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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괄호처럼」

  • 작성일 2018-11-08
  • 조회수 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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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이장욱|「괄호처럼」을 배달하며…


문장을 쓰고 나서 괄호를 치면 안전한 기분이 듭니다. 포옹하는 기호처럼 느껴지거든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인간의 최초의 몸짓은 포옹”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아기들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손을 허우적댑니다. 노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팔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해요. 이 “두 번의 날갯짓 사이에서” 우리의 삶이라는 여행이 지나갑니다.*
시인의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은 두 팔의 포옹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는 포옹의 여러 양상을 보여줍니다. 눈꺼풀을 열어 네 모습을 부드럽게 안기, 입 속에서 신선한 과일을 씹으며 날카롭게 안기. 누군가에게 숨 막히게 안기거나 구덩이 같은 절망에 안기기도 하면서 응시와 소화와 사랑과 절망의 포옹으로 가득한 생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포옹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 자세를 오래 유지하려면 기념일이나 기념반지 같은 것이 필요해요. 마지막 숨결 속에서 허공을 향해 우리의 포옹이 풀리기까지.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시간의 목소리』, 후마니타스, 2011.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이장욱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 지성사, 2016.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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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건

  • 푸른상아

    괄호의 시작은 "열기"이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의도와 목표가 있는 행위도 있겠지만, 무엇을 담을 지, 어떤 것이 담길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괄호의 첫 몸짓은 열기이다. 이것은 용기있는 자기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 안에 무엇인가가 "담긴다." 나의 괄호에는 나의 못 다한 말들이 담긴다. 분명이 떠올라 실체가 있는 생각이나 느낌이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혹은 상대가 몰랐으면 하는 내용들이 담긴다. 그러면 내 마음이 그 내용들을 잘 담아둔다.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잘 담아두고, 수정되고, 변형되고, 때로는 그 안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괄호의 맺음은 "닫기"이다. 한 단위의 괄호가 닫히면 다른 것들이 더 침투하지 않게, 빼앗기지도 않게 그 자체로 구별되어 유지되게 해 준다. 이것은 그 공간을 지키는 의지이기도 한 것 같다.

    • 2018-11-18 22:47:56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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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erto

    글쓰기에서 괄호는 어떤 내용을 구별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이 시에서 표현된 괄호는 마치 수학연산에서 사용하는 괄호를 생각하게 한다. 연산을 할 때 괄호 안에 있는 숫자들은 다양한 계산과정을 거쳐 새로운 숫자로 탄생하는데 ‘내 안에서 너를 살해하고 깊이 묻는’ 다거나 ‘씹어서 소화시키는’과 같은 표현들이 수학에서의 계산 과정을 연상시키면서 괄호가 마치 상대를 삼키거나 품어서 자기 자신과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존재로 상상하게 만든다. 어쩌면 시적 화자가 그리는 강한 사랑의 이미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이가 살아온 험난하고 굴곡진 인생을 자신의 온 시간으로 품고 품어서 자신의 생명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깊은 묵직함이 느껴진다.

    • 2018-11-18 21:53:02
    ap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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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토끼

    간혹 글을 쓰다가 괄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괄호는 자유롭고 비형식적인 표현의 공간처럼 다가온다. 괄호 안에서는 기존의 정해져있는 룰을 벗어나도 얼마든지 이해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괄호 안의 내용들은 때론 생략해도 되는, 추가적인 덧붙임인 경우도 있고, 진짜 숨은 의미인 경우도 있다. 조금은 가볍고 안전한 마음으로 괄호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사랑도 괄호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걸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너의 모든 것을 품고 있고 포함하고 있는 모습이 사랑과 유사하다. 하지만, 난 시인처럼 수건으로 네 입을 꼼꼼히 틀어막는 그런 괄호가 되고 싶지는 않다. 창문조차 없는 철옹성같은 괄호는 숨이 막힌다. 그런 괄호라면 포함되고 싶지도, 포함하고 싶지도 않다. 언제든지 바깥을 둘러볼 수 있고, 햇살도 바람도 잘 들어오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넘어갈 수도 있는 안전한 울타리 정도의 괄호이고 싶다.

    • 2018-11-18 09:06:56
    햇살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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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거울

    '너'랑 일체가 되어 살았다. 달아나려는 너를 잡아다 내 안에 품는다. 너와 나의 닫힌 관계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이 관계 밖의 것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 너는 어느순간 빨려들고 말거다. 이 관계 밖은 자유로울것 같겠지만, 그곳은 무서운 어둠일 뿐이다. 끝까지 나는 너를 품어 안을거다... 이렇게 읽혔다. 나는 독립적으로 바로 선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자꾸만 어딘가로 묶이고 누구에겐가로 편입되는 느낌이 답답하게했다. 괄호처럼 나를 끌어당겨 임의로 포함시켜 버리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게 했다. 내가 가진 신념들... 그 신념들을 유연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내가 나를 구속하고 그 안에서 숨막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될 것 같다.

    • 2018-11-17 16:45:34
    삶의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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