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 「2014년 9월19일 어느 세월호 어머니의 트윗을 관심글로 지정함」
- 작성일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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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이시영 시집, 『하동』, 창비, 2017.
이시영 |「2014년 9월19일 어느 세월호 어머니의 트윗을 관심글로 지정함」을 배달하며…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요? 이 슬픔의 빙산을 녹이기에는 우리가 지닌 말들이 참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고통 속에서 침묵해야 할지라도, 신은 내게 능력을 주었다.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고통 곁에서 침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신은 고통스러워하는 자에게는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그 곁에 있는 자에게는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더라도 경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시인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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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2건
집이 가난하든 집이 부자이든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차이를 둘 수 없다. 그러므로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을 슬퍼하지 않을 리가 없다. 오히려 가난한 집 부모님의 애정이 부자집 부모님보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더 애뜻하실 수 있다. 부모님이 주신 그 2만원 얼마나 쓰고 싶었을까... 친구들이 간식을 사 먹을 때 같이 사 먹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어려운 형편에서라도 주신 2만원이기에 쓰지 않고 있었겠지. 이 세월호 사건은 전국민이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으로 끔찍하고 슬픈 날이다. 아마도 자식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자리를빌려 위로를 드리고 싶다. 세월호 사건은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무척이나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자식들도 자신들 때문에 부모님들께서 힘들게 고통받고 사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 이에요. 그러니 위에서 바라보는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삶을 열심히 사세요! 이미 떠나간 자식들의 몫까지... 이 세월호 사건은 꼭 역사에 남아 우리 인류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죄로 2만원밖에 못 줬는데 고스란히 남아있던 지폐 두 장" 이 글을 보니 세월호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그 배 운전사는 뭘 했나 생각이 들고 세월호 사건이 다시 생각나게 되는 시네요.. 정상적으로 배가 갔다면 웃고 떠들며 먹고 놀고 했을텐데 이 글을 보면서 세월호때에 선장은 다시 반성을 하라고 하고싶은 생각이 나네요 잘 살아있다면 지금도 웃고 떠들며 신나있을텐데 돌아가신분들은 고인이 되어 같이 웃고 할 사람이 없는게 매우 슬픈 사실이네요.. 세월호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최근 이슈로 떠올랐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시여서 제목부터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 기준에서 시는 저와는 먼 세상의 이야기이고 어렵기만 한 학문이었는데, 실제로 주변에 있는 주제로 만들어진 시는 처음이어서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시는 유가족 어머님의 트윗을 그대로 옮긴 듯 한데요, 정말 어머니의 슬픔이 그대로 보여서 시를 읽으면서도 마음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자식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이루 말 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일을 겪는다면 정말 죽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뉴스에서 본 자식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하시는 유가족분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트윗을 그대로 시로 작성하여도 어색하지 않은 점도 좋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sns가 현대인들의 문학이 된다는 점이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고통을 주신다'라는 말로 나의 고통을 견디며 지내왔던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기 때문에 견디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는 기억하고 말해야 하기 때문에 처절하게 남아있기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사건이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나는 동안, 저 어머니는 딸아이가 배 안에서 보냈을 하루를 몇 번이나 살아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