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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청혼」

  • 작성일 2018-10-25
  • 조회수 6,575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배수연|「청혼」을 배달하며…



선물상자가 불 위에서 혼자 끓고 있는 냄비처럼 느껴질 때까지,
냄비 속의 앵두가 익다가 졸아들어 앵두잼이 될 때까지
내내 당신 곁에 있겠어요. 오직 사랑하는 당신 곁에.
아침마다 앵두잼 병뚜껑을 열어 당신과 함께 떠먹겠어요.
(우린 둘 다 너무 단 건 안 좋아하지만······)

내가 드리는 것이 슬픔이든 원망이든 남루함이든
나와 함께 맞아야 하는 것이 폭우든 폭설이든
결코 거절하지 않는 이는 당신뿐이랍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여러분 곁에 있으신지요?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배수연 시집, 『조이와의 키스』, 민음사, 201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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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0건

  • 계곡안개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로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 시인님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고,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시로써 이영도라는 한 여인을 향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20여 년 동안 보낸 편지는 무려 5,000통이 넘었다는 말도 있다. 오늘 소개된 ‘청혼’의 시를 읽으면서 청마 유치환 시인님의 ‘행복’이 생각난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수많은 낮과 밤이 지나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우리의 머리에 폭설로 앉는 동안에도 나의 눈은 너의 곁에서 깜빡깜빡 입맞춤을 하고 있을 거라는 한 대상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너에게 매일매일 청혼을 하지만 당신이 나를 받아주던 아니던 상관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할거라는 조건 없는 사랑을 느낀다. 너의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빨갛게 부푼 곳에 아낌없이 맑은 꿀을 발라 줄게. 바람 없는 날의 나뭇잎은 정말 움직이지 않는 걸까? 아니야, 당신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은 바람이 없는 날에도 항상 흔들리고 있어! 때로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나의 지친 사랑들을 네가 알아봐줄까? 너의 외투 속을 날아다니는 나의 사랑은 사랑의 둥지를 부수지 않고 너를 꼭 안아 줄 수 있을까? 선물 상자를 열면 사랑이 너무 뜨거워 수증기가 올라 온다. 사랑들이 한 움큼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사랑의 눈 맞춤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이제 상처 난 당신의 목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남았구나. 너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내가 아직 잊지 않았다면 매일매일 너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함께 호호 불어 가며 익은 사랑를 먹자. 수많은 낮과 밤 흘러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우리의 머리에 폭설로 앉은 동안에도 나의 눈은 너의 곁에서 사랑의 입맞춤을 하고 있을 거야.

    • 2018-11-05 01:15:48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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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m

    ‘너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아직 잊지 않았다면’ 에서부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워서. 시가, 화자의 속삭임이 아름다워서. 화자는 달콤하게 익어가는 앵두 한움큼을 선물했다. 선물 상자를 연 ‘너’가 뜨거운 수중기로 앞을 보지 못할 때, 화자는 ‘너’에게 주문을 걸고, 이야기한다. 즐거움도 아픔도 어려움도 달콤함도 매일매일 함께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기나긴 세월, 함께 늙어가는 동안 너만을 바라보고 있을거라고. 나는 함께 할 영원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선물할까. 매일매일 주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 캐롤에 흔들리는 종처럼 신나게 춤을 추는 양을 만나고, 빨갛게 부풀어 있는 상처에 아카시아 꿀을 발라주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흔들리는 지친 마음 조각을 바라봐주고, 자유를 갈망하는 여린 새의 공간을 지켜주며 살아가다 보면,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다보면, 그 선물을 고를 수 있을까.

    • 2018-11-04 19:05:58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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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밤 눈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밤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김광규

    • 2018-11-04 12:47:00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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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lm

      저도 따스한 밤이 되고 싶어요. 좋은 시 감사해요, 푸른상아님.

      • 2018-11-04 19:08:24
      b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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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거울

    시를 읽으면서 사랑, 설렘,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 나의 마음을 당신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 청혼하는 떨림이 전해졌다. 앵두를 뜨거운 수증기로 익히면... 건드리면 그대로 톡톡 터져버릴... 뜨겁고 상큼한 사랑을 함께 하자, 세월이 흘러 하얀 머리가 되는 동안 내내 사랑하자... 당신의 외투 속 새의 둥지를 깨뜨리지 않을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나의 질문이고 다짐이다. 결혼하고나면 부부라는 한 덩어리가 되고, 양가 부모님께 자녀라는 한 덩어리가 되고, 엄마 아빠가 되면 부모라는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너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서로 애써서 경계를 지키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것 같다. 그냥그냥 살다보면 외투 속의 새는 다 떠나고, 공허함을 껴안은 두 사람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 2018-11-04 09:44:37
    삶의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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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토끼

    애정의 눈길로 자세히 보아야만 알아챌 수 있는 나의 지친 헝겊들을 알아봐주고, 내 사랑의 욕심만으로 너를 꼭 안아버리는 바람에 너의 외투속 작은 새의 둥지를 부수지 않고자 하는 배려의 마음. 나에겐 시인의 마음이 제일 와 닿는 구절이었다. 이런 구애의 표현을 하는 사람이라면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좋은 것들, 힘들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함께 소중히 여겨주고, 상대의 볼품없는 모습들도 있는 보듬어 줄 수 있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2018-11-04 09:17:30
    햇살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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