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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늙은 코미디언」

  • 작성일 2018-06-07
  • 조회수 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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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 민음사. 2018.




문정희 |「늙은 코미디언」을 배달하며…



시인이 깨달은 세상의 큰 비밀은 뭘까요? 세상은 웃음과 눈물, 빛과 어둠처럼 이분법적인 정리가 불가능한 곳이라는 것. 어떤 순간은 쨍하게 환하고 어떤 순간은 가늠할 수 없이 깜깜하다면 의외로 사는 일은 간단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은 늘 모호한 순간들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웃긴 일 같은데 슬프고 슬픈 것 같은데 웃겨요.
그래서 ‘나는 외로워’, ‘나는 슬퍼’와 같은 말들은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미흡합니다. 시를 쓰세요. 비유를 써서 말해보세요. 네루다처럼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고.* 내가 외로울 때 내 가슴은 터널처럼 어둡습니다. 내 속의 새들은 밝은 곳을 찾아 날아갑니다. 밤이 되면 더욱 깜깜한 것이 내 안으로 침입해 들어옵니다.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충분히 말해주세요. 당신은 무엇처럼 외로운가요?

시인 진은영


* 파블로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중에서 (『네루다 시선』,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7)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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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5건

  • aperto

    웃음과 눈물 사이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어두운 맨 땅. 그 맨 땅에다 시인은 시를 쓴다,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어쩌면 나도 시인이 발견한 그 어두운 맨 땅을 알고 있을 거다. 짧지 않은 인생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시인은 어린 나이에 세상의 큰 비밀을 알게 되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세상의 큰 비밀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발견에 뒤따르는 행위일 것이다. 시인은 시 같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인이 자신의 시 쓰는 행위를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에 비유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풍뎅이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풍뎅이는 어쩌다 뒤집혀졌을까 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만약 스스로에 의해 처해진 상황이라면 뒤집혀지기 전까지의 몸부림도 대단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바란다. 기왕이면 꽃길만 걷기를. 하지만 인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 시인이 시를 쓰는 것처럼 우리도 각자가 발견한 세상의 비밀을 삶의 지혜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행위들을 하나씩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2018-07-23 01:56:19
    ap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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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기'가 너무나 잘 되는 아이들은 늙은 코미디언의 몸짓이 연기가 아니라 거꾸로 뒤집힌 풍뎅이의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다가와 그 존재들만큼이나 무력감을 느끼고는 시적 화자처럼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만물의 고통에 점차 무감각해지는 건 어두운 맨땅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무력감을 느껴야만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능력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맨땅에서 버둥거리는 타자의 윤곽선 안에 자기를 바로 겹치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아이'의 재능을 잃어버리고, 맨땅을 내려다보는 '어른'의 시선으로 자신은 그 사태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듯 웃어 넘기거나 무성의한 진술로 그 사태를 쉽게 설명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에서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라고 썼다.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이 미흡한 말들로 표현되는 것에 갑갑함을 느낄 때, 시인은 탄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시인은 끝나지 않는 '-되기'의 과업으로 인해 버둥거리는 풍뎅이나 늙은 코미디언처럼 늘 필사적일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 2018-09-01 13: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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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민재11010

    시인이 살기 위해 어두운 맨땅을 버둥거린다는 표현이 참 가슴이 아팠다. 유행과 시대에 뒤쳐진 '늙은 코미디언'도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연기와 재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단지 큰 몸부림과 웃음을 자극하기 위해 자신의 희화화 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언젠간 나도 '늙은 코미디언'과 같은 처지가 될까봐 쓴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졌다. 무시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 2018-10-29 11:52:45
    성민재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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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유신11001

    살기위해,돈을 벌기위해 그만큼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일까?양질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고.시인이 그것을 세상의 큰 비밀이라고 표현하는것이 인상깊었다.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것 그만큼 슬픈표현이 없을것 같다.그것보다도 훨씬 편한 직업들도 분명 존재하는데 그분들은 남들의 행복을위해 그렇게 늙어서도 자신한 몸을 희생한다.꼭 코미디언이 아니더라도 목숨을 걸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을 가진 분들도 많이 존재할것이다.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무시받지 않고 살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2018-10-29 12:19:14
    강유신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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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영10721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망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볼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기뻐하거나 재밌어합니다. 저는 가끔 그런걸 봤을때 슬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 어떻게 보면 사명일수도 있는 개그맨 개그우먼이라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삶의 사명과 숙명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자세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훗날 누군가 저를 봤을때 '아 저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말을 들을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2018-10-31 09:43:24
    홍준영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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