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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유리의 눈」

  • 작성일 2018-07-19
  • 조회수 8,609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강정 시집, 『귀신』, 문학동네, 2014.




강정 |「유리의 눈」을 배달하며…



우리는 태어날 때 예쁜 유리병 하나에 제 영혼을 담아서 세상에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환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유리병 속에 우리는 작은 새싹처럼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유리병은 깨지기 마련이죠. ‘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다지도 날카로운 운명을 선물하셨나요?’ 시인은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따끔거린다는 건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병이 깨진 것은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안에서 제 스스로 밀어내는 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팔차원의 흉기로 변한 세계 속에서 난반사로 더 빛나는 ‘너’를 볼 수 있겠어요? 이 강건한 영혼은 만 마디로 반짝이는 색깔들을 볼 수 있을 만큼 멋진 인식의 눈을 가졌습니다.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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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8건

  • 김우재11018

    유리의 눈이라고 하면 누군가가 깨뜨려서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는, 그런 위험한 물건일 줄 알았는 데, 이 시를 읽어보니 단순히 날카롭고 흉기 뿐만 아니라 미지의 빛의 세계를 보여주는, 그런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지닌 물건인 것 같다. 그리고 실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어둠을 태양빛을 통해서 밝은 빛으로 바꾸어 준다. 이는 실명을 단순히 어둠과 앞을 보지 못하는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게 하지 않고 맣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겪어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실명은 빛을 잃는다는 것이 아닌 빛을 얻는다는 점에서 편견을 깨는을 보여주는 게 이 유리의 눈이라는 시이다.

    • 2018-10-29 11:57:37
    김우재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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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04김성재

    처음엔 매끄러웠던 유리병이 깨지자 뾰족한 조각으로 바뀐다는 것이, 그리고 뾰족한 조각들을 이리 선명하게 표현한 작품이 나에게 무슨 생각을 주는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표면적인 모습인 날카로움보다 난반사때문에 아름답게 비춘다는 것이, 자신이 표면적 타격으로 인해 모습이 바뀌어도 희망을 잃지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의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조각으로 나뉜다는것이 수많은 영혼이 빛나며 반짝거리는 모습을 잘 나타낸 것 같다. 내게 유리조각이란 무섭고 다치면 두려운 매체였지만 이 시로 인해서 어쩌면 관점을 바꿔보면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 2018-10-29 11:44:20
    11004김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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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쉬

    뜬금없지만, 유리병의 둥근 형태를 떠올리다 자연스럽게 생각에 붙은 노래가 있다. ‘둥글게 모여 앉아/ 행복했던 작은 가게가 문 닫자/ 처음 눈물을 보인 너/ 나는 조금 놀라서/ 어색하게 웃었지’ (이상은, ‘둥글게’) 위의 시와 앞의 노래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뚱맞다고 핀잔받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에서 유리병이 변하는 모양을 슬로모션으로 지켜본 다음 노래 가사를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노래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시에서 나타나는 사건 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두 노래와 시 모두 일상성에 균열이 간 순간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흔들림없이 견고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알다시피 일상 뒤에는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종종 당황스러운 감정을 마주해봤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가 바로 우리의 인식이 확장되는 순간이라는 것. 사물의 변화가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되어 내 앞에 있는 존재를 보게 하는 순간, 유리에 비친 네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게 일렁이는지, 시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이런 때 어떻게 유효해지는지, 유리병의 용도를 잊은 유리알들은 어떤 투명함으로 세계의 마디마디를 빚어내는지.

    • 2018-08-07 15:21:08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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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람은 반복되는 특정 문양에서 혐오감이나 공포를 느끼듯이, 나는 테이블 가장자리에 유리병을 두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유리병이 깨지는 장면에 대한 상과 그에 따른 호불호의 판단을 이미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훼손된 유리병의 조각들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마음은 인간 삶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사태 속에 긍정성이 있을 수 있으므로, 특정한 선택에 어느 정도의 위험이나 고통이 예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스스로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던 내 입장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이처럼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일순간 그 간극의 폭이 다시금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어쩐지 내 자신이 지긋지긋해지는 기분이다.

    • 2018-07-30 05: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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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야80

    유리의 깨진 조각을 이토록 선명하게 표현하는 말들이 있을런지... 시를 읽으며 처음 느낀 느낌이었습니다. 발톱이며, 흉기이며, 숨은 그림이며, 만 마디로 분절된 눈이라니요. 유리 조각을 보며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시선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진은영 시인님의 병이 깨진 것은 외부의 충격이 아닌 제 스스로 밀어낸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또 한 번 '쿵' 머리를 맞는 듯했습니다. 시를 읽으며 유리는 당연히도 깨어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안의 힘이라니요. 곱씹어 다시 읽어보니 유리가 조각조각 난 어느 순간들의 제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깨어질 때는 누군가에 의해 깨어진 것 같았는데 깨어지고 보니 조각 하나하나를 주워담으며 이전처럼 매끈하게 이어붙이지는 못하지만 조각 하나에 보듬을 때마다 때론 그 조각에 손이 베일 때마다 조각의 단면에 단단히 지워지지 않을 초강력한 진액들이 새어나오는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깨어진 조각을 이어붙인 유리병이 빛을 받아 더 찬란한 난반사를 뿜어내는 상상을요. 깨어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상처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해봅니다.

    • 2018-07-30 03:51:18
    희야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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