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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관,「구부러진 길」

  • 작성일 2006-08-14
  • 조회수 6,987



구부러진 길

 

이준관(낭송: 김상현)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부엌의 불빛』시학 (예술위원회 선정 2006년 1분기 우수문학도서)

구부러진 길은 천천히 가야 하는 길입니다. 구부러진 길은 꽃과 사람을 만나며 가는 길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직선의 길이 아닙니다. 산도 넘고 사람 사는 마을도 지나서 가는 길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사람도 쉬운 길로 혼자서만 가는 사람이 있고 구부러진 길을 택해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대는 지금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요?

 

문학집배원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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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박윤혁

    구부러진이라는 단어로 여러표현을 소화해낸것이 인상깊다

    • 2017-07-10 01:52:29
    박윤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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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610박찬우

    반듯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은 가기에는 가장 쉬운 길이지만 자칫 주변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산과 들의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빙 둘러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배려심이 깊고 남과 더불어 사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나타내는 것 같다. 마지막 3개의 행에서 '구부러진' 이라는 표현이 반복됨으로써 화자가 구부러진 길, 즉 곧은 길처럼 평탄하지는 않지만 자연과 어울리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찾았다. 거의 모두가 아스팔트 길처럼 쉽고 안정적인 인생을 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천천히 걷고,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구불구불한 오솔길같은 인생이 정말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느꼈다.

    • 2018-05-29 13:45:04
    10610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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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 1500
  • 10705김준서

    아버지랑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구부러진 길이 참된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똑바로된 길은 항상 차가 들끓고 모든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지나다닐 뿐이다. 반면에 구부러진 길에서는 여러 이름모를 풀꽃과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부분이 인상깊었다. 요즘사회에서는 만들어진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 개개인의 개성은 사회에서 묵살당하는 것 같다. 즉, 사람들은 모두다 닦여진 똑바로된 길만 가고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구불구불한 길을 개척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혹여나 그 길이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사람이 훨씬더 풍부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2018-06-01 13:38:25
    10705김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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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11

    나는 과거에 골목길이 많은 집에 살았지만 지금은 뻥 뚫린 도로만 있는 주변에 산다.과거에는 골목길을 많이 다니면서 여러 재미가 있고 골목길 나름의 추억과 분위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느낄수 없어서 많이 아쉽다.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시에 숨은 이야기가 좋아서이다.요즘 같은 성공과 돈과 명예만 바라고 일을하고 각자 경쟁만 할려하고 서로서로 정이없어지는 이러한 현대사회에 정말 필요한 시 같다.그리고 이러한 성공을 위해 한걸음씩 가는게 아니라 한번에 빠르게 갈려하고하는 사회를 고치고 싶어하는 시인의 소망이 들어나는것 같다.내가 이 시를 보고 느낀점은 나도 성공을 위해 빠르게 달려가기보다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가는것 처럼 천천히 한걸음씩 경험을 쌓아가 인생을 살고싶다.

    • 2018-06-01 13:57:59
    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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