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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 「툰드라」 중에서

  • 작성일 2023-04-20
  • 조회수 1,948


좋았건 싫었건 이별의 맛은 늘 공허였다. 미세한 사금파리 가루가 적막한 한밤에 눈 내리듯 가슴에 흩어지는 기분이랄까. 사탕가루도 아닌 이 화학물이 심장에 달라붙기 전에 생수 2리터로 씻어내리든 보드카와 섞어 토하지 않으면 오래오래 제자리에 내려앉은 채 재가 될지 모른다.


(강석경, 「툰드라」, 『툰드라』, 도서출판 강, 2023,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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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사금파리 가루가 한밤에 눈 내리듯 가슴에 흩어지는 기분. 이별의 순간에 찾아오는 공허에 대한 표현이다. 사람들이 그런 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유해한 화학물이 심장에 달라붙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화학물이 심장에 달라붙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공허 때문이라는 생각. 그것이 심장에 달라붙으면 치명적일 테니까, 그러니까 씻어내리든 토하든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 재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의 일침. 이별 이후에도 생존해야 한다는 이 깨달음의 눈물겨움.




소설가 이승우


작가: 강석경

출전: 「툰드라」, 『툰드라』(도서출판 강, 2023,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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