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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이따금 봄이 찾아와」

  • 작성일 2018-03-15
  • 조회수 8,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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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나희덕 시집, 『그녀에게』, 예경, 2015.




나희덕 |「이따금 봄이 찾아와」를 배달하며…



화가로도 유명한 시인 로세티는 자기 작품의 모델이자 동료화가였던 시달을 사랑했어요. 프루스트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의 “지나치게 활발했던 영혼이 과로로 지친 육체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중병에 걸리고 맙니다. 로제티는 죽어가는 시달과 서둘러 결혼을 하죠. 그녀가 숨을 거두자 그는 자신의 삶도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간하기로 되어있던 시들을 상자에 넣어 그녀와 함께 묻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이 아니에요. 7년 후, 그는 무덤에서 이 시들을 꺼내 출판하기로 결정합니다.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단단한 얼음조각 같은 지독한 사랑도 지독한 슬픔도 시간의 따듯한 물속에서는 조금씩 녹아 사라집니다. 이제 봄이고 사랑이 다시 시작되려 해요. 그 소란스러움을 어쩌겠어요. 이토록 아름다운데…

시인 진은영


* 마르셀 프루스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엘리자베스 시달」(『독서에 관하여』,은행나무)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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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7건

  • 11110배수홍

    처음에 이 시의 제목을 읽었을 때 계절과 관련이 있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 읽어보니 아니었다. 이 시는 우리가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와 관련이 있다.우리는 일상생활에 많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밥 먹었어"와 같은 가벼운 인사부터 무거운 말까지 우리는 폭 넓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많은 말중에서 다른 사람게 전달이 잘 안 되는 말이 있다. 꼭 전달해야 하는 데 못하는 말, 전달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전달을 못하는 말등같은 말이 있다. 하지만 봄이 오면 이러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 전다이 된다. 마치 봄의 따뜻함이 겨울의 추위를 녹이 듯이

    • 2018-11-05 12:20:59
    11110배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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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빛시

    누군가의 말은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다. 마음이 상처입어 얼어붙어버렸거나, 굳은 살 박혀버렸을 때… 어떨 때는 누가 말해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너무 지쳐 충전 중이거나 너무 분주해 나눌 마음이 남아있지 않을 때… 그래도 이따금 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따듯한 햇살아래에서 간질간질한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싶을 때…

    • 2019-03-30 23:14:47
    은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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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반

    시를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은 그저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다거나, "말은/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등 말을 물에 비유해 활용한 표현들이 매우 시적인 느낌이었다. 내 말은 네게로 흐르지 못하고 공중에 얼어붙었으나, 침묵의 소문만 무성한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와 햇빛을 받아 녹기 시작한 말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계속 침묵하다가 볕을 받아 다시 소리를 내는 말들의 모습이 마치 봄 그 자체처럼 느껴졌고, 사랑의 실연으로 상대에게 더 이상 말을 건넬 수 없는 화자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마음이 소란해진 모습을 그린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에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라는 화자의 말이 있기 전부터, 시에 나온 말들의 움직임은 이미 용서를 할 만한 아름다운 것처럼 느껴졌다.

    • 2019-04-01 22:10:13
    햇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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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바토디

    전달되지 못한 말들은 마치 얼음 결정처럼 공중에서 얼어버린다. 물로 녹지도 그렇다고 증발되지도 못한 이 말들의 결정이 바닥에 여기 저기 흩어져, 말도 아닌 침묵만이 바닥을 메운다. 전달되지 못한 말들은 무엇일까? 내 경우엔 보통 가족들에게 하는 사랑고백이나 감사의 고백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끔은 쑥스럽다는 핑계로 이런 말들을 결정처럼 마음 한켠에 박제시켜 버리는데, 가끔은 봄처럼 내 마음이 녹아버릴 때, 물처럼 녹아서 수면의 경계 밖으로 깔딱깔딱 흘러넘치기 직전일 때,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이 물오른 말들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고, 이 말들이 또 다른 말들을 부르고... 불과 6시간 전에 같은 직장에 몸 담고 있는 동료분이 화장품 샘플을 주셨는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걸 신나게 발라놓고선 왠지 말하기가 쑥스러워 입만 달싹거리다 집으로 돌아온 것이 후회된다. 소란스러움을 용서해 줄 넓은 마음을 가진 그녀의 성정을 알기에 내일은 꼭 말을 흘려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ㅎㅎ

    • 2019-04-02 01:07:25
    쿠바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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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북

    꽃샘추위가 찾아와 아직 봄을 만끽하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다. 그래서 이 시를 읽었을 때 내게도 빨리 봄이 찾아와 잔뜩 움츠려든 어깨를 당당히 펴고 따스한 봄햇살을 쬐며 만물이 소생하는 소란스러움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겨울동안 얼어붙어 침묵의 소문만 가득했던 말이 봄이 오면 새로 햇빛을 받으며 따듯한 물속에서 녹아 내린다. 그러자 ‘아지랑이처럼 물오른’ 말이 너에게로 흘러 가서 진정한 소통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생명이란 원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얼음조각처럼 차갑고 파편처럼 흩어진 말은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 굳어버린 말이다. 굳어버린 말이 봄의 생명력에 힘입어 다시 녹아 말랑말랑한 말이 된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진정한 수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겨울동안 못 했던 말들이 마구 뿜어져 나와 이 세계를 소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기꺼이 화자의 부탁을 받아들여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할 것이다. 아니, 나역시 이 말들의 소란스러운 잔치에 슬며시 껴서 힘을 보탤지도 모른다. ‘이따금’ 봄이 찾아오는 것도 말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지만, 욕심이 많은 나는 ‘종종’ 봄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소통의 기쁨을 너와 함께 느껴보고 싶다.

    • 2019-04-02 16:45:07
    그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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