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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초혼招魂」

  • 작성일 2019-01-31
  • 조회수 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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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김행숙|「초혼招魂」을 배달하며…


새해가 될 때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나만의 요정, 혹은 순수한 꿈을 잃어버릴까봐 자라기를 거부하는 아이가 항상 내 속에 있었죠. 스무 살부터는 서른 살이 올 것 같아 두려웠어요. 최승자 시인이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삼 십 세」)라고 노래했던 뻔뻔한 얼굴의 서른 살이 무서웠습니다.*
세월이 자꾸 흐르니까 잃어버린다는 것은 잊어버린다는 것의 다른 말이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했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좋아했던 사물들과 장소들을 잊고 가끔은 내 존재도 까맣게 잊어버려요. 그렇지만 너무 겁먹거나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인은 말해줍니다.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 어디로 숨었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 그리고 우리의 꿈들이 앞뒤를 모르고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우리를 찾아오거든요. 장롱 밑으로 굴러 들어간 연필처럼 어느 날 불쑥!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읽었던 시들도 그러하기를 기대해봅니다.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 지성사, 1994.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김행숙 시집, 『1914』, 현대문학, 201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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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건

  • 햇반

    어쩐지 첫 행이, 마치 글을 처음 쓰는 사람 같은 모습으로 돌아간 나처럼 느껴졌다. 최근 문학상담 강의를 들으며 프락시스적인 문학 창작 활동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또 경험하게 됐다. 잘 쓰기 위한 그럴듯한 기술과 기교를 버리고 손 가는 대로 시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위와 아래를 모르고, 작품 속 심오한 뜻 같은 비밀도 모르고, 현기증도 모르는 것 같았고, 그런 모습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요즘 프락시스라는 개념에 빠져 그런지 몰라도 두 번째 연 역시 강물에 던지고 공중에 뿌린 것이 과거 프락시스적 행위를 하던 나처럼 느껴졌다. 세 번째 연억서 비와 눈이 바뀌는 것은 포에이시스에서 프락시스로 단번에 뒤바뀌는 장면이 연상됐다. 비와 눈의 근본 요소는 물로 같으나 형태는 완전히 다른 것도, 문학이라는 근본 요소는 같지만 결과와 과정처럼 형태가 다른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행에 아무 데서나 오고 있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도, 프락시스적 행위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마지막 단상의 마지막 문장으로... 나는 모르는 것도 많고, 아무 데서나 오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 2019-06-05 23:04:09
    햇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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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I

    여기서 '너'는 바로 앞으로 올 인생이 아닐까? 내게 다가올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다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다면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 '아무 데서나 오고 있는 너를 사랑해'라는 행이 특히 좋은데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싶다.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고 누군가는 잘생긴 애인을 사귀고 나는 여기서 상담을 배우고 문학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기회들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고 싶다. 언젠가는 나도 강물에 뿌려지거나 해서 사라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주저할 게 뭐가 있냔 말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즐겁다.

    • 2019-06-06 14:26:41
    한산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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