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슬픈 얼굴」
- 작성일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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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김기택 시집, 『껌』, 창비. 2009.
김기택｜「슬픈 얼굴」을 배달하며…
이 사람은 슬픔을 들킬까봐 초조한 것 같습니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으로는 숨길 수 없으니 인생은 원래 슬픈 거야, 이렇게 결론지으면 될 텐데요. 슬픔이 나쁜가요, 슬픔이 죄인가요? 슬픈 얼굴로 먹고 마시고 떠들며 살아도 돼요. 이렇게 말하려다 그만 둡니다. 인생이 그렇다는 건 그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그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 나가는 엄마가 걱정할까봐 동네 아이에게 맞은 걸 말하지 못했던 소심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우는 얼굴로 달려가도 우리를 안아줄 유일한 사람 앞에서 우린 종종 울음을 참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우리 얼굴을 보고 슬퍼하는 것,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인지도 몰라요.
시인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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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의 주인공 캔디다. 캔디는 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고 우리는, 아니 나는 이런 캔디처럼 울음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사회인이 되어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쯤이나 지났을까? 선배들과의 회식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었다. “절대! *** 앞에서는 속상해도 억울해도 울지 마라. 울고 싶을 땐 집에 가서 애국가 틀어놓고 이불 뒤집어쓰고 너 혼자 울어. 그게 이기는 거야.” 외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별다른 반전 없이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음악을 듣다가도 울고, 그림이나 사진을 보다가도 울고, 드라마나 영화, 연극을 보다가도 물론 울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코미디 프로그램과 명랑만화를 볼 때도 눈물이 난다. 선배 말은 다 잊어버리고 억울하거나 속상할 때도-운다고 달라질 일 없다며 박준 시인도 말했지만- 눈물이 난다. 혼자서도 울고, 자다가도 울고, 내 앞에 누가 있어도 운다. 울다가 제일 난감할 때는 우는 나를 달래주는 사람들 앞에서인데,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감동스럽고 또 미안하기까지 해서 눈물이 그만 잦아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인데 하지만 나의 마음과 눈물샘은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 좀처럼 멈추지 않을 때다. 이랬던 나도, 위로해주던 상대방 앞에서 슬픈 얼굴을, 눈물을 기꺼이 멈췄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내 앞에 그 사람이 함께 슬픈 얼굴로 울어줬을 때이다. 슬픈 얼굴을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던 그 순간은 어쩌면 내가 슬픈 얼굴 앞에, 눈물 흘리는 상대방 앞에 속수무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슬픔보다 그 죄책감으로 인해 슬픈 얼굴을, 눈물을 참았던 것 같다. 눈물 많은 나도 울고 나면 늘 죄책감을 갖곤 했으니까. 이 글을 쓰면서 다소 정리된 생각! 고쳐먹은 생각!! 슬픈 얼굴 앞에 울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는, 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다. 함께 울어 주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살아오며 적어도 한번쯤은 마주했을 누군가의 눈에 비칠 슬픔이 두려워 애써 참아내는 그 모습이 때론 나와 같아서, 때론 누군가의 모습 같아서... 그리고, 그때 보았으나 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슬픈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우리는 안다. 슬픈 얼굴이 꼭 우는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울지 않는 얼굴보다 우는 얼굴보다 얼마나 슬픈 얼굴인지도. 박완서의 에 이런 글이 나온다고 한다. "잘 버티고 극복한게 아니예요.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인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으시죠?" 라는. 슬픔이 작아지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참고 누르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살면서 모든 슬픔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눈물겨운 노력 대신 애써 참는 울음 대신 조금은 울어도 괜찮은 마음을 안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적잖이 신기하다. 슬픔이 가진 얼굴에 관해 이렇게나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다니. 슬픈 얼굴을 오래 들여다볼 힘이 있다니. 나라면 좀 무서웠을 텐데. 슬픈 얼굴은 곧잘 슬픈 얼굴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아니, 그럴 것이라고 지레 생각해버린 탓에 슬픈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지만... 문학집배원의 말에 나는 좀 들킨 기분이 든다. 나 역시 엄마가 걱정할까봐, 또는 타인들의 눈에 비친 내가 약하게 보일까봐 슬픈 얼굴을 꾹꾹 참은 기억이 떠오르기에. 눈물을 밖으로 흘려보내기보다 속으로 밀어넣는 것에 더 익숙하고, 그것이 힘이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깊숙이 내려보내기만 해서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눈물은 언젠가 폭포가 되어 내 뒤를 따갑게 할까? 그것이 못내 두려우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이제 나는 울고 싶을 때를 아는 사람들이 부럽고, 펑펑 우는 것이 힘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아야지. 걱정할 것이 두려워서 걱정하는 바보는 이제 되지 말아야지. 그럼 나도 울 수 있겠지.
묘사적 글쓰기 연습생입니다. ^^ 슬픈 얼굴 시 잘 배달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슬프지만 숨기고 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이... 김기택 시인의 섬세한 표현과 시적사유에 감탄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