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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이따금 봄이 찾아와」

  • 작성일 2018-03-15
  • 조회수 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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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나희덕 시집, 『그녀에게』, 예경, 2015.




나희덕 |「이따금 봄이 찾아와」를 배달하며…



화가로도 유명한 시인 로세티는 자기 작품의 모델이자 동료화가였던 시달을 사랑했어요. 프루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의 “지나치게 활발했던 영혼이 과로로 지친 육체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중병에 걸리고 맙니다. 로제티는 죽어가는 시달과 서둘러 결혼을 하죠. 그녀가 숨을 거두자 그는 자신의 삶도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간하기로 되어있던 시들을 상자에 넣어 그녀와 함께 묻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이 아니에요. 7년 후, 그는 무덤에서 이 시들을 꺼내 출판하기로 결정합니다.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단단한 얼음조각 같은 지독한 사랑도 지독한 슬픔도 시간의 따듯한 물속에서는 조금씩 녹아 사라집니다. 이제 봄이고 사랑이 다시 시작되려 해요. 그 소란스러움을 어쩌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데…

시인 진은영


* 마르셀 프루스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엘리자베스 시달」(『독서에 관하여』,은행나무)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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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7건

  • 브러쉬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로 여는 첫 문장을 '내 말이 네게로 흐른 지 오래되었다'로 잘못 읽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곤, 두 문장의 차이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았어. 시인이 쓴 문장은 흐르지 못한 그 말에 맺혀 있고 내가 오독한 문장은 말이 흘러간 시간에 맺혀 있다는 게 다를까. 같은 시간, 같은 사건을 공유했어도 서로가 기억하는 장면이 다른 것처럼 흘러간 말이 머무르는 장소도 다를까? 나의 말이 흘렀으면, 아무런 방해도 없이 흘러서 네가 거주하는 곳에 찰싹 붙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이 있어. 그러다 보면 말보다 내가 먼저 얼음이 되었지. 정확한 말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들은 언제나 마음에 합한 결과만 주지 않았으니까. 진정 패착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걸 모르고. 나의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탓을 나도 모르게 너에게로 돌리고 있었다는 걸 나는 몰랐어. 모르고서 쉽게 네 탓을 했어. 너는 나를 영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지. 그렇게 입을 다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흘려보내지 않았던 시간이 꽤 오래되었구나.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나와 너 사이, 내 말과 네 말 사이에는 단지 그것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외부세계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었어. 지상의 구름과 얼음의 결정이 만나 눈이 되는 것처럼 그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소음보다는 침묵을 차라리 선호하는 나지만 오늘은 마음을 달리 먹어봐야겠어. 실은 소란스러움이 용서받아야 할 일인지도 잘 모르겠어.

    • 2018-08-08 11:02:18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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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줄

    이 시를 읽으면서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봄이 찾아와 얼어붙어 있던 말들이 녹으면 그 말들은 진정으로 소통(疏通)하게 될까?’ 따뜻함과 라일락 향기 가득했던 꽉 찬 봄의 화사함은 얼어붙은 말은 녹여낼 수 있지만, 그 말들이 마음에 새겨져 다시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데, 심지어 이따금 봄이 찾아온다니, ‘아직 한 참 남았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면서 말로 소통하기보다 무엇인가를 써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이유는 아직 덜 녹은 말들이 다시 공중에서 거미줄처럼 굳을까, 혹여 처마 밑 고드름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가슴 속 남아 있는 온기 품은 채 다시 손으로 전해지고 그 손에서 한 자 한 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온기로 녹여 글로 전해지길 바라서인가보다.

    • 2018-08-13 05:10:20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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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원10717

    나희덕시인의 이름이 눈에 익어 읽게 되었다. 대화를 하고싶지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것으로 보인다 대답도 없고 반응도 없는 상대에게 대화를 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같은 사회적인 동물이 의사소통을 하지못하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없으면 살기 힘들것이다.봄이 찾아와 말들이 녹기 시작했을때 반가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대화를 하는것을 좋아해서 말을 할수있고 말이 녹기시작했을때 따뜻함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 2018-10-31 09:52:18
    조성원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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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08문승현

    나에게 '이따금 봄이 찾아와'는 누군가와 다투고 부터 화해하기까지의 일을 담은 시로 보인다. 첫 행에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를 보면 싸우고 말을 하지 않는 상황으로 보여진다. 그 다음 먼저 사과 도는 말을 하려고 시도하지만 자신의 입에서부터 막히고, 입에선 나왔지만 외부의 누군가로 인해 전달하려는 이에게 도달되지 못하고 또 말을 못하는 사이 제 3자들에 인해 생긴 말들로 다가가기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듯 하다. 그 뒤 다행히 '봄' 즉 화해 또는 대화할 기회가 찾아와 진심어린 사과도 나누지만 어색하지 않게 오히려 더 말을 많이하고 동시에 핑계도 대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누구나 다른사람과 다투거나 또는 심하게 싸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시는 그 과정을 계절에 따라 흘러감으로 시간이 필요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화해하려고 시도도 함으로써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필요함과 동시에 겨울에서 봄까지에 시간이 금방 흐르지 않는 것 처럼 다시금 봄에서의 관계를 얻기 위해선 그만큼 기다림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가 표현한 말이 내가 겪은 상황과 오묘하게 맞아 떨어지어 공감이 가고, 또 그 상황에 있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될만한 시로 여겨진다.

    • 2018-11-05 08:44:30
    10208문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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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수11109

    저는 이 시를 읽을 때 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날씨는 화창했지만 저와 저의 친구의 관계는 얼어붙은 그러한 때였습니다. 이 시에서와 같이 그때의 제가 화해의 의미로 전했던 모든 말들을 전부 그 친구에게 전해지는 대신 띡딱한 벽에 부딪쳐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친구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시는 저의 이러한 경험을 떠올리게 해 주었고 그때 친구와의 벽이 사라졌을 때 저의 안도감과 다시 되돌아왔던 따듯함을 저에게 상기 시켜주는 공감이 가는 시 같습니다. 물론 지금 그 친구는 저의 곁에는 없지만 이 시를 읽게 되면서 지금의 저를 있게해준 그 고마운 친구를 떠올리게 해 준 이 시를 힘들 때면 보게 될 것 같네요.

    • 2018-11-05 12:10:18
    김현수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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