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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마당 약전(略傳)」

  • 작성일 2018-12-20
  • 조회수 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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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마당 약전(略傳)」을 배달하며…


약전(略傳)은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록한 글입니다. 시인은 마당의 약전을 통해 하나의 공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하나로 고정된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톡 치면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새 문양을 만들어내는 만화경 속 유희가 좋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태어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결혼식장에서 결혼하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죠.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어요.
가족들이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들으며 기쁨으로 두 손을 맞잡던 곳도 마당. 집 밖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아이가 아장아장 걷던 곳도 마당. 그곳에서 혼례를 치루고, 이웃을 만나고, 물그릇을 놓고 소원을 빌기도 했어요. 세월이 흘러 숨을 거두기 전 한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방문을 열어달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방문 너머로 자신의 한 생을 오롯이 받아준 눈 덮인 마당을 바라보며 고요히 떠나가기 위해서요. 문득,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집니다.


* 롤랑 바르트, 『목소리의 結晶』, 김웅권 옮김, 동문선.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곽효환 시집, 『너는』, 문학과 지성사, 201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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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1건

  • 그린북

    약전이란 한 사람의 생애를 간단히 기록한 글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이 아닌 마당의 생애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속에 펼쳐진 이야기가 오래전 시골집에서 펼쳐진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가셨던 인생의 풍경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같아 따스하면서도 정겹고 한편으로는 아련한 느낌마저 준다. 한번도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도시 사람인 내게도 그 시절 그 공간이 선사하는 감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시골집에 가 보았던 추억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당이란 공간은 그야말로 한 사람의 생애가 온전히 펼쳐지는 공간이자 한 가족의 역사가 축적되는 공간이며 이웃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의 장으로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만능 가제트처럼 때에 맞게 공간은 변신을 거듭한다. 때로는 놀이터로, 식당으로, 사랑채로, 성장과 죽음의 의식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그 속에 머물던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펼치며 그곳으로부터 나아가고 다시 그곳으로 회귀한다. 마당의 인생이 곧 사람의 생애인 것을 우리는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곧 나였다’라는 구절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마당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인간인데, 이제는 그 사람들이 마당을 외면한 채 도시로 떠나버리고 마당 홀로 텅빈 공간으로 쓸쓸히 존재 자체가 잊혀져가고 있다. 과연 마당의 운명은 도시속에서 펼쳐지는 개별적이고 내밀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간신히 담고 있는 좁고 폐쇄적인 ‘닫힌 공간’에 밀려 정녕 잊혀질 운명인 것인지...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도시인들은 그저 정처없이 떠도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내게는 갖고 싶다고 해서 쉽게 가질 수 없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 2019-04-09 18:28:35
    그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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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깃털

    마당의 일생..연년이 생을 이어오며 사람들과 뭇생명들의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안식처와 위로가 되어주었을 마당. 누군가 몰래 감춰두었던 간식거리도 온종일 땀흘리며 따온 구슬보따리의 비밀처를 마당은 알고 있었겠지..자식걱정에 정한수 떠놓고 빌었을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도, 어둔 밤 식구들 몰래 눈물 훔치던 슬픔도 다 듣고 보았겠지.. 그러다 발길 뜸해지는 새벽이 되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단한 하루 누이며 그리운 이 생각했을까.. 쉬어가는 틈에 고요히 좌정했을까..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마당. . 세상 무엇이 되었을까. . 마당 하면 시끌벅적 사람들 모여 한판 걸판지게 노는 공간이 떠오르는데 이 시를 보니 참 많은 역할과 마음씀을 하며 보살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 2019-04-09 17:15:36
    깃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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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요19

    이 시를 읽으면서 마당이라는 삶의 터전이 삶의 주체들을 넌지시 바라보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마당은 사람보다 한 차원 위에서 사람의 삶의 과정을 관장하는 커다란 존재로, 그 시간의 역사를 담아 사람의 뿌리를 알려주는 든든한 보호자처럼 보인다. 마당은 유연한 울타리를 가지고 여린 생명들을 보호하고 생명이 자라서 세상에 나아가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대소사들이 마당에서 치루어 졌으니 사람들의 기억에 마당의 곳곳이 함께했을 것이다. 터전이 없어진 현대인들에게는 선택의 가능성이 생긴 만큼 잃는 것도 많아졌다. 아이들은 안전한 시간대에 보호자와 함께 놀이터에 가야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오붓한 가족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마당에서 감자, 옥수수, 수박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대신 가족 여행을 가고 지인들과의 친목도모를 하기 위해 카페로, 레스토랑으로 약속을 잡아 나간다. 결혼, 출산, 장례식 같은 큰일을 위해 결혼식장, 병원, 산후조리원, 장례식장을 섭외하는 것은 더 피로하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돈을 내고 행사를 진행해주는 업체들이 생겨서 편리해진 것 같지만 결혼이나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의미를 느끼면서 가족이 공동체라는 느낌을 가지기에는 모든 것들이 과하게 분업화, 상품화 되어 있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장에서 고모할머니께서 아버지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이야기하시는 것을 듣고 그렇게 미워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먼 아버지 적부터 연년이 이어져 내려온 삶의 터전 속에는 그들의 정성어린 삶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것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 같은 단단한 정체감을 줄 것 같다. 시의 마지막 연에서 마당이 ‘존재마저 희미해진 내 이름은’이라고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삶의 터전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남은 마당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 2019-04-09 16:51:33
    담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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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반

    시를 읽었을 때 어째서인지 처음 떠오른 것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첫 장면이었다. 어린 서희가 뛰놀던 곳이 이러한 마당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만큼 이 시는 향토적인 느낌을 많이 주었다. 정겨운 느낌이 들고, 이런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한번도 없으면서 그리운 느낌을 준다. 마당이라는 것이, 굉장히 한국적인 배경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시에서 말한 대로, 우리 옛 선조들은 마당에서 모든 삶이 이루어진 것 같다. 아기 때 걸음마를 떼는 것부터 어린아이 때 뛰놀고, 어른이 되어 시집가고 장가가고, 노인이 되어 회갑과 고희 잔치를 여는... 이 시는 마당에 대해 썼지만, 결국에는 우리네 삶 그 자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로부터 세상을 향해 무수히 나아가고/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는 말처럼, 마당은 곧 사람들의 고향이었고,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곧 나였다'는 말처럼, 마당은 사람들 그 자체였다. 마당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의 삶을 노래하는 정겹고 멋진 시였던 것 같다.

    • 2019-04-09 00:48:59
    햇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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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빛시

    어릴 적 나의 마당은 놀이터였다. 채송화 봉숭아 … 작고 사랑스런 꽃들이 내 눈높이에 맞춰 나와 함께 자라났고, 대문 앞엔 앵두가 열리고 창고 옆으론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아빠는 이름도 모르는 나무의 머리들을 동그랗게, 동그랗게 다듬어 줬다. 동생은 창고 위 옥상에서 보자기를 어깨에 두른 채 슈퍼맨을 외치며 마당으로 뛰어내려 턱뼈가 하얗게 나왔더랬다. 우리는 명주실로 이를 빼면 마당에 서서 까치를 부르며 처마 위로 이빨을 던졌다.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어느 날 산에서 잡아온 뱀을 유리병에 넣고 촛농으로 병 입구를 막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나는 아빠 곁에 있어서 무섭지 않았다. 그 술병을 대청마루 한쪽에 놓고도 햇볕을 쬐며 도란도란 … 나의 어릴 적 일들은 나에게 아주 조금 남아 있지만 아빠에겐 생생하게, 온전하게 기억되어 있을 텐데… 내게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건 아빠와 함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마당이 보고 싶다.

    • 2019-04-05 00:28:33
    은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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