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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클로로포름」

  • 작성일 2018-09-27
  • 조회수 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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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송승환|「클로로포름」을 배달하며…



우리는 정신 차리고 똑바로 걸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신곡』의 천국편에서 철학자 아퀴나스의 입을 빌어 다르게 말합니다. “부디 ‘네’와 ‘아니오’를 앞에 두고 가늠하다 지친 사람처럼 느리게 움직이도록 당신 발에 추를 달기 바랍니다.”* 삶이 던지는 물음 앞에서는 성급한 긍정과 부정을 내려놓고 지친 사람처럼 걸어보세요. 그렇게 걸으며 사물과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은 연기처럼 풀리며 내 속으로 스며들 거예요.
시인은 우리에게 견고한 세계를 기화시키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클로로포름에 취한 듯, 긴장을 풀고 움직여 봐. 그리고 천천히 둘러봐. 그러면 의식의 습관이 깨어진 틈 사이로 당신은 처음 보는 미소와 푸른빛을 만나게 될 거야.’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3』, 박상진 옮 옮김, 민음사, 2013.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송승환 시집, 『클로로포름』, 문학과 지성사, 2011.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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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3건

  • 삶의거울

    시를 읽으며 의식 저 아래로 침잠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한없이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모습, 그 사람과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눈을 감는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은 어떨까? 요즘 들리는 사건 사고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병원 환자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안을 일으킨다. 그러다 어차피 살아가다 한번은 반드시 마주할 일이지 생각하면 담담해 지기도 한다. 위내시경 준비를 하며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침대 옆으로 긴 창이 있고 하늘과 구름이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떠날땐 이런 편안한 상태면 좋겠다 , 그러면 떠나는 날이 덜 무서울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시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의식의 습관이 깨진 틈 사이로'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바쁘게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만 벗어나보자. 취한듯 긴장을 풀고 '의식의 습관이 깨진 틈 사이로' 스며들어가 보자. 깊은 내면의 나와 닿아보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때 더 나다운 나를 만나게 될 것 같다.

    • 2018-10-07 09:02:09
    삶의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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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m

    #1 오전 11시 45분. 잠이 부족한 날이나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된 날 점심시간에는 마치 약속이 있는듯 서둘러 사무실 빌딩을 빠져 나와 스타벅스 2층으로 향했다. 통유리 창밖을 바라보게 배치된 1인석은 인기가 많은 자리라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된다. 뜨거운 차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 150도 정도로 걸터 누워 오리털 패딩을 내 몸 위에 덮고, 뜨뜻한 보온 물주머니를 품에 안은 채 잠을 잤다. 30분 정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10분 쯤은 실제로 잠에 빠지는 것 같고, 나머지 시간에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아린 심장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유리 빌딩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이 대기 속으로 풀려나간다.’ 라는 구절은 12시 즈음 건너편 빌딩에서 사람들이 쏟아졌던 모습을 연상케 하여 나를 그 겨울날의 나른함으로 인도했다. 패딩 모자를 얼굴 끝까지 덮으면 카페의 소음보다 내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 패딩 안에서 나는 일이 아니라, 상사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챙겼다. 12시 30분이 지나면 스타벅스는 여느 고등학교 점심시간을 방불케 할만큼 시끄러워지고, 그 번잡함 속에서 나도 나만의 시간을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차를 마시고, 빵을 먹는다. 핸드폰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들고온 책을 한두줄 읽고, 밀린 핸드폰 메세지를 확인한다. 그렇게 카페를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 짧은 길, 공기는 차갑지만 햇살은 따스하다. 그 때 바라본 하늘은 그저 푸른게 아니라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표현과 어울린다.

    • 2018-10-07 22:27:12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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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m

    #2 수면제가 담긴 유리병 뚜껑을 열고 그 향을 맡아본 적은 없지만, 매년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마취 주사 바늘을 팔에 꽂아야 했다. 나는 마취에 취해 정신 없이 자는 그 느낌이 좋아 일부러 극도로 바쁘고 피곤한 때에 건강검진 예약을 잡기도 했다. 마취에 깨어난 뒤 간호사분께 ‘마취 주사는 언제 맞나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쉽게 마취에 빠지는 편인데, 잘 일어나지는 못해 조금 더 누워있도록 권유받곤 했다. 이렇게 깰듯 말듯 잠에 취해 있을 때 나는 날개를 다친 아기새가 된 듯한 기분에 약간은 울컥한, 감성적인 모드가 된다. 이 때 간호사분의 부드러운 돌봄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와 ‘평생 따뜻한 일을 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야심 찬 마음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 2018-10-07 22:30:25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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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미아

    무서운 속도 장만호 다큐멘터리 속에서 흰수염고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죽어가는 고래는 2톤이나 되는 혀와 자동차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내레이터는 말한다 자동차만한 심장,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도 있는 심장. 나는 잠시 쓸쓸해진다. 수심 4,821미터의 심연 속으로 고래가 가라앉으면서 이제 저 차속으로는 물이 스며들고 엔진은 조금씩 멎어갈 것이다. 그때까지 마음은 어느 좌석에 앉아있을 것인가. 서서히 죽어가는 고래가 저 심연의 밑바닥으로 미끄러지듯이 가 닿는 시간과 한 번의 호흡으로도 30분을 견딜 수 있는 한 호흡의 길이 사이에서, 저 한없이 느린 속도는 무서운 속도다. 새벽의 택시가 70여 미터의 빗길을 미끄러져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무서운 속도로 들이받던 그 순간 조수석에서 바라보던 그 깜깜한 심연을, 네 얼굴이 조금씩 일렁이며 멀어져 가고 모든 빛이 한 점으로 좁혀져 내가 어둠의 주머니에 갇혀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링거의 수액이 한없이 느리게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아,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니 고래야, 고래야 너는 언제 바닥에 가 닿을 거니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져버리고야 말때, 등을 돌리고 내보인 내 왼쪽 뺨도 붉어지기를.'

    • 2018-10-08 05:01:13
    우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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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소감을 올리는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루다 겨우 몇 자 적고 있다. 시가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다른 시인님들의 감상에서는 동감할 수 있는 것이 이 시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멈춰버리고 만다. 술에 취한, 잠에 취한 내 모습을 떠올리며 시에 닿으려 노력했지만 그건 지금의 나의 마음에서는 진실하지 않은 것 같다. 전신마취하고, 수면 내시경 경험도 있지만 완전히 의식의 상태에서 완전히 비켜나는 것이니 이 시의 느낌과는 또 다른 것 같다. 뭘까.... 나는 이런 상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은채 내게 침투하는 것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건 아주 오랜 전 겪은 일로 인해 생긴 내 몸의 반응이다. 내 몸은 잊지 않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 2018-10-08 09:16:07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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