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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렬, 「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

  • 작성일 2018-11-22
  • 조회수 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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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고형렬|「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를 배달하며…


시인들은 종종 아버지 흉을 봅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시에다 “아버지, 개자식”이라고 쓰기도 했어요. 이 시의 늙은 학생 같은 남자 역시 좋은 아버지는 아닙니다. 아버지, 장남이라 귀하게 여기고 막내라서 이뻐하는 일도 없이 참으로 공평하게 내다버리셨군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에서 미움 대신 슬픔이 느껴집니다. 찢어진 벽지 속으로 들어갔던 ‘나’는 아버지처럼 늙은 학생 같은 아버지가 되었어요. 식구들은 내다버리고 검은 책만 챙겼던 아버지, 검은 책으로 혼자만의 집을 짓던 아버지처럼. 그러고 보니 거미는 참 쓸쓸한 곤충이네요. 늘 뿔뿔이 흩어져, 바람에 자기의 실이 가닿는 대로 집을 지으니 말입니다. 거미의 생에 가보니 혼자 집을 짓는 일이 우리의 숙명인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버지, 당신의 생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고형렬 시집,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창비, 2010.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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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건

  • 계곡안개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20대 때에 부모로부터 독립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독립하기 전 유교적인 정서가 몸에 가득 하신 나의 아버지를 나는 아버지라고 잘 부르지도 못하고 함께 생활했다. 하루에 단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가끔 마주치는 서로의 눈빛 하나로 대화할 뿐이었다. 자식에 대한 정을 절대 표현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서 나는 치쳐갔다. 지치다 못해 때론 버림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중엔 기대하지도 않았고 나 또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자라서 날개가 굳건해진 새끼 새가 스스럼없이 둥지를 떠나듯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립하였다. 독립한 곳은 바로 고시원 쪽방이었다. 누워서 양팔을 다 벌릴 수 없는 쪽방에 누워있으면 마치 관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옆방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 까지 들리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로웠다. 나의 육신은 관속에 있었지만, 나의 정신은 태평양바다를 가로지르는 한 마리 갈매기였다. 떳떳하고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

    • 2018-12-02 19:47:25
    계곡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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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상아

    우리에게 왜 생이 주어지는 것일까...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이 생은 어떤 의미일까... 이 시 속의 거미 가족에게만 문지방이, 슬픈 소리를 내는 것들이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긴 고통의 순간, 짧은 순간의 희열. 또 다른 난관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생은 비극에 가깝다. 그래서 욜로나 소확행같은 말들이 유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에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보고 있는 검은책이 나에게는 성경책으로 보였다. '늙은 학생'같다는 표현이 여전히 책 속에서, 이론 속에서 이 생의 이유를 찾으려는 태도로 읽혀졌다. 나도 많은 시간 종교에서, 학문에서 그 대답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공허해 지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치열하게 삶의 현장에 놓여있는 거미 가족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생을 향해 분투하는 그들의 태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슬프다는 생각조차" 끼어들 틈이 없는 가족의 비극적 미래사도 받아들이며,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지금 나에겐 더 와 닿는 것 같다.

    • 2018-12-02 23:07:36
    푸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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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추

    밖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줄이 흔들리는 백열등 하나 걸고 책을 보는 한 남자도 마치 거미같은 생을 살고있는 것 같다. 그래서 7연의 두번째 행이 그 남자가 먼지처럼 날아갔다는 듯이 들린다. 손으로 꼭 눌러죽이는 잔인함 없고, 소리로 들리지는 않지만 둘째 거미의 앙 하는 울음을 마음에 그려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니 이 남자도 마음 한구석 꽃잎 같은 부분 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황토로 만든 집, 벽지가 찢어진 집에서 이 남자가 읽던 검은 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람이 방 안으로 부는데 옷은 따뜻이 입었을까. 왠지 아닐 것 같다. 거미의 이야기는 '미래사'라는 말로 마치는데, 남자는 거미가족들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 꼭 그 남자의 미래가 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이 시가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 자리 그 마음에 같이 머물러주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니까..

    • 2018-12-06 17:47:51
    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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