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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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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배달 김선우「낙화, 첫사랑」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내 사랑의 몫으로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 출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 詩 : 김선우 -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996년 『창작과비평』겨울호에 「대관령 옛길」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도화 아래 잠들다』,『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등이 있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낭송 : 신혜정- 시인. 2001년 『서울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함. 꽃이 진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소멸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성찰을 김선우의 시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나는 꽃을 거둔 수련에게 속삭인다 / 폐경이라니, 엄마, 완경이야, 완경!”이라고 말할 때, 낙화는 닫힘이 아니라 새로운 열림을 의미하지요. 또한 “사람이 모르는 다른 이름을 찾아 / 길 떠나야 하는 꽃들이 있다”고 말할 때, 꽃들이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함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허공을 향해 길 떠나는 꽃잎을, 그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까지가 온전한 사랑의 몫이겠습니다. 지난 해 꽃 필 무렵 시작한 시배달을 올봄 꽃 질 무렵 마치며, 이 시를 수많은 그대에게 보냅니다. 2009. 4. 27. 문학집배원 나희덕.
작성일 2009-04-27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45 조회수 31899상세보기 -
시배달 정끝별「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 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일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출처 :『삼천갑자 복사빛』, 민음사 2005 ● 詩, 낭송: 정끝별- 1964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1988년『문학사상』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등이 있음 친구에게 상처 받았을 때, 애인에게 배신당했을 때, 세상에 절망했을 때, 가만히 이 시를 읽어도 좋겠군요.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이 시는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너’ 없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너’가 아니라 결국은 온전한 ‘나’라는 것입니다. ‘나’를 가두는 담도 감옥도 ‘나’라는 것입니다. 시의 마지막 석 줄을 읽고 나니 설렘으로 마음이 출렁입니다. 담을 넘어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고 하니까요. 그게 도박이라 해도 알고 보면 도반이라 합니다. 느낌표를 하나 꽝, 찍어두고 싶습니다. 2008. 4. 14. 문학집배원 안도현.
작성일 2008-04-14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14 조회수 31622상세보기 -
시배달 렴형미「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애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물푸레아지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합니다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그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 출처 :『ASIA』 제4호, 2007 ● 詩: 렴형미-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1999년 전국군중문학현상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어 창작활동 시작. 여성들의 다양한 삶과 운명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한결같이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북의 젊은 문학가 중에서 이채를 발함. ● 낭송: 성병숙- 연극배우. <하나둘셋>등에 출연했으며, MBC드라마 <문희>, 연극<친정엄마>에 출연함. 당신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시입니다. 이 시를 읽고는 심장이 마구 요동쳤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몇몇 생경한 어휘들도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진한 인간의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그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여야 할 피는/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이 구절 앞에서 저는 박수를 치고 싶었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한사람으로서 왠지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렴형미 시인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으로 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여성시인입니다.
작성일 2008-04-28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72 조회수 29248상세보기 -
시배달 고재종,「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고 재 종(낭송: 도종환) 어른 다섯의 아름이 넘는 교정의 느티나무,그 그늘 면적은 전교생을 다 들이고도 남는데그 어처구니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선생들이 그토록 말려도 둥치를 기어올라가지 사이의 까치집을 더듬는 아이,매미 잡으러 올라갔다가 수업도 그만 작파하고거기 매미처럼 붙어 늘어지게 자는 아이,또 개미 줄을 따라 내려오는 다람쥐와까만 눈망울을 서로 맞추는 아이도 있다.하기야 어느 날은 그 초록의 광휘에 젖어서한 처녀 선생은 반 아이들을 다 끌고 나오니그 어처구니인들 왜 싱싱하지 않으랴.아이들의 온갖 주먹다짐, 돌팔매질과 칼끝질에 한 군데도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지 끝에 푸른 울음의 별을 매달곤 해도반짝이어라, 봄이면 그 상처들에서고물고물 새잎들을 마구 내밀어고물거리는 아이들을 마냥 간질여댄다.그러다 또 몇몇 조숙한 여자 아이들이맑은 갈색 물든 잎새들에 연서를 적다가총각 선생 곧 떠난다는 소문에 술렁이면우수수, 그 봉싯한 가슴을 애써 쓸기도 하는데,그 어처구니나 그 밑의 아이들이나운동장에 치솟는 신발짝, 함성의 높이만큼은제 꿈과 사랑의 우듬지를 키운다는 걸늘 야단만 치는 교장 선생님도 알 만큼은 안다.아무렴, 가끔은 함박눈 타고 놀러온 하느님과상급생들 자꾸 도회로 떠나는 뒷모습 보며그 느티나무 스승 두런두런, 거기 우뚝한 것을. -『쪽빛문장』, 문학사상사, 2004(2005년 1분기 우수문학도서) 느티나무가 있어야 사람 사는 동네 같고, 느티나무가 있어야 학교 같습니다. 아이들이 기어오르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선생님도 아이들을 다 끌고 나와 놀고 싶게 만드는 나무, 돌팔매질과 칼질에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봄이면 새잎을 내어 아이들을 간질여대는 나무, 아이들의 함성만큼 제 꿈과 사랑의 우듬지를 키우는 나무, 그런 우뚝한 느티나무야말로 우리들의 스승입니다. 느티나무 잎 반짝이는 오월,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나뭇잎처럼 싱싱하길 바랍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작성일 2007-04-30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8 조회수 28971상세보기 -
시배달 진은영 - 오은, 「나는 오늘」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강성은 외, 『의자를 신고 달리는』, 창비교육, 2015. 오은 |「나는 오늘」을 배달하며… 정현종 시인은 ‘가슴 속의 진동’에 따라 사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날마다 다릅니다. 오늘 하루는 나의 슬픔과 나의 변덕과 나의 잘못으로 내 가슴이 들썩입니다. 그렇지만 그다음 오늘은 햇빛이 쏟아져서, 쓰다듬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네 곁을 종일 맴도느라 내 가슴이 흔들립니다. 그러니 사는 일이 진동 아니겠어요? 나에게서 나무에게로,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계속 오고가면서, 나와 세계 사이에서 아름답게 진동하는 일. 시인 진은영 * 정현종, 『정현종 시인의 사유가 깃든 로르카 시 여행』, 52쪽, 문학판, 2015.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작성일 2018-05-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66 조회수 23938상세보기 -
시배달 이대흠「동그라미」
동그라미 이대흠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면 일 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발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 출처 :『물 속의 불』,천년의 시작 2007 ● 詩 - 이대흠: 1967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94년『창작과비평』에 시가, 1999년『작가세계』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상처가 나를 살린다』『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장편소설『청앵』등이 있으며, 현대시동인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함. ●?낭송 - 김근: 시인, 문학나눔사무국 모든 것을 둥글게 만드는 어머니와 ‘ㅇ'의 결합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말 유성음 ‘ㅇ'의 풍성한 잔치입니다. 이 시 한 편에 ‘ㅇ'이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헤아려보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ㅇ'의 개수를 파악하고 나면 ‘ㅇ'의 끝없는 울림이 그칠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이 ‘ㅇ'의 힘은 어머니의 힘인 동시에 남도의 힘이요, 흙의 힘이기도 합니다. 이 앞에서는 막대기의 뻣뻣함, 직선의 횡포, 남성의 폭력, 도시의 이기심이 다 무릎을 꿇습니다. 오로지 어머니만이 이 세상의 받침입니다. 저도 시인의 어머니 흉내를 내봅니다. 긍가 안 긍가? 2008. 3. 31. 문학집배원 안도현.
작성일 2008-03-31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31 조회수 18936상세보기 -
시배달 진은영 - 이영광, 「얼굴」
[caption id="attachment_273042" align="alignnone" width="640" class="cente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caption] 작품 출처 : 이영광 시집,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이영광 |「얼굴」을 배달하며… 본다는 게 저절로 되는 일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니죠. 보고 있지만 안 보는 일이 태반이니까요. 인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자 어머니가 그녀를 알아보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솔닛은 그 질문이 참 짜증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병에 걸리기 전에도 엄마는 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엄마는 내가 일종의 거울이 되기를 바라셨죠. 엄마가 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완벽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언제나 옳은 모습을 비춰주는 그런 거울 말이에요. [……] 엄마가 계속 그렇게 나한테서 기적을 바라는 한 나는 절대 그것에 맞출 수가 없어요.”(『멀고도 가까운』) 누군가를 알아보려면 그의 얼굴에 차오르는 무수한 표정들에 충분히 잠겨봐야 합니다. 내 관심과 욕구에 취하지 않고서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가장 많아요. 시인 진은영 문학집배원 시배달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저서 『시시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 『문학의 아포토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
작성일 2018-02-22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74 조회수 18577상세보기 -
시배달 김경주「눈 내리는 내재율」
눈 내리는 내재율?저물 무렵 내리는 눈은 방마다 조용히 불고 있는 마을의 불빛들을 닮아가는군요눈들은 한 송이 한 송이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지금 저는 그 고요한 시간마다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지요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을 가장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 김경주??뚜껑이 열린 채 버려진밥통 속으로 눈이 내린다눈들의 운율이 바닥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어린 쥐들의 깨진 이빨 조각 같은 것이 늦은 밤 돌아와 으스스 떨며바닥을 긁던, 숟가락이 지나간 자리 같은 것이양은의 바닥에 낭자하다?제 안의 격렬한 온도를, 수천 번 더 뒤집을 수 있는밥통의 연대기가 내게는 없다어쩌면 송진처럼 울울울 밖으로흘러나오던 밥물은?그래서 밥통의 오래된 내재율이 되었는지품은 열이 말라가면, 음악은 스스로 물러간다는데새들도 저녁이면 저처럼자신이 닿을 수 없는 음역으로열을 내려 보내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속으로 뜨겁게 뒤집었던 시간을 열어 보이며몸의 열을 다 비우고 나서야말라가는 생이 있다봄날은 방에서 혼자 끓고 있는밥물의 희미한 쪽이다● 출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중앙 2006년 ?● 詩, 낭송: 김경주- 1976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다 있음. ‘눈 내리는 내재율’이라는 전대미문의 통사구조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뜰 필요는 없습니다. 뚜껑이 열린 밥통 속으로 내려쌓이는 눈, 저녁에 내려앉는 새, 밥통 속에서 끓는 밥물. 이 세 가지 이미지의 병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입니다. 시인이 툭툭 던지는 이미지와 리듬에 그냥 몸을 맡겨볼 일입니다. 이 새로운 시인의 문법은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긴장을 잃지 않고 한창 팽팽합니다. 그는 시적 생부와 계부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자신의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무도 ‘닿을 수 없는 음역’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지켜봐주기 바랍니다. 2008. 4. 21. 문학집배원 안도현.
작성일 2008-04-21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9 조회수 16862상세보기 -
시배달 박성우 - 경종호,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작품 출처 :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2015년 11·12월호. ■ 경종호 │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을 배달하며… 그렇군요. 새싹 하나도 그냥 나는 게 아니군요. 새싹 하나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많은 도움과 수고가 있었군요. 새싹을 피해 폴짝 뛰어 학교에 가는 아이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큼상큼 풋풋해지는 봄입니다. 중요한 일을 한 아이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고 싶은 봄입니다. 시인 박성우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 살고 있다.
작성일 2017-03-3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5 조회수 15994상세보기 -
시배달 손택수,「흰둥이 생각」
흰둥이 생각 손 택 수(낭송: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시로 여는 세상》(2004년 겨울호) 이 흰둥이. 어디서 본 적 있는 흰둥이. 어릴 때 우리 집에서도 길러 본적이 있는 것 같은 흰둥이.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핥아주던 흰둥이. 정 깊이 들어 헤어지려면 눈물 나던 짐승.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가슴 무거우면서도 살려주고 싶던 흰둥이. 바보 같이 다시 돌아와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눈빛이 축축히 젖어 있던 그 흰둥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문학집배원 도종환
작성일 2006-07-17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25 조회수 15619상세보기 -
시배달 신경림,「나무1 - 지리산에서」
나무 1지리산에서 신 경 림(낭송: 김사인)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제 치레하느라 오히려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보다 실하고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동무 나무가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훼방한다는 것을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길』, 창비, 1990 이번 주에는 식목일도 있고 한식도 있습니다. 산에 가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산에 가시거든 나무 한 그루에서도 삶의 지혜를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치레 하느라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다가 뽑히거나 베어진다고 합니다.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문학집배원 도종환
작성일 2007-04-02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5 조회수 14749상세보기 -
시배달 김사인,「풍경의 깊이」
풍경의 깊이 김 사 인(낭송: 본인) 바람 불고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2006년 3분기 우수문학도서) 풀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습니다. 키 낮은 풀들이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그 가녀린 것들의 외로운 떨림으로 우주의 저녁 한 때가 비로소 저물어 간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풀들의 떨림 사이에 묻어 있는 고요속에서, 고요한 봄볕속에서 곤히 잠들고 싶어 합니다. 나비나 벌이나 벌레의 몸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에서 그대의 눈빛을 발견해 내는 섬세한 마음이 풍경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합니다. 낮아지고 고요해져서 바라보아야 풍경을 깊이 있게 볼 수 있습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작성일 2007-04-09 작성자 웹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3 조회수 13070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