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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나는 오늘」

  • 작성일 2018-05-10
  • 조회수 23,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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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강성은 외, 『의자를 신고 달리는』, 창비교육, 2015.




오은 |「나는 오늘」을 배달하며…



정현종 시인은 ‘가슴 속의 진동’에 따라 사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날마다 다릅니다. 오늘 하루는 나의 슬픔과 나의 변덕과 나의 잘못으로 내 가슴이 들썩입니다. 그렇지만 그다음 오늘은 햇빛이 쏟아져서, 쓰다듬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네 곁을 종일 맴도느라 내 가슴이 흔들립니다. 그러니 사는 일이 진동 아니겠어요? 나에게서 나무에게로,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계속 오고가면서, 나와 세계 사이에서 아름답게 진동하는 일.

시인 진은영


* 정현종, 『정현종 시인의 사유가 깃든 로르카 시 여행』, 52쪽, 문학판, 2015.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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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6건

  • 10715이효준

    이 시를 읽은 후 토마토를 한사람으로 비유하여 시의 제목 나는 오늘, 이처럼 토마토가 하루하루 변하는 자기의 심정,자기의 상태를 비유를한거같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이 공감할만한 시인것같고 특히 이시에서 가장 인상깊엇던구절을 " 나는 오늘 일요일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 구절이 제일 인상깊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현대인의대부분이 일주일중 5일을 일하고 주말에 그 5일을 일하는것에대한 휴가같은것을 주말에받기때문에 일요일에 내일이 오지않기를 바랜다 모든현대인은. 나는 이 시를 읽고 나의하루를 성찰하는시간을 가지는마음을 갖고 하루를 살아가야겠다고 느꼇다

    • 2018-10-31 10:03:10
    10715이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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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영 11017

    시의 화자는 자신을 여러 사물로 표현하고 있는데 각 사물이 되었을 때마다 보여주는 행동과 생각이 재미있다. 화자가 그림자가 되었을 때 나 역시 그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볼 생각을 하니 나에 대해 굉장히 반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화자가 종이가 되었을 때의 심정 역시 공감된다. 나도 무언가 글을 써보려 할 때나 무언가를 창작하려 할 때 무얼 해야할지 감을 못 잡아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창작이란 재미있지만 무척이나 힘든 법이다. 나는 항상 감정과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항상 다른 몽상을 하며 다른 삶을 꿈꾼다. 그래서 계속 변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며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무엇이 되어 어떤 여행을 떠나볼까.

    • 2018-10-29 11:53:02
    이창영 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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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를 읽을 때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은 '나는 오늘' 다음에 올 수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은데 어째서 '토마토', '나무', '유리', '구름', '종이', '일요일', '그림자', '공기'일까였다. 그런 물음을 안고 시를 읽다 보니 마치 시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담고 있는 궤적 혹은 흔적을 따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제일 첫 연과 마지막 연의 '나는 오늘' 다음에 '토마토'가 똑같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계속 눈길이 머물면서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앗!' 했던 순간은 어쩌면 이 시는 다양한 사건 혹은 외부와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자기 변화를 겪으며 자기를 확장하고 있는 존재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을 때였다. 다시 말해, 첫 연의 '토마토'와 마지막 연의 '토마토'가 질적으로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 것이다. 어떤 오늘, 이리저리 움직여도 '나'라고 말하며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던 시적 화자는 외부의 개입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견고함으로 꽉 차 있지만, 그 꽉 차 있음이 충만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터져버려 믿었던 것들이 줄줄 샐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야기하고 시적 화자 자신도 그런 불안을 감지하고서 갑갑해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세상에서 진공 상태에서와 같이 고립되어 있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모든 존재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시적 화자 역시 어떤 오늘에는 햇빛과 바람 덕택에 사방으로 자라기도 하고, 또 어떤 오늘에는 누군가로 인해 마음에 금이 가고 울면서 얼룩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결의 감정을 느끼며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할 수 있고, 때로는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 마냥 기분에 취해 두둥실 떠오를 수도 있다. 물론 체온을 가진 존재로부터의 신호가 미약한 날에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서걱거리고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가 진짜로 자라는 순간은 나와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겨 자기와 대화하기 시작할 때, 그래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고통과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괴로우면서도 중단하지 않을 때이다. 그렇게 내 마음이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뿐만 아니라 내 마음을 갈가리 찢을지도 모를 무언가까지 담을 수 있게 될 때, '나'는 '너'를 온전히 살아 있게 해 주고 싶어 공기처럼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마저 억지없이 편안하게 지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기 보호와 자기동일성에 대한 과도한 의식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때, '나'는 마지막 연의 '토마토'처럼 '너'와 상호작용하며 온몸을 그만 붉힐 수 있게 될 것 같다. 이렇게 '토마토'를 자기 변화, 자기 확장과 연관 지어 생각하다보니 문득 '오늘'이란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 시에서 오늘은 얼마만큼의 길이일까? '나무'로 보내는 오늘과 '일요일'로 보내는 오늘이 같은 시간 길이를 가리킬까? "나는 오늘 상한 우유팩"이라 이 물음은 다른 오늘로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 2018-07-08 14: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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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예전에 어항 속 물고기를 무심히 쳐다보다가 문득 어항 속 물고기도 나를 보고 있겠지. 물고기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시를 읽으며 오은님의 시에 나오는 그 대상들이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한 생각이 드네요. 토마토는 내게 "너를 다르게 부르는 사람이 있더라도 너는 너야." 나무는 내게 "뜨거운 햇빛은 내가 막아줄테니까, 너는 잠시 쉬어." 깨진 유리는 내게 "아플 때 울 수 있는 건 용기야." 구름은 내게 "지나간 것은 흘려보내자." 종이는 내게 "맘껏 너의 세계를 펼쳐봐." 일요일은 내게 "꼭 다시 돌아올께." 그림자는 내게 "내가 있어 외롭지 않지?" 공기는 내게 "바닥에 발을 딛게 해 줄께." 토마토가 다시 내게 "아직 그런 마음 가진 네가 좋아." 라고 말해 주네요. 오은 님의 시는 같이 놀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 2018-07-08 11:09:49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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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쉬

    이 시를 읽고 나는 어떤 생각을 떠올려야 할지 몰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오늘'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 시에 내가 덧붙일 말이 있을까,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 외에 내가 할 일이 있을까... 시 안의 '나'를 전부 '너'로 바꾸는 일은 '나'에게 폭력적인 일일까. 하지만 나는 그 편이 더 좋은 걸. 화자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는듯 첫 연에서 못을 박아둔다. '나는 오늘 토마토/ 앞으로 걸어도 나/ 뒤로 걸어도 나/ 꽉 차 있었다.' 라고. 거꾸로 해도 토마토인 토마토처럼 나로 시작해서 나로 돌아오는 이 시에 나는 다만 갑갑함을 느꼈다. 이 갑갑함은 어쩌면 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 2018-07-08 10:44:04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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