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효환, 「마당 약전(略傳)」
- 작성일 20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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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마당 약전(略傳)」을 배달하며…
약전(略傳)은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록한 글입니다. 시인은 마당의 약전을 통해 하나의 공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하나로 고정된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톡 치면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새 문양을 만들어내는 만화경 속 유희가 좋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태어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결혼식장에서 결혼하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죠.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어요.
가족들이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들으며 기쁨으로 두 손을 맞잡던 곳도 마당. 집 밖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아이가 아장아장 걷던 곳도 마당. 그곳에서 혼례를 치루고, 이웃을 만나고, 물그릇을 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어요. 세월이 흘러 숨을 거두기 전 한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방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방문 너머로 자신의 한 생을 오롯이 받아준 눈 덮인 마당을 바라보며 고요히 떠나가기 위해서요. 문득,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집니다.
*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結晶』, 김웅권 옮김, 동문선.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곽효환 시집, 『너는』, 문학과 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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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1건
마당약전은 가족들의 처음과 끝이었다.요즘엔 비싼 집도 마당이 없다.그래서 캠핑을 다니고 강과 산에 텐트를 치고 조그만 공간만 보여도 돗자리를 까나보다. 마당은 바깥의 여유로운 공적공간이기도 하고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다 깃들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을 품고 기르고 지켜보고 마무리했던 옛날의 마당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심지가 굳어보인다.마당의 이야기는 탁 트인 곳에서 꽃과 햇볕과 바람과 눈과 비를 오롯이 다 안고 사람들도 안아주었던 공간에서 비롯된다. 70을 넘기신 엄마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자고 같이 양평까지 내려가 집을 알아보다가 도시가스가, 근처 슈퍼가 없어 시들해져버렸는데 이 시를 읽고 문명의 편리함보다 지친 마음을 품어줄 마당 있는 집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