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지, 「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
- 작성일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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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을 배달하며…
눈이 큰 아이라니,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소년을 닮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소년이 눈을 감으면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이 어릴 것 같은데, 세상에나 그 맑은 눈으로 삥을 뜯고 있군요. 요새 아이들은 참으로 무섭다며 탄식해야 할까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골목을 지나치며 어른이 된 우리의 세계도 중2의 세계. 동료를 폭행하는 회사 오너에게 “수고가 참 많으십니다” 하고 얌전히 지나가는 세계. 해고된 동료에게 한 마디 위로도 못하고 돌아서면 거울 속의 내가 나를 향해 모리배**처럼 웃고 있어요. 중2 여러분, 새해에는 이 세계를 어떻게 고쳐가야 할까요? 가르쳐주세요.
* 윤동주, 「소년」 , 『정본 윤동주 전집』, 홍장학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15.
** 모리배(謀利輩): 온갖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사람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장이지 시집, 『레몬멜로』,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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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4건
삥을 뜯긴 아이가 다가와 알은체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알은체하는 연습, 골목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 모리배로 살지 않으려면... ㅎ
이 시를 읽자마자 이번 문학상담 수업 대체 세미나에서 나누었던 내용들이 퍼뜩 생각난다. 마치 몽유병자처럼, 내 말과 행동의 여파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휩쓸려 살아가는 내 현재 모습 또한 누군가에겐 모리배로, 모사꾼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못생겨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면, 비굴이 무럭무럭 키운 근육이 여기서 더 벌어지지 않으려면 몽유병자인 내 모습을 면밀히 뜯어봐야 하건만. 그조차도 두려운 나는 가끔 '그래. 난 몽유병자고, 모리배고, 모사꾼이다' 라고 자포자기성의 발언을 하며 나를 놓아버릴 때가 있다. 내 삶이 버겁고 힘겨워서, 가끔은 그냥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정 맞는 모난 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저 '수고해'라고 쉬운 말을 건네며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골목들. 그냥 등 뒤로 젖혀버렸던, 몸으로 내게 알은 체를 해 오는 착하고 슬픈 사람들... 아직은 정면타파가 부끄러운 나는, 비굴하게 이 작은 창에 사죄를 담아내본다.
모리배,모사꾼,거울. . 나는 어느 후미진 골목쯤에 서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이 세상을 살아내느라 원치 않게 오래쩍 암석처럼 켜켜히 키워진 근육들..을 보며 무력해하고 있을까.. 눈이 맑은 그 아이도, 두려움에 바싹 붙어 알은채하는 아이도, 못생겨지는 기분을 느끼는 그 아이도 얼마나 울고싶은걸 참고 있을까..어떻게 할지 몰라 가슴에 눈물이 새는지도 모르고 계속 자기 앞에 보이는 길로만 걷고 또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막고 손목을 잡아채 '이것봐, 니 가슴이 울고 있쟎아. .' 하고 같이 엉엉 목놓아 울기라도 하면 후련해기지라도 할까. . 그러면 같이 구름같은 새길을 좀 낼 수 있을까. . 가로등도 없는 후미진 골목길에 주저앉아 공상만 가득해진다. .
세상의 많은 골목들을 지나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손길들이 도처에, 곳곳에 있음을 알지만 나 자신을 추스르지 못해 못본 척 지나친다. 모리배, 모사꾼이나 진배없다. 부끄러움 위에 가면을 쓰고 내 앞만 응시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나를 추스르지 못하면 영영 힘을 쓰지 못할 것만 같아서 거울 속 나만 바라보고 있다. 부끄러워져 빨개진 얼굴을 만난다. 못났다!
언젠가부터 중2병이란 말로 사춘기를 맞이한 청소년들을 희화화한듯한 우스갯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섭다는 중2병의 세계가 우리 어른들의 세계와 과연 얼마나 다른가 되묻고 싶어진다. 심지어 이 시속의 화자는 중2병을 앓고 있다고 보기에는 순진하고 착한 학생이다. 다만 현실과 맞서 싸울 용기와 투쟁심이 없는 유약한 마음의 친구일뿐이다. 중2의 세계에서는 오늘도 삥을 뜯고 삥을 뜯기는 일이 일상처럼 펼쳐지고,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수고해. 성표야’라는 인사말을 건내며 지나쳐가는 화자를 보며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래도 나는 이 친구가 미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삥 뜯긴 같은 반 친구에 대해 미처 입으로 내뱉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잘 느껴져서인 것 같다. 같은 반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에 ‘갑자기 못생겨지는 기분’을 느끼고 등뒤의 가방이 ‘쇠불알처럼’ 꼴사납게 흔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화자에게 너는 왜 그리 비겁한 겁쟁이같이 세상을 사냐고 일갈할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아무 죄책감 없이 늘상 삥을 뜯는 눈이 큰 아이는 결국에는 자라 모리배나 모사꾼의 어른이 될 수 있고 이 시의 화자는 ‘비굴이 키운 근육’을 가진 비겁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 비굴이 키운 나의 모습을 비춰줄 거울을 골목마다 만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중2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