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 작성일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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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를 배달하며…
아버지는 막내딸 집에 11시 39분 28초에 멈춰선 손목시계를 두고 가셨군요. 손녀딸들과 찍은 사진 몇 장, 밤새도록 들리던 심한 기침소리와 함께요.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애통한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그들이 더 따듯한 추억을 담고 갈 수 있도록 왜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큽니다.
그러나 떠난 이들이 원했던 건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천국에 챙겨갈 좋은 추억이 아니라 이곳에 깜빡 두고 가 잃어버릴 물건들. 아버지는 정말 아끼던 오리엔탈 금장손목시계를 딸 곁에서 분실하려고 기별없이 들이닥치셨어요.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 물건의 주인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정끝별 시집, 『와락』,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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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3건
당장 다음주가 엄마의 환갑이다. 환갑 기념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국내여행이고, 2박 3일 여행이라 별 대단치 않은 것 같은데도 마음이 되게 복잡하다. 집에서 1시간 내외로 걸리는 인근 친척집으로 제사지내러 가는 것 외에 우리 가족들이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가족들과 처음 하는 여행이라니... 너무 기분이 묘하다. 좋다 싫다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냥 이상하다. 나에게 가족은 이렇게 어렵다.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시를 읽고 단상을 끄적거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마음이 불편하다. 내 불편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처럼 단상도 뚝뚝 끊기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할아버지께서도 생전에 금장 시계를 차셨던 것 같다. 확실치는 않지만,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다니셨던 분이니 시계도 있으셨을 것이다. 화자의 그리움이 잘 느껴져서 나 또한 읽고나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화자의 아버지는 막내딸의 집에는 들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너무 어리게만 봐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 게 아닐까? 아니면 막내딸에게 뭔가 미안한 점이 있었나 숨겨진 사연이 있겠지 싶다. 시인이 연세가 많은 분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활동하는지 직접 보고 느낀 것이 잘 드러난다. 시 속의 아버지가 갑자기 들이닥쳐 식사를 하고 손녀딸을 안고 사진을 찍는 듯한 모든 행동이 마치 앞일을 알고 행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렇게 헤어짐을 준비하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내가 남겨지는 게 아니라 떠나가는 입장이라면 무척 다를 것 같다. 내가 미래에 만약 부모가 된다면 자식들에게 의지하게 되는 마음은 얼마나 애틋할까 싶고 있지도 않은 자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고생을 시키지 않게 열심히 준비해놔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에 충실한 생활을 해야겠다.
아빠와는 17년을 함께 했다.이후로 33년을 아빠 없이 살었지만 아빠와의 기억은 짙다.아빠가 돌아가신 나이를 넘기고 나니 내가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져버렸다.그래서인지 아빠로서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내야했던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만약 살아계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하실까.상상을 해보곤한다.아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보니 안쓰럽단 생각이 든다.그래서 기도한다.그래도 아빠를 좋아했다고 잘 해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