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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내가 아는 소설가, K」

  • 작성일 2016-06-09
  • 조회수 1,301


웃음이 제 자신을 참지 못하는 듯, 주름과 콧날과 실룩이는 입술
그 모든 것을 웃음의 덩어리로 반죽하면서……


김정환, 「내가 아는 소설가, K」

얼굴이 하나 있다. 아주 잘생긴, 탤런트 노주현 형용이지만, 시청률 전략상 미남 위주로 남자 탤런트를 뽑았던 그런 시절 미남 탤런트의 대표격이었던 그 노주현보다 훨씬 샤프하게 생긴 얼굴. 그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느리게, 그러다가 웃음이 제 자신을 참지 못하고 일순 웃음의 근육과 웃음의 눈 가장자리 주름과 콧날과 그 옆의 움푹 파인 부분과 실룩이는 입술 그 모든 것을 웃음의 덩어리로 반죽하면서 아주 동그란, 평면도 입체도 아닌 웃음 자체의 순정한 동그라미를 그리고 사라지는, 그런 얼굴. 그리고 그 사실이 매우 흡족한 듯 키키킥 그러다가 허어, 허어, 허어.... 박자가 일정하게 그리고 호탕하게 유지되면서 댓바람에 먼 길을 내달려 온 풍모를 펼치는, 그런 얼굴. 그때 그는 물론 주석(酒席)의 여타 좌중도 어김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흔쾌하다. 그것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이번에는 매우 편안한 함박웃음을 머금는다.
젊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이들수록 K, 그를 자주 보거나 드문드문 마주치거나 상관없이 그 웃음이 매우 편재적(遍在的)이라는 데 나는 놀라고 그것이 그의 소설문학을, 소위 대하역사소설조차 20세기 현대문학이 달한 어떤 경지와 일맥상통케 한다는 것을 다시 놀라움을 깨닫곤 하는 것이다.
절묘한 육담 뒤에 터지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긍정하는 위대한 웃음. 그의 소설문학은 바로 그것을, ‘대하소설’이라는 형식적 규정을 넘어 미학적 본질로 갖고 있다. 그렇게 보면 평론가와 친한 편이고 ‘잘 나가는 작가’인 그도 문학적 평가면에서는 오해로 인한 외로움의 덫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뜻인가. ‘대하소설’로 상을 받으면서 ‘좋은 단편을 기대한다’는 ‘심사평’을 듣고 그가 기분이 몹시 상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가 그런 내색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의 문학을 ‘훌륭한’ 단편문학과 ‘읽을 만한’ 대하소설류로 2분하는 기존의 평단 풍토가, 너무 게으른 것 같아 화가 났던 것이다. 어쨌거나, 환갑 기념 글모음집이라... 출판사 청탁대로 ‘내가 아는 K선배’라는 제목을 턱 하니 붙여 놓자마자 그의 얼굴, 얼굴의 착한 웃음, 착한 웃음의 못지떡 같은 동그라미가 공(空)의 위력을 풍기며, 없는 그가 벌써 내 곁을 내 주변을 매우 일상적인 풍경으로, 푸근함으로, 늘 그랬다는 듯이 감싸 안기 시작한다.

▶ 작가-김정환-시인. 평론가. 1954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본인의 저작만으로 벽 한 면을 꽉 채운 서가에, 또 다른 한쪽 벽은 CD로 꽉 채울 만큼 음악광이다. 자신이 설립, 운영했던 한국문학학교 교장을 지낸 경력을 지금까지도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학교는 이미 문 닫은 지 오래됐지만, 그곳에서 배출한 시인, 작가들은 원고지뿐만 아니라 인생의 밭을 창작하는 아웃사이더적 예술혼으로 늘 현역의 삶을 살고 있다.

▶ 낭독_ 서윤선 - 성우. 연극 ‘백치, 백지’, 영화 ‘줌 피씨 월드’, 애니메이션 ‘ 명탐장 코난’ 등에 출연.

배달하며

언젠가 비디오 아트 전시에서 ‘비명’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십분 이상 서서 지켜본 일이 있다. 비통함이란 감정이 얼굴 근육을 비틀어 찢고,
소리로서 아프게 터져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슬로우 비디오였다.
얼굴에 잠시 퍼졌다 사라지는 웃음은, 누구만의 특별한 것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마치 실시간 생중계하듯 언어로 정교하게 재현하여
‘K’ 라는 사람만의 웃음으로 구별해놓는 수사(修辭)적 관찰이
카메라의 눈을 무색하게 한다. 소리가 없음에도 이 웃음은 귀에 더욱 크게 울린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사회평론)
▶ 음악_ k- The Film Edge-Our Heritage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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