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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소주병」

  • 작성일 2016-03-14
  • 조회수 5,815


공광규,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신을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시_ 공광규 -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보령을 거쳐 청양에서 성장했다.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 등이 있다.

▶ 낭송_ 홍서준 - 배우. 뮤지컬 , 등에 출연.


배달하며

배달하며

소주가 서민의 술이기 때문일까. 시 속에 소주가 등장하면 우선 편하고 친근하다. 오랜 가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십년 동안 청계천 건너 빌딩 숲을 오가며 밥을 구하러 다녔다는 시인은 주름과 뱃살과 흰 머리에 겹치어 딸과의 대화를 ‘자화상’으로 그려 놓은 시도 썼다. 아빠 사무실 가까이 와서 저녁을 먹고 간 딸이 아빠 얼굴이 가엽다고 했다한다. 시인은 청계천을 내려다보는데 얼굴이 뭉개진 그림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소주병처럼 쪼그려 앉은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이제 그 나이가 되어가는 시인과 그 시인 아버지를 걱정하는 딸, 애잔한 가족 3대가 두 편의 시속에서 혈연의 끈끈한 밧줄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소주병』(실천문학사)
▶ 음악_ Won's music library 01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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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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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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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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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건

  • 포엠스타

    "빈 소주병" 같은 "아버지가" 있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 2016-03-20 10:39:36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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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공광규' 하면 은행나무가 기억납니다. 은행나무 쓰셨던 공광규 씨 맞으시죠. 저는 공광규씨가 쓰신 은행나무 시가 너무 좋아서 입으로 외우고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라는 그 울림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는 별로네요. 그냥 던져놓은 듯한 시같아요. 소주가 가벼운 술은 맞지만, 소주를 들이키는 사람의 마음은 가볍지 않지요. 어디까지나 공광규 씨라는 사람의 훌륭한 시성에 비해서는 안타깝게 무성의한 시가 아닌가 싶어요.

    • 2016-04-08 01:50:4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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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무런 의미도 느낄 수 없고,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 없고, 아무런 아름다움도 없고, 너무너무 무성의한것같아요. 각 연들에서 연관관계도 느낄 수 없고, 그 연들의 느낌이 멀다면, 그 먼 느낌을 살리기 위한 조망적인 분위기를 살려야 하는데, 그냥 참..

    • 2016-04-08 01:54:4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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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문장'이라는 사이트용이라는 실익을 위해서 가볍게 시를 던져놓으신거라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6-04-08 01:56:5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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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석이

    아버지의 외로운 모습을 잘 표현한 시인것 같네요..자식에게 채워주느라 자신의 속을 점점 비워가는 아버지들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 같아요...

    • 2018-05-28 01:28:00
    민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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