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김기택, 「슬픈 얼굴」

  • 작성일 2018-08-02
  • 조회수 9,466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김기택 시집, 『껌』, 창비. 2009.




김기택|「슬픈 얼굴」을 배달하며…



이 사람은 슬픔을 들킬까봐 초조한 것 같습니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으로는 숨길 수 없으니 인생은 원래 슬픈 거야, 이렇게 결론지으면 될 텐데요. 슬픔이 나쁜가요, 슬픔이 죄인가요? 슬픈 얼굴로 먹고 마시고 떠들며 살아도 돼요. 이렇게 말하려다 그만 둡니다. 인생이 그렇다는 건 그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 나가는 엄마가 걱정할까봐 동네 아이에게 맞은 걸 말하지 못했던 소심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우는 얼굴로 달려가도 우리를 안아줄 유일한 사람 앞에서 우린 종종 울음을 참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우리 얼굴을 보고 슬퍼하는 것,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인지도 몰라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44건

  • aperto

    웃음으로 슬픔을 감추는 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집니다. 심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차올랐을 진한 슬픔을 어떻게 한줌밖에 안 되는 웃음으로 가릴 수 있을지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억지를 부려야만 한다면 이 웃음의 농도는 얼마나 진해야 할지를 가늠하다보니 문득 웃음과 울음이 같은 음, 같은 빛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결국 웃음과 울음이 다른 색이 아니기에 웃음의 핏줄이 굵어질 때마다 슬픔이 지나가는 자리가 선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슬픔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한 사람의 얼굴과 그 알아차림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의 겹쳐짐에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까닭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 2018-08-13 08:23:51
    aperto
    0 / 1500
    • 파라솔

      제 생각에도 '웃음과 울음은 같은 음, 같은 빛'일 것 같아요. 웃음과 울음 모두 적은 저를 놓고 생각해보니 해석이 쉽게 되는데요?^^;; 그렇기에 웃음의 핏줄이 굵어질 때마다 슬픔이 지나가는 자리가 선명하게 보일 수 밖에 없음을 연결하여 말씀해주신것 또한 너무 좋았습니다. 더 쉽게 이해가 됐고, 동시에 시구가 더 와닿았어요.

      • 2018-10-10 18:07:58
      파라솔
      0 / 1500
    • 0 / 1500
  • 푸른상아

    '한줌밖에 안되는 웃음을 당장 패대기칠 수도 있었지만' 슬픔이 마치 웃음의 운명을 손에 쥔 듯한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20대 초 늘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이어폰으로 세상과 단절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슬픔이 내장까지 스며들어 나의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에도 왜 그렇게 남들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떻게 그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야하는지 몰랐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이면 그나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이 컸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꼭 들키고 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알아차려 주는 이는 그 슬픔을 함께 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드러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2018-08-19 20:34:48
    푸른상아
    0 / 1500
    • 파라솔

      제게는 그 슬픔을 함께 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푸른상아님이 너무나 부러우네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이 정말 없었던건지 내가 그런 사람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건지 헷갈리기는 합니다. 저는 들키고 싶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진정으로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운명이 저에게도 그런 사람을 선물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드네요.. 저는 요즘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드러내는 방법을 조금씩 연습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혼자요^^ 참 그 것이 어려운 일임을 그리고 너무 소중한 일임을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었기에 슬픈 모습을 보이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떠날 것 같다는 말이 공감됩니다. 너무나 겁이 나는 일이죠.. 떠날 것 같다고 생각하면 마구마구 화도 나고, 안타깝기도 한 생각이 들어요. 제게도 행운이 찾아와준다면, 저와 슬픔을 함께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와 주길.. 저 또한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길 바래봅니다..

      • 2018-10-10 17:48:28
      파라솔
      0 / 1500
    • 0 / 1500
  • 파라솔

    나는 슬픔이 정말 싫다. 나에게 슬픔은 잔인함이다. 나는 슬픔이라면 그 것이 나를 성장시켜준다할지라도 단호히 거절하겠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만큼 슬펐던 적이 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엇은 감추게 된다. 그 때의 슬픔도 그러했다. 미친듯이 감추고 싶었고, 미친듯이 감췄다. 그다지 우습지 않은 농담에도 온 힘을 다해 배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웃음은 기껏해야 한줌이었다. 이 시를 읽으니 그 때의 내가 떠오른다. 시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슬픔의 잔인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다. 슬픔은 외로움을 전제하는지도 모르겠다. 웃음과 수다가 갑자기 그칠까봐 조마조마했다는 구절은 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고, 나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들리기도 한다. 슬픔은 싫다.. 그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그런데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행하고 싶다.. 슬픔은 숙명인가

    • 2018-10-09 19:16:33
    파라솔
    0 / 1500
    • balm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엇은 감추게 된다.'는 글이 제 마음에 와닿았어요. 최근에 내가 들추고 싶지 않은 것을 들추게 되어 불편해진 마음을 발견하고, 왜 나는 이걸 감추고 싶은걸까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감당하기 어려운 그것이 제대로 소화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봅니다. 파라솔님이 감춰야만했던 잔인한 슬픔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고, 언젠가 그 슬픔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 덜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8-10-13 00:25:25
      balm
      0 / 1500
    • 푸른상아

      저는 사랑하는 것으로부터(혹은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것으로부터) 온 무엇인가가 저를 잔인하게 할퀴었던 것 같아요. 혹시나 파라솔님도 그러했나 생각해 봅니다. 그걸 알면서도 또 여지없이 사랑하게 되어 버리는... 이제는 그 슬픔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네요.

      • 2018-10-14 22:55:59
      푸른상아
      0 / 1500
    • 0 / 1500
  • 삶의거울

    슬픔이 한 사람을 뒤덮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식당에서 지인들과 같이 앉아 먹고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그러나 공유되지 않는 슬픔. 그런데 그 슬픔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한건 함께 있는 지인들의 반응이 자신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때문인것 같다. 함께 웃고 떠들지만 공허하고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배를 잡고 웃었다, 조마조마했다 이 부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사람이 너무 안스럽고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 2018-10-11 08:34:57
    삶의거울
    0 / 1500
    • 파라솔

      공유되지 않는 슬픔.. 외로움.. 고독.. 그것들은 공유되지 않기에 한층 더 짙어집니다.. 사람을 만나도 만나도 해결되지 않는 그러한 감정들은, 공유됨으로써 얼마나 사그라들까요? 위로란 건 나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남이 해 주지만 내가 받지요. 받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그동안은 받지 못 했지만..

      • 2018-10-11 18:54:05
      파라솔
      0 / 1500
    • balm

      슬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유가 타인의 반응이 자신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구절에 공감합니다. 제가 그랬었으니까요. 어떤 곳에서 저는 말없는 사람이 되어 웃기만 했습니다. 삶의 거울님 말씀처럼 공허하고 피곤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 자신이 스스로 안쓰러웠었어요. 어떻게 그 때의 제 마음을 이렇게 구구절절 적어주셨나요.

      • 2018-10-13 00:09:30
      balm
      0 / 1500
    • 푸른상아

      너무 동감이 됩니다. 그런 자리를 떠나서 혼자 집으로 오는 길 너무 헛헛하고 더 외로웠던 날이 생각 나네요. 몇 년 전 카카오스토리에 뭔가를 긁적여 지인들과 마음을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울적하고 슬퍼져서 몇 자 적었는데, 그 글을 시어머니가 보시고는(전체공개로 되어 있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다니는데 뭐가 그리 슬프냐"며 날 선 말씀을 던지셨던 날이 생각나네요. 나의 슬픔을 누군가에게 승인받거나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었나 싶어 참 속상했었지요. 그러면서도 나의 슬픔이 정말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 있는 것인가 싶어 혼란스러웠었네요.

      • 2018-10-14 23:11:47
      푸른상아
      0 / 1500
    • 0 / 1500
  • 계곡안개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 시에서도 보듯이 갈대의 온몸을 흔드는 것은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세상과 처음 마주할 때부터 울면서 태어났다. 숙명이다. 삶이라는 자체가 자기 존재를 보전하면서 발달하기 위한 환경과의 관계인지 모른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와 같이 우리는 우리를 위해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자신을 지켜 내며서 살 수 밖에 없다. 하시라도 나의 내부와 외부간의 균형이 깨어질 때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수염이 자라는 속도로 병이 다가오고 그것마저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을 때 죽음이라는 냉혹한 강물에 몸과 마음을 맡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흐르는 강물처럼 다가오는 숙명적인 도전에 응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슬픔은 밀려오지만, 연약한 웃음으로 파닥거리며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그다지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도 슬픔이 울음으로 들킬까봐 배를 잡고 웃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 고향 시골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남은 막걸리 한 사발을 어른들 몰래 처음으로 먹고, 골방에서 울음소리를 참아가며 밤새도록 서럽게 홀로 운 적이 있다. 그때 뒷산 소쩍새 울음소리가 그렇게 서러울 줄은 몰랐다. 사위어 가는 그믐달이 그렇게 처연하게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 줄은 몰랐다. 뒤안간에서 뒤척이는 암소의 볏짚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외로울 줄은 몰랐다. 머리카락 풀어 ‘서걱서걱’ 울어 대는 억새 소리가 내 마음을 그렇게 아리게 할 줄은 몰랐다. 지금도 끝도 깊이도 알 수 없는 슬픔은 강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나는 반짝이는 피라미가 되어 홀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 2018-10-13 00:18:14
    계곡안개
    0 / 1500
    • 계곡안개

      원인도 알 수 없는 강물을 힘겹게......

      • 2018-10-13 01:25:17
      계곡안개
      0 / 1500
    • 파라솔

      계곡안개님이 소개해준 시가 참 아름답네요.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말이 아려오면서 얼마나 살았다고 공감되네요. 사람들은 항상 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도 밥을 먹고, 내일도 친구를 만나면서,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갑니다. 계곡안개님께서는 이 시와 말씀을 통해 '슬픔'은 '산다는 것'의 다른 말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슬픔은 외롭고, 힘겹게 올라가야 하는 강물같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반짝이는' 피라미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원인도 알 수 없는 강물이기에 더 힘겹지만 언젠가는 그 위를 '하하하' 의기양양 올라서며 '나 끝까지 삶을 이겨냈노라. 슬펐지만 살아냈노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그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2018-10-13 17:22:27
      파라솔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