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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복무 일기」

  • 작성일 2016-02-01
  • 조회수 1,476


이현호, 「복무 일기」




철원에서는 올해 첫 얼음이 얼렸다는 소식이다 새벽 내내 끄물거리던 하늘은 멍든 입술을 다물었지만 내 속에서는 더운 김이 마술사 입안의 리본같이 새어나왔다 입김들이 는개같이 들어 자분자분 새벽을 접어 쓴 편지를 적실 때 내 안의 철책 위로도 가는 비 내렸다 물기로 축축한 글자들의 무게만큼 올겨울이 길듯 싶었다 늦가을이 독감을 앓고 물러난 자리마다 아직 아프지 못한 너의 이름 눈사람의 머리와 몸통처럼 아슬하게 나는 바깥에 닿아 있었고 몇 번인가 시간의 별명을 귓결로 들으며 나도 모르게 젊고 병들었다 그즈음 나는 풍문처럼 철원에 있었다 만년설처럼 엎드려서 입이 없었다 생면부지의 눈꽃이 자주 이는,

▶시_ 이현호 - 1983년 충남 전의에서 태어났다. 2007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가 있다.

▶낭송 - 홍서준 - 배우. 뮤지컬 , 등에 출연.


배달하며

“인간의 상상력이란 큰 숫자를 다루지 못한다. 250만 명 이상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50만 명의 중공군이, 100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110만 명의 북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2만 6천명의 미군 병사들이 한국전쟁에서 죽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1941- )는 ‘한국의 비무장 지대를 방문하며;하이븐’ 이라는 시에서 이같이 노래했다. 경비 초소 사이로 떼 지어 밀려가는 하얀 것은 -천사들? 백로의 무리... 이 숨 막히는 초원의 평화를 지키는 젊은 시인이 얼음의 땅에 엎드려 멍든 입술로 쓴 복무일기이다. 핵 실험 뉴스를 들으며 동시에 슬픈 만년설처럼 굳어버린 대지에서 생면부지의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젊음을 떠올린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출전_『라이터 좀 빌립시다』(문학동네)
▶ 음악_ 이원경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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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작품 출처 : 복효근 시인, 창비청소년시선 05 『운동장 편지』, 창비교육, 2016. ■ 처음 인사드리는 그대여. 한때 저는, 제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하여, 아쉬운 맘 달래보자고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우고는 이팝나무 우체국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우체국 뜰에서 시엽서를 쓰고 시배달을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풀벌레 소리처럼 떨려옵니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려오는 그대여, 그대에게 있어 가장 따뜻했던 저녁은 언제였는지요? 내가 멘 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척 붕어빵을 넣어주던 선재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져 옵니다. 은근, 기분이 좋아져 옵니다. 가장 따뜻한 저녁이 그대에게 당도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우체국 마당 구절초가 가는 목을 빼고 그대 향해 피었다는 소식 전하면서 이만 총총합니다.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 『난 빨강』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 살고 있다.

  • 김 태 형
  • 2016-10-13
양선희, 「늙은 신갈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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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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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태 형
  •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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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포엠스타

    이 시 역시 마음에 힐링이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6-02-06 14:12:36
    포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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