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비평 아카이브
- 현대시학 2024년 1-2월호(제617호)
미래파 이후의 한국 시
매너리즘의 시절
실제 사례들을 인용하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을 무릅쓰고 오늘날 한국시의 추세가 되고 있는 양태를 지적하기로 한다. 그 양태를 ‘개그의 향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묘사는 줄고 말장난이 난무하고 있다. 그 춤은 대상을 조물락거리는 걸 즐기는 일종의 자기 현시의 독무들이다. 옆에서 비슷한 무희들이 저마다의 춤에 몰입하고 있다. 정면에 자리한 거울 속의 독자들 또한 저마다의 향락에 빠져든다. 그 행동의 방향은 오로지 일대일로 대응하는 직선들의 어지러운 교차이다.
물리적 현상으로서 빛과 실물의 차이는 후자가 반발하거나 들러붙는 데 비해, 빛은 그저 스쳐 지나치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의 어지러운 교차는 풍요와 고독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는 오늘날 한국시의 현황에 대한 비유로 쓰일 만하다. 오늘의 시인들이 세상을 향해서 쏟아붓는 얘기가 무척 많다는 걸 알리면서 동시에 저마다 자기만의 ‘문자 반죽’ 놀이를 통해 ‘창조’된 작품들이 더미를 이루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양을 보여준다. 이것은 일종의 ‘사이키델릭 효과’라고 부름직한 현상을 유발한다. 독자들이 점멸하는 시어들이 내뿜는 현란한 빛무리에 저마다의 환상을 투여하면서 열락하는 것이다.
이 정황은 한국시가 일종의 ‘매너리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매너리즘이란 “틀에 박힌 태도”라는 통상적인 뜻으로 쓰인 게 아니다. 이는 특정한 시대의 미학적 태도를 가리킨다. 르네상스 미술 이후 등장한 매너리즘은 미학의 타성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이어서 “구성과 의미의 통일성에 대한 기대를 해체하는” 기이한 놀이, “엉뚱함l’insolite”에 대한 주관적인 취향 속에 잠겨들었던 일련의 예술적 생산들을 가리킨다(앙드레 시마André Simha, 「철학적 접근」, Mathilde Bernard et al., 『예술과 정서Arts et Émotions. Dictionnaire』, 2016).
이 매너리즘이 ‘바로크’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르네상스 예술에 대항할만한 집단적 규모의 형태를 창출하지 못하고 각개로 산개하는 미적 시도들로 웅성거렸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길에 대한 “풀꽃데미같은”(서정주) 갈망과 동시에 작로作路에 대한 무기력을 동시에 피워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한 것일까? 이것을 묻기 전에 그 근원을 찾는 게 더 유의미한 일일 것 같다. 왜냐하면 이 현상이 새로운 미래를 향한 어지러운 준비운동으로 봐야 한다면, 동시에, 이를 한국시의 맥락 안에 위치시킬 때 그 정향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개인들의 폭력적 우울’이라는 사회적 현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에 대한 문학사적 맥락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문학사적 맥락에 관여한 시인 사회의 실기失期가 있었고. 그리고 그로 인해 한국시에 진화의 특이점이 발생할 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래파' 라는 변곡점
필자가 생각하기에 2005년 무렵 주목할 현상이 된 ‘미래파’ 소동에 변곡점이 놓여 있다. ‘변곡점’이라고 지칭한 것은, 분명 세칭 ‘미래파’로 거명된 새로운 시적 경향의 출현은 의미심장한 사건이었으며, 그에 대한 해석이 온당하게 이루어졌다면 한국시는 그것을 발판으로 차원이동을 할 수 있었으리라는 짐작을 뜻한다. 그리고 그런 이동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덧붙여 가리킨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미래파’를 앞장 서서 알린 평론들이 새로운 시의 출현을 민감하게 포착하였으나 그것의 의미를 포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경과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이 비판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는 오히려 새로운 시의 발아를 짚어낸 그 감각을 존중하고 있다. 그리고 감각이 심화된 이해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또한 사태의 경과에 대해 필자의 외면이 책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필자에게도 한국문학의 현장을 지켜보고 그 추이에 대해 해석을 내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필자가 처한 물리적·심리적 정황을 변명거리로 내세운다고 해서 그 책임이 면해지는 건 아니다.
이른바 ‘미래파’의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미래파로 지목된 시인들 중에서 지금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이들은, 황병승, 김경주, 조연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시적 진술에서 의미를 종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없었다”는 과거형은 그들의 비극적 퇴장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은 시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조연호는 특별한 사건이 없었으나 그가 지금 시를 쓰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주목할 것은 그들의 시가 두루 ‘의미 달성’이라는 한국문학의 줄기찬 염원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들의 시는 넓게 말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의 차원으로, 다시 말해 의미의 여집합의 공간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에서 호모섹슈얼리티를 떠올리는 반응은 쉽게 나올 수 있으나, 시는 철저히 그런 호기심을 좌절시킨다. 오히려 우리는 그 시집의 첫 시, 「주치의 h」의 첫 두 행,
떠나기 전, 집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다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에서 나타난 ‘뜻’의 삭제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구절은 사방에 산개해 있다.
김경주를 괄목상대하게 했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문법적 범주를 깨뜨림으로써 독자들을 놀라게 하면서 매혹시켰다. 그의 시는 황병승에 비해 부드러운 파격을 꾀했고 따라서 아주 작은 소통의 문을 열어두었으니, 그를 한때의 스타로 만든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소통의 반대편을 향해 가려 했다는 것은 첫 시의 다음과 같은 시구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외계」
요컨대 의미의 시원을 건너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눈이나 날개 기관 따위는 다 소실돼버리고 팔다리만 조금씩 가늘게 길어진다는데 가늘어진다는 말의 소요들. 이것은 5~6 억 년 전부터 살아남은 캄브리아기 생물들의 절대음감에 관한 얘기다 ―「파이돈 —가늘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에서 지시된 “말의 소요들”을 통해서 “절대음감”에 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연호는 아예 ‘어불성설’의 차원으로 직접 가고자 했다.
부인이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산문과 운문을 생의 모든 부분에서 반복했다
회색이 만든 아름답고 슬픈 시대
내가 그대에게 하루에 하나씩의 문밖을 던지던 것에 아직 방문객이 없던 시절
그늘을 잃었고 그날의 그림자를 모두 잃었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하지만 자고 나면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리라 ―「고전주의자의 성」
여기에 유일한 생의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생을 무의미로 돌리는 행위뿐이다. “하루에 하나씩의 문밖을 던지”는 것. 수탁자는 독자이다.
'의미주의'로부터의 탈주
이와 같은 의미 소거의 경향이 왜 출몰했을까? 그것은 한국시가 오랫동안 의미 획득이라는 한결같은 목표를 향해 매진해 왔다는 배경을 유념해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을 ‘의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의미주의의 올곧은 추구는 시대적 필연이며 동시에 시대의 한계이기도 했다. 근대에 눈 뜬 이후 한국의 식자들은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한국인의 존재 이유를 납득하고 설득시키는 데에 전력을 쏟았다. 그 노력은 군중의 호응을 점차로 얻어 지금은 군중의 모든 행위가 의미에 대한 투기가 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조금 더 요약적으로 말하면, 한국인의 모든 행위는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는 이은상의 유명한 구절의 다양한 변이본들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20세기를 통틀어 피해자이고 수난자이고 비-주체인, 즉 의미박탈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그 규정은 설움과 생존력의 증대(역동성)를 동시에 유발하였다. 설움은 한국인에게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로 작용했고, ‘역동성’은 한국인의 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문학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문학은 한반도의 사람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속절없이 추락하는 사태를 수난 혹은 한의 양태로 표출하였다. 앞에 인용한 조연호 시의 “부인이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라는 진술이 바로 그 사정을 그대로 가리킨다. 조연호에게 이 진술은 시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제 시에서 그걸 던져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주의의 질주는 이제 가속을 얻어 충만한 의미의 온갖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필자가 기 드보르Guy Debord의 개념을 빌어 ‘스펙타클의 시대’가 되었다고 보는 소이이다. 스펙타클의 시대는 단순히 시각적인 것의 광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시방 시각적인 것이 언어를 집어삼키는 데까지 발전한 사태를 목도하고 있다. 수전 손택(『사진에 관하여』)이 활약하던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언어(이야기)는 시각적인 것의 순간적 환영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제공하는 듯이 여겨졌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다른 단계로 접어들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의 온갖 매체, 행위, 사건들은 시각에 이야기를 내장시킴으로써 시각의 현혹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절정에 놓여 있는 것이 정치적 극렬분자들이 연출하는 별의별 언어-물리적 폭력들이다.
따라서 이제 ‘의미주의’는 한국인의 삶의 열화로 작용하던 데서, 한국인의 정신을 파괴하는 염증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제는 이로부터 벗어나야 할 절실한 이유가 발생한 것이다. 21세기 초엽은 이 문제의 보의 솔기가 튿어진 시기였다. 당시 통신망에서의 폭력성의 증가를 다시 생각해보라. 그때의 왁자지껄은 이제 아수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황병승의 본능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쓰게 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기다란 수염을 달고
아무런 화면도 보여주지 않을 거야
시각과 언어의 결탁은 의미를 절정 속으로 끌고 간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둘의 공모를 끊어버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반反-소통의 미학을 향하여
이런 깨달음이 지금 요긴한 때이나, 이를 ‘미래파’로 일컬어진 시인들만이 느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기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글쓰기écriture’가 근본적으로 ‘반-소통contre-communication’의 행위임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글쓰기는 언제나 언어 저편에 위치한다. 그것은 하나의 흐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씨앗으로서 생장한다. 그것은 특정한 비밀[=태어남에 관한-옮긴 이]의 본질이자 위협인 사건을 표명한다. 그것은 반反-소통이다. 그것은 (현재의 언어 질서에) 위협을 가한다.
―『글쓰기의 영도』
바르트의 이런 통찰에 앞서서, 장 콕토Jean Cocteau는 “난해한 책들로 능란하게 작동하는 기계를 만드는 행위” 즉 “오해를 통해서만 소통하는 행위”를 문학에 할당한 바가 있다. 이에 대한 주석에서 피에르-마리 에롱Pierre-Marie Héron은 “‘문학이 자동사’라는 바르트의 말은 탁월한 반-소통anti-communication이라고 덧붙였다(이상, 『장 콕토 수첩Cahier Jean Cocteau』). “반소통은 의도적인 악필이다”라는 바르트의 진술(『S/Z』) 역시 콕토의 착안과 상응한다.
또한 한국시의 자장 안에서도 이미 의미주의에 대한 각성은 일찍부터 출현한 바 있다. 이를 정확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의미주의의 변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미주의는 시각+언어로 완성되지만, 그 시초에서는 소리+문자의 결합으로서 시작되었다는 것.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그 말씀이 바로 소리와 문자를 결합한 형태의 원본이다. 소리가 거대한 의미의 덩어리로 출현한 것, 데리다가 ‘음성중심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리킨 것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방향의 저항이 있었다. 하나는 소리로서 불가능한 문자만으로 시를 쓰는 것, 그것을 최초로 시도한 이가 이상李箱이다. 문자의 기능에 대해서는 좀 더 섬세한 고찰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또한 데리다 이래 자주 언급된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한국시의 현장에서 문자로서의 시는 이수명 등에 와서 이미지가 의미를 추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른 방향은 소리에서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다. 의성어와 의태어에서 극명하게 보이듯이 소리와 의미의 결합을 떼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리를 ‘소음’으로 돌리려 한 성기완의 이른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과 『래여애반다라』가 의미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반-소통의 미학은 험난한 장벽들을 앞에 두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범주 혼돈의 문제가 있다. 의미주의에 대한 거부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구성한다는 역설적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의미주의에 대한 거부는 미학적 거부를 북돋기 위해 지성적 의미를 부가적으로 발생시키고 촉진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즉 미적 차원의 의미와 지적 차원의 의미를 구별하고, 지적 차원의 의미는 일종의 발판으로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미적 차원에서 의미 중심이 아닌 다른 방식의 언어체가 나타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미래파’의 소란 속에서 시인들과 평론가들 모두가 그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미래파’의 명명자인 권혁웅은 미래파의 시도를 단일 진리로부터 복수적 진리로의 개방으로 보았다.
미래파는 입체파와 마찬가지로, 화폭에 복수複數의 시점을 도입했다. 그들은 달리는 말의 다리가 네 개가 아니라 스무 개라고 말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잔상殘像이 사실은, 중첩된 면面들이 내보이는 실상實像이라는 것이다. 스무 개의 발을 재게 놀리며 달리는 말 그림을, 말의 왜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최근 시의 ‘특별한’ 형상들을 형상의 왜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시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논거로 삼은 자리는 절대로, 항구적인 진리의 자리가 아니다. 차라리 최근 시들이 진리로 간주되어온 그 자리를 비판의 대상으로 겨누고 있다고 말해야 옳다. 그래서 앞의 비판을 이렇게 고쳐 말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의 젊은 시인들은 중언부언을 중요한 발화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단형의 틀에 우겨넣기에는 시의 전언이 너무 풍부하다. 그들은 음악을 위해서 전언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래파 – 2005년, 젊은 시인들」
여기에 착오가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관적으로 미래파의 본질을 감지했다는 흔적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특히 그가 오랜 절필 끝에 재등장한 시인, 위선환과 친근했다는 것은 그에 대한 또렷한 간접 증거이다. 위선환의 시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바탕은 그가 종래의 시와 다른 ‘초현실주의’적인 시를 쓰겠다고 결심했고 그로 인해 시의 발표장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위선환의 결심이 명확한 분석적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 흐른 ‘탐진강’을 통상적인 강에 대한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보아야 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강’을 둘러싼 한국적 의미(정한을 중심으로 하는)로부터 현상학적 환원을 시도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것을 시인은
나 말고도 투신한 사람이 있다. 벼랑 밑 깊어진 물속이 퍼렇게 멍들어 있다.
―「탐진강 1」
라는 진술로 표현한 바 있다.
의미주의를 추월하기가 이리도 어려울지라도
반-소통의 미학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사회가 그런 시적 여건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세기 이상을 의미에 대한 결핍감에 지독히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소통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내내 이어졌다. 자신의 시에 대해 ‘형태 파괴’라고 지칭한 김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황지우는 “매스컴은 반反-커뮤니케이션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라는 말로 당시의 언론을 질타하였었다. ‘형태 파괴’와 ‘커뮤니케이션’이 모순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그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의 시점까지도 의미를 향한 상향운동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점에서 기형도는 상징적이다. 이성복의 영향을 크게 받은 기형도는 이성복과는 거꾸로의 방향으로 갔다. 「입 속의 검은 혀」와 「빈집」은 위상학적으로 동궤에 놓이며 상호 연관된 시다. 그것은 모두 ‘진공眞空 속에 여하히 의미의 별을 집어 넣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연결된 시다. 그 답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이다. 의미의 성취에 다다르지 못해도 방법을 바꾸어 의미의 기록은 여전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형도에 와서 의미주의는 완성되었다. 그가 사후 30년 동안 신화로 존재했다는 것은 바로 완성을 가리키는 지표다. 앞에서 말한 SNS의 언어 폭력은 완성 이후 의미주의의 부패를 가리킨다.
의미주의의 완성 이후에 존재 가능한 의미주의적 시는 정한아의 철학적 반성의 시, 더 나아가 의미를 산산히 쪼갰던 황혜경의 시편들이다. 즉 의미주의의 시효는 소멸하였으며 이제 반성과 해체로서만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건 철학의 제국이 무너진 이후, 분석철학이 가장 큰 존재 이유를 갖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시의 대부분은 의미주의의 점통 속에서 찰랑거리는 효爻들이다.
모두冒頭에서 지적한 한국시의 매너리즘은 반-소통이 아니라 의미의 주관적 향락들이다. 그것은 미래파가 본능적 차원에서 제기했던 한국시의 새로운 도약이 포기된 현상을 반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육체적 차원에서 느끼고 있는 반-소통 미학의 의지를 지적 이해로 변환하여 새로운 미적 형상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정은 지금까지 거의 이해되지 못했으며, 그걸 직접 시도한 시인들조차도 그에 대한 인식을 가지기가 어려웠으니, 그들의 시가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걸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가령 필자는 이지아의 첫 시집, 『오트 쿠튀르』에서 의미주의를 넘어서는 다음 단계의 시적 가능성을 보았고 그런 기대를 글(「비유를 넘어, 차원 약동을 구축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시집, 『이렇게나 뽀송해』는 그런 기대를 하향시켰다(이 글을 쓰는 도중에 세 번째 시집이 발간되었다. 이는 또다른 세계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인들의 본능적 감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인은 시를 손으로 쓰지 머리로 쓰지 않는다. 시적 실천과 지적 인식이 자주 어긋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들이 지적 인식을 방치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지적 단련은 그들의 손이 떨리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필자는 시의 무대에서 퇴장한 세칭 ‘미래파’ 시인들이 귀환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또한 독자들이 지금까지의 필자의 견해가 매우 낯설지라도 진지하게 읽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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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한국시가 생존에서 실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응시'하는 주체를 빚어내는 과정을 보았다. 왜 응시하는 주체인가? 김수영이 갈파했듯이 '사물'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 후손으로서의 우리 마음은 뿌듯할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즉 어떻게 주체는 그런 응시의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생존에서 실존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번개처럼 그런 능력이 그의 몸 안으로 떨어진 것일까? 그러나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은 '사탄' 뿐이다. 모든 능력은 몸 안에서 자생적으로 솟아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을 1945년의 해방과 1950년의 전쟁은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엄혹성은 의식의 표면에서 자각되지 않기 일쑤였다. 그 사실을 직면한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새로 태어난 한국인이 실존의 단계에서 응시의 권능을 자신의 몸을 초과해서 선취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 가정이 타당하다면 그는 응시를 취득하기에 앞서 그가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는 가정 역시 성립한다. 그 장벽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그가 응시를 응시하는 순간, 그는 두 가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하나는 그가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보고 있다는, 즉 타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누구보다도 '주체'의 힘을 강조한 사르트르가 그 점에 예민하게 주목했던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끄러움(la honte)은 그 일차적 구조 안에서 '누군가의 앞에 놓인 자'의 부끄러움이다. 나는 방금 모종의 서툴거나 천박한 제스처를 했다. 처음 이 제스처는 내게 붙어 있다. 나는 그것을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것을 바라볼 뿐이다....(중략)... 문득 갑자기 나는 고개를 든다. 누군가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곧 이어서 내 제스처의 천박성을 깨닫는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중략)... 나는 내가 타자에게 드러난 정도로 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타자의 출현 자체에 의해 나는 어떤 대상을 판단하듯이 나 자신을 판단하는 일에 서둘러야 한다는 처지에 놓인다. 왜냐하면 나는 타자에게 하나의 대상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자에게 드러난 이 대상, 이것은 타자의 의식 속에서는 헛된 가상이 아니다. 이 이미지는 실로 타자에게 전가될 수 없고, 나를 변신시킬 수도 없다. 나에게 어떤 추함, 천박함의 표정을 입히는 나에 대한 나쁜 초상화 앞에서 그러하듯이 이 이미지 앞에서 나는 짜증과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골수까지 침범당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움, 그것은 본질적으로 재인식(reconnaisance)이다. 나는 타자가 나를 보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재인식한다. 1)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부끄러움을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나'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일까? 사르트르의 글의 문면에는 "서툴거나 천박한 제스처"가 원인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제스처는 어떤 타자에게 한 행위이다. '타자에게'라는 방향성이 없다면 나의 제스처는 그저 무심할 뿐이다. 더 나아가 이 제스처가 '서툴거나 천박한' 형태로 제시되었다는 것은 타자를 '대상화'하는 마음의 태도를 노출한다. 철학자는 그 점을 교묘하게 표현한다. "내가 타자에게 하나의 대상처럼 나타났"던 것은 "내가 어떤 대상을 판단하는" 것처럼 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내 눈앞의 어떤 '타자'를 '대상'처럼 판단함으로써 "서툴거나 천박한" 제스처를 행한 것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거의 동시적으로 타자에 의해서 나의 모습이 '서툴거나 천박하다'고 비추어지리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타자에 의해서 대상화된다. 사르트르가 이런 풀이를 한 배경에는 '나', 즉 하나의 주체가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 '존재결여'로서 자신을 인식한다는 '대자존재(être pour soi)'에 대한 그 특유의 정의가 깔려 있다. 존재가 자기 자신의 존재함을 인식할 때의 존재일 때, 즉 대자존재일 때 그는 존재결여로서 나타난다. 그 존재결여가 가상의 타자들에 의해서 '대상'의 존재로 그를 격하시킨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무화할 수도 있는 위협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변신시키기 위한 실마리이다. 위 인용문의 마지막 두 문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얻는다. "부끄러움, 그것은 본질적으로 재인식이다." 이러한 사르트르의 인식을 프로이트는 앞서서 파악한 바가 있다. 임상 실험 중에 환자가 자신을 오랜 시간 마주 본다는 점을 거북하게 여겼던2) 프로이트는 '응시'가 '시선'과 다르다는 점을 파악한다. 시선이 주체의 사안이라면, '응시'는 대상에 집착된 '시각적 충동'이며, 이 충동은 '오인'을 개입시킨다는 것이다3). 이러한 분리로부터 출발해 라캉은 이 대상, 즉 주체가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이 '남근(phallus)'이라는 점을 간파하는데, 이를 '거세된 성'이 야기하는 "거세 공포에 대항하여 "시선의 석화(石化) 혹은 발기"라는 남근적 반응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한다. 요컨대 '응시'라는 시각적 충동은 "거세 사실을 감쪽같이 감추려는4)" 충동이다. 그렇다면 이 '남근'의 표상들은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타자에게서 나온 갖가지 환(幻)들로 채워진다. 주체는 이때부터 자신이 타자에 의해 포획되었음을 느낀다. "나는 한 곳만 줄곧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실존 속에서, 나는 사방으로부터 바라보아지고 있다. 5)" 하지만 여기가 주체에게는 삶이 에너지를 얻는 계기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주체는 타자로부터 빌려온 환상물들을 제것으로 삼으면서, 끊임없이 갈아치우는 모험을 전개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갱신을 거듭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주체가 '실존'하는 생생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전쟁을 딛고 살아남은 한국인이 마침내 새로운 탄생을 개시했을 때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호에서 말했듯 최초의 인간들이 응시를 첫 번째 행동 수칙으로 삼았던 이유와 효과가 방금 말한 과정을 그대로 품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아무 능력도 재산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거세 상황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태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것은 물론 대상 세계의 진상을 파악하고 그것을 저의 운용 하에 두고자 하는 것인데, 실제로 그럴 수 있으려면 타자들에게서 '도구'와 '사용법'을 빌려와야만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별로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앞에서 왜 그리 복잡하게 설명했는가?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주체의 타자 의존의 주체성(실존성)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한국의 식자들은 고금을 통틀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불통의 주체성을 고집하는 데 전념하기 때문이다. 그 주체성의 환몽이야말로 스스로 알려 하지 않는, 즉 자발적으로 망각된, 사대주의에 불과한데 말이다. 1950년대의 김춘수·김수영·신동엽은, 존재의 이유가 지금, 이곳에 도래해야 한다는 믿음을 생존의 역학을 만든 박인환·전봉건·김종삼의 유산을 받아, 타자와의 뫼비우스적 거래를 통해서 실존의 버팀막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 거래의 최초의 생산물이 응시의 획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응시는 주체의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 주체가 기댄 등받이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은 장벽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뛰어넘어야 할. 거기까지 가는 데에 또 얼마나 장구하고 복잡한 굴곡의 생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6) 1) Jean-Paul Sartre, 『존재와 무 L'être et le néant』, Paris: Gallimard, 1943, pp.259~260. 2) 이에 대한 정보는, Jean-Michel Hirt, '응시 Regard' 항목, in Alain de Mijolla (direc), 『Dictionnaire Internationale de la Psychanalyse (M-Z)』, Paris: Calmann-Lévy, 2002, pp. 1418~9에 근거함. 3) 프로이트, 「성적 탈선들」, 『성이론에 관한 세 개의 에세이』, in Sigmund Freud, 『Œuvres complètes - VI. 1901-1905: Trois essais sur la vie sexuelle, etc.』,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2006, pp. 90-91.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응시'는 '신체적 접촉'과 마찬가지로 "성적 목표를 고착시키는" 두드러진 행동이다. 또한 이 고착은 '성적 탈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시각적 충동(pulsion scopique)이 시각적 쾌락(plaisir scopique)으로 발전될 때, 그것은 '도착(perversion)'이 된다고 한다. 4) Jacques LACAN, 「시선과 응시의 분열 La schize de l'oeil et du regard」 in 『Le Séminaire XI: Les quatres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1964)』, Seuil, 1973, p.74. 5) ibid., p.69. 6)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기에서 멈춘다. 제목이 약속하는 글의 내용은 아직 반 이상이 더 남아 있다. 다음 호로 연기할까 했지만, 글쓰기의 지속성을 위해서 요만큼이라도 발표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였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1. 응시의 실례들 지금까지 '최초의 인간'이 출현한 내력을 보았다. 최초 인간의 최초의 행동은 '응시'라는 것도 알았다. 응시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응시, 즉 생존의 확인이었다. 그 확인이 있을 때 생존의 역사(役事), 즉 실존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시'는 똑바로 보는 것이다. 자세히 보는 것이다. 생존의 근거를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김춘수 시의 화자는 "꽃처럼 곱게 눈을 뜨"는 것이다. 응시에 대한 요구는 김수영과 신동엽에게서도 공히 발견된다. 김수영 자신은 "히야까시 같은 작품1)"이라고 일축했지만 후대의 독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거론된 「공자의 생활난」 역시 응시의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한 시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2) 이 시가 1945년에 씌어졌다는 것은 김수영의 예민함을 가리킨다. 그는 그 직전에 쓴 「묘정의 노래」에서 "열사흘 달빛은 / 이미 과부의 청상(靑裳)"이라는 구절로 해방을 '낡은 세계의 죽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죽음과 신생 사이에 놓여 있음을 "청상(靑裳)"이라는 어휘를 통해 교묘하게 암시했었다3). 그리고 그 이행의 수행적 조건으로서 '바로 보다'를 제출한 것이다. 이 시는 좀 더 심장(深長)한 의미를 비친다. 응시에 대한 깨달음은 「공자의 생활난」에서 나왔으며, '생활난'은 '작난'이 아닌 '작전'의 어려움을 통과해야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이때 '생활'과 '작전'의 상통성은 '공자'에 근거하며, 이 '공자'는 그가 썼던 산문에 다시 근거한다. 벌써 오랜 옛날에, 나의 머릿속의 담배에 오랫동안 적어 놓은 일이 있던 공자인가 맹자인가의 글의 한 구절이 또 생각이 난다. 이런 뜻의 유명한 처세훈이다. '슬퍼하되 상처를 입지 말고, 즐거워하되 음탕에 흐르지 말라.' 마음의 여유는 육신의 여유다. 욕심을 제거하려는 연습은 긍정의 연습이다4). '담뱃갑'에 대한 명상을 기술한 이 산문이 또한 교묘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은 "긍정의 연습"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는 육신의 여유다"라는 구절에 내장된 '마음'='육신'의 상통성이다. 이 상통성이 있을 때만, 슬퍼하되 상처를 입지 말고, 즐거워하되 음탕에 흐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슬픈 육신을 마음이 움직여 상처 너머의 경지로 이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산문의 제목이 가리키는 '생활의 극복'이다. 마음과 육신의 상통성은 「공자의 생활난」에서 '생활난'과 '작난'의 차이와 생활난과 '작전'의 상통성으로 현상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달나라의 장난」(1953)에 와서, '도는 팽이'와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울지 않음' 간의 상통성으로 나타난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달나라의 장난」) 이 구절에서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에서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다음에는 쉼표가 들어가는 게 문법적으로 맞다. 즉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와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는 동의어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울어서는 아니된다." 그런데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팽이'는 "수천 년 전의 성인"의 비유로서 제시된다. 금세 짐작할 수 있듯이, "수천 년 전의 성인"은 「공자의 생활난」의 '공자'와 동격이다. 아마도 시인은 그를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로서 가정했던 듯하다. 그러나 '공자'가 생활난에 봉착했듯이, '성인'도 [정신을 못 차리게] 돌면서 "나를 울린다". 그리고 '나'는 이제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울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울지 않기 위해서 시의 화자는 '방심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는 행동수칙을 내세웠다. '응시'와 거의 동의어로 볼 수가 있다. 돌고 있는 팽이 앞에서 방심조차 하지 않는 것은 "팽이와 팽이의 생리와 / 팽이 [돔]의 수량과 한도와 / 팽이의 우매와 팽이의 명석성"을 분별해내는 것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신동엽의 첫 시는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5)」(1958)이다. 이 시는 온갖 감각들의 혼잡스런 향연으로 우선 닥친다. "우리가 포옹턴 하늘에 솟은 바위"의 '촉각', "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꽃맛"의 '미각', "백학의 나래 휘파람 하세요"의 '청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흙에서 나와 흙에로 돌아가며, 영원회귀 운운 이야기는 없어도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나고, 자넨 저만큼 이낸 이만큼 서로 이물을 두어 따 위에 눕고, 사람과 사람과의 중복됨이 없이 흙에서 솟아 흙에로 흐터져 돌아갔을. 인간기생(人間寄生)을 몰을[=모를, 인용자] 사람들. 에서 보듯 총체적 생활 감각이 사방에서 꿈틀댄다6). 그러나 이 감각들은 생의 활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잡다한 반발력들로 소모되고 만다. “매미는 언제까지 뜻 모를 소리만 울어예는가"에서 보이듯 그것들은 의미의 뒤죽박죽 속에서 곤죽이 되고 만다. 시인의 결론은 이렇다: 한그루 피어난 성서의 지층에는 구십구억 창세 인민의 몸부림 든 사상이 썩어 있었다. 우리들이 돌아가는 자리에선 무삼꽃이 내일 날 피어날 것인가. 이 감각들 중에 유일하게 생의 기미를 지피는 감각이 있다면 그건 시각이다. 우주 밖 창을 여는 맑은 신명(神明)은 태양 빛 거느리며 피어날 것인가. 태양 빛 거느리는 맑은 서사의 강은 우주 밖 창을 열고 흘러갈 것인가. 사상이 썩은 대지는 강으로 흐르고 강은 "우주 밖 창을 여는" '신명'을 일으켜, 그 신명은 강을 창공으로 용약(踊躍)시켜 은하수를 흐르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소망이다. 그 소망은 눈길을 타고 흐른다. '응시'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새싹은 "빛나는 눈동자"를 창조한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빛나는 눈동자」) 이 시의 '눈동자' 역시 '눈물겨운 역사'를 견인할 필수 장치가 된다. 그 장치의 기본 수행 지침은 "세속된 표정을 / 개운히 떨어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좌고우면하지 않고 현실을 또렷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 응시는 훗날, 4·19를 기려 쓴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서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보는 눈,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아 "경외"를 간직한 눈으로 주물된다. 2. '왔다'에서 '간다'로 '응시'가 '정확한 직시'라면 그건 생존을 실존으로 만드는 핵심 장비라고 할 수도 있다. 실존이란 무엇인가? 전쟁 이후의 한국인의 삶을 다시 복기한다면, '죽음' '생존' '실존'이라는 단계적 회로에서 최종 단계에 속한다. 이 '실존'이 있기 위해서는, '생존'을 참된 삶의 가능성으로서 이해하는 전 단계가 있어야 한다. 지금, 이곳의 시공에서 '참된 삶'은 없으나 언젠가 그것은 이루어질 수 있고, 오늘의 '삶'은 그런 '참된 삶'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그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그 삶을 향한 운동이 시작된다. 주제론적 차원에서 본다면 김수영·김춘수·신동엽의 출현은 박인환·전봉건·김종삼의 다음 단계에 속한다. 그리고 넓은 시야에서 본다면, 이는 한국인의 생의 발견 이후 생의 방법론을 찾아낸 최초의 특이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특이점은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로부터의 결정적 도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 잎은 누구의 발자취 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7) 이 시에 대해서 필자는 '시니피앙들의 광휘와 시니피에의 부재'라는 시각에서 분석한 바 있다. 님의 탈환이 주체에게 제공할 삶의 형상을 상상적으로 선취하되 그 위에 시니피앙만 보이게 하는 반투명 보자기를 씌워 독자로 하여금 시니피에를 찾아보는 상상을 직접 발동케 하는 것이다. 때문에 독자의 상상적 기능이 극대화됨으로써 님과의 만남의 가능성이 무한한 모험의 대양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질 수 없는 자의 신비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8). 저 '신비주의'가 리얼리즘으로 전화할 계기가 이제야 생긴 것이다. 이제 지난 호에서 인용했던 김춘수의 시구들로 되돌아간다. 김춘수도 「알 수 없어요」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한 신비로부터 출발한다. 참으로 뉘가 보았으랴? 하염없는 날일수록 하늘만 하였지만 임은 구름과 장미되어 오는 것(「구름과 장미」)9) 그러나 곧이어 시인은 "지금 익어 가는 것은 / 물기 많은 저들 과실이 아니라 / 감미가 아니라 / 사월에 뚫린 / 총알구멍의 침묵이다. / 캄캄한 그 침묵이다."(「가을에」)라고 적는다. 시니피앙의 광휘가 이제 시니피에의 부재로 넘어온 것이고, 그 부재라는 침묵 안에 언어를 집어넣을 통로로서 '꽃처럼 곱게 뜬 눈'이 조형된 것이다. 그 눈이 만들어졌을 때 마침내 시인은 "가자!"라고 외칠 수가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지난 호들에서 연속해서 범했던 오류를 고백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기다림의 시학'에서의 서정주의 혁명을 두고, 김영랑의 '기다리다'를 '왔다'로 바꾼 것이라고 보았다10).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숫개마냥 헐떡어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이 전화를 통해 피식민과 불모의 땅이 '상명당'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필자는 모종의 착각을 통해서 지난 몇 호에서 서정주의 '왔다'를 '갔다'로 착각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왔다'를 다시 '간다'로 바꿔야 할 필요를 서둘러 적용하려다 범한 오류였다. 왜냐하면 오로지 '왔다'에 머무르면, 상명당에 신비화가 적용될 여지가 크고, 실제로 서정주 시의 훗날의 전개가 그리되었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종삼·정현종에게서, '왔다'가 '와야 한다'와 '와야겠다'로 변형될 필요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 과정을 줄곧 유념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는 '왔다'를 '갔다'로 쓰고 말았던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 것은 '갔다'가 아니라 '간다'이고, '간다'는 김춘수 등이 창출한 '최초의 인간'의 행동 수칙으로 등장한다. 이를 김춘수의 일련의 시를 통해 확인해 보자. 김춘수에게 있어서도 '왔다'가 시적 출발점이라는 것을 필자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다11). 다만 서정주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당에게서는 '내가 왔다'인 반면, 김춘수에게서는 '릴케가 왔다'라는 것이다. 단지 릴케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수없이 큰 타자가 그에게로 왔다. '한스 카롯사'가 왔는가 하면(「오전의 산령」), "부다페스트에서 죽어간 그 소녀"도 왔고(「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그 이야기를」), '거북'도(「꽃밭에 든 거북」), '딸기'도(「딸기」) 왔으며, 가장 빈번하게는 '꽃'이 왔다. 꽃은 "웃"으며 와서, 개인 하늘에 그의 미소는 잔잔한 물살을 이(「꽃 1」) 루는가 하면, 꽃이여, 네가 입김으로 대낮에 불을 밝히면 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 빛깔이며 향기며 화분(花粉)이며(「꽃의 소묘」) 에서처럼, '금빛', '빛깔', '향기', '화분'의 덩어리로 왔다. 즉 '왔다'의 주체가 다른 것이다. 서정주에게서는 '나'가 왔다. 어디로? 이 땅으로, 그러니까 '나'는 이 땅이 상명당임을 증거하기 위해 온 것이고, 거기에서 나는 최대의 삶을 살 거라는 확신을 부여잡는다. 반면 김춘수에게서는 '타자'가 왔다. 그것은 처음 어떤 '이상적 존재'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그 타자는 '나'가 아니다. 따라서 온 존재와 주체 사이의 '밀당'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밀당은 매우 난해해서 결코 그 이상적 존재는 나와 합쳐지지 않는다. 「꽃이여!」라고 내가 부르면, 그것은 내 손바닥에서 어디론지 까마득히 멀어져 간다.(「꽃 2」) 그러니 '나'는 여전히 결핍 상태이며, 목이 마르다. 사랑은 와서 넋을 적시고 넋을 목마르게 한다. (『낭산의 악성』) 타자의 존재가 나에게로 이월되지 않는 상황, 그때의 타자를 우리는 흔히 '큰 타자'라 부르거니와, 어떻게 부르든, 그 상황에 의해서 나는 목마르고 또한 타자는 '이상적 상태'를 떠나 '미지'가 된다. 중앙아세아 아한대지방의 늪 속에 사는 거머리, 거머리가 붕으로 화하는 동안 우리가 지레 보는 우리 영혼의 상공을 덮는 거대한 날개, 날개가 던지는 미지의 그림자다. (「붕(鵬)의 장」) 미지의 범위는 주체와 타자 양쪽에 걸쳐져 있다. 처음에 '나'는 타자를 이상적 존재로 알았으나, 그것이 다가오기는커녕 멀어져가자, 미리 가정된 이상적 존재를 이룰 몫이 '나'에게로 주어진다. 그것은 이중의 각성을 유발한다. 하나는 이상적 존재는 '미리' 그런 존재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존재의 이상성은 사실판단이 아니라 당위적 가정이며12), 따라서 타자는 사실적 상태는 오히려 반-이상성에 가까운 게 마땅하다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그 당위를 현실화할 책임이 '나'에게로 떨어질 것이니, 그걸 실행했을 경우 나의 가치는 대상의 애초 상태가 열악했었을수록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을 가리키는 게 위 인용문에서 "거머리가 붕으로 화하는 동안"이라는 시구이다. 이 인식은 김춘수로 하여금 그가 소속해 있는 한반도의 고난 속의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고통받고 죽어가는 존재들을 맞이하는 태도를 갖게끔 한다13).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절대적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몸짓과 그들의 음성과 그들의 모든 무구의 거짓이 떠난 다음의 나의 외로움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수정알처럼 투명한 순수해진 나에게의 공포를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가는 그들을 위하여 무수한 우주 곁에 또 하나의 우주를 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무구한 그들의 죽음과 나의 고독」) 시인은 이상적 존재인 줄 알았으나 반-이상적 상태로 다가오는 타자를 “무구의 거짓이 떠난" 존재라고 말한다. 그때 참됨을 실현할 몫이 오로지 '나'에게로만 던져지지만, 나는 타자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했기에 "수정알처럼 투명한 / 순수해진 나"가 된다. 그 '나'는 나에게 근본적인 외로움과 공포를 안긴다. 많은 독자를 얻었던 『꽃을 위한 서시』의 치명적인 시행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인식이다. 타자의 비-이상성이 첫 번째 인식이라면, '나'의 무지, 헐벗음이 두 번째 인식이다. 다만 나는 헐벗었는데도 불구하고 생존해 있다. 그것을 김춘수 등은 직전의 시인들(가령 박인환, 전봉건, 김종삼)로부터 받았다.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감각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즉 생존을 느끼고 안다(앞 시구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알 뿐만 아니라 주변의 물상들의 수용체로서 자신을 세울 수 있다. 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원래 '이상적 존재'로서 가정된 그 무엇을 위하여 '나'는 마땅한 장비를 갖추고 마땅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 마땅한 장비의 첫 선택이 바로 '응시'였다. 그 응시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장비인 한, 응시는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 없다. 당연히 모종의 행동을 같은 시간 내에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 행동은 '간다'로 현상된다. 지난 호에 읽었던 「서시」의 구절을 다시 읽으면, '응시'와 '간다'의 동시성을, 그리고 '간다'의 절실성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꽃처럼 곱게 눈을 뜨고, 불모의 이 땅바닥을 걸어가 보자. 또한 이 '간다'는 '나'만이 가는 게 아니다. 주체와 타자가 함께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움직일수록 '불모'에 실질이 배어들기 때문이니, 그 또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상호성은 일방적으로 주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내가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대상도 함께 제대로 가야만 한다. 다음 시구는 그 사정을 하나의 풍경으로 그린다. 점점점 눈물은 씻기고 피도 멎고 손톱에서 아니, 거문고 다섯 줄에서 꽃샘바람이 인다 벌써 봄이 오고 있었구나! 남산의 아지랭이, 알천의 아지랭이, 감포가 열리고 개운포가 멀리 동해 바다를 열어준다. 꽃이여 꽃들이여, 피어라! 움이 트라! 잎이여, ...(중략)... 나는 널 찾아 저승으로 가고 있네. 저승길은 밝도다. 동해 바다 중천에 해는 떠 해는 땀 흘리고 있었네. 땀 흘리고 있었네. 내 손톱에서 아지랭이 남산의 알천의 아지랭이 보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네. 내 손톱에서 새가 날고 있었네. 금빛 깃의 새가 날고 있었네.(『낭산의 악성』) 이 시구에서 "저승길"을 불길한 내용으로 읽지 말기를 바란다. 그 길은 낡은 것이 죽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길이다. 그래서 "저승길은 밝도다." 문제는 그 밝음은 '나'(이 시에서는 '백결' 선생)가 현을 뜯을 뿐만 아니라, "내 손톱에서 아지랑이"가 "보얗게 피어오르고 있었"야 한다는 점이다. 이 상호성이 김춘수만의 특성인지, 아닌지는 다시 검토될 것이다. 그 상호성의 '근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도14). 다만 이 자리에서 독자가 마침내 확인하는 것은 '왔다'가 '간다'로 바뀌게 된 내력이다. '응시는 행동을 동반한다'가 그 내력을 요약한다. 1) "급작스럽게 조제(造製) 남조(濫造)한 히야까시 같은 작품"(「연극하다가 시로 전향 나의 처녀작」 [1965.09], in 이영준 엮음, 『김수영 전집 2. 산문』(민음사, 2018), p.424. - 김수영은 박인환이 주도한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수록된 두 편의 시를 모두 위의 판단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메리칸 타임지」와 「공자의 생활난」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정의를 내린 까닭을 밝힌 것은 「아메리칸 타임지」에 대해서뿐이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공자의 생활난」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 자료가 부족하지만 이 차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2) 김수영의 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이영준 엮음, 『김수영 전집 - 1. 시』 (민음사, 2018)에서 인용한다. 3)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김수영이 파자(破字) 놀이를 즐겼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 졸고, 「한국시사에서의 문자적인 것의 기능적 변천」, 『인문과학』, 제116권,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2019.08 참조. 4) 「생활의 극복」(1966.04), 『김수영전집 2. 산문』, 앞의 책, p.159. 5) 신동엽 시 인용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강형철·김윤태 (엮음), 『신동엽 시전집』, 창비, 2013에서 따온다. 6) 이 시구의 암시를 따르면 신동엽 사유의 기본 바탕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이다. 이에 대해서는 훗날 다시 언급될 것이다. 7) 한용운, 「알 수 없어요」, 권영민 (엮음), 『한용운 문학전집 - 1. 님의 침묵 외』, 태학사, 2011, p.35. 8)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러나 때마다 위기는 달랐다」, 『뫼비우스 분면을 떠도는 한국문학을 위한 안내서』, 문학과지성사, 2016, p.46. 9) 김춘수 시의 인용은, 『김춘수 전집 - 1. 김춘수 시전집』, 현대문학, 2004에서 따온다. 10) 「서정주의 탈출기」, 『한국 근대시의 묘상 연구 - '님'은 '머언 꽃'을 어찌 피우시는가』, 문학과지성사, 2023.02, pp.249~62. 참조. 11) 「릴케는 어떻게 왔던가」, 같은 책, pp. 199~209. 참조. 12) 그것이 "영혼의 상공을 덮는 [즉 가리는, 인용자] 거대한 날개"로 표현되었다. 이 사정은 김춘수가 김종삼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13) 가령,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 여기에 와서 '기다림의 시학'은 '마중의 시학'과 만난다. 김춘수 시학의 특징이 가장 도드라지는 지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될 것이다. 14) 이와 더불어 '응시'의 양태, 배경 사유, 지향에 따라 시인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이번 글에서 공통의 존재로서 제시한 김수영·김춘수·신동엽의 차이와 그 의미를 살피게끔 할 것이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위의 인용문은 육조 혜능의 '풍번문답(風幡問答)'을 변형한 것으로서 영화 '달콤한 인생'(2005)의 도입부 내레이션이다. 질문을 간파하고 있는 스승의 답변은 제자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을 테고, 그것은 물론 관객의 심금을 휘저었을 것이다. 파편화된 불안을 쓸어 담는 이 명쾌하고 즉각적인 해답의 카타르시스는 그러나 찰나에 불과하다. 제자의 마음이 '왜' 흔들리고 있는지, 동요하는 그 마음의 원인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궁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궁리하고 싶지 있다. 바쁜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보여지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무용한 그 '느낌'이라는 것을 숙려할 만큼 한가한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무감각하려는 노력 끝에 불안은 우리 현대인의 매우 증상적인 형태로 떠올랐다. 그것은 우리의 고질병이다. 불안, 외로움, 확신 없음이라는 결핍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기로에 선다. 고독을 선택하거나, 의존을 선택하거나. 전자는 불안에 대한 직면이고, 후자는 불안에 대한 외면이다. 그러나 바쁜 우리는 언제나 후자를 선택하는 것에 주저 없다. 세상에 고독한 것은 이제 고독, 그 하나다. 사용되지 않은 고독은 밀린 과제처럼 하릴없이 쌓여간다. 사라지지 않는다. 고독을 외면한 후폭풍은 그에 비례하는 불안의 성장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독하지 않으려는 것은 고독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고독을 다른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울감, 외로움, 불안감, 소외감 등의 통각이라고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감각은 직면하는 대상으로서의 그것이지 결코 정념의 주인이 아니다. 고독은 머무름의 상태가 아니라 나아감의 과정이다. 키에르케고어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고독이란 '자기-이해'의 과정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실존적 과정"1)이다. 직면과 견인의 과정으로서 '나'의 발본적 반성을 꾀는 고독은 많은 시간과 심리적 통증을 수반하는 힘겨운 비포장도로이지만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길은 당신에 의해 아주 단단히 포장되어 있을 것이다. 다시 그 길을 걷게 되더라도, 그 길은 이제 너무 쉬운 길이다. 허나 우리는 당장의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의존을 택한다. '불안-의존-불안-의존-……'의 악무한은 거기에서 발생한다. 이 악무한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싸움이 혼자만 하는 싸움은 아니다. 우리가 고독하고자 할 때, 시는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서 싸우고 있다. '불확실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시와 고독은 함께 간다. 유일무이한 개별자로서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시를 보면서 우리는 '나'의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비록 그 세계가 하잘것없을지라도 시는 당신과 함께 고독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 투쟁의 이미지가 너무 닮아서 단번에 요체로 휘몰아 넣는 시가 있다. 2024년 계간지 가을호에 실린 시편들이 대개 그러했다. 그것들은 고독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증상에 직핍하는 표정을 하고선 우리의 불안을 응시하고 있다. '응시하는 시'를 응시하는 우리는 홀연 고독의 과정으로 진입한다. 시는 그 자체로 기꺼이 고독의 과정이 된다.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의 불안을 응시-진단하는 시편들을 하나하나 톺아보면서 고독의 여정을 걸어보자. 미리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고 어찌되었건 버렸던 것들, 쓰지 못한 것들, 아직 못한 것들에 대해 미리엄은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었다 미리엄은 자신을 설명하는 식으로 늘어져가고 있었다 미리엄은 미리엄 같은 사람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쌍한 미리엄 자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불쌍한 미리엄은 바빴다 설명하느라 바빴고 대체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느라 바빴다 그러면 자연스레 낡아지고 늙어가고 쪼그라들고 그리고 무엇보다 절박해진다 불쌍한 미리엄 온종일 나를 기다리는 미리엄은 버럭버럭 화를냈다 화를 내는 미리엄이 순간 유효해 보였다 미리엄이 악다구니를 쓸 때에야 미리엄의 전체가 설명되고 빛난다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고 어차피 미리엄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다음부터 늦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하루종일 무언가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나는 일갈할 수밖에 없었다 넌 네 삶이 없어? 하고 말콤은 미리엄이 키우는 개다 말콤은 미리엄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좋아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말콤은 미리엄을 좋아하고 불쌍해한다는 것이다 말콤은 수동적인 주인 미리엄이 충동적으로 산책을 나가지 않거나 밥때를 놓쳐도 재촉하지 않는다 말콤 역시 미리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 하루종일 너만 기다렸어 이 망할 기집애야 하지만 말콤의 생각에서 미리엄은 한없이 불쌍한 인간이므로 개 말콤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말콤은 개로서 누려야 할 삶의 일부를 포기한 것 같았다 (……) 미움받지만 않게 해주세요 누구로부터를 말하는 것이냐 뭘 물어요 당연히 미리엄이죠 열두 마리의 개를 키운 경험이 있는 신이 말콤의 턱을 간지럽히며 말한다 아이고 불쌍한 새끼 계속해도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빠져나가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 시는 나로 시작했지만 나로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또 무언가를 빠뜨리는 바람에 또 내가 나와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내가 나오면 미리엄은 또 하루종일 나를 기다릴 테고 그랬다는 이유로 나에게 화를 낼 것이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말콤은 삶이란 게 정말 불쌍한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누구도 신경쓰이지 않고 덜 중요하거나 더 중요한 것도 없다 나는 빨리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다 때마다 뺨을 후려 맞아도 자꾸만 돌아오게 되는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제때 미리엄을 만나러 가고 싶다 그러면 말콤과 산책을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산책하는 말콤은 정말 행복해 보일 것이다 나는이런 게 좋다 이런게 더 좋다 - 박참새, 「시작된 것」 부분, 『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 "넌 네 삶이 없어?" 당신이 이 문장에 머무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장이 애틋한 이유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 목줄을 달아매고 누군가의 손에 그 줄을 쥐여주었던 경험, 꽁꽁 숨겨두고 싶었던 가슴 아픈 그 불안의 경험이 위의 문장으로 하여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리엄은 현대인들의 불안 형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정확히는 '해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기다린다. "버렸던 것들, 쓰지 못한 것들, 아직 못한 것들"에 대한 '자기-수치심'을 해명하고 "미리엄 같은 사람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자기-효능'을 타인으로부터 (재)확인받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받고 수용받기 위해. 따라서 '나'(타인)가 오지 않으면 그는 그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겠거니와, 그 효능을 되찾을 수 없다. 고독이라는 일련의 자기-이해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타인에게 자기규정을 의탁하는 것이다. 삶의 주체성을 스스로 박탈시킨 그의 가치는 그러므로 '나'의 반응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미리엄-나'의 관계에서 미리엄의 위치는 '말콤-미리엄'에서의 말콤의 위치와 상응한다. 미리엄은 말콤의 주인으로, 말콤은 온종일 미리엄을 기다리고 미리엄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개로서 누려야 할 삶의 일부를 포기"한다. 말콤의 삶의 주인이 미리엄인 것처럼 미리엄의 삶의 주인은 '나'이다. 말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미리엄의 삶은 따라서 개 같은 삶이다. 그 삶은 (자기 의지에 의해) 시작'한' 것이 아닌, (타인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시작'된' 삶을 살고 있다. sns를 통해 자기 삶을 전시하고 그 삶에 대한 타인의 긍정적인 반응('좋아요'와 팔로워 숫자 등)을 기대하면서 오직 그것을 위해 '의식적'이고 '선택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실제적 자신의 모습, 즉 '실존적' 자기 모습을 방치한다. 타인의 반응이 내 삶의 양식을 결정하게 내버려둔다. 문제적인 것은 여기서 타인은 '내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증명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너무 쉽게 그들을 미워해 버리고, 반응이 긍정적이면 또 너무 쉽게 사랑해 버린다. 빠르고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감정 속에서 지쳐버린 자아는 당장의 휴식을 위해 타자에의 의존을 택한다. 불안을 즉각적으로 해소해 주기 때문에 의존하지만, 의존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뺨을 후려 맞아도 자꾸만 돌아오게 되는 이곳"은 그러므로 불안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이다. 그곳에서 우리의 삶은 보란 듯이 참혹해진다. 배시은의 시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우리의 강박증적인 내면 상태와 그 징후를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에 대해 시인이, 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을 내리고 있다. 시를 쓰지 않고 있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쓴 시를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아직 쓰지 않은 시를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를 훔쳐보고선 옮겨 적고싶다. 재빠르게 적으면 감쪽같을 거라고. 시간의 장난 같은 거라고.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 제목을 옮겨 적었다. 이상하다. 나라면 이런 제목을 짓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사람들은 일찍이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을 읽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항상 그런 모양이라는 듯이. 나는 여행을 가지 않는 대신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것으로 여행을 대신한다. 나를 포함하여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여행 가는 대신에 다른 것을 한다.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 앉거나 눕거나 서서 그냥 있는다. 그냥 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을 대신한다. 아무것도 깨닫지 않는 것이 깨달음을 대신한다. 이상하다. 나라면 여기서 연갈이를 하지 않았을 거야. 여기서 시를 끝내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만 시는 이미 끝났다. 시를 옮겨 적는 일은 끝났다. 시를 쓰면서 생각한다. 할 수 있다면 무언갈 만들어야만 한다고. 무언가 만들 수 있는 때는 너무 짧다. 생각을 하고. 단어와 문장 등을 떠올리거나 받아 적고. 고개를 움직이고. 책상에 앉고. 신체 부위의 기능을 사용해 창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은 매우 희소하며 예상만큼 충분히 남아 있지 않다.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는 것을 이 시는 알고 있다. 그것이 시의 효용이다. - 배시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 부분, 『창비』 2024년 가을호 "사람들이 미리 읽고 있는 나의 시를 훔쳐보고선 옮겨 적고 싶다"는 바람은 다시 말해 독자 마음에 쏙 드는 시를 쓰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다. 그러나 옮겨 적은 시는 어쩐지 제목부터 시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의 마음에 드는 것이 나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 순간에 우리는 기로에 선다. 네 마음이냐, 내 마음이냐. 당신이 시작'된' 삶을 살고 있다면 선택은 물론 전자일 것이다. 그리고 전자를 선택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잃어가고 이윽고 모호한 정체성과 동시에 끊임없는 불안을 경험한다. 위의 시는 그것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무엇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은 여행조차 갈 수 없고,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다. 여행을 가는 대신에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 앉거나 눕거나 서서" 그 자리에 "그냥" 있을 뿐이다.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잘 쉬는 사람과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본인의 취향과 호오를 잘 아는 사람과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다. 타인에게 삶의 목줄을 내어준 사람에게 휴식이란 그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잘 쉬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불친절하다. 자신에게 불친절한 사람이 건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남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때때로 친절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의 방어 기제로 드러난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실존적인 '나'의 상태이고, '친절하다'는 것은 사회적인 '나'의 모습이다. 건강한 사람은 친절하지만 친절한 사람은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사회적인 모습이 중요한 우리는 건강하지 않아도 건강한 '척' 친절하다. 이때 친절은 건강하지 않은 마음을 숨기고 싶은 일종의 방어 전략으로 쓰인다. 어쩌면 건강하다고 자신을 속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실존적인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사회적인 모습으로 치장하는 것이다. 당신의 상태는 이제 아무도 진단할 수 없다. 허나 시는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아도 친절하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이 스스로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심급의 기회일지 모른다. 시가 응시하고 있는 사실을 응시해 보자. 때로는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그 '누군가'는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사실 시는 진단하거나 처방하지 않는다. 기꺼이 고독의 기회를 내어줄 뿐이다. 바로 "그것이 시의 효용이다." 삶을 응시하고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견고한 삶을 살고 싶을 우리에게 고독이라는 자기-이해 과정은 이제 건너뛸 수 없는 삶의 발달과업이다. 견고하다는 말은 빈틈없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빈틈 있음'마저 기꺼이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이다. 당신의 약점도 당신이다. 고독은 그러므로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들어 기꺼이 '나' 자신을 승인하게끔 한다. 신이인 「새」는 그것을 딱따구리에 비유하면서 약점이 받아 온 그간의 오해를 풀어낸다. 2017년 2월 3일 딱따구리를 데리고 있다. 이것은 내 약점이다. 딱따구리는 어디든 구멍을 낼 수 있으니까. 사람의 머리통에도. 딱따구리는 내 머리 옆쪽에 구멍을 뚫어주었다. 그건 정말이지 환상적인 사고였다. 귀가 생겼다. 딱따구리가 어찌나 청명하게 나무문을 쪼고 다니는지가 다 들렸다. 난 비로소 듣는 사람이 됐다. 나의 방문은 말할 줄 몰랐다. 내가 듣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방문은 딱따구리를 통해 내게 말을 전할 수 있다. 나는 그걸 즐겁게 들을 수 있다. 딱따구리가 부리를 사용하는 이유, 날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이나 벽 또는 모자걸이의 말을 발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멍을 뚫기 위해서, 자기 몸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길을 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내가 가진 견고한 것에는 모두 구멍이 나 있었으며, 딱따구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 어쩌면 딱따구리는 도망간 게 아닐지도 몰라. 아예 내 안쪽으로 들어온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딱따구리가 느껴질 수는 없어. 이 느낌에 대해 나 여전히 말을 멈출 수 없어. 가장 깊숙한 곳에 너 잘 살아 있어. 집인 줄도 모르고 흔들렸던 집이 너를 선명하게 품고 있어. 구멍으로 볕과 공기가 들이닥쳐. 너 거기 있구나.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파여가며 안쪽이 하는 말을 받아쓸 수 있게 됐다. 비로소 쓰는 사람이 됐다. - 신이인, 「새」 부분, 『문학과 사회』 2024년 가을호 딱따구리는 약점에 대한 절묘한 표상이다. 그것은 "어디든 구멍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약점이 될 수 있고, 또 그러한 이유로 약점이 될 수 없다. 인식의 층위에서 그가 뚫어낸 구멍이 메워야 하는 '어떤 것'이라면, 그것은 당신의 약점이 될 수 있다. 반면에 그 구멍이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라면, 그것은 당신의 약점이 될 수 없다. 눈, 코, 입, 그리고 귀라는 구멍이 당신의 약점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디든' 존재하는 그 구멍이 통로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딱따구리(약점)에게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where'이 아니라, 'why'일 것이다. 딱따구리는 '왜' 구멍을 만드는가? 그것은 "날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이나 벽 또는 모자걸이의 말을 발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멍을 뚫기 위해서, 자기 몸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길을 내기 위해서"이다. 즉 딱따구리가 구멍을 내는 이유는 '너'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이다. 어쨌든 약점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너'가 존재하는 순간에 탄생한다. '너'를 즐겁게 하기 위해 뚫은 구멍은 '너'가 즐겁지 않으면 메워야 하는 어떤 것으로 전락하고 바로 약점이 된다. 그 순간에 그것은 숨기고 싶은 치부, 떼어내고 싶은 악성 종양으로 우리의 삶을 옥죄인다. 약점에 대한 오해는 여전히 '너'의 시선에 얽매여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why'를 던지는 순간, 시선은 '너'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지고 약점에 대한 오해는 곧 이해로 변모한다. 우리가 가진 약점의 형태가 어떠하든 그것은 고독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창구일 수 있다. 구멍 없이 어떻게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 어떻게 밖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 시인은 말한다. 약점은 '나'를 이해하는 고독의 진입로가 되고, 이윽고 뚫린 길은 '너'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는 견고해진다. "견고한 것에는 모두 구멍이 나 있"다. 고독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황홀감이다. 고독이 거듭될수록 성장하는 고독'력'은 당신이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독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계절의 시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1) 류호인, 「정신분석학: 존재에 대한 물음 : 실존적 불안과 자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소고」, 『현대정신분석』, 2024, 제26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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