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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늙은 코미디언」

  • 작성일 2018-06-07
  • 조회수 6,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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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 민음사. 2018.




문정희 |「늙은 코미디언」을 배달하며…



시인이 깨달은 세상의 큰 비밀은 뭘까요? 세상은 웃음과 눈물, 빛과 어둠처럼 이분법적인 정리가 불가능한 곳이라는 것. 어떤 순간은 쨍하게 환하고 어떤 순간은 가늠할 수 없이 깜깜하다면 의외로 사는 일은 간단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은 늘 모호한 순간들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웃긴 일 같은데 슬프고 슬픈 것 같은데 웃겨요.
그래서 ‘나는 외로워’, ‘나는 슬퍼’와 같은 말들은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미흡합니다. 시를 쓰세요. 비유를 써서 말해보세요. 네루다처럼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고.* 내가 외로울 때 내 가슴은 터널처럼 어둡습니다. 내 속의 새들은 밝은 곳을 찾아 날아갑니다. 밤이 되면 더욱 깜깜한 것이 내 안으로 침입해 들어옵니다. 당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충분히 말해주세요. 당신은 무엇처럼 외로운가요?

시인 진은영


* 파블로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중에서 (『네루다 시선』,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7)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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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5건

  • 브러쉬

    얼마 만큼을 살아야 인생에서 느끼는 것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있을까? 답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이 질문에 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매력적인 오답의 세계에 인도된 것일 테다. 노랫말처럼 우리의 삶에 정답이란 없고(윤상, '사랑이란') 각자 손에 쥔 답은 저편에서 보면 가차없이 오답일 테니까.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질문의 주사위를 굴려본다. 우리는 매순간 충분히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나? 내 편에서 보자면 이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존재는 한 부류의 인간, 어린아이뿐이다. 한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어린아이가 터뜨리는 울음은 나를 곧잘 슬픔의 세계로 데려간다.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울음 말고 맹목적인, 자신도 어쩌지 못해 터져나오는 울음. 그것은 '시 같은 것'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것일 게다. 아이는 늙은 코미디언에게서 그것을 본 것일지도. 그냥 코미디언이 아니고 늙은 코미디언이 슬픈 이유를 포착한 아이의 기민한 시선은 맨땅에 시를 쓰도록 만든다. 시인의 능력이란 이처럼 보잘것 없어서 아름답고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느껴지는 동시에 말하는 것, 느낌이 차고 넘쳐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 나아가 느낌에서 삶을 발명해내는 것. 시인은, 늙은 코미디언은 가르쳐주었다. 느낌을 상실한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아이였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쉽게 투정하는 것보다, 시를 쓰는 매순간 아이가 되는 능력을. (*다 쓴 상태에서 한 번 지워져서 새로 씀)

    • 2018-07-23 01:45:52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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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야80

    세상의 큰 비밀까지는 아닐지라도, 누구나 저마다 비밀을 만나는 순간들이 있지요. 그것이 세상의 비밀이든, 진리이든, 이치이든 혹은 나만 아는 비밀을 들킨 것같은 순간까지... 시인이 그러했듯(시인과 화자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시인의 고백같아서) 며칠 전, 엄마와 밥을 먹으며 TV에서 재방송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다가 몰래 눈물을 삼키며 밥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곁에 남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한없이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두 주인공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가는 그 장면에 저는 눈물이 와락 쏟아졌습니다. 저들처럼 연인사이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 미처 저역시 제 마음을 몰랐던 그 때에 대한 회한같은 눈물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를 쓰고 있는데(쓴다기 보다 써보려 하고 있다고 해야겠지만) 만약 그 때 제가 시를 썼었다면, 꼭 시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의 글이라도 마음을 쓰는 일을 했었더라면 그런 눈물은 흘리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해봅니다. 시를 쓰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은 내 마음이라도 내 마음이 아닌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렇게 뒤늦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 마음을 들켜버리는 건 아닌지... 들키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려내는, 써가는 마음으로 비밀의 발견을 넘어 삶의 지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8-07-23 01:35:13
    희야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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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쉬

    엄청 길게 다 썼는데 지워져서 속상...

    • 2018-07-23 01:31:33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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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예전에 가족들과 여행 중 중국인들의 서커스 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작고 마른 사람들이 줄에 매달려 춤을 추고, 불을 내뿜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놀라고 환호하며 박수를 칠 때, 혼자 갑자기 너무 슬퍼지고 마음이 알알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분들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왠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운명을 살아내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삶의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가난이 그러했고,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채 나의 세계를 암울하게 물들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시를 썼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잠을 잤습니다. 잠을 자면 꿈을 꾸고 꿈에서의 나는 내가 아닐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었던 일들이 나의 것이 아닐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날고, 바다 속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귀신이 쫓아오고 목이 잘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나의 현실보다 잔혹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에서는 회피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슬픔과 웃음 사이의 간극을 그렇게라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 2018-07-22 21:04:37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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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줄

    진리와 위로, 행복. 이처럼 허망한 말들이 있을까. 누군가(대다수가 나를 잘 안다고, 나를 아낀다고 하는 가족, 친인척, 지인들이 대부분)는 나를 보고 왜 이제 와서 시를 보냐고, 때론 시만 읽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럼 난 누군가(나를 다 알고 아낀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을 배워야겠어.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네.” 돌 지난 아이들이 살아 있음의 한 명증으로, 말을 배우기 위해 낱말카드를 집어 들었다면, 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말을 배우기 위해 시를 들었다. 맞다. 그 이유다. 도무지 이 삶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주고받는 말들로는 설명되기도 어렵고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분명히 삶을 향한 말들이지만 그 말들로는 더 이상 삶을 찾아 낼 수 없기에 나는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모든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인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말 아래의 내 심장’, ‘말 너머의 내 그림자’를 찾아 주기 위한 지구 방위대 같다.

    • 2018-07-22 11: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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