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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

  • 작성일 2019-01-17
  • 조회수 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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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을 배달하며…


눈이 큰 아이라니,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소년을 닮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소년이 눈을 감으면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이 어릴 것 같은데, 세상에나 그 맑은 눈으로 삥을 뜯고 있군요. 요새 아이들은 참으로 무섭다며 탄식해야 할까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골목을 지나치며 어른이 된 우리의 세계도 중2의 세계. 동료를 폭행하는 회사 오너에게 “수고가 참 많으십니다” 하고 얌전히 지나가는 세계. 해고된 동료에게 한 마디 위로도 못하고 돌아서면 거울 속의 내가 나를 향해 모리배**처럼 웃고 있어요. 중2 여러분, 새해에는 이 세계를 어떻게 고쳐가야 할까요? 가르쳐주세요.

* 윤동주, 「소년」 , 『정본 윤동주 전집』, 홍장학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15.
** 모리배(謀利輩): 온갖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장이지 시집, 『레몬멜로』, 문학동네, 201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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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4건

  • 담요19

    에릭슨은 청소년기를 “정체성 대 혼란”의 시기라고 했다. 파충류들과 똑같은 단계의 뇌 영역인 변연계로 원초적 감정을 느끼고 불필요하고 자극되지 않은 시냅스의 엄청난 가지치기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시기, 우리는 그 과도기의 열다섯 살을 중2병이라고 일컫는다. 눈이 큰 아이는 선한 아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삥을 뜯는 아이, 약자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깨고 그냥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인 양, 피해자의 편에도, 가해자의 편에도 서지 않고 '수고해'라는 웃픈 농담을 남기고 지나가는 아이, 삥을 뜯기고 자신을 외면하고 지나가던 친구도 친구라고 옆에 찰싹 붙는 아이, 시에 등장하는 세 명의 중2들은 모두 어딘가 불균형하게 발달된 그들의 팔다리처럼 어딘가 어정쩡하다. 삥 뜯기는 친구를 외면한 아이는 자신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한 행동에 대해 ‘갑자기 못생겨지는 기분’을 느낀다.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상의 변화로. 아직 자신의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의 몸에는 그래도 본능적으로 무엇인가가 부착되어 있어 적어도 어른보다는 더 민감하게, 그리고 과격하게 ‘못생겨지는’ 기분을 느끼나보다.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고 혼돈 속을 걷는 중2의 세상에서는 골목을 돌아 갈 때마다 모리배, 아니면 모사꾼, 그도 아니면 거울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거울은 확실하게 정체성이 정해져있지 않지만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반사해준다. 아마 이 골목에서는 ‘갑자기 못생겨진’ 나를 발견했을 것 같다. 골목을 돌 때마다 얼마나 놀랄까. 불타는 정의감에 무엇이 옳은지는 알지만, 모리배에게 당하지 않으려, 모사꾼에게 속지 않으려, 내 모습을 갑자기 적나라하게 보지 않으려 비굴하게 키운 근육은 자신을 단단하게 잡아주지 않고 벌어진다. 근육이 벌어지는 이미지를 떠올리니 그야말로 고통스럽고 이것을 어떻게 다시 내 몸 쪽으로 모을지 몰라 난감해진다. 이 시를 읽으니 나의 붕 떠 있던 열다섯 살 시절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니면서 내 생에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단언하던 그 1년 동안 나도 나 나름의 노력을 했던 기억이 있다. 친한 친구와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가끔은 친구의 무리에 끼지 못하는 친구에게 눈길이 가서 같이 몇 마디 말들을 나누고, 소풍 길에도 동행한 적도 종종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면 나도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등을 돌리면서 ‘갑자기 못생겨지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해야만 하는 행동과 왠지 모르게 싫어서 하게 되는 행동 사이에는 꼭 그러한 ‘못생겨지는 기분’이 존재했다. 그리고 화자의 말대로 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조심스럽고 고민이 앞섰다. 15살의 행복은 아마도 이런 ‘못생겨지는’ 기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고 골목마다 마주치는 거울을 피해서 다른 골목으로 도망쳐 왁자지껄하게 친구들의 무리 속에서 그들의 애정을 받으며 나를 잊고 살아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때 오므리지 못한 비굴의 근육은 성인이 된 지금 통증의 신호를 보내며 건강한 근육을 키우라고 호소한다. ‘그 때 사과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나에게 말해본다.

    • 2019-04-23 21:32:04
    담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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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I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과 공부 외에 취미생활까지 하고나서 늘 사람들과 논의하는 주제이다. 왜 저것들을 모두 하고나서 저 얘기를 해야하냐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에너지는 바닥나기 때문이다. 시에서 눈이 큰 아이도 화자의 친구였다. 정말로 사람 앞에 처단해야 할 악과 권력을 씌우는 것이 불편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니 그런 이들이 정말 있다. 그럼 어떻게해야 힘없이 삥 뜯기는 친구를 도울 수 있을까? 그것은 최소 권력에 아첨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님 화자처럼 최소 자신이 모리배, 모사꾼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일 것이다. 근데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고. 인간 자체의 힘도 힘이 아니냐고. 사실상 우리는 경제와 도덕을 함께 배우며 그것의 구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권력과 맞서며 얻는 실질적 손실을 따지면 우리나라처럼 인생에서 조금만 빠른 길을 걷지 않았을 때 앞날을 감당하는 게 힘든 사회에서 어찌 대처할 것인가. 단지 한사람이 아첨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권력을, 그러니까 일 같은 것을 처리하는데 필요한 만큼 말고 불필요하게 남용되는 권력이 무력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모리배, 모사꾼이라고 자조만 할 게 아니라 서로 맘이 맞는 이들끼리 행동에 나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 2019-04-23 21:55:48
    한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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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반

    시를 읽으며 내 중학생 시절은 어땠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역동과 불안정한 마음... 중학생은 위태롭고 다채롭고 무엇보다 친구 관계가 그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서는 화자와 초등학생 때 친구였던 아이가 삥을 뜯고 있고, 그 친구에게 삥을 뜯긴 아이가 화자에게 알은체를 한다. 삥을 뜯고 뜯기는 그 모든 관계가 한 사람에게 다 엮일 수도 있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세상에는 모사꾼과 모리배, 거울밖에 없다는 화자의 냉소적인 모습이 마치 혼란스러움에 익숙한 사춘기 소년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담아낸 것 같아 익살스러우면서도 공감이 됐다. 마지막에 "비굴이 키운 근육"이라는 표현에서 화자가 그 상황 안에서 느꼈을 수치심에 잠시 머무르게 됐다. 어쩌면 방관한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냉소적 태도를 보이다가도 비굴하다는 마음을 갖다니... 정답은 정해져있지 않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중학생의 세계는 너무도 혼란스럽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시절을 지나온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 2019-04-23 23:42:40
    햇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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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ra

    곤란을 당할때 누군가 아는 얼굴이 지나가기만 해도 얼마나 안심이 될까? 직접 다가와 도움을 주면 더 없이 좋았겠지만, 모른체 지나가지 않고 목격자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것 같다 세상의 골목에서는 사람 때문에 놀라고 섬뜩할 때도 있지만 또 사람 때문에 안심이 되고 누구든 무리가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근육에는 비굴함도 있고 부끄러움에 못생겨지는 기분도, 사과하면 더 좋았을 안타까움도 있지만.. 침묵하지 않는 것, 지켜보는 눈이 되어 주는 근육도 분명 있을 것이다

    • 2019-04-23 23:48:32
    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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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유리0

    삥을 뜯는 아이, 뜯기는 아이, 그것을 본 아이... 이 모든 아이들을 품어주어야 할텐데요..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정말 중2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듣고싶어집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는 후회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뒤에 반드시 겪어야하는 어려움이 따라오거든요.. 겁이 없다고 남편은 이야기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저는 아직 삶이 절실하지 않은걸지도 모르겠어요.. 아쉬우니까 맞춰야하는 것들... 먹고 살아야 하기에 못본 척 해야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저런 부끄러움에 감히 아무 말도 못하겠어요.. 하지만 바라고 꿈꿔봅니다... 마음에서 피어나는 상대에 대한 공감과 연결감을요.. 아이들이 그것을 몸으로 체화하며 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딸에게 간식을 챙겨주었습니다. 학원이 끝나 데려오는 길에 둘의 대화를 운전하며 들었습니다. “너는 나 안줬으면서 왜 내 빵은 먹어?” “난 너무 배가 고파서 먹은거야 배가고픈데 어떻게 해?” “그래도 나눠먹어야지~” “왜 그래야해? 내꺼잖아” 친구가 내리고 딸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는 안 주는데 너는 왜 나누어 주느냐고... “같이 나눠먹으면 더 맛있어” 저는 솔직히 그 친구아이가 얄밉기도 하고 우리 아이가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건 아닐까? 판단하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누어 먹는 것이 더 재밌고 맛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몫을 먹는 그 아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도덕성은 왜 배우는 것이며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정말 그런것인지 그 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글이나 말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그래야하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도덕적인 행동이 아닌... 경험을 통해 무엇이 더 좋은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다면 그것에 기여하는 어른이 되고싶습니다..

    • 2019-04-24 00:03:18
    바다유리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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