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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 「가정의 행복」

  • 작성일 2018-08-16
  • 조회수 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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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김안|「가정의 행복」을 배달하며…



교과서에서 게젤샤프트(이익사회)와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를 처음 배웠을 때는 헷갈리지 않았어요. 둘을 정확히 구분해서 시험문제에 정답을 쓸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모르나 봐요. 이 구분대로라면 당연한 일인데도 회사 동료들의 이해타산적인 모습과 나의 비굴함에 상처를 받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다정한 마음의 연대를 꿈꾸기라도 했다는 듯 말입니다.
적지에서 철수하듯 집으로 달아나며 우리는 가정의 행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나 돌아와도 무능하고 비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아요. 영혼이 전등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의 뜨거운 이마에 손을 얹어보지만 이 손의 서늘함으로는 열을 식힐 수도 병을 고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자꾸 작은 이마를 걱정스레 쓰다듬고 이 별에서의 행복을 가정하며 무언가 시도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요?

시인 진은영


작품 출전 : 월간『현대시』 2018년 5월호.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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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2건

  • 11015 이서진

    가정의 행복을 읽으며 나는 우리 어머니와 저의 관계를 먼저 생각나게 하였다 어머니랑 저랑 생각이 다르셔서 다투시지만 서로 생각해서 다투고나서도 나를 생각하여 먼저 기분을 풀으시고 나에 대해서 더 생각하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 시를 읽으면서 느꼈다 어머니의 기분을 이 시는 정말 잘 표현하여서 읽으면서 울음이 조금씩 나왔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감정은 오고 가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아서 그 감정의 우울함이 잘 드러나서 잘 읽었습니다

    • 2018-10-29 12:15:55
    11015 이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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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희야80님 말씀처럼 다른 분들의 감상을 함께 공유하며 시를 더 풍성히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좀 이르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습니다. 내 부모가 만들어 놓은 그 공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나의 새로운 공간에서 모든 것을 'reset'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나도 어리석게 닮고 있었습니다. 나의 관심은 늘 바깥의 세계에 머물고 내 손은 다른 이의 머리 위에 놓였습니다. 내 가족의 마음을 듣고 위로해야하는 순간에도 형식적인 말이 다 였습니다. 편안한 삶에 대한 경계와 누리는 것에 대한 대가를 고통스럽게 치러야한다는 괴이한 신념이 나와 내 가족을 아프고 서운하게 했습니다. 이제는 이마 위에 얹은 손과 비겁한 글 쓰기의 손이 공존함을 이해하려는 중입니다.

    • 2018-08-20 10:51:24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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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쉬

    할 말은 많지만 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말해버리고 싶다. (...) 이 글은 그런 마음의 고백이다. 한때 나는 체념에 깊이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지만 체념을 이전과 이후를 삭제해버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를 읽고 난 지금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체념이 주는 매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우리에게 남겨진 피안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 피안이 마치 가정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도 나는 삿된 마음에 붙들려 있었다. '가정家庭이든 가정(If)이든, 글쎄, 가정이 피안이 될 수 있을까.' 어제의 고통은 오늘의 무용담이 되고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슬픔은 미학이 되지만 이런 종류의 체념은 아무 곳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체념이야말로 삿된 것이니까. 그런데... 체념이 '믿고 싶은 그러나 두려워하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어떨까? 공동체도 집단도 영 불편한 나는 왜 자꾸 그곳에 머물러있는 것일까. 그 마음의 정체를 삿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설령 삿되더라도 멈출 수 없을 것. 무능에도 능이 있듯, 가정에 피안이 있다고 믿는 믿음처럼. "영혼이 전등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하는 문학집배원의 말에서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를 해체하는 시발점이 된 영화('가족의 탄생')였다.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취하는 이 영화에서 언급하는 장면은 생뚱맞게도 남녀가 이별하는 순간을 그려내는 장면이다. 여자의 집 현관문 앞에서 남자는 단단히 상처받은 얼굴로, 모진 말을 쏟아내며 여자를 밀어낸다. 여자는 "그런 것 아니야."라는 말로 남자를 붙잡아보지만 이미 늦은듯하다. 그런 순간에 자동센서가 꺼진다. 여자는 어둠속에서 전등을 켜는 손짓을 한다. 등은 다시 켜졌다가, 어느 순간 풀이 죽듯 꺼진다. 여자는 머리 위로 손을 들어보이는 행동을 멈출 수 없다.

    • 2018-08-20 09:50:36
    브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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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다/아니다'란 잣대로 가차없이 행했던 무수한 처단들.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에서 나 자신이 고통받는 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고통을 가하는 자일 수 있다는 서늘한 자각. 가장 안온하다고 믿고 싶고 그렇게 보존하고 싶은 환상의 공간에 들어앉아 있는다 해도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슬픔과 무력감을 막기에 가정(家庭)은 종종 역부족이다. 하지만 '어제'에는 고통받았던 나뿐만 아니라 고통을 주었던 나도 들어있다는 걸 제대로 기억하려는 순간, 슬픈 손은 가정(假定)의 허허로운 손짓을 넘어서서 이제까지와 다른 것을 붙잡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가능성을 담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2018-08-20 08: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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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야80

    시를 읽고 진은영 시인님의 배달글과 다른 분들의 댓글을 읽고 난 뒤, 시에 대한 어떤 감상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 시를 읽는 묘미구나 싶었다. 처음 '가정의 행복'이란 제목을 읽고 나는 따뜻한 가족의 풍경이 그려질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첫 행을 시작으로 시를 다 읽고 난 후에 '가정'은 'if'의 의미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이런! 아래 한줄님의 댓글을 보며 나와 정반대 시선에 '아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시인이 의도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중의적 표현으로 읽는 이에게 혼란 속의 쾌감을 주고자 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통한 듯 싶다. 하지만 상쾌하고 가벼운 쾌감이기엔 시인의 시는 제법 무거웠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우리 삶에 가정하며 살아가는 것들. 사실과 진실보다 앞세운 가정 위에 우리가 지켜가는 가정의 행복이 무겁게 느껴진다.

    • 2018-08-20 02:37:21
    희야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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