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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얼굴」

  • 작성일 2018-02-22
  • 조회수 18,751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이영광 |「얼굴」을 배달하며…



본다는 게 저절로 되는 일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보고 있지만 안 보는 일이 태반이니까요.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자 어머니가 그녀를 알아보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솔닛은 그 질문이 참 짜증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병에 걸리기 전에도 엄마는 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멀고도 가까운』) 누군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얼굴에 차오르는 무수한 표정들에 충분히 잠겨봐야 합니다. 내 관심과 욕구에 취하지 않고서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가장 많아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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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4건

  • 계곡안개

    사라져간 얼굴들이 떠오른다. 아버님,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부들, 이모들, 이모부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 맘 속에 있을까. 그리고 가끔 잊힌 얼굴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바닷가에서 자맥질하며, 백사장에서 뛰어 놀던 아련한 얼굴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삶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죽음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 태어나기 전의 세상으로. 나는 그 얼굴들과 마주했을 때 진정성 있는 나의 얼굴로 대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그들의 진정성 있는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을까. 나는 허깨비였다. 그들도 나에게는 허깨비였다. 내가 허깨비였으니....

    • 2018-11-26 02:01:14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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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미아

    저는 늘 당신의 표정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얼굴을 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당신에게 까닭 모를 분노를 느끼고는 했지요. 사실 당신 마음에 들고 싶었어요. 다른 표정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열심히 읽고 또 읽었는데, 당신은 늘 내 앞에서 그 표정만을 짓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전 늘 '닻'에 묶여버린 조각배 마냥 풍랑에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의 얼굴이 해저로 가라앉는다면, 저는 그 얼굴을 찾을 수 있을까요?

    • 2018-11-26 12:51:42
    우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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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19

    맨 처음에는 너는 사랑에서 내 표정을 읽고 나를 다 알아버려 시시하다고 느끼는 유리한 위치, 나는 바보처럼 나를 다 거두고 너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보고 둘 사이의 괴리감에 많이 씁쓸해 했다. 감정을 읽고 나에 대한 정보를 가져가고, 마음이 편해져 자기 마음껏 행동하고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며, 또 그렇게 무수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훌쩍 떠날 것 같은 "너"는 얄밉다. 반면에 "나"는 바보같다. 너의 얼굴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그런 표정을 너에게 읽혀버린다. 너의 모든 감정과 행동이 내 것인양 흡수하고, 자신에게 빠져있는 "네 사랑"까지 사랑하여, 너와 나는 그렇게 섞여 버린다. 나는 나의 무수한 표정들을 닻처럼 심해에 던져 넣은 채로 잠겨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는 바보같은 "나"같은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 짝사랑의 시라고 결론을 내리고 잠시 생각에 머물러 보니 내 생활 속에서 내가 자주 하는 한 가지의 일이 또 떠올랐다. 나는 내가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는 취미가 있다. 그냥 물끄러미, 그러나 주의 깊게 그를 들여다 보면 내가 그인지, 그가 나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시에서 너에 해당하는 한 행과 나에 해당하는 한 행이 거울처럼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나는 그가 거울속에 비친 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의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뜯어 본다. 그러다 보면 나는 그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는 것 같은 오묘한 무아지경 같은 것에 빠진다. 내가 그가 된 것 같은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시야에서 그가 사라지고 그와 나를 연결했던 정체 모를 연결성, 또는 몰입감이 사라지면 내 마음은 길을 잃은 것처럼 황량해지고 만다. 그리고 이내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자책도 하게 된다. 그에 몰입해있던 그 시간을 나를 찾는데 썼다면 나도 그처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충만해질 수 있을텐데. 내가 부럽다고 말하면 "부러우면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간단하게 말하던 지인이 떠오른다. 선망의 대상들은 돛을 펴고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잘도 다닌다. 나는 마음이 약해지면 보고싶은 얼굴들을 찾아다닌다. 매우 바보같은 짓임을 알면서도.

    • 2019-03-17 01:52:49
    담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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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반

    첫 연에서 너는 내 '표정'을 '읽지만' 나는 네 '얼굴'을 '본다'. 표정을 읽는다는 것은 관찰한다, 분석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대조적으로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생각하고 바라본다는 의미로 들렸다. 첫 연부터 나와 너는 서로를 인식하는 태도가 다르다. 너는 나를 마치 비평가처럼, 낯선 타인처럼 판단하지만, 나는 너를 그저 바라본다. 이미 이 구절부터, 나와 너의 마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두 번째 연에서 너가 '쾌활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들자', 나도 '쾌활하고 행복하게 마시고 떠든다'. 너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나의 모습에서, 어쩌면 나는 너를 좋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연에서 너는 '취해 울고', '그래서' 나는 '취하지 않고 운다'. 너가 취해서 울기 때문에 나는 취하지 않고 운다. 너는 이미 취해서 슬피 울고 있었지만 나는 취하지 않은 상태로, 진심으로 너를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네 번째 연에서 '너는 너를 사랑하지만', '나는 네 사랑을 사랑한다'. 너의 사랑의 대상은 너다. 나가 아니다. 앞선 연들에서 대강 짐작이 되었지만, 아마도 너는 나에게 나가 너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향하지 않고 너를 향한 너의 사랑도 사랑한다. 너의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느껴졌다. 다섯 번째 연에서, '너는 나를 두고 집으로 가지만', '나는 너를 두고, 오래 밤길을 잃는다;... 너는 나를 그다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닌 듯 싶다. 너는 나를 두고 자연스럽게 집에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너가 없는 밤에,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돌아다닌 게 아닌가 싶다. 자기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너의 집에 가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마지막 연에서 너의 얼굴에는 '무수한 표정들이 돛처럼 피어나고', 나의 얼굴에는 닻처럼 잠겨 있다'. 그냥 직관적인 이미지로, 많은 표정들이 피어나는 너, 풍부하고 다채롭고 좀 더 생동감있게 느껴지는 너와 달리, 나는 많은 표정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로, 나의 위로를 얻은 채로 활동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너와 달리, 나는 보답받지 못한 마음을 갉아 너에게 주고, 보여주고 싶은 수많은 표정을 감춘 듯 보였다. 결국 이 시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것 같고, 나의 슬픈 짝사랑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아렸다.

    • 2019-03-18 21:21:51
    햇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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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빛시

    지독한 짝사랑...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본다. 그녀는 그와 함께 쾌활하고 행복하다. 그녀는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나는 종일 턱을 괴고 그녀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표정들을 관찰한다. 그녀는 나의 얼굴을 흘깃본다. 그녀는 혼자서도 잘하나보고 고개돌린다. 그녀는 나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종일 턱을 괴고 그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표정들을 관찰한다.

    • 2019-03-19 15:10:19
    은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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