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옛일」
- 작성일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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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박성우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 창비, 2011.
박성우 |「옛일」을 배달하며…
오래전 소중한 이에게서 받은 편지처럼 쓸쓸하고 적막할 때 꺼내보면 힘이 되는 시들이 있습니다. 편지와 시만 그런가요. 품었던 소망도 그런 것 같아요. 이룰 수는 없었으나 그 옛날 내가 그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가졌었다는 기억만으로도 오늘을 새롭게 살아 볼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박성우 시인이 문학집배원을 시작하며 첫인사로 이 시를 인용했었거든요. 이젠 옛일이 되었지만 좋은 옛일이라면 자주 떠올리는 게 몸과 마음의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오늘 시작하는 저의 일도 한참 뒤에는 옛일이 되겠지요. 제가 전하는 시들이 강가의 아침 안개처럼 부드럽고, 초저녁 별처럼 조심스레 환하고, 싸락눈처럼 고요해서 자꾸 떠올리고 싶은 옛일이 되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시인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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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7건
저자는 무언가 전하고 싶은것이 간절해서 우체국까지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환경?의 제약때문인지 저자의 한계때문인지 전하고 싶은걸 포기한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전하고 싶은것은 저자의 마음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데 말이든 그 무엇으로도 담을 수가 없어서 포기를 했을까? 소통하고 싶은? 떨어져있지만 함께 하고 싶은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전하고 싶은걸까?
개살구는 먹을 수 없는 살구다. 그럴 듯하지만 먹을 수 없는 개살구의 차가운 아침과 우두커니 서 있는 미루나무의 초저녁과 싸락눈의 차가움이 지키는 다소 차갑고 쓸쓸한 풍경 속에 화자가 있다. 별정우체국은 국가 주관의 공적 기관이지만 개인의 요청 하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로 세상에도 안정적으로 속하고 싶고 개인의 개성도 드러내고 싶은 화자의 자아로 읽힌다. 그것을 설치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만 동분서주 해보지만 현실은 봉투 조차 넣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미 강마을이라는, 강으로 세상과 소통의 창구가 막혀 있다는 문제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별정우체국이라는 상징적 소통의 창구로 뭔가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 듯하다. 강마을이라는 한적하고 다소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었다면 강마을 그 자체를 찬란하게 세상에 드러내는 더 근본적인 작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니면 별정우체국에 소망을 투영하는 대신 강마을 외부로 목표를 돌리거나. 별정우체국이라는 소박함은 봉투 때문에 그만둘만큼, 딱 그만큼의 욕망으로 화자에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점은 화자는 이런 이야기를 여유롭게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한결 자신만만해졌다는 것이다. 여유 있게 추억을 되새기는 모습이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