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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사랑이 없는 날」

  • 작성일 2018-09-13
  • 조회수 2,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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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곽재구|「사랑이 없는 날」을 배달하며…



사랑이 없는 날은 불화하는 날, 반목하는 날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려면 열렬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소란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 없는 날의 고요는 웬일인가요? 들끓은 마음 없이도 홍매화와 목련은 어울리고 은서네 피아노학원과 종점 세탁소 사이 집으로 가는 길은 정답군요. 무슨 병은 없는지, 별고 없으신지 간간이 소식을 묻고 전하는 마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런 자유의 순간을 예감하는 것 같아요. 물론 ‘겨울을 이겨내는 봄’처럼 대립과 극복의 비유가 우리 삶에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부정이든 긍정이든 세상을 무엇과 무엇의 관계 속에 잡아두려는 마음 너머에서도 무언가 아름답게 존재합니다. 승객을 다 내려주고 홀로 가는 버스와 홀로 눈 쌓인 언덕길과 저 홀로 빛나는 초승달처럼.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곽재구 시집, 『와온 바다』, 창비, 2012.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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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6건

  • 햇살토끼

    왜 시 제목이 '사랑이 없는 날'일까? 혹시 제목이 의미하는 건 '(나의) 사랑이 (이제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날'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나에겐 10대 시절부터 아주 오랜 시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서로 확실하게 사랑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사이였다. 그렇지만, 인생의 타이밍에서 우리는 늘 어긋나서 본의아니게 그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계절의 시작과 끝인 봄과 겨울 사이의 시간 속에는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래, 그 사람은 이걸 좋아했었지...이걸 싫어했었지...우리는 식성도 취향도 달랐었지.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존재했지만(너와 내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지만), 그 간극 사이에는 남들에게 일일히 설명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숨쉬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어째서 해피엔딩이 되지 못한 걸까? 참으로 오랜 시간 생각해 본 것 같다. 너와 나 사이는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그러다 마지못해 결론을 내렸다. 인생에서는 서로 사랑하더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이 있을 수 있구나. 이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사랑도 내 곁을 떠나고, 홀로 남은 마을버스와 초승달처럼 나도 혼자가 되어버렸지만, 홀로 남겨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사랑의 안부를 물어본다. 몸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 2018-09-21 08:09:10
    햇살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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