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영광, 「얼굴」

  • 작성일 2018-02-22
  • 조회수 18,739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이영광 |「얼굴」을 배달하며…



본다는 게 저절로 되는 일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보고 있지만 안 보는 일이 태반이니까요.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자 어머니가 그녀를 알아보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솔닛은 그 질문이 참 짜증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병에 걸리기 전에도 엄마는 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멀고도 가까운』) 누군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얼굴에 차오르는 무수한 표정들에 충분히 잠겨봐야 합니다. 내 관심과 욕구에 취하지 않고서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가장 많아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74건

  • 파라솔

    표정과 얼굴의 차이는 무엇일까. 읽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취해서 우는 것과 취하지 않고 우는 것은, 돛과 닻의 차이는 또 무엇일까.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철없는 부자 아가씨와 가난한 고시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그려진다. 부자 아가씨는 가난한 고시생을 사랑한다고 울부짖지만 결국 자신을 사랑한 것이다. 가난한 고시생은 애써 그의 사랑을 담담하게 조금씩 표현하지만 실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너를 사랑하는 너는 결국 너의 집으로 돌아가고, 너를 사랑한 나는 밤길을 잃고 오랫동안 헤매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내며 화려하게 표현한 너의 사랑은 돛처럼 피어나고, 뱃 속 깊숙하게 간직한 나의 사랑은 닻처럼 잠겨 있다.

    • 2018-11-25 14:53:51
    파라솔
    0 / 1500
    • 0 / 1500
  • 햇살토끼

    고백하지 못한 사랑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젋은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너는 너를 사랑하고, 나는 네 사랑을 사랑하고......댓가를 바라지않고 주기만 하는 사랑을 이제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면, 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너와 나의 얼굴 모두에 닻이 피어나고, 돛이 잠기는 것을 서로 알아봐주는 사랑만 하고 싶다.

    • 2018-11-25 20:08:45
    햇살토끼
    0 / 1500
    • 0 / 1500
  • 푸른상아

    토요일 새벽. 아버지가 심상치 않다는 전화를 받고 주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다녀온 길이다. 예상에 없던 폭설 때문에 한참을 걸려 부산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다시 기력을 회복한 상태셨다. 여름에 우리집에 계실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셨다. 그러던 아버지는 새벽이 되자 섬망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얼굴을 때리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시다 내 이름을 부르시고는 손을 잡아 달라고 하시더니 용서해 달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세심히 본 적이 별로 없었구나 알아차렸다. 아버지의 늙은 얼굴은 검은 점들이 나있고, 주름도 꽤 많았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의 얼굴은 매우 맑고 밝았다. 순수함. 이런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나도 덩달아 깨끗해진 듯했다. 이미 아버지를 용서했지만, 용서한다고 괜찮다고 물을 때마다 대답해 드릴 수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마음 속 깊이 담긴 그 사람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웃는 표정, 슬픈 표정, 시크한 표정, 엉뚱한 표정, 장난스러운 표정 등. 그러면 그 표정을 바라보던 내 표정도 같이 떠오른다. 상대방은 그 때의 내 얼굴 표정을 또 기억하고 떠올리겠지... 아버지가 어떤 날 나의 얼굴을 떠올릴 때 당신을 미워하며 쏘아보던 표정이 아니라 어제 밤의 나의 그 얼굴을 떠올리시길...

    • 2018-11-25 23:08:54
    푸른상아
    0 / 1500
    • 파라솔

      푸른상아님이 아버지 말씀을 하실 때마다 이상하게도 저도 저의 아버지가 떠오르더군요. 이기적인 당신은 융통성도 없고, 평생 어머니를 고생시키고, 자식들에겐 상처를 남겼습니다. 저는 아직도 용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신과의 추억이 없기에.. 저에겐 한가지 표정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저를 떠올린다면 여러가지 다양한 얼굴의 제가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날일까요.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 2018-11-26 11:27:06
      파라솔
      0 / 1500
    • 0 / 1500
  • balm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했던 때가 있었던가. 그 사람이 행복할 때 행복하고, 그 사람이 슬퍼 보일 때 슬펐던 때가 언제였을까. 나는 늘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날 사랑해주는 네 모습을 사랑하는 '너'이지 않았었나. 나 때문에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는 그를 원망했다. 날 위해서 기분좋게 웃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황당해했다. 그가 내게 기분이 나쁘다고, 너 때문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나는 다만 그의 표정을 읽었다. 나는 그가 기분 좋지 않은 것이 나 때문인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랬던 것이니, 이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그 마음에 같이 있기만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나의 미안함을 헤아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주기만을 바라는 이 미숙한 아이는 아직 진짜 사랑을 모르는 걸까.

    • 2018-11-26 00:33:41
    balm
    0 / 1500
    • 0 / 1500
  • 후추

    당신이 내 표정에서 감정을 읽을 때 나는 그냥 당신을, 당신 얼굴을 본다. 너가 행복할 땐 나도 행복해도 된다. 그렇지만, 너가 취하면 나는 취해선 안된다. 너는 결국 널 사랑하는 건데, 나는 그런 네 사랑마저 사랑한다. 나를 두고 집으로 간 너를 뒤로한 채 나는 길을 잃는다. 오래오래. 네 표정은 돛이 되어 어디론가 늘 갈 것만 같다. 나는 항상 여기있다. 닻처럼, 어디 갈 수 없다. 첫사랑이다.

    • 2018-11-26 01:25:25
    후추
    0 / 1500
    • 파라솔

      후추님의 단상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왠지 모를 경험에서 가지 쳐 나왔을 것 같은 따뜻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 답하는 답시같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 2018-11-26 11:18:27
      파라솔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