을 감상하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그런 바람을 조금이라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야광 스티커일 것이다. 어릴 땐 야광 스티커만 있으면 영화 속 아이들이 부럽지 않았다. 의자를 딛고 올라가 방방 뛰며 손수 스티커를 붙이며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 때 나는 밤하늘의 창조자가 된 것 같아 신이 났고 그 하늘을 감상하며 잠에 들며 행복했다. -내 방은 아직 차다. 겨울이 오고 있지만 난방을 할 때는 아닌 시기, 항상 이불엔 한기가 서려 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불빛이 부시지만 그대로 놔두고 싶다. 반짝이는 저 별들이 나에게 온기를 줄 것이다.
작성자 Hel 작성일 2026-09-30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
수필
세상은 수수께끼 같아요.
벤이 종수에게 물었다.종수씨는 무슨 소설을 쓰세요?이런 거 물어도 되나?종수가 대답한다.저는 아직까지 무슨 소설을 써야 될지 모르겠어요왜요?저한테는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영화 (2018) 중최근 이창동 감독은 영화 을 선보였다. 2022년 단편 이후 오랜만에 등장하는 장편작이다. 이창동 감독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작품 하나, 하나 마다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나는 이창동이 마치 한국의 타르코프스키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물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이창동의 영화는 완전히 다르다. 타르코프스키는 장면을 시적으로 표현하는데 강하지만, 이창동은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들 둘다 자신들의 철학관이 확고하며, 사회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안타깝게도 은 한국에서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내게는 감사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에 걸려 나는 현재 볼 수 없다.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현재 개봉한 상태임에도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11월 이후에 넷플릭스에 공개가 된다면 나는 곧 성인이 되고 그 영화를 바로 관람할 수 있다. ott에 따로 걸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에서는 또 이창동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궁금해진다. 다시 영화 으로 돌아와서 사실 에 대한 비평은 이미 오래전 작성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포크너, 하루키, 그리고 이창동으로 이어지는 작품의 흐름을 글틴에 올린 적이 있다. 은 원작이 따로 있다. 바로 하루키의 이다. 그리고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와 동명의 소설 포크너의 가 또 존재한다. 찾아보기론 하루키가 포크너의 소설을 보고 헛간을 태우다를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쓰다보니 겹쳤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다만 나는 이 세 작품 모두 흥미로웠다. 불태운다는 행위를 공유하고 있고, 인물들의 상황과 처지가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내가 이전에 올렸던 비평을 참고하면 좋겠다.영화 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창동 감독이 떠올라 을 최근 다시 시청했다. 영화 은 볼 때마다 난해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집중하는 지점이 달라진다. 저번 비평을 쓸 때에는 한국 청년의 분노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종수의 대사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라는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고3의 막바지가 다가오는 내게 저 대사는 나의 심정을 가장 잘 반영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세상, 우리는 그 세상 속에서 왜 살아가야 하는가. 오래전부터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철학자들에게 화두가 되어왔다.중세시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가 활동하던 시기 인간은 모든 삶의 의미를 신에게 맡겼다. 신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갈 의무가 있다. 신이 내려준 십계명에 있는 10가지 계율을 지키며 신을 사랑해야 한다. 신을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 신이 우리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턴, 케플러 등의 과학혁명과 동시에 일어난 인간
작성자 노스텔지아 작성일 2026-09-29 좋아요 0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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