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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

  • 작성일 2018-08-30
  • 조회수 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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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정끝별|「오리엔트 금장손목시계」를 배달하며…



아버지는 막내딸 집에 11시 39분 28초에 멈춰선 손목시계를 두고 가셨군요. 손녀딸들과 찍은 사진 몇 장, 밤새도록 들리던 심한 기침소리와 함께요.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애통한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그들이 더 따듯한 추억을 담고 갈 수 있도록 왜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큽니다.
그러나 떠난 이들이 원했던 건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천국에 챙겨갈 좋은 추억이 아니라 이곳에 깜빡 두고 가 잃어버릴 물건들. 아버지는 정말 아끼던 오리엔탈 금장손목시계를 딸 곁에서 분실하려고 기별없이 들이닥치셨어요.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 물건의 주인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정끝별 시집, 『와락』, 창비, 2008.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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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3건

  • aperto

    암으로 투병 중이신 지인 분의 말씀이 사람들 중에 만나서 반가운 사람은 아들뿐이라고 하시는 걸 들으며 흠칫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단호한 그분의 말씀에 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간절해지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시에서 처럼 15년 만에 딸의 집에 찾아가 하룻밤을 지내는 것, 고작 숟가락 하나 더 놓은 밥상을 달게 맞는 것, 그리고 손녀딸을 품에 안고 사진 한 장 찍는 것. 그렇게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들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행동들이 떠나는 이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남겨진 이들에게 선물을 하고픈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뜻밖에 찾아오신 아버지와 보낸 하루의 시간, 남겨진 사진, 부러 풀어놓으신 시계가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말입니다. 문득 오매불망하던 금장시계와 같은 내 생의 소중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집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한...

    • 2018-09-04 00:18:58
    aper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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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우리들의 글도 소중한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저도 떠나는 이의 자기만족이라기엔 남겨진 이들에게는 매우 큰 선물이 되기에 자기만족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셨는데 참 어렵네요.. 그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왜 인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등의 깊은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조용히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8-09-04 11:40:21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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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면 시적 화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그들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파본 경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 보지 못했던 딸이 행여나 자신처럼 짙은 아쉬움으로 오래 힘겨워 할까봐 괴로움이 아니라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먼저 발걸음을 하시고 물건을 하나 떨구고 가신 것 같다. 몇 년 전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것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는 실오라기 하나라도 기억하지 말고 다 잊고 가뿐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해 주고 싶어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먼저 떠나 보냈던 사람을 너무 오래 끌어안고 있어서 꽤 많이 힘들었었나 보다. 그리고 가끔은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욱신거리는 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 2018-09-04 08: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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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시인의 아버지의 과거를 생각해 보신 앗님의 상상력 혹은 여유가 부럽네요~ 저는 감상하기도 벅찼습니다^^ 어렵네요.. 남겨질 사람들과 떠날 나..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어요. 그러나 헤어짐이라는 것에 매우 민감한 저입니다. 끝은 너무 슬픈 것 같아요. 그 것은 다시는 보지 못 하고, 만지지 못 하는 것이니까요. 실오라기 하나라도 기억하지 말고 가뿐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했던 앗님의 말이 저는 더욱 가슴이 아프게 느껴지네요. 아무도 앗님을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신 글에 감사드립니다.

      • 2018-09-04 11:32:34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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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목이 메인다. 큰오빠 부축에 기별없이 들이닥친, 천식에 쌕쌕거리셨을 아버지에 목이 메인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에 목이 메인다.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내 딸을 사랑하는지, 품 속의 자식이었던 내 딸이 얼마나 그리웠을지가 시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시인이 아버지의 죽음을 끝이 아닌, 오리엔트와 천식의 유전으로 시작과 이어감으로 재해석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우리 오리엔트에서 다시 만나요.

    • 2018-09-04 10:45:30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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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어느 밤, 아버지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었다. 잘 있냐고. 생뚱맞게. 1분도 채 되지않고 끊긴 통화는 나에게 의아함만을 남겼다.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은 그 전화의 의미를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생뚱맞은 타이밍의 아버지의 전화가 갑작스런 시인의 아버지의 방문과 겹친다. 사랑을 의아함으로밖에 느낄 수 없이 키운 아버지가 원망스럽지만 '아버지'라고 하면 항상 죄송한 '나'는 슬프다.

      • 2018-09-04 11:16:08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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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토끼

    생과 사는, 자연의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무슨 연유에서인지 한번도 부모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우리 엄마는 나와 20살 차이밖에는 나지 않는 젊은 분이셔서, 아주 오랜 시간 내 곁에 있어 주실 줄만 알았다. 그러나 50세가 되시던 해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미처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 나는 엄마와 이별을 해야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대로 찍어 놓은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사촌조카를 안고 찍었던 조잡한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대신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헤어짐의 순간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떠올릴 장면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 아닐까?

    • 2018-09-06 08:11:32
    햇살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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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거울

    죽음은 두렵다. 가장 두려운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담담히 떠나시며 막내딸에게 미리 위로를 건네고 계시는 것 같다.

    • 2018-09-07 07:47:01
    삶의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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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솔

      뚱이가 스펀지밥에게 스펀지밥이 100살까지 산다면 자신은 하루 덜 살고싶다는 말에 공감했다. 스펀지밥 없이는 하루도 못 살겠다는 뚱이의 이유가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뚱이의 말에 반대다. 나는 하루 더 살고 싶다. 왜냐면 너의 슬픔까지 내 몫으로 가져가고 싶기에.. 왜냐면 넌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 2018-09-07 22:20:04
      파라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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