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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 작성일 2018-08-30
  • 조회수 3,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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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정끝별|「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를 배달하며…



아버지는 막내딸 집에 11시 39분 28초에 멈춰선 손목시계를 두고 가셨군요. 손녀딸들과 찍은 사진 몇 장, 밤새도록 들리던 심한 기침소리와 함께요.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애통한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그들이 더 따듯한 추억을 담고 갈 수 있도록 왜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큽니다.
그러나 떠난 이들이 원했던 건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천국에 챙겨갈 좋은 추억이 아니라 이곳에 깜빡 두고 가 잃어버릴 물건들. 아버지는 정말 아끼던 오리엔탈 금장손목시계를 딸 곁에서 분실하려고 기별없이 들이닥치셨어요.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 물건의 주인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정끝별 시집, 『와락』, 창비, 200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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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3건

  • 파라솔

    목이 메인다. 큰오빠 부축에 기별없이 들이닥친, 천식에 쌕쌕거리셨을 아버지에 목이 메인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에 목이 메인다.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내 딸을 사랑하는지, 품 속의 자식이었던 내 딸이 얼마나 그리웠을지가 시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시인이 아버지의 죽음을 끝이 아닌, 오리엔트와 천식의 유전으로 시작과 이어감으로 재해석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우리 오리엔트에서 다시 만나요.

    • 2018-09-04 10:45:30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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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어느 밤, 아버지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었다. 잘 있냐고. 생뚱맞게. 1분도 채 되지않고 끊긴 통화는 나에게 의아함만을 남겼다.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은 그 전화의 의미를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생뚱맞은 타이밍의 아버지의 전화가 갑작스런 시인의 아버지의 방문과 겹친다. 사랑을 의아함으로밖에 느낄 수 없이 키운 아버지가 원망스럽지만 '아버지'라고 하면 항상 죄송한 '나'는 슬프다.

      • 2018-09-04 11:16:08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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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면 시적 화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그들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파본 경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 보지 못했던 딸이 행여나 자신처럼 짙은 아쉬움으로 오래 힘겨워 할까봐 괴로움이 아니라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먼저 발걸음을 하시고 물건을 하나 떨구고 가신 것 같다. 몇 년 전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것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실오라기 하나라도 기억하지 말고 다 잊고 가뿐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해 주고 싶어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먼저 떠나 보냈던 사람을 너무 오래 끌어안고 있어서 꽤 많이 힘들었었나 보다. 그리고 가끔은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욱신거리는 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 2018-09-04 08: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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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시인의 아버지의 과거를 생각해 보신 앗님의 상상력 혹은 여유가 부럽네요~ 저는 감상하기도 벅찼습니다^^ 어렵네요.. 남겨질 사람들과 떠날 나..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어요. 그러나 헤어짐이라는 것에 매우 민감한 저입니다. 끝은 너무 슬픈 것 같아요. 그 것은 다시는 보지 못 하고, 만지지 못 하는 것이니까요. 실오라기 하나라도 기억하지 말고 가뿐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했던 앗님의 말이 저는 더욱 가슴이 아프게 느껴지네요. 아무도 앗님을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신 글에 감사드립니다.

      • 2018-09-04 11:32:34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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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erto

    암으로 투병 중이신 지인 분의 말씀이 사람들 중에 만나서 반가운 사람은 아들뿐이라고 하시는 걸 들으며 흠칫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단호한 그분의 말씀에 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간절해지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시에서 처럼 15년 만에 딸의 집에 찾아가 하룻밤을 지내는 것, 고작 숟가락 하나 더 놓은 밥상을 달게 맞는 것, 그리고 손녀딸을 품에 안고 사진 한 장 찍는 것. 그렇게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들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행동들이 떠나는 이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남겨진 이들에게 선물을 하고픈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뜻밖에 찾아오신 아버지와 보낸 하루의 시간, 남겨진 사진, 부러 풀어놓으신 시계가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말입니다. 문득 오매불망하던 금장시계와 같은 내 생의 소중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집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 2018-09-04 00:18:58
    ap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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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우리들의 글도 소중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저도 떠나는 이의 자기만족이라기엔 남겨진 이들에게는 매우 큰 선물이 되기에 자기만족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셨는데 참 어렵네요.. 그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왜 인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등의 깊은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조용히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8-09-04 11:40:21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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