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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 중에서

  • 작성일 2022-03-31
  • 조회수 831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 중에서 - 최현우

부모님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학교까지는 집과 학교가 가까웠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와 집이 꽤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또 다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침마다 고등학교 정문에서 벌어지는 두발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새벽 여섯 시에 등교했다. 그때쯤부터 밤마다 책을 보거나 컴퓨터로 영화를 보거나 잡글을 쓰는 야행성 생활을 시작했으므로, 밤을 꼴딱 새우고 일찍 등교해서 쪽잠을 자는 식으로 살았다. 아무튼, 나는 새벽 등교를 하다가 자전거를 세우고 꼭 편의점에 들러 초코 우유를 사서 ‘삿갓봉 공원’에 앉아 우유를 마셨다. 삿갓봉 공원은 중계동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그리 크지 않은 근린공원이었지만, 불암산과 가까워서 높고 순한 불암삼 산세가 잘 보였고 비가 오는 날에는 불암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깨끗하고 편안한 숲 냄새 속으로 마음을 놓기에 좋은 장소였다. 새벽의 공원은 아직 사람들로 분주하지 않아서 마치 홀로 다른 세계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안개가 자주 깔렸는데, 슬픈 일이 있으면 그 공원 정자에서 조금 울다가 학교에 갔다. 내게는 아주 작은 자연이었고, 아파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삶 속에서 마음의 맨발을 내밀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연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앉아 고민을 털어놓는 장소였고, 학교에서 합창단을 했으므로 합창단원 몇 명과 잘 맞지 않는 화음을 다듬으며 노래를 부르다가 근처에 사는 어른께 혼이 나기도 했다. 공원의 이름이 하필이면 ‘삿갓봉’이라서, 남고에 다니는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면 멀지 않은 곳에 친구들과 단골 식당을 만들었다. 당고개역은 4호선 종착지였고 창동역에서부터 당고개역까지는 지하철이 지하가 아니라 고가로 다녔다. 상계역과 당고개역을 잇는 고가 밑으로 오래되고 허름해 보이지만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한 번만 갈 수는 없는 숨은 맛집들이 즐비했다. 친구들과 나는 당고개역 근처, 속칭으로 ‘굴다리’라고 부르는 곳에 있는 곱창전골집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 집은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나무 간판이 있었으나 칠이 벗겨져서 누구도 가게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는 그곳을 ‘굴다리 곱창’이라고 불렀다.(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당고개역에는 굴다리라고 부를 만한 구조물이 없었는데, 모두가 그냥 굴다리라고 잘못 부르고 있었다.) 굴다리 곱창집을 우리가 애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가성비였다. 주인 할머니와 며느리인지 딸인지 모를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젊은 분까지 세 분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자주 나오지 않으시고 아주머니께서 주로 계셨다. 굴다리 곱창의 곱창전골은 1인분에 8,000원이었는데, 네 명이 가서 2인분을 시키면 6인분 정도의 양이 나오는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푸짐한 당면과 야들야들하게 익은 곱창을 들깻가루 가득한 가게 비법 양념장에 찍어 먹는 게 그 시절 우리가 몰두했던 먹거리였다. 게다가 처음엔 전골을 다 먹고 나면 볶음밥을 공짜로 볶아주셨는데, 어느 날부턴가 1인분에 2,000원을 더 내야 했다. 그러나 2,000원만 내면, 몇 명이 가든 사람 수만큼 볶음밥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한창 많이 먹는 고등학생들의 배를 생각해주셨던 인정이 아니었나 싶다. 굴다리 곱창집은 당고개역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사라졌다. 
당고개역에서 끝나는 선로 너머로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나누는 수락산이 솟아 있다. 수락산은 서울 북쪽에서 북한산과 도봉산 다음으로 높고 넓은 산이다. 수락산 지대에는 작은 빌라들과 좁은 골목들이 서로 얽혀 돋아나 있었는데, 당고개역에 내려서 수락산 방향을 올려다보면 펼쳐지는 마을들은 어딘가 뭉클하고 멋진 광경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당고개역 부근의 그 마을들이 그보다 오래전, 청계천 개간 사업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네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 동네를 ‘달동네’라고 불렀고, 달동네라는 이름은 어쩐지 달에 가까운 동네라는 뜻 같아서 문득 아름답게 여겨지기도 했다. 밤에 멀리서 보는 그 동네는 젓깃줄로 이어진 가로등 불빛들이 마치 별자리의 별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린 듯이 보였다. 



작가 : 최현우
출전 : 『나의 아름다움과 당신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한겨레출판, 2021) p.142-p.145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 중에서 - 최현우

부모님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학교까지는 집과 학교가 가까웠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와 집이 꽤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또 다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침마다 고등학교 정문에서 벌어지는 두발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새벽 여섯 시에 등교했다. 그때쯤부터 밤마다 책을 보거나 컴퓨터로 영화를 보거나 잡글을 쓰는 야행성 생활을 시작했으므로, 밤을 꼴딱 새우고 일찍 등교해서 쪽잠을 자는 식으로 살았다. 아무튼, 나는 새벽 등교를 하다가 자전거를 세우고 꼭 편의점에 들러 초코 우유를 사서 ‘삿갓봉 공원’에 앉아 우유를 마셨다. 삿갓봉 공원은 중계동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그리 크지 않은 근린공원이었지만, 불암산과 가까워서 높고 순한 불암삼 산세가 잘 보였고 비가 오는 날에는 불암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깨끗하고 편안한 숲 냄새 속으로 마음을 놓기에 좋은 장소였다. 새벽의 공원은 아직 사람들로 분주하지 않아서 마치 홀로 다른 세계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안개가 자주 깔렸는데, 슬픈 일이 있으면 그 공원 정자에서 조금 울다가 학교에 갔다. 내게는 아주 작은 자연이었고, 아파트와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삶 속에서 마음의 맨발을 내밀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연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앉아 고민을 털어놓는 장소였고, 학교에서 합창단을 했으므로 합창단원 몇 명과 잘 맞지 않는 화음을 다듬으며 노래를 부르다가 근처에 사는 어른께 혼이 나기도 했다. 공원의 이름이 하필이면 ‘삿갓봉’이라서, 남고에 다니는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소재가 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면 멀지 않은 곳에 친구들과 단골 식당을 만들었다. 당고개역은 4호선 종착지였고 창동역에서부터 당고개역까지는 지하철이 지하가 아니라 고가로 다녔다. 상계역과 당고개역을 잇는 고가 밑으로 오래되고 허름해 보이지만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한 번만 갈 수는 없는 숨은 맛집들이 즐비했다. 친구들과 나는 당고개역 근처, 속칭으로 ‘굴다리’라고 부르는 곳에 있는 곱창전골집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 집은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나무 간판이 있었으나 칠이 벗겨져서 누구도 가게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는 그곳을 ‘굴다리 곱창’이라고 불렀다.(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당고개역에는 굴다리라고 부를 만한 구조물이 없었는데, 모두가 그냥 굴다리라고 잘못 부르고 있었다.) 굴다리 곱창집을 우리가 애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가성비였다. 주인 할머니와 며느리인지 딸인지 모를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젊은 분까지 세 분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자주 나오지 않으시고 아주머니께서 주로 계셨다. 굴다리 곱창의 곱창전골은 1인분에 8,000원이었는데, 네 명이 가서 2인분을 시키면 6인분 정도의 양이 나오는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푸짐한 당면과 야들야들하게 익은 곱창을 들깻가루 가득한 가게 비법 양념장에 찍어 먹는 게 그 시절 우리가 몰두했던 먹거리였다. 게다가 처음엔 전골을 다 먹고 나면 볶음밥을 공짜로 볶아주셨는데, 어느 날부턴가 1인분에 2,000원을 더 내야 했다. 그러나 2,000원만 내면, 몇 명이 가든 사람 수만큼 볶음밥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한창 많이 먹는 고등학생들의 배를 생각해주셨던 인정이 아니었나 싶다. 굴다리 곱창집은 당고개역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사라졌다. 
당고개역에서 끝나는 선로 너머로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나누는 수락산이 솟아 있다. 수락산은 서울 북쪽에서 북한산과 도봉산 다음으로 높고 넓은 산이다. 수락산 지대에는 작은 빌라들과 좁은 골목들이 서로 얽혀 돋아나 있었는데, 당고개역에 내려서 수락산 방향을 올려다보면 펼쳐지는 마을들은 어딘가 뭉클하고 멋진 광경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당고개역 부근의 그 마을들이 그보다 오래전, 청계천 개간 사업으로 인해 살던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네라는 것이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그 동네를 ‘달동네’라고 불렀고, 달동네라는 이름은 어쩐지 달에 가까운 동네라는 뜻 같아서 문득 아름답게 여겨지기도 했다. 밤에 멀리서 보는 그 동네는 젓깃줄로 이어진 가로등 불빛들이 마치 별자리의 별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린 듯이 보였다. 



작가 : 최현우
출전 : 『나의 아름다움과 당신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한겨레출판, 2021) p.142-p.145

 

 

최현우 ┃「우리는 모두 한번쯤 상계동에 살았겠지요」을 배달하며

 

    어느 ‘동네’에 사십니까. 살고 있는 ‘아파트’의 브랜드 말고, 살고 있는 ‘동네’요.
한 동네에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동네의 기척이 있습니다. 단골 과일 가게 주인이 장사 준비를 시작하려고 기지개를 켜고 허리를 쭉 펴는 모습, 모퉁이 떡집에서 방금 나온 떡을 냄새만으로 알아차리는 일, 문을 닫은 가게 자리에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기웃거리며 자주 들여다보는 고갯짓이나 핫도그나 붕어빵 파는 트럭이 오는 요일을 체크해 두는 일 같은 것이요.
올해는 가로수 중 어느 나무의 꽃이 먼저 피는지, 화원에서 내놓은 나무가 지난 계절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단골 세탁방의 건조기는 언제 한가한지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언제든 마음 편하게 들러서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단골 식당이 있고 ‘마음의 맨발’을 편하게 내딛게 되는 한갓진 산책길도 있기 마련이고요. 그러고 보면 동네라는 말, 참 좋지요. 소리내어 동네, 하고 말해보면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져서 사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동그랗게 모여사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상계동은 우리가 모두 한번쯤 살아본 적 있는 동네, 살아보지 못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는 동네의 이름이나 다름없겠지요. 여러분의 상계동은 어디입니까.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최현우

출전 : 『나의 아름다움과 당신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 (한겨레출판, 2021) p.142-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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