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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 작성자 키릴
  • 작성일 2025-01-10
  • 조회수 136


암흑 같던 하늘색이 차츰 옅어져 가던 그런 이른 시간에, 나는 비현실감에 반쯤 잠긴 채 걸음을 내딛었다. 

거리에는 분명히 아무도 없었건만 나는 평소 습관 탓에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참으로 쓸모 없는 동작이었다. 독자는 여기서 말하는 내가 누구이며 또 어떤 이유로 

이른 시간부터 길거리를 배회하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그 따위 정체성이니 방향이니 하는 것들은 나 자신마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걸 찾아보겠다는 핑계로 막연히 집 앞 산책로를 거닐고 있을 뿐이다. 


난 갑자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냐하면 첫 번째, 몇 번이나 돌았던 발자국을 되짚어 본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꼼짝도 하고있지 않았고. 둘째, 이런 장소는 산책로라고 하기엔 입구와 출구만이 이어져 있는 폐허와 같기 때문이다. 생기라곤 없이 희멀건 가루가 날리는 콘크리트 바닥이 전부이고, 공사를 하다 진즉 버려진 듯 멀찍한 간격마다 나사 비스무리한 것이 널부러져 있었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우울하다. 

불과 일주일 전부터지만,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늘 여기로 달려왔다. 즐거움이라곤 없는 여기서 혼자 11월의 바람에 에워싸이면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우울을 해소하는데서 나오는 그런 쾌감이 아니라 이 장소에서 완전히 스스로 버려졌다는, 한 마디로 우울을 증폭시키고 완전히 소유하는 데서 나오는 만족감이었다. 

꽤 강한 바람이 두 차례 짧게 불었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조금 배어 나왔고, 그로부터 적어도 일 이분 동안은 계속,계속 내 초라한 셔츠에 자국을 남겼다. 바람 탓일런지 아니면 , 아무래도 좋다. 

눈물 따위보다도 내 눈에 띈 것은 언제부턴지 왼손 끝에 걸쳐친 초록 풍선이었다. 그러나 이미 너덜너덜해져서 쓰레기라고 불러야만 할 그런 모양새다.이것도 아까 바람 불때나 날아왔을 테지. 

난 문득 이것이 누구의 물건인지 궁금해졌다. 이 주변에서 어린아이라곤 몇년 간 본적도 없는데. 헬륨풍선 이라면 어딘가  멀리에서, 또 풍선이라고 어린이만 소지할거란 건 편견이다. 

이게 뭐람. 난 겹겹이 내려앉는 잡생각의 거슬림에 현기증을 느끼며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초록 풍선. 초록 사과가 달린 사과 나무. 초록의 초록이 겹쳐진 그런 자연물을 11월에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의식의 흐름대로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나는 반 퍼센트의 두려움과 반 퍼센트의 고독으로 이루어져 있을 게 분명하다. 


이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유달리 일찍 일어난 나에게, 아침 시간은 넉넉했으므로 언제까지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디든 좋으니 시계가 있는 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일어나면서 바지와 손바닥에 묻은 하얀 분을 털어내었다. 안녕 .또 올게. 

그리고는 앙상하기 짝이 없는 가로수길을, 어느 정도 걸었더라. 아무튼 걸어가서 주택가까지 다다랐다. 우리 집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줄곧 모순적인 사고를 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이거다.난  내 좁아터진 방구석을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로 여기면서도 (두 번째는 산책로라고 이름지은 그 공허한 곳이다.) 

집채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건 정말 싫어한다. 주택 건물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눈을 피하며 달렸다. 내딛고, 어떻게든 계속 내딛으며.


눈을 깜빡 떠보니 순식간에 거리에 내몰려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람 많은 곳에 내몰았다. 그러나 산책로도 집도 거리도 싫다면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계는 필요하다. 간판이 막 새겨진 그나마 외딴 곳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주인은 고개를 숙여서만 가볍게 인사하고 자기 할일을 한다. 의아하다. 고개를 숙여서만 인사하는 건 보통 나 혼자였는데. 무슨 이질감과 동질감 따위가 뒤섞인다. 그래 나는 가장 구석 자리에 짐도 하나 없이 내 몸만을 앉히고, 어느 각도에서나 보이게 효율적으로 설치된 메뉴판을 쳐다본다. 카페인은 필요가 없다, 졸리지 않기 때문에. 순간 그 생각을 한 자신을 비웃었다. 

카페인은 각성제 포션의 용도로만 마시는 게 아니라 흔히들 말하는 ‘한 잔의 여유’를 위해서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졸리지도 않고, 시간의 여유는 있지만 마음의 여유는 없는 나는 카페인을 피한다. 

젊은 카페 주인은 온갖 잡일을 혼자 하느라 몰두해 있다. 나도 주위나 좀 둘러볼까. 좌우를 급히 살피는 습관을 스스로 의식하다 보니 손님은 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메뉴판의 글자 하나하나가 울렁거렸다. 글이 읽히지 않는다. 목도 마르지 않다. 시계가 어디 있을까. 제발, 시계는 어디 있을까? 흰색 벽에서 검은 초침을 찾아낸다. 

일곱시 십분, 집을 나왔을 때보다는 꽤나 시간이 지난 듯 하다. 진정 내가 얼마나 방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만그 보금자리에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다. 

후회해 본들. 가게 주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다음번에 다시 오겠다고 거짓말을 한다.


키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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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어머니에게 꽃을 선물하려고 한다. 이상할 정도로 쌀쌀했던 지난 초여름처럼. 며칠인지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무렵 어느 날, 난 부모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익숙한 길로 향했다. 졸려서 눈꺼풀이 오르내릴 때마다 하늘색은 잽싸게 무르익어 갔다. 살짝 열린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풀냄새가 기분 좋았다. 도착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었고 가는 동안 목적지를 정확히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처음 와본 곳은 아니지만 처음 와본 장소와 자주 드나드는 장소, 그 중간을 방문할 때 특유의 이상하리만치 낯선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많이 컸네. 꼬마 아가씨가 다 됐어." 이분들을 뵐 일 또한 명절 말고는 거의 없었다. 난 좋아하는 소설의 첫 문장이라던가 글쓴이의 이름은 곧잘 기억하지만 속상하게도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기억력이 안 좋은듯 하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은 왜 여기로 온다고 내게 직접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한 문장도 포착되지 않았다. 이 장소는 숲속에 거의 둘러싸여 있어서, 해가 사라지기 직전인 시간임에도 꽃이나 나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나는 구경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으나 시간을 봐서 관뒀다. "얘, 어른들께 바로 인사해야지." 그러면서 아버지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아래로 숙이게 했다. 나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우리는 다 같이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창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천장이 높이 있어서 탁 트인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소파에 둘러앉았고 할머니는 쿠키나 간식 같은 것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여기 이후로부터 급작스럽게 전개되기 시작한,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러면서도 번개 치듯 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 일들은 나로서는 대부분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이었다.(좀 더 커서 ‘꼬마’ 가 아닌 ‘학생’ 이라고 불릴 때가 오면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 일부만큼은 어른들의 어떤 감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대본 속 까만 활자에 갇혀있는 자기 배역의 캐릭터를 끄집어내려는 배우처럼 연상해보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부모님은 길다란 단체 소파에 자리를 잡자마자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집에서 하던 이리 오라는 손짓 대신 반대의 방향으로 손을 내저었다. 어른들은 ‘대화’를 시작했으나 분위기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요구대로 멀찍이 떨어진 높은 나무 의자에 앉아 발을 허공에 흔들어 대며 그들만의 너무 어려운 낱말 대신 표정, 눈빛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주워들은 눈을 통해서 마음을 알 수 있다느니 하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은 차가웠다. 그리고 왠지 화가 난 것 같았다. 아버지의 눈은 서글퍼 보였다. 어머니의 눈은... 누구보다 짜증에 차 미간에 주름이 져 있었고 무언가 쓸쓸했지만 가장 설명하기가 어려운 그런 형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저 멀리서 모여있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실처럼 엉켜서 어떤

  • 키릴
  •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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