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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500회 특집] 가문비나무 숲, 문장(文章)의 뿌리들

  • 작성일 2017-06-13
  • 조회수 1,100

‘문장의 소리’ 500회 특집

가문비나무 숲, 문장(文章)의 뿌리들

 

 

김지녀(시인)

 

 

 

    SINCE 2005
    2005년 5월 30일. 처음 방송을 시작한 ‘문장의 소리’가 2017년 5월 27일 500회를 맞았다. 햇수로 13년. 문학 라디오 방송 ‘문장의 소리’는 온-에어(ON-AIR)이다. 500회에 이르는 동안, 작가들의 목소리를 담아 독자(청취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그 모습 그대로 ‘문장의 소리’는 더 넓어지고 높아졌다. 작가들이 건너온 수많은 계절과 날씨, 혹독한 고독과 자기반성의 시간들이 모여 ‘문장의 소리’도 나이테가 제법 굵어졌다. 가문비나무 숲처럼, 그늘이 더 깊어졌다.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그러니까 작가의 나이테 하나가 생기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어떠한 사연이 숨어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은 횡성의 예버덩문학관 가문비나무 숲에서 진행했다. 500회. 이 숫자가 주는 크기만큼, ‘문장의 소리’는 특별하게 그리고 감사하게 문장의 나이테가 아주 두터운 시인들을 손님으로 모셨다.

 

 

 

    촛불, 별 그리고 시
    ‘문장의 소리’ 500회의 주인공은 신경림 시인이었다. 1956년 잡지 《문학예술》에 그 유명한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그의 시력(詩歷)은 무려 60년이 넘었다. 내가 아직 다 살아 보지 못한 시간을 시인으로 살았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그는 이미 높고 큰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저한테서 기대했던 만큼 재미있는 말은 못 들을 겁니다. 제가 워낙 재미없는 사람이니 얼굴 보는 걸로 만족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셀프 고백으로 시종일관 신경림 시인은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 사이 사이, 시인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 시 쓰는 일밖에 잘하는 일이 없었다는 겸손함, 시를 놓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현실의 아픔까지 신경림 시인의 이야기 하나 하나는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는 역사처럼 읽혔다. 신경림 시인은 요즘 ‘별’을 보러 다니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별’을 보기 위해 사막과 초원을 여행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별’을 보았다고, 그 감동을 시로 적었다고 하시며 관객에게 시 한 편을 읽어 주셨다. 여전히 젊은 목소리로, 현실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별’을 노래하는 순수하고 건강한 시인의 감수성으로, 신경림 시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앞으로 오래오래 그의 ‘얼굴’을 보는 일만으로, 그의 ‘시’를 읽는 일만으로,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울림’의 미학
    ‘울림’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이다. 천천히 오래 아니, 느리게 자라지 않는 듯, 자라는, 저 나무들 같은 시인이다. 가문비나무 숲에 가장 가까운 시인이다. ‘문장의 소리’ 501회 주인공 김사인 시인에 대한 나의 인상이다. 아마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가 시를 읽어 주었을 때, 경험하는 ‘울림’의 쓰나미란 정말이지…… 우주 최강이니까.
    김사인 시인은 이상이 「권태」에서 말한 권태로운 유년 시절 이야기에서 도시로 유학을 가서 경험한 문화충격(?), 대학 시절 부조리한 현실에 뛰어들어 저항한 시절까지, 그가 건너온 시간들을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는 단단한 삶이 배어 있었다.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을 섬기고 그것을 시로 옮기려는 애씀에 대해, 그 정성에 대해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가문비나무 숲을 흔들었다. 숲에 모여 앉은 청중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월 저녁의 빛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김사인 시인은 당부했다. 시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로 읽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가 더 많은 곳들을 찾아가 주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 501회 손님으로서, 문단의 선배로서, ‘문장의 소리’가 앞으로 600회, 700회, 계속되길 바라는 청취자의 한 사람으로서.

 

 

 

    방방곡곡, ‘문장의 소리’
    지난해부터 ‘문장의 소리’는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대학로 예술가의 집 예술나무 카페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해 왔다. 올해는 서울로 국한되어 있던 지역에서 벗어나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란 모토로 전국 각 지역을 직접 찾아가 그곳의 독자와 작가가 만날 수 있는 공개방송을 마련했다. 4월 부산에서 계단에 옹기종기 앉아 ‘문장의 소리’를 경청해 주신 관객들의 관심과 애정은 대단했다. 5월 강원(횡성)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 또한 전국에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많은 관객이 이 먼 곳, 가문비나무 숲으로 와주셨다. 얼마나 이런 움직임이 필요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앞으로 ‘문장의 소리’는 9월 제주, 11월 광주를 찾아가 독자와 작가가 서로의 문장과 숨결을 나누고, 얼굴을 익히는 시간을 만들 예정이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질 ‘찾아가는 문장의 소리’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드린다.

 

 

 

    청취자들을 사랑해
    공허한 말들이었을 테다. 문장의 소리. 작가의 웃음소리. 농담과 쓴소리. 청취자가 없었다면, ‘문장의 소리’는 지금까지 연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문학의 위기, 종이책의 소멸, 문학의 종언 등을 말해 왔지만, 여전히 문학을 생산하는 이와 소비하는 이가 있다.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청취자들이 있다. 20대의 한 문청이 ‘문장의 소리’를 500회부터 거슬러 올라가 지금 364회를 듣고 있다고 슬며시 내게 이야기해 주었을 때, ‘문장의 소리’가 언제, 어디서든, 청취자가 마음에 드는 작가를 골라 작가의 육성은 물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녹아든 숨결을 듣고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아카이브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500회까지 ‘문장의 소리’가 방송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청취자들의 사랑과 격려였다.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더 재미있고 알찬 문학 라디오 방송이 되기 위해 ‘문장의 소리’가 노력하겠다는 말씀으로 감사한 마음을 대신한다.

 

 

 

    문장의 소리 DJ, 김지녀입니다
    ‘문장의 소리 DJ, 김지녀입니다.’ ‘문장의 소리’ 녹음을 시작할 때마다 잊지 않고 하는 멘트이다. 물론 500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장의 소리 DJ가 있었다. 소설가 한강, 이기호, 김중혁, 최민석, 황정은, 시인 이문재, 김민정 등. 작가와 DJ는 바뀌어도 바뀌지 않은 멘트였다. 1000회가 되어도 바뀌지 않을 멘트이다. ‘문장의 소리 DJ, 000입니다.’ 각자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작가와 DJ의 대화가 궁금하다면, 500회, 501회 신경림, 김사인 시인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자! 지금 ‘문장의 소리’를 찾아 들어 보시라. 이야기 속에서 함께 진지했다가 가벼워졌다가 웃다가 울다 해보시라. 지금까지 문장의 소리 DJ, 김지녀였습니다.

 

 

 

 

 

 

 

 

 

 

 

프로필 / 김지녀

2007년 세계의 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 『시소의 감정』, 『양들의 사회학』이 있으며 편운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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