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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얼굴」

  • 작성일 2018-02-22
  • 조회수 18,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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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이영광 |「얼굴」을 배달하며…



본다는 게 저절로 되는 일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보고 있지만 안 보는 일이 태반이니까요.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자 어머니가 그녀를 알아보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솔닛은 그 질문이 참 짜증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병에 걸리기 전에도 엄마는 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멀고도 가까운』) 누군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얼굴에 차오르는 무수한 표정들에 충분히 잠겨봐야 합니다. 내 관심과 욕구에 취하지 않고서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가장 많아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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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4건

  • 쿠바토디

    상대방이 '쾌활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나 또한 쾌활하고 행복할 수 있고, 상대방은 취해서 우는데 나는 취하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울게 되고... 상담을 마치고 맥이 빠져 집에 털레털레 돌아온 지금,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시에서 의미하는 행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이렇게 맥이 빠지고 애가 타는 건가 싶습니다. 제대로 보고 싶은데 제대로 보이지 않고, 열심히 읽어보고 싶은데 맘처럼 쉬이 되지 않은 답답함이 나를 이렇게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걸까 하는... 그는 나를 두고 집으로 가겠지만, 나는 이 시와 함께 꽤 오랜 시간 동안 밤을 헤맬 것 같은 느낌입니다.

    • 2019-03-19 22:14:42
    쿠바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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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ra

    내가 콩떡같이 말해도 네가 찰떡처럼 알아줄 때의 편안함, 따뜻함은 쉽게 거저 엊어지는 것이 아닐것이다. 마음을 내어 너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가만히 너의 표정과 행동을 따라해 본다. 조금씩 너의 사랑이 보이고, 나는 그런 너의 사랑을 소중히 담아준다. 네 얼굴 수많은 표정 뒤의 표정을, 말 속의 말을 하나하나 만나주는 것 그렇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었구나.. 이렇게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 2019-03-19 17:46:54
    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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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북

    누군가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타인의 얼굴뿐만 아니라 내 얼굴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던지... 그래서 순간 내 얼굴을 거울에 비쳐 본다. 대개 낯선 그녀가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나’와 ‘너’의 관계성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에게 ‘너’는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화자인 ‘나’의 페르소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시속 화자인 ‘나’는 ‘너’와 쌍을 이루어 행동한다. 가면을 쓰고 있는 또 다른 나이기도 한 ‘너’. 시속 상황이 마치 영화속 한 장면처럼 연상된다. 나는 관찰자가 되어 너의 얼굴을 본다. 너의 얼굴은 쾌활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눈물을 흘린다. 울다가 자기 연민으로 눈물을 닦으며 스스로를 추스린다. 그리고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너. 그런 너를 뒤로하고 남겨진 나는 오래 밤길을 헤매일 것 같다. 돛처럼 피어난 너의 표정 뒤에 숨겨 놓은 나의 무수한 표정들은 그저 닻처럼 심연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는 돛처럼 피어나지 못하고 닻처럼 가라앉은 나의 표정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보고 싶다.

    • 2019-03-19 16:40:22
    그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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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깃털

    시의 화자에게서 슬픈 사랑의 운명이 느껴졌다. 누군가도 내 표정을 바라보고 읽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을까..하지만 시에서 느껴지는것처럼 바라보는 이는 슬프고 힘들어도 맘껏 슬퍼 하지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릴적 나도 그랬을까, 벌써 오래전 투병중의 있는 엄마를 보는 나도 그러했을까.. 두려움..모른다는건 얼마나 해맑은 불안인가..다만 추측해볼뿐 내 것일 수 없는 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버틴다는건 또 다른 고통.. 우리 모두는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려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건지도..

    • 2019-03-19 15:11:33
    깃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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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빛시

    지독한 짝사랑...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본다. 그녀는 그와 함께 쾌활하고 행복하다. 그녀는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나는 종일 턱을 괴고 그녀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표정들을 관찰한다. 그녀는 나의 얼굴을 흘깃본다. 그녀는 혼자서도 잘하나보고 고개돌린다. 그녀는 나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종일 턱을 괴고 그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표정들을 관찰한다.

    • 2019-03-19 15:10:19
    은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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