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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중에서

  • 작성일 2023-05-04
  • 조회수 1,910



우리는 그저 앙상하고 외로워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간힘을 다해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채워줄 뿐이니까요.


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문학동네, 2019, 74-75쪽


소설가 이승우

  그리움이 어디서 생기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 문장을 들려주겠다. 앙상하고 외롭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대상이 고귀하고 가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고귀하고 가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귀하고 가치가 있다고 해도 내가 앙상하지 않고 외롭지 않다면 그쪽으로 마음이 쉬 기울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대상이 고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은 내가 앙상하고 외롭기 때문에 발견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나의 앙상함과 외로움이 상대에게서 훌륭함을 찾아내게 했을 수 있다. 그리워하기 위해서.

  이어지는 ‘안간힘을 다해서’라는 구절이 이런 가정에 힘을 보태주는 것 같다. 서로의 의미를 채워주기 위해, 서로의 고귀함과 가치를 찾아주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그리움은 저절로 생기는 어떤 기분이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인 ‘누군가’가 언제나 타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반드시 둘 이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앙상하고 외로운 존재인 자신에게 의미를 주기 위해 가상의 자아를 만들어 마주하기도 한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이라는 블로그를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장욱 소설의 인물처럼. 그럴 때 이 ‘서로의 의미 채우기’는 생존의 몸부림과 구분되지 않고……, 그러니 그리움이란 얼마나 처절한 것이냐.




소설가 이승우


작가: 이장욱

출전: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문학동네, 2019, 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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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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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관리자
  • 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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