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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내 다정한 젖꼭지」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05-18
  • 조회수 1,764


비로소 어떤 슬픔이 찾아왔다. 죽은 할머니의 몸 일부와 맞닿아 있는 몸들이 이상하게 한몸 같았다. 죽음의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일종의 유대감인 듯했다.


천운영, 「내 다정한 젖꼭지」, 『반에 반의 반』, 문학동네, 2023, 181쪽

소설가 이승우
천운영, 「내 다정한 젖꼭지」를 배달하며
임종의 순간에, 그 자리에 같이 한 사람들이 느끼는 ‘한몸’ 같은 유대감에 대해 다른 말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대감이 죽음의 순간을 함께할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이든 ‘함께함’이 유대감의 요인이다. 무슨 일이든 함께할 때 서먹함이 사라지고 낯섦이 물러난다. 특히 격렬한 감정이 동반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한몸’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격렬한 감정에서 발산되는 어떤 에너지가 끈처럼 참여한 사람들을 묶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하거나 응원할 때 우리는 그런 기운을 감지한다. 그런 기운이라면, 임종의 순간에 죽어가는 사람의 몸의 어느 부분인가를 만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것보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 공간을 가득 채운 에너지는 산 사람에게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고 있는 사람에게서도 나온 것일 테니까. 영혼, 즉 신의 숨결이 스며 있을 테니까. 그 순간이 슬픔만이 아니라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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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앙상하고 외로워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간힘을 다해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채워줄 뿐이니까요. 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문학동네, 2019, 74-75쪽

  • 최고관리자
  •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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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건 싫었건 이별의 맛은 늘 공허였다. 미세한 사금파리 가루가 적막한 한밤에 눈 내리듯 가슴에 흩어지는 기분이랄까. 사탕가루도 아닌 이 화학물이 심장에 달라붙기 전에 생수 2리터로 씻어내리든 보드카와 섞어 토하지 않으면 오래오래 제자리에 내려앉은 채 재가 될지 모른다. (강석경, 「툰드라」, 『툰드라』, 도서출판 강, 2023, 50쪽) - 미세한 사금파리 가루가 한밤에 눈 내리듯 가슴에 흩어지는 기분. 이별의 순간에 찾아오는 공허에 대한 표현이다. 사람들이 그런 순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유해한 화학물이 심장에 달라붙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화학물이 심장에 달라붙기 전에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공허 때문이라는 생각. 그것이 심장에 달라붙으면 치명적일 테니까, 그러니까 씻어내리든 토하든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 재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의 일침. 이별 이후에도 생존해야 한다는 이 깨달음의 눈물겨움. 소설가 이승우 작가: 강석경 출전: 「툰드라」, 『툰드라』(도서출판 강, 2023, 50쪽)

  • 최고관리자
  • 20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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