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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옛일」

  • 작성일 2018-02-01
  • 조회수 9,922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박성우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 창비, 2011.




박성우 |「옛일」을 배달하며…



오래전 소중한 이에게서 받은 편지처럼 쓸쓸하고 적막할 때 꺼내보면 힘이 되는 시들이 있습니다. 편지와 시만 그런가요. 품었던 소망도 그런 것 같아요. 이룰 수는 없었으나 그 옛날 내가 그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가졌었다는 기억만으로도 오늘을 새롭게 살아 볼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박성우 시인이 문학집배원을 시작하며 첫인사로 이 시를 인용했었거든요. 이젠 옛일이 되었지만 좋은 옛일이라면 자주 떠올리는 게 몸과 마음의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오늘 시작하는 저의 일도 한참 뒤에는 옛일이 되겠지요. 제가 전하는 시들이 강가의 아침 안개처럼 부드럽고, 초저녁 별처럼 조심스레 환하고, 싸락눈처럼 고요해서 자꾸 떠올리고 싶은 옛일이 되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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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7건

  • 한 줄

    나에게 옛 일은...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라는 강소천 선생님의 동화를 보고 마음먹었던 아동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아홉 살, 아람단 첫 뒤뜰 야영에서 무사히 가스버너를 켠 열두 살 가을 학교 운동장, 스물 셋, 배낭여행을 무탈하게 마친 일, 무대에 서서 속죄하고 싶었던 스무 살, 20년 만에 만난 5월 폭우 속 야외 결혼식을 실내 결혼식으로 변경한 일.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옛 일이 많았으면 하는 어제가 바로 나의 옛 일인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감이나 크레용의 빛깔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연 많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옛 일을 아픔과 시간이라는 두엄으로 맞이했기에 그 초라한 옛 일이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시간도 나의 옛 일과 마주하려한다. 별정 우체국 집배원이 꿈이었던 시인이, 편지가 아닌 시와 꿈을 배달하는 시인이 된 것처럼, 나의 옛 일이 이제 이루어질. 하지만 내가 꾼 꿈의 완성보다 내 꿈과의 화해로 그 꿈을 옛 일이라 이름 붙일 수 있길, 내 옛 일을 허공에 그린다.

    • 2018-07-16 00:03:16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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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쉬

    옛 일을 고백한 그의 용기에 힘입어, 기억의 무덤 속 잠자고 있는 어느 시간을 깨워봐도 될까? 모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했을 때였다. 막간 행사로 한 시인의 사인회가 열렸다.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열을 지어 서있었고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그런데 시인의 앞까지 가서 사인을 못 받고 돌아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유는 '예의가 없어서.' 그 시인이 짓거나 엮은 책에 사인을 받는 것이 통상의 규칙인 모양이었다. 시인 앞에 갔다가 돌아온 나의 손에는 그의 책과, 책 안쪽에 휘갈긴 그의 사인이 있었지만 심사가 뒤틀린듯 아니꼬웠다. 고작해야 고등학생들이 (자기들이 정한) 예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듬해 같은 대학에서 청소년 문학캠프가 열려 또 한 번 방문했을 때, 내가 속한 조에 배정된 시인 선생님은 펜보다는 쟁기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수더분한 웃음을 짓던 남자. 까탈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그는 '옛 일'의 장본인인 박성우 시인이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그 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기억을 공유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아슴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날 그의 얼굴에 내내 떠 있던 미소가 그 전 해에 모 시인과, 그 대학에서 받은 나쁜 인상을 설탕처럼 하얗게 덮어버렸다는 사실. 좋아했던 그의 시 한 편을 이곳에 소개하며 '옛 일'과 무관한 나의 옛 이야기를 갈무리하려고 한다. 미숫가루가 실컷 먹고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가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삼학년')

    • 2018-07-16 01:57:27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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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야80

    시의 느낌이 아련한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일까? 화자가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화자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그 마음에 응답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아 화자의 '옛일'이란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첫 짝사랑이 맞을 듯 싶다)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강가의 아침 안개, 초저녁 풋별 냄새, 싸락눈 내리는 긴 밤"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어수룩하지만 순수하고 풋풋한 마음이며,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다"는 것은 화자의 애절한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끝내 단념하고 "그만 둔" 것은 아닐까 싶다. 문득 내게도 그런 옛일이 떠오른다. 전하지 못한 채 보관함 넣어둔 오래된 이메일들이... 아이쿠, 이런^^;;

    • 2018-07-16 04:08:32
    희야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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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에 알게된 이문재 시인의 '농담'을 보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시의 화자도 누군가에게 그윽한 풍경을 온전히 보여주려는 간절한 마음에 별정우체국까지 내고 싶었던 걸 보면 누군가를 꽤 사랑했던 것만 같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빚어내는 사시(四時)와 하루의 흐름 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아 보내고 싶다니... 하지만 그걸 온전히 담을 봉투를 구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는 것도 어쩐지 쓸쓸한데, 그만둔 '적'이 있다고 말하니 더욱 쓸쓸해지는 기분이다. 그후로 다시는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 일이 없는, 진짜 옛일인 것만 같아서...

    • 2018-07-16 11: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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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토끼

    회사일에 너무 지쳐 휴가를 내고 나홀로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겨울의 초입, 관광객들도 적고 한적했던 위미리의 작은 우체국에 가서 외로움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더랬다. 직원도 몇 명 있지 않고, 우편물을 가지고 오는 손님도 몇 명 있지 않은, 이런 작은 우체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 참 여유롭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곳의 여유로움을 친구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제주에 내려와서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저런 나의 핑계들로 바램은 바램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 때는 회사일이 너무나 바빴어. 숨을 쉴 틈도 없었다구...... 시인은 정말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었을까?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었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고 있는 건 아닐까? 돌이켜보면, 스스로 이런 저런 핑계를 갖다 대면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마음 속에서 바램으로만 그쳤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 2018-09-11 07:57:48
    햇살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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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아... 어렵네요.. 핑계일까.. 아닐까의 문제란.. 저는 분명, 핑계가 아닌 문제도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만.. 그런데 또 모르겠어요.. 핑계인지..ㅎ 죽기 전엔 알게 될까요?^^

      • 2018-09-16 16:58:48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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