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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슬픈 얼굴」

  • 작성일 2018-08-02
  • 조회수 9,470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김기택 시집, 『껌』, 창비. 2009.




김기택|「슬픈 얼굴」을 배달하며…



이 사람은 슬픔을 들킬까봐 초조한 것 같습니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으로는 숨길 수 없으니 인생은 원래 슬픈 거야, 이렇게 결론지으면 될 텐데요. 슬픔이 나쁜가요, 슬픔이 죄인가요? 슬픈 얼굴로 먹고 마시고 떠들며 살아도 돼요. 이렇게 말하려다 그만 둡니다. 인생이 그렇다는 건 그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 나가는 엄마가 걱정할까봐 동네 아이에게 맞은 걸 말하지 못했던 소심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우는 얼굴로 달려가도 우리를 안아줄 유일한 사람 앞에서 우린 종종 울음을 참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우리 얼굴을 보고 슬퍼하는 것,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인지도 몰라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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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4건

  • balm

    #1.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지. 슬픔은 무심하게 찾아오지. 내가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관심이 없지. 지금이 와도 될 상황인지 아닌지 신경쓰지 않지. 원래 세상은 아랑곳하지 않는데, 누구에게나 그런 것인데, 못내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2. 회식. 값비싼 술과 음식들을 먹으면서, 평소 못다했던 찬사, 사랑 고백을 넘치는 술잔으로 나누며, 모두들 웃는다. 아름답다 못해 몽환적이다. 그 날도 그랬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술은 달았고, 감사하다고, 당신은 정말 최고라고, 나는 여기가 너무 좋다고 서로 서로 더 좋다고 신이나서 외쳤었다. 얼굴 근육이 아프도록 웃었다. 방바닥을 내리치며 웃었다. 배를 움켜쥐며 웃었다. 그러다 집에 가라고 태워주신 택시에 탔는데 그대로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전 남친 동네로 갔다. 그리고 그의 집 빌딩 앞에 서있었다. 찬 바람이 붉어진 얼굴을 식혔다. 어둠 속에서 멍하게 서있었더니 얼굴 근육이 풀렸다. 그러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짧은 통화를 끊고 나니 집에 가도 되겠다 싶었다. 집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애초에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만나 푹 안기고 싶었을 뿐. 내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 누군가를 만날 순 없는 상황이니, 그저 기다렸던 것이었다. 우연히라도 그와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에 기대어 그를 기다렸지만, 사실은 내 슬픔이 가라앉길 기다렸던 것.

    • 2018-10-13 01:26:43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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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곡안개

      파티가 화려할수록, 그리고 그 대화의 수사가 찬란할수록 뒷자리는 공허가 밀려오고 공허가 슬픔으로 변화하여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하죠. balm님의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땐 누구엔가 기대고 싶어지고 기댈 그 누구도 없다면, 슬픈 음악이라고 틀어 놓고 슬픔만큼 울고 나면 그 슬픔이 조금이라도 씻겨 나가서 우리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그 누구인가가 겨울 첫눈처럼 찾아오시기를........

      • 2018-10-13 02:38:03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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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토끼

    '아프다고 말하면 정말 아플 것 같아서, 슬프다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웃지.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리 없어, 매일 혼잣말을 해 내게 주문을 걸어, 그래도 자꾸 눈물이 나는 걸 - 8eight '심장이 없어' 中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사고로 엄마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났을 때 한동안 내 슬픔을 대신 해 주었던 노래였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차마 아프다고, 슬프다고 인정하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 슬픔을 마주하면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일에 더 열중하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그러다 문득 찾아오는 순간의 정적들 틈새로 꾹꾹 눌러왔던 슬픔이 나도 모르게 새어져 나올까봐,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은 내 슬픔을 내가 알아챌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1년쯤 지났을까......어느 날 자다가 일어나서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1년이 지나고서야 난 내 슬픔을 나에게 꺼내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나 큰 슬픔은 자기 스스로에게 내어 보이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슬픔을 안아줄 수 있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시인을 말없이 꼬옥 안아주고 싶다.

    • 2018-10-13 08:41:22
    햇살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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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곡안개

      망치질을 하다가 잘못 자기 손가락을 내리쳤을 때의 아픔. 순간 살이 터질 것 같은,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 이후 손가락은 신경이 마비된 상태로 무감각해지며 시간이 지나야만 그 고통을 다시 느끼는 증상.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인증’이 아닐까 가끔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갑자기 찾아온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이나 고통은 자신의 느낌이나 행동이나 생각이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현상이 동반되면서 세상과 나 사이에 안개가 낀 것 같고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멍멍한 상태를 느끼는 것이 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햇살토끼님의 정적이 흐른 1년 뒤의 대성통곡을 절절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한번 이상은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과 고통을 .......

      • 2018-10-13 12:51:05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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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제게는 아직 마주하지 못 한 슬픔들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이런 걸 아마 미해결 과제라고 한다지요? 저는 아직 용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슬픔에 뭉개져 깔려버릴 것만 같아 피하고, 망각하고, 없는 일인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펑'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르겠지요. 그냥 차에 치여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정말 아무 일도 없다가 죽은 사람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겐 눈물도 사치인 것 같습니다. 저도 울고.. 싶습니다..

      • 2018-10-13 17:39:44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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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스스로에게 내어 보이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왜 그런지 참 평화롭게 느껴집니다. 감추고 싶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도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그 마음이 참 좋습니다.

      • 2018-10-14 23:20:17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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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erto

    ❲슬픈 얼굴❳에 대해 올려주신 여러 단상을 읽으면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나는 슬픔을 나누는 일에 매우 소극적이다. 내가 감당하기에도 버겁고 싫고 피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남에게 나누자고 할 것인가. ‘나 슬퍼, 슬프다고!’ 라고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렇게 말한다고 한들 내 슬픔의 깊이를 그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나의 슬픔이 더 깊어지지는 않겠는가. 이런저런 불안과 염려 등으로 슬픔이란 감정은 그렇게 자기 안으로 더 깊숙이 감춰지게 되는 것 같다. ‘혈관과 신경망처럼 몸 구석구석에 정교하게 퍼져 있는 슬픔’이기에 계곡안개님이 소개해주신 ‘산다는 것은 속으로 조용히 우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슬픔은 스스로 열어 보이기에는 너무 겹겹의 감정이기에 누군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년 전 엄마를 잃었을 때 뜻밖의 위로가 되었던 말이 ‘저도 3년 전에 어머니를 잃었어요.’라는 한 동료의 말이었다. 어쩌면 매우 이기적인 마음의 작동인지도 모르겠으나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나만 겪는 슬픔은 없는 것 같기에 슬픔을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2018-10-14 17:18:48
    ap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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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사실 나는 슬픔을 과장해서 위로 받기도 하고, 슬픔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옭아매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최근에도 내 의식을 속인 채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화'라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아량이 넓은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나의 '화'로 화를 입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선택했다. 적어도 슬픔은 계곡안개님이 배달해 주신 시에서처럼 제 몸을 흔들 뿐이니까...나만 감수하면 되는 거니까.

    • 2018-10-14 23:43:55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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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추

    1. 슬픔은 힘이 센가보다. 이 시에서 슬픔은 마치 끝판대장이 마리오를 기다리듯이 그래 한번 까불거려봐라 그래봤자 날 만나면 k.o야를 말하듯 여유만만하다. 내 안의 똑바로 바라보지 않은 슬픔은 내 눈을 더 똑바로 마주보고 싶어 그 덩치를 키우고 있다. 나는 곧잘 회피하는 종류의 사람이라 그 괴물에게 종종 밥을 주곤한다. 그러다가도 어떨땐 그 몸집이 점점 끼여져가는 좁은 병을 깨어버리고 내 앞에 차라리 춤추게 풀어준다. 그러면 오히려 눈마주쳐 당황하는 듯 힘을 잃는다. 2. 순수하게 사람을 믿고, 속고, 환히 웃고, 곧잘 우는 사람을 알고있다. 주변에서 지켜주고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 어쩌면 쉽사리 사람을 믿지 않고, 그러기에 잘 속지도 않고, 적당히 두툼한 웃음으로 슬픈 얼굴을 가리기에 능숙해진 사람은 그보다 더 안쓰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미 숱하게 뒷통수를 맞으면서 그 가짜웃음도 적당한 거리도 배워왔을 것이다.

    • 2018-10-15 03:04:24
    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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