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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소주병」

  • 작성일 2016-03-14
  • 조회수 5,819


공광규,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시_ 공광규 -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보령을 거쳐 청양에서 성장했다.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등이 있다.

▶ 낭송_ 홍서준 - 배우. 뮤지컬 , 등에 출연.


배달하며

배달하며

소주가 서민의 술이기 때문일까. 시 속에 소주가 등장하면 우선 편하고 친근하다. 오랜 가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십년 동안 청계천 건너 빌딩 숲을 오가며 밥을 구하러 다녔다는 시인은 주름과 뱃살과 흰 머리에 겹치어 딸과의 대화를 ‘자화상’으로 그려 놓은 시도 썼다. 아빠 사무실 가까이 와서 저녁을 먹고 간 딸이 아빠 얼굴이 가엽다고 했다한다. 시인은 청계천을 내려다보는데 얼굴이 뭉개진 그림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소주병처럼 쪼그려 앉은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제 그 나이가 되어가는 시인과 그 시인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 애잔한 가족 3대가 두 편의 시속에서 혈연의 끈끈한 밧줄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소주병』(실천문학사)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1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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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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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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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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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건

  • 남호진10608

    위 시에서의 술은 인생의 마취제 역할을 암시하는 것 같다. 화자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리운 아버지를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으로 표현한 것과 서민들의 평탄하지 않은 삶을 소주로 달래는 아버지의 모습을 표출한 것을 보고 고단함을 추측할 수 있었다.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술에 연명해 삶을 버텨나가는 우리들의 아버지를 대입해보니까 동정심이 드는 동시에 안타까움이 피어났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이별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지금을 중시해 가족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나가 되기 위해 성장하고 반성해야겠다. 또한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서민들의 고충을 술로 달래는 날이 오지 않을까?

    • 2018-10-31 10:45:43
    남호진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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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17

    이 시를 읽고 다시한번 부모님께 효도를 더욱 잘해드려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시의 내용은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정작 자식은 아버지를 무관심하게 대하는 자식들을 비판하는 시인 것 같다.나의 생각에는 이 시는 아버지의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갔다.이 시를 읽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아 힘들고 쓸쓸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 참 좋았다.집에서 나는 부모님 말을 잘 안 듣고 말썽만 피운 것 같아 이 시를 읽고 반성하고 앞으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말썽 피우지 않고 부모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2018-05-29 13:55:06
    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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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13이민재

    어렸을 때는 정말 몰랐지만 요즘들어 어머니 아버지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누나들과 달리 말썽도 많이 피우고 어머니 아버지가 걱정도 많이 하시고 더 많이 챙겨주셨던 것이 떠오릅니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힘들었을 어머니, 아이 셋을 먹이고 교육시킬 돈을 벌었어야 했을 아버지. 자신을 비워내며 가족을 위해 점점 빈 소주병이 되가는 아버지가 정말 고마우면서도 안타깝습니다. 빈 소주병이라도 좋으니 항상 제 곁에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여운과 생각을 남기는 시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더 어머니 아버지의 소중함과 고마움,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 2018-05-28 15:40:18
    11013이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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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석이

    아버지의 외로운 모습을 잘 표현한 시인것 같네요..자식에게 채워주느라 자신의 속을 점점 비워가는 아버지들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 같아요...

    • 2018-05-28 01:28:00
    민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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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문장'이라는 사이트용이라는 실익을 위해서 가볍게 시를 던져놓으신거라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6-04-08 01:56:5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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