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비평 아카이브
- 계간 문학인 2024년 여름호(제14호)
건강하고 명랑하게 ― 1930년대 중후반 쓰인 김기림 시와 평론에 부쳐, 김기림의 「故 이상의 추억」 읽기
1. 그는 좋은 사람이다
김기림은 호인이었다. 적어도 이상은 그렇게 평가했다. 그가 쓴 본인의 인물평을 보고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이 흡족하게 여겼을 것 같지는 않다. 이상에 따르면 박태원은 타인을 웃는 얼굴로 대하지만 그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속으로만 불만을 품는 유약한 타입이고, 정지용은 겉으로만 결기를 보이다 적당히 물러나는 비겁한 축에 속하며, 김유정은 머리보다 몸이 앞서 객기를 부리는 유형이다. 반면 김기림에 대해서 이상은 호의적으로 쓰고 있다.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이라.”1) 물론 이상은 이들 모두 교만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꼬집으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나, 그가 보기에 김기림은 문인 특유의 괴팍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일본대학 문학예술과를 수료하고 스물세 살 나이에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게 된 경험이 온화한 처세술의 바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라도 그렇지만, 특히 문인과 긴밀한 교류를 맺으면서 취재해야 하는 학예부 기자가 문단에서 함부로 적을 만들면 곤란한 법이다.
김기림이 호인을 연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을 보든 사람을 대하든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안목으로 정평이 난 이상이 그의 가식을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조선 시단의 모더니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던 김기림은 ‘시의 과학’이라는 냉철한 시론을 주창한 이로 문학계에 알려진 면모와 별개로, 실제로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상이 세상을 떠난 1937년 그를 애도하기 위해 발표한 글에서도 이러한 성격이 여실히 엿보인다. 추도문에는 김기림이 경계한 센티멘털리즘이 녹아 있다. 절친한 벗의 죽음과 맞닥뜨려 깊은 슬픔에 빠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감상에 매몰되기보다 그것 자체의 객관화를 개진한 자타공인 조선의 일급 모더니스트 아닌가. 이상의 시 쓰기를 가리켜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든가, 그의 존재성을 “세속에 반항하는 한 악한(?) 정령”이라고 비유한 문구는 김기림하면 떠오르는 이지적인 이미지와 대비되어 흥미롭다. 마냥 그러한 것은 아니다. 비평가답게 그는 이상의 타계가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임을 선언하며, “오늘 시단이 갑자기 반세기 뒤로 물러선 것을 느낀다.”라고 진단한다. 2)
보성고보 동문이라는 인연이 있으나, 1930년대 중반 구인회 동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친목을 맺은 두 사람의 우정은 햇수에 비해 단단한 밀도를 구축하였다. 이는 서로를 지지하는 문학적 동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컨대 이상은 김기림의 첫 시집 『기상도』(창문사, 1936)를 편집하고 장정했는데, 관련한 내용은 그가 김기림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이상의 서신 9편 가운데 무려 7편이 김기림에게 보내는 전언이다. 살펴보면 사무적인 소식은 적고 김기림의 안부를 물으면서 자신의 복잡하고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상은 김기림과의 서신 왕래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주 편지해달라고 부탁한다. 김기림의 따뜻한 격려에 기운을 얻은 덕분이다. “졸작 「날개」에 대한 형의 다정한 말씀 골수에 스미오.”3) 골수에 스민 고마움을 그는 『기상도』의 꼼꼼한 교정과 지금 보아도 세련된, 검은 바탕에 세로로 긴 은색 직사각형 두 줄을 덧댄 장정으로 보답하였다.
『기상도』 출간 무렵 김기림은 동북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일본 센다이에 머물고 있었다. 시인 자신에게는 기념비가 될 만한 첫 시집 출판 작업을 이상에게 위임하고 그와 편지로 교류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여기에 있다. 『기상도』 출간 후 이상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두 사람은 1937년 3월 동경에서 드디어 재회한다. 이상은 피폐한 모습으로 골방에서 김기림을 맞았다. 한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상은 본인 작품을 향한 세간의 평을 거론하며 흥분한다. 이에 김기림은 “벗이 세평에 대해서 너무 신경 과민한 것이 벗의 건강을 더욱 해칠까 보아서 시인이면서 왜 혼자 짓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세상이야 알아주든 말든 값있는 일만 정성껏 하다가 가면 그만이 아니냐 하고 어색하게나마 위로”4)한다. 이상이 그 말에 위로를 얻은 여부와 무관하게, 나는 그것이 김기림이 견지한 문학 정신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굳건한 의지 없이 모더니즘 시 운동의 이데올로그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부화뇌동하지 않고 그 길만 꿋꿋하게 걸었다.
재미있는 점은 병약해진 이상을 대할 때마다 김기림이 느끼는 부끄러움에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상(箱)의 앞에 설 적마다 나는 아침이면 정말체조(丁抹體操: 덴마크 보건 체조—인용자)를 잊어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늘 부끄러웠다. 무릇 현대적인 퇴폐에 대한 진실한 체험이 없는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늘 상에게 경의를 표했다.”5) 과연 김기림은 건전한 생활인다운 습관의 소유자였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격언에 따라, 매일 아침 덴마크 보건 체조를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 힘쓴 그가 이상처럼 “현대적인 퇴폐에 대한 진실한 체험”을 했을 리 만무하다. 함께 모더니즘을 옹호하였으나 둘의 양상은 판이하였다. 김기림의 표현에 의하면 이상은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 즉 식민지 모던의 모순을 온몸으로 앓다 파열에 이른 인물이다. 김기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식민지 모던의 모순을 이성으로 포착하였고 시화하기 위하여 애썼으나, 이것이 실제 자기 인생을 황폐화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 사실을 김기림과 이상 모두 잘 알고 있었을 테다. 동지이되 자신에게 결핍된 요소가 상대에게 있었으므로 상반된 기질의 두 사람이 오히려 친밀해질 수 있었다.
2. 운동하는 아침: 현대시의 피지컬
비유하건대 ‘한밤의 시론’에 몰두한 이상과의 관계에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바 김기림은 건실한 문인이었다. 김기림이 “오전의 시론”을 전개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1935년 4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그의 초기 시론에 대해서는 서구 모더니즘의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약점이 그간 지적 되어왔다. 현 시대의 새로운 시를 긍정하기 위하여 과거의 유산—낭만주의와 프로문학을 단순하고 편향적으로 도식화하는 문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이 김기림에게 매료된 태도의 건강함이 ‘오전의 시론’에 집약되어 있으므로 이 글을 좀 더 들여다보려 한다. 엄밀한 논증보다는 단상 형식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독자가 충분히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도 장점이다. 해당 평문에서 김기림은 앞으로 도래할 시에는 인간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에는 인간이 배제되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인간적 감격과 비판이 참가하지 아니한 시는 문자의 장식에 지나지 않을 게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허공에로 눈을 돌리고 아름다운 황혼이나 찬란한 별들의 잔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일이다. 모두 대낮에 피로한 오후의 심리다.”6)
오후가 활기 넘치는 시간이라는 통념과 반대로, 김기림은 그때를 한낮에 이미 체력이 소진되어 피로에 물든 시기로 규정한다. 그러니까 오후의 상태에 머무는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 “허공에로 눈을 돌리고 아름다운 황혼이나 찬란한 별들의 잔치”라는 형이상학적인 탐구에 매달려 허무한 시를 쓴다는 것이다. 이에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바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인간 세계의 현실을 똑바로 보는 생동감 넘치는 시의 구현이다. 이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활력이 그대로 보존된 작품을 가리킨다. 이처럼 김기림은 시의 과학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인간성 소거와 등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의 시각에서 시의 과학화는 시를 둘러싼 미신을 제거하고 합리성을 지향하는 과정이지, 시에서 인간이라는 주체를 없애버리는 극단적 결정이 아니었다. 김기림은 또 다른 비유를 제안한다. “고전주의에 의하여 대표되는 지성을 시의 골격이라고 하면 육체로서 대표되는 ‘휴머니즘’은 근육이요 혈액일 것이다. 완전한 시란 결국은 골격과 근육과 혈액이 한 개의 전체에 의하여 통일된 건강한 체격을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7)
지성과 휴머니즘을 결합한 시가 김기림이 소망하는 시적 이상이라는 점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골격‧근육‧혈액 같은 몸에 관한 비유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오전의 시론」과 동일한 시기 발표한 시론에는 아예 “현대시의 육체”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제는 “감상과 명랑성에 대하여”이다. 이 글에서 김기림은 감상을 배격하고 애매함을 비판하면서 명랑성을 드높인다. 그는 있지도 않은 의미를 있는 것처럼 장식하는 데에서 애매함이 발생하고, 과하게 슬픔을 표출하는 것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꾸미지 않고, 느낌을 과장하지 않는 솔직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유쾌하고 활발한 시적 결과로 이어진다. “그(명랑한 시—인용자)의 표정은 활동 속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는 표정이다. 오늘 밤 속에서 내일 아침을 빚어내는 사람의 얼굴이다. 결국 완전한 정신은 완전한 육체에 깃들어서 비로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진리다. 여기에 건강하고 명징한 명랑성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그러한 세기말적인 아무것도 그것은 거절할 것이다.”8)
비슷한 시기, 흡사한 논리가 담겼다는 면에서 「오전의 시론」과 「현대시의 육체」는 사실상 연결된 입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침을 맞으려 하는 자는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 같은 감상과 애매함의 포즈와는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는 관점의 근저에는 “시인의 꾸준한 지적 활동”이 자리한다. 김기림은 이렇게 덧붙인다. “통제되고 계획된 질서 이외에 마저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으면 그 부분이 애매성을 가져온다. 또한 시를 감정에게 맡겨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감정은 늘 혼돈하려고 하고 비만하려고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 감정의 비만이 다시 말하면 감상이다. 시를 이러한 비대증에서 건져 내서 그것에게 스파르타인과 같은 건강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이 오늘의 시인의 임무다.”9) 주지주의 다이어트를 통해 기존 시의 지방을 제거하여 “스파르타인과 같은 건강한 육체”로 현대시를 거듭나게 한다는 김기림의 주장은, 매일 아침 덴마크 보건 체조를 빼먹지 않으면서 챙긴 그의 건강성과 명랑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김기림 자신이 「오전의 시론」에서 그와 같이 서술하였다. 시에는 시인 생활의 그림자가 어떤 형태로든 깃든다고. 더불어 본인의 체험에 비추어 시인과 비평가가 삶과 작품을 대하는 차이를 짚어 냈다. “시인의 편에서는 그의 시를 될 수 있는 대로 개성 생활에서 절단시켜서 독립한 객체를 만들려고 한다. 완성되어 한 번 그의 손을 떠난 한 편의 시는 그와는 아무 관련 없이 그것 자체의 독창성에 의하여 호흡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비평가의 편에서 본다면 어떠한 시도 그 작자의 정신, 더 적확하게 말하면 생리의 일부분으로서 비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시는 시인 생활의 표착물이거나 결실이다. 그러니까 비평가는 어떤 시든지 그 시와 작자의 인간관계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서는 그 시 속에 담긴 인간적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10) 이 구절에 근거하면 김기림은 비평가 포지션에서 시를 창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론부터가 “시인 생활의 표착물”이자 그 “결실”로서 탄생하였고, 그 시론에 뿌리를 두고 『기상도』가 집필되었다.
3. 태풍이 지나가고 나타나는 태양의 후예
『기상도』는 총 7편의 시—「세계의 아침」‧「시민 행렬」‧「태풍의 기침 시간」‧「자취」‧「병든 풍경」‧「올빼미의 주문」‧「쇠바퀴의 노래」로 이루어진 장시이다. 국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날씨 변화가 아닌 세계 전체에 드리운 태풍을 조명한다는 점이 이색적인 작품이다. 김기림은 태풍이 오기 이전의 상황과 태풍 발생 및 진행 경과,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의 광경을 제시하면서 당대의 국제적 문명 기상도를 형상화하였다. 이 시는 생경한 외래어의 남용과 파편화된 이미지의 나열 등이 한계로 꼽힌 바 있지만, 열렬한 모더니즘 지지자로서 역사의식과 결합한 그의 언어적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는 평도 받았다. 이때 태풍은 근대에 내재한 폭력성의 발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폐허가 된 도시의 재건과 일상의 회복을 희망하며 종결되기에 주목을 요한다. 「올빼미의 주문」까지는 김기림이 적대시한 세기말적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의 분위기가 아른대지만, 마지막 시 「쇠바퀴의 노래」에서는 김기림이 역설한 “건강하고 명징한 명랑성”으로 반전한다. 시 일부를 아래에 옮긴다.
태풍이 짓밟고 간 깨어진 ‘메트로폴리스’에
어린 태양이 병아리처럼
홰를 치며 일어날 게다.
하룻밤 그 꿈을 건너다니던
수없는 놀람과 소름을 떨어 버리고
이슬에 젖은 날개를 하늘로 펼 게다.
탄탄한 대로가 희망처럼
저 먼 지평선에 뻗치면
우리도 사륜마차에 내일을 싣고
유량한 말발굽 소리를 울리면서
처음 맞는 새 길을 떠나갈 게다.
(……)
예지의 날개를 등에 붙인 나의 날음은
태양처럼 우주를 덮을 게다.
아름다운 행동에서 빛처럼 스스로
피어나는 법칙에 인도되어
나의 날음은 즐거운 궤도 위에
끝없이 달리는 쇠바퀴일 게다. 11)
굳이 공들여 분석하지 않더라도 이 시는 “오늘 밤 속에서 내일 아침을 빚어내는 사람의 얼굴”이 전면화된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와야 할 당위로서 “어린 태양”이 부상하고, 이와 결부하여 ‘나’도 “처음 맞는 새 길을 떠나”, 지혜롭고 밝은 마음을 더하여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 한다. 그러는 한에서 “어린 태양”은 곧 ‘나’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날음은 / 태양처럼 우주를 덮을 게다.”라는 시구가 이를 방증하고, “즐거운 궤도 위에 / 끝없이 달리는 쇠바퀴”의 유비도 해의 둥근 이미지와 겹친다. 소제목 「쇠바퀴의 노래」는 실상 ‘태양의 노래’인 셈이다. 이와 같은 기조는 두 번째 시집 『태양의 풍속』에 고스란히 계승된다. 서문부터 그러하다. “그 비만하고 노둔한 오후의 예의 대신에 놀라운 오전의 생리에 대하여 경탄한 일은 없느냐? 그 건장한 아침의 체격을 부러워해본 일은 없느냐? (……) 그러면 너는 나와 함께 어족과 같이 신선하고 깃발과 같이 활발하고 표범과 같이 대담하고 바다와 같이 명랑하고 선인장과 같이 건강한 태양의 풍속을 배우자.”12)
시가 시인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김기림 본인의 지론에 따르면, 본문에서 언급한 「오전의 시론」·「현대시의 육체」·『기상도』·『태양의 풍속』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그의 건강성과 명랑성이 빛나던 시절의 반영이다. 그는 근면한 기자·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았고, 무엇보다 견실한 시론 정립과 그 증명으로서 시 창작에 몰입한 문인이었다. 한편으로 이제 나는 김기림하면 덴마크 보건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기 관리에 힘쓰는 청년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화를 내지 않는 너그러운 성품의 원천은 그러한 루틴에 의해 충전된 에너지 덕분이리라. 그리고 그는 이것을 필요한 상대에게 적절하게 전했다. 이를테면 동경에서 ‘날개’가 부러진 이상과 다시 만났을 때처럼.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싶어 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페이디아스(Pheidias)의 제우스 신상 같구려’ 하고 웃었더니 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13)
- 1) 이상, 「김유정」, 『청색지』, 1939.5, 89쪽. 이하 본문의 모든 텍스트 인용은 현대어에 맞게 표기와 어법을 일부 수정하였다.
- 2) 김기림, 「고(故) 이상의 추억」, 『조광』 제3권 6호, 1937.6, 312~313쪽.
- 3) 이상, 「편지」, 『이상 전집 4: 수필』(권영민 엮음), 태학사, 2013, 167쪽.
- 4) 김기림, 「고(故) 이상의 추억」, 위의 책, 313쪽.
- 5) 위의 책, 314쪽.
- 6) , 「오전의 시론—제일편 기초론 (4)」, 조선일보, 1935.4.24.
- 7) , 「오전의 시론—제일편 기초론 (6)」, 조선일보, 1935.4.26.
- 8) , 「현대시의 육체—감상과 명랑성에 대하여」, 『시원』 제2호, 1935.4 ; , 「감상에의 반역」, 『시론』, 백양당, 1947, 157쪽.
- 9) 위의 책, 157~158쪽.
- 10) , 「오전의 시론—기초편 속론 (5)」, 조선일보, 1935.6.7.
- 11) , 「쇠바퀴의 노래」 부분, 『기상도』, 창문사, 1936, 24~26쪽.
- 12) ,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 부분, 『태양의 풍속』, 학예사, 1939, 4쪽.
- 13) 김기림,「고(故) 이상의 추억」, 위의 책,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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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었던 체포조를 가동하여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 등을 구금하려 했던 정황을 살피면, 계엄령 선포 이전의 행위에도 해당 포고령을 소급하여 적용하려던 악의를 확인할 수 있다. 5·18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을 다룬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에 한국의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한 출판 검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통탄스럽다. 한강 작가가 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그의 책 『채식주의자』가 유해 도서로 지정되어 폐기 처리되었던 것과 아주 다르지 않다.1) 출판 검열은 일제 강점기나 독재 정권 아래에서만 행해지는 특수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곁에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다. 『한국 현대 필화사 1』의 권두에서 임헌영 작가는 ‘필화(筆禍)’의 개념을 먼저 소개한다. 필화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사상이나 의사를 자유롭게 나타내는 일체의 행위에 대하여 개인이나 집단에 국가가 가하는 제재와 압력, 형벌 등에 대한 총칭”(4쪽)이다. 그는, 필화는 권력을 지닌 세력이 행사하는 명백한 폭력이므로 허위나 날조를 제재하는 벌칙과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말한다. 문학뿐 아니라 영화, 공연, 정치, 언론 등에서도 이와 같은 탄압은 일어나기 때문에 필화는 통념과는 다르게 문학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임헌영은 문학을 비롯하여 영화나 공연, 정치나 언론 전반에서 일어났던 필화사건을 두루 다루고 있다. 더불어 더욱 다양한 소통 매체들이 생겨난 현대에서의 필화는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수단으로 인간이 행사하는 모든 의사소통에 대한 직간접적인 제재 일체”(5쪽)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필화의 핵심은 무력을 사용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탄압했느냐의 문제다. 서문에서 그는, 반나치적이라고 판정받은 인사들의 저작물을 태웠던 1933년의 분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유태인 미술가 미하 울만이 설치한 작품 ‘도서관’의 안내판 문구를 인용한다. “그것은 다만 서곡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태울 것이다.”라는 하이네의 비극 『알만조르』에 나오는 구절이다. 실로 역사는 분서가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진행을 입증해 주었다. 임헌영은 저작물을 처형시키는 것이 작가를 간접 살인하는 일과 같다고 일갈한다. 필화란 글만 억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작가와 그 책을 읽거나 소지한 사람들 모두를 감시하고 처형함으로써 결국엔 그 안에 깃든 사상까지도 말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베카 크누스가 창안한 “도서 대학살Libricide이란 술어”(9쪽)는 과장이 아니다. 이와 같은 근거에 기반하여 필화 또한 국가폭력의 범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임헌영의 주장이다. 그는 국가로 인한 인명 사상 사건을 지칭하는 국가폭력에 필화를 포함할 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음을 이해하며, 그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논증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헬렌 페인이 정의한 제노사이드의 범주 중 하나는 “국가에 의해 절대적 악의 화신으로 분류되거나 국가의 신화에 의해 적으로 분류된 집단을 집단 제거하는 이데올로기적 학살ideological genocide”(21쪽)이다. 국가폭력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 활동에 가하는 일체의 금지, 제약, 학대, 억압 등”(21쪽)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필화도 여기에 해당한다. 더불어 필화사건에 휘말릴 때 작가들은 구금되거나 감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를 폭력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 임헌영을 따라 필화를 국가폭력의 일환으로 해석하게 되면 필화사건을 더욱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 현대 필화사』를 읽으며 우리 삶에 필화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지 체감하게 된다. 2. 탄압받는 사람과 삶, 말살되는 글과 영혼 임헌영은 1945년 8·15 이후부터 시대순으로 필화사건을 배치하고 탄압의 주체에 따라 부를 나누어 그 양상을 살핀다. 제1권의 경우 해방에서 이승만 집권기까지의 필화를 다루고 있으며, 아직 발간되지 않은 제2권은 사월혁명부터 박정희 정권의 몰락까지의 필화를, 제3권은 전두환 쿠데타 이후부터 윤석열 정권까지의 필화를 다룬다.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에 나타난 방대한 양의 필화를 세밀히 다루어내는 엄청난 작업이다. 세계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필화가 많았던 비극적인 한국의 역사를 상기하면, 한 사람이 한국의 필화사를 정리한다는 일 자체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특히 놀라운 점은 사료를 정리하여 현대사를 짚되,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정보 외에 모종의 조치 및 정책이 시행된 이면적 의미까지 예리하게 짚어낸다는 점과 필화를 당한 작가들의 생애 전반을 제시하여 필화사건에 연루된 작가가 국가권력의 희생양이자 검열의 대상일 뿐 아니라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독창적인 예술관을 지니고서 살아온 한 명의 입체적인 사람임을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임헌영 작가의 성실성을 입증해 줌과 동시에 필화가 한 인간과 그가 속한 집단, 그리고 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게 해준다. 임헌영 작가가 채택한 서술 방식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깊이 살필 예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3부 제1장에서 “여류 4인방”(405쪽)이라 불리는 여성 작가 모윤숙, 이선희, 노천명, 최정희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구태여 낱낱이 밝힐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이들의 연애사는 “모윤숙과 이광수의 사랑은 너무나 유명하여 장편소설 소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 “최정희와 시인 김동환의 러브 스토리 또한 이에 못지 않는 은메달급”(405쪽)과 같이 조롱 섞인 어조로 서술된다. 이는 여성 작가의 사생활이 여전히 가십거리로 소비된다는 인상을 남길뿐더러 필화사건에 엮여 고통받는 작가 역시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임을 피력하는 책의 취지와도 맞지 않아 보인다. 여성 작가의 삶의 일부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기술하여 동등한 작가로 대하지 않고 대상화하는 관습적인 묘사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비칠 위험이 있어 우려된다. 해당 부분은 거의 700장에 육박하는 책에서 1장 정도의 적은 분량이기는 하다. 다시 책의 기술 방식이 지니는 장점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필화사건 안에서만 작가를 조명하면 그는 단순히 검열과 억압의 희생양으로 보이게 된다. 이렇게만 부각되었을 때 작가는 상징적인 존재로 고정되어 버릴 수 있다. 물론 국가권력의 피해자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다소 수동적인 객체로 여겨질 위험이 있다. 어떤 작가들은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글로써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비유를 활용해 우회하여 발화하기도 하며 예술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검열의 위협을 무시하기도 한다는 점 역시 고찰되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 염결성만이 강조되어 작가 또한 입체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이 비가시화되기도 한다. 임헌영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생애 전반을 자세히 묘사하고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의 경우 그 사실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단, 친일파라고 해도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필화로 다스리는 건 실패”에 가깝다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방법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는 논평을 덧붙인다.(142쪽) 악행을 저지른 작가라 하더라도 그 행위를 법적 절차를 거쳐 처벌하는 편이 옳으며, 악인을 단죄하는 의미로 주어지는 “바람직한 필화”(142쪽)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1949년, 문교부가 월북작가 작품을 교과서에서 전체 삭제하고 좌경 문학인의 실질적인 활동을 금지했던 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승만 정부는 월북한 문학인을 1급, 남한에 생존했던 문학인 중 좌익으로 판단된 문학인을 2, 3급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창작 활동을 제한했다. 더불어 자수하고 보도연맹에 가입할 것을 강권했다. 가장 많은 작품이 교과서에서 삭제된 정지용 시인의 경우 사상 검열과 모략에 몹시 시달렸음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지용은 좌익 인사로 분류되어 월북했다는 풍문에 휩싸이는 등 고초를 겪다 국민보도연맹에 자진 가맹하게 되는데, 당시 가입 심사를 밝히며 자신이 “이십삼(二十三) 년이란 세월을 교육에 바쳐 왔”던 “한 개의 시민인 동시에 양민”임에도 월북하였다는 소문에 휘말려 “동리 사람에게 빨갱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집을 옮기고 동시에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2)하기도 했다고 토로한다. 이와 같은 정지용의 슬픈 고백마저도 신문에 보도되어 국민보도연맹의 홍보 수단으로 쓰이고 만다는 점은 해방기의 사상 탄압이 극심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1951년 10월 1일, 한창 전쟁 중이던 시기에 공보당국은 “월북 문학예술인 작품을 발매금지 처분”(307쪽)하고 월북작가 명단을 발표하는데, 이를 임헌영은 “반공의식을 고조시켜 아예 독재와 부정부패 등에 대한 문학적 관심을 전면 차단”(308쪽)하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이러한 판단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작가가 월북했다고 해서 그의 작품까지 향유할 수도 없게 만드는 국가의 조치는 그 사회가 얼마나 억압적인지를 보여준다. 임헌영은 문인이 북으로 갔다고 해도 “작품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사회를 유지하는 게 정상”(308쪽)이라고 역설하며, 작가의 행보에 근거하여 작품 자체를 금지 및 폐기하는 방식의 부당성을 다시금 지적한다. 임헌영에 의해 쓰인 필화사를 살피면서, 우리는 필화가 단순히 글과 그에 대한 검열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필화사란 결국 권력 다툼과 정치 싸움 속에서 사람, 그리고 그에 깃든 영혼과 사상을 죽여 온 대학살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한국이라는 특수한 민족사를 보되, 보편적인 인간이 지닌 악(惡)과 진리를 향한 양극단의 갈망을 확인하게 된다. 3. 검열 기준의 모순 임헌영의 저서 속에서 우리는 검열의 기준이 모호하다 못해 서로 상충하기까지 하는 황당한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미군정은 해방 이후 1948년까지 한국에서 책이 번역된 작가 중 공산주의 사상 전파 저자로 플라톤, 아인슈타인,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모파상, 조지 오웰 등을 꼽는데, 반소 소설로 소개하며 미공보원에서 나서서 번역하여 출판했던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을 반공 작가가 아닌 공산주의 작가로 규정하는 허술함을 보인다.(53쪽, 282쪽 참조) 1959년에 필화를 당한 임수생의 시 「지붕」의 “인간이여, 우린 / 우리의 생활을 찾아 / 빠알갛게 돋아오는 아침의 햇빛 / 고향으로 돌아가자”(567쪽에서 재인용)라는 구절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문장으로 오독된다. 임수생을 취조했던 형사는 “고향으로 돌아가자”라는 시구는 평양으로 돌아가자는 선동이며 “빠알갛게 돋아오는 아침의 햇빛”은 공산주의를 예찬하는 표현이라고 일방적으로 정의한 후, 그의 시를 “빨갱이 시”라고 단정 짓는다. 이는 부모의 사상 전과를 근거로 한 비논리적이고 비약적인 추측이지만, 이후에도 임수생은 작품집이 출간될 때마다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번번이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임헌영은 부산 시인 임수생의 일화를 제시하여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필화사건이 있어왔다는 점을 유념하게 한다. 더불어 “서울 중심 문화형성 풍토 속에서 전국 각 지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570쪽) 필화사가 훨씬 많을 것이라며, 이를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당부한다. 이때 짤막하게 소개되는, 빨치산을 비판하는 영화 『피아골』이 상영 허가 취소를 당한 이유도 자못 황당하다. 빨치산이 키스하는 장면이 이들을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괴물됨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전해진다. 검열의 기준이 이처럼 모호할뿐더러 쉽게 뒤집히는 것은 검열의 필요성과 실효성이 집권 세력의 이익에 따라 헛되이 조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필화는 작품을 자의적으로 그릇되게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를 난도질하여 바꾸어 놓기도 한다. 월간 『신천지』 1949년 4월호에 발표된 한하운의 시 「데모」는 그의 첫 시집 『한하운시초』(정음사, 1945)에 실리는데, 이때 추천사를 쓴 이병철과 표지를 그린 정현웅이 이듬해 월북한다. 이에 1953년에 재판이 간행될 때는 이병철의 해제가 빠지고 표지 디자인은 바뀌며, 수록 시 「데모」의 제목은 「행렬」로 변경되고 문제가 될 만한 구절인 “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라는 시구는 삭제된다.(42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하운은 빨치산으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르게 되자 『한하운 시전집』을 발간할 때 “아 문둥이는 죽고 싶어라”라는 시행을 추가하고 “함흥학생사건에 바치는 노래”라는 사족을 달아 미군정을 비판하는 시 「데모」를 반공 작품으로 변모시킨다.(423~424쪽) 검열과 모략이 어떻게 작품을 훼손하는지, 어떻게 문학을 왜곡하고 그에 담긴 정치성마저 뭉개버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대상이 되는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아직 쓰이지 않은 작품들에까지 관여하게 되며 작가를 자기 검열의 굴레에 가둔다. 혼란스럽기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해석한 작품이 기이한 방향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4. 필화(筆禍)의 역사이자 필화(筆花)의 역사 필화가 빈번하다는 것은 “질곡과 비극의 시대”임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임헌영이 적절히 지적해 주었듯 “필화가 있어야 할 시대에 직필은 없고 곡필과 망언과 허위와 날조만 난무하는 현상은 더 비참하다”.(4쪽) 필화사를 마주할 때, 우리는 터무니없이 악랄한 폭압에 경악하게 되지만, 무기력해질 필요는 없다. 역사 속에서 거듭되는 필화사건은 불의에 맞서서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보려던 국민들의 갈망과 노력이 절멸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희망이 없던 시대는 없었던 것이 된다. 책의 말미인 제11장에서 다루고 있는 『경향신문』 폐간 사건에 주목해 보자. 1959년 4월 30일, “신문 발행을 허가제”로 바꾸고 “언제든지 폐간조치할 수 있도록 규정”(656쪽)한 미군정법령 제88호(1946.5.29)에 의해 『경향신문』은 페간된다. 1946년 10월 창간 당시부터 친일파 청산을 강경하게 주장했으며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점과 칼럼 「여적(餘滴)」란의 논조 등이 문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경향신문』의 발행 허가를 취소한 것에 더해 사옥에 꽂힌 기를 내리게 하고 마크를 떼어내게 하여 상징물까지 모두 금지하는데, 임헌영은 이러한 조처는 여타의 필화사건에서도 보기 드문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부연하며 “현대 한국언론사상 가장 가혹한 필화사건”(655쪽)이라고 진단한다. 주목할 점은 발행허가를 취소당한 이후의 대처다. 노기남 주교는 “경향신문의 정치비판 논조가 가톨릭 교지 위배”(669쪽)라는 지적에 맞서, 불의에 항거하는 것 역시 종교의 일임을 역설하였다. 『경향신문』의 편집국장이었던 염상섭을 비롯한 33인의 문학인들은 폐간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고 한국신문 편집인협회 또한 『경향신문』 폐간 취소를 위한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신문사 측은 행정처분 취소 청구소송,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데, 사복형사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부는 경향신문 발행허가를 취소한 행정처분의 집행을 정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에도 또다시 무기정간 명령이 내려져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지만, 사월혁명 직후 『경향신문』은 복간된다. 부당한 억압에 굴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정의를 지키고 양심을 따르려는 사람들의 분투는 붓을 꺾지 않는 염결한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필화’는 쓴 글이 문제가 되어 화를 입는다는 뜻이지만, 한자를 바꾸면 좋은 글을 지칭하는, ‘붓 끝에 피는 꽃’이라는 뜻의 ‘필화(筆花)’가 된다. 붓을 쥔 손을 짓부수는 발길질 아래에서도 어둠을 먹으로 삼지 않고서 옳다고 믿는 것을 기록하려는 아름다운 손이 있다. 그 손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꽃을 틔우고 있다. 1) 이에 관해서는 책의 목차에서 살필 수 있듯 발간 예정인 『한국 현대 필화사 3 : 전두환 쿠데타 이후의 필화사』의 제11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필화’에서 ‘블랙리스트 문제’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2) 「詩人鄭芝溶氏도加盟」, 『東亞日報』, 1949.11.5, 2쪽.
사랑을 사랑하라 ―『사랑의 각오』(소명출판, 2024)1) 1 '사랑'이 무엇일까? 역사가 오랜 시간 직면하기 어려워했던 이 질문은 요즘과 같은 시기에 특히 낯선 것으로 다가온다. 적대와 혐오, 분열과 갈등. 우리 시대와 가장 어울리는 단어의 나열이란 오히려 이런 것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특별히 비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소수자와 약자, 타인 및 '나'와 다른 모든 종류의 것들을 향한 오늘날의 적의와 냉소를 감지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유하는 일은 그에 비하면 훨씬 더 어렵거나 반대로 너무 쉬운 일처럼 여겨진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너무 많은 투쟁과 희생이 요구되는 동시에, 폭력은 오직 또 다른 폭력을 낳기만 하는 지옥과 같은 풍경. 이런 때 사랑은 어딘가 순진하고 순정한 무엇, 때로는 음험하고 지배적인 권력의 하수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사랑의 문제일까? 아니면 무언가가 누락된 사랑, 무언가가 함부로 전제된 사랑의 문제일까? '사랑'을 '윤리'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우리 지성사의 논쟁 테이블에서 '사랑'이 꾸준히 배제된 현상이 그것에 내재한 모호함을 충실히 사유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다. 사랑의 본래적 위험성이 철저히 멸균된 '안전한' 사랑에의 열망. 세계의 복잡성을 하나의 당위로 봉합하는 무책임한 약속으로서의 사랑을 향한 집착. 이처럼 사랑에서 중요함-위험함을 박탈하는 온갖 종류의 사고는 '사랑' 자체는 물론,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타자와 윤리의 문제, 또한 우리의 유한성과 필멸성의 문제를 사물들의 즉각적인 법칙에 적용하는 일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사랑을 제대로 예찬할 방법을 고안하는데, 그의 사랑론은 우리가 마주치는 숱한 이질적인 만남을 우리 모두의 '사건'으로 지속시킬 힘을 알려준다. 본질과 구별되는 사랑의 논리, 사랑의 특수한 원리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사랑에 내재한 그런 힘에 있다. "사랑에는 우연의 순전한 특이성에서 보편적 가치를 지니는 한 요소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이 존재"2)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환원된, 거의 아무것도 아닌, 기껏해야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이 아닌, 이 출발점과도 같다고 할 어떤 것과 더불어서 우리는 단지 동일성만은 아닌, 차이에서 비롯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는 시련을 받아들일 수조차 있으며, 이를 위해 고통을 감내해낼 수도 있게 됩니다. [..] 사랑은 진정 우연으로 인해 발생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지점들, 예컨대 차이의 관점을 시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3) "단지 동일성만은 아닌, 차이에서 비롯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을까? 그러니까 동일성의 무자비한 폭력과 차이의 무차별적인 관용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세계를 함께 경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사랑'을 사유하게 하는, "단지 하나의 경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그러한 "하나의 만남"(33쪽)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랑은 통념과는 달리 정태적이고 순수한 개념이거나 행위자의 부차적 행위를 요청하지 않는 자연적 상태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사랑의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지대. 이와 같은 속성이 부각되는 사랑은 잘 알려진 대로 문학의 오랜 친구이다. 대다수 서사의 원형에 비극적인 사랑의 구조가 놓여있기는 하지만, 문학과 사랑의 친밀한 관계는 단순히 내용에 국한된 무엇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이자 믿음으로서, 우리가 다룰 문제와 관련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하나의 '각오'로서 문학과 동행한다. 최근 출간된 한 권의 평론집은 우리에게 그 오랜 사실을 새삼 환기하려는 것 같다. 2 황도경의 일곱 번째 비평집 『사랑의 각오』(소명출판, 2024)는 우리 시대가 좀처럼 쉽게 발음하려 하지 않는 두 단어들, 그러니까 사랑과 비평을 나란히 내어놓는 데 망설임이 없다. 비평가는 서사와 서사 속 인물들의 행위, 말, 심지어 함께 먹고 함께 입는 모든 종류의 함께-있음을 '사랑의 선언'으로 읽고자 하는데, 그것은 그들 이야기와 장면의 세부가 바디우적 의미에서의 선언으로 비평가에게 당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이 고정되는 순간을 뜻합니다. 그 순간에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일어난 일, 이 만남, 이 만남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 내가 상대에게 선언하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이라고 말입니다. 나를 결부시키는 무언가가 여기서 일어났다고 나는 그(그녀)에게 선언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너를 사랑해"입니다. (...중략..) 그것은 하나의 우연이었던 것에서 내가 다른 것을 끄집어내겠다는 걸 말하기 위함입니다. 우연으로부터 내가 지속성·끈덕짐·약속·충실성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충실성은 이 단어의 보편적인 맥락에서 떼어내, 저의 고유한 철학적 용어로 다시 사용해본 낱말입니다. 이 단어는 우연한 하나의 만남에서 그것이 필연적이었던 것만큼 견고한 구축으로 이행함을 의미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가 어떤 특별한 공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나의 약속, 즉 만남이 제 우연성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지속성을 구축하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충실성이 정확히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4) 우연하고 우연적인 만남, 절대적으로 낯선 타자들과의 무분별한 마주침은 적의와 혐오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 어떤 종류의 우연한 만남은 "여기서 일어난 일, 이 만남, 이 만남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로부터 “다른 것을 끄집어내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타자'의 분열과 분리의 감각을 하나의 통합된 도덕적 세계의 형상을 향해 떠미는 것은 아니다. 그 우연한 만남을 “견고한 구축”으로, 말하자면 마치 진리의 절차(procédure de vérité)처럼 우연을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행위가 사랑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황도경에게 지금 우리 시대는 사랑을 "언감생심”으로 만드는 "절망과 분노"(3쪽)의 시대인 한편, 그럼에도 한켠에선 "사소하지 않은" 사랑의 선언들로 충만한 곳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하려는 듯 비평가는 총 세 가지 단계 혹은 과정으로서 사랑의 테마를 재구축한다. 총 3부로 이루어진 평론집의 구성과 배치는 각각 사랑에 관한 그의 믿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1부 '사랑의 각오'에서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안보윤 『밤은 내가 가질게』, 정보라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김멜라 『제 꿈 꾸세요』, 김애란 『바깥은 여름』의 소설집과, 권여선 「사슴벌레식 문답」,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의 단편 소설을 거쳐, 2부 '사랑의 방식'에서는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이승우 『목소리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오수완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의 한국 소설과 더불어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및 영화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 영화 , 18세기 조선의 문인인 '이옥'에 대한 비평으로 이를 증명한다. 3부 '사랑의 질문'에 이르면 우리는 장진영 『취미는 사생활』, 김영하 『작별인사』, 이승우 『사랑이 한 일』,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와 같은 비교적 최근 문학 작품들은 물론이고 영화 ,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로부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까지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거침없이 이동하며 사랑을 마주하는 비평가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각오', '방식', 그리고 '질문'을 '사랑'과 나란히 놓는 이 평론집의 배치 방식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속격 조사 '의'의 두드러진 역할을 상기한다. '의'라는 조사의 존재는 사랑을 다양한 속성을 소유하는 사물처럼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사랑' 뒤에 놓인 단어들을 능동적으로 행하는 주체의 자리로 이동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각오, 사랑의 방식, 사랑의 질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각오'라는 최종 형식 또는 태도로 종합하려는 비평가의 욕망에 닿을 때, 우리는 사랑이 제 본위를 언제나 초과하는 형식을 내재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사랑이 사랑을 사랑하는 법, 달리 말해 우연성을 함께 있음으로 지속시키려는 예의 그 힘과 관련될 것이다. 그것은 비평집이 구체화한 순환의 논리처럼 각오-방식-질문 그리고 다시 각오로 돌아오는 사랑의 원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소설 속 '나'처럼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한다고, 아버지의 삶보다 나 자신을, 내 삶을 끌어안고 사느라 전전긍긍이었다고, 아버지가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도 내뱉고 싶었던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해야만 한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두고 돌아올 적이면 놓지 않던 아버지의 손에 담겼을 절절한 마음과 아버지의 눈에 피었던 만단정회와 아버지가 밤낮으로 기저귀에 그렸을 만다라를 나는 알지 못한다고, 고백해야만 한다. 아버지는 삶을 끝냈건만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과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게 출렁거려서, 나는 억울하다고, 상처받았다고, 그때 왜 그랬느냐고, 소설 속 '나'를 따라 구시렁거렸다. 아버지에게 따뜻한 손도, 말도, 한번 제대로 건넨 적 없는 나는 그리움인지 허망함인지 모를 마음을 소설 속 말로 대신한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라고. (217쪽)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스스로의 삶과 나란히 두며 읽는 글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가 평론집의 '중간'을 표시한다는 것이 특별히 흥미롭다. 아버지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고백하면서, 그럼에도 "전직 빨치산이었던 소설 속 아버지와 전직 경찰관이었던 나의 아버지"(214쪽) 사이를 소설의 문장과 비평의 문장으로 부단히 겹쳐 놓는 비평가의 자기 글쓰기는 말 그대로 아버지라는 타자를 향한 사랑의 '방식'이자, 타자 그 자체를 향한 '질문'이며, 또 그것을 지속하겠다는 삶의 '각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정지아의 소설 속에서 마주친, 나의 아버지와 겹치거나 겹치지 않는, 현실의 존재이거나 그렇지 않은 무언가/누군가와의 만남이 어떻게 방식과 질문 그리고 각오를 아우르며 차이로서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는 단계로 우리를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걸까. 무엇보다 그것은 이 모든 '선언'이 언어와 관계된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바디우는 “우연으로부터 내가 지속성·끈덕짐·약속·충실성을 이끌어"내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선언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우연성을 시간 속으로 고정시키는 일. 그것은 언어의 형식으로 출현하는 '선언'에서 촉발되고, 이 출현은 그것을 반복적으로, 말하자면 충실하게 지속하도록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된다. 비평가가 자신의 아버지와 소설 속 아버지를 겹쳐놓으며 반복하는 '알지 못한다'는 문장은 이 모든 마주침의 철저한 우연성과 여전한 타자성은 물론이고, 그것의 지속성, 끈덕짐, 약속과 충실성을 수행적으로 실현한다. '알지 못한다'는 말로 끈덕지게 마주하는 우리의(타자의) 세계. 이 사랑의 방식은 곧 미래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필멸의 삶을 살고 있으니 늙은 몸의 비관주의는 피할 길이 없지만, 우리는 정신의 삶이라는 또 하나의 다른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지는 삶이라면, 그 시간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세계를 인식하거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이질적인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리고 신이란 모든 이를 받아들인 존재, 모든 이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라고. 나는 이 사랑의 신을 믿고 싶다. (192쪽) 미래를 낙관하기. 다소 무책임하고 순진하게 보이는 이 '낙관'의 태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면, 이 필멸의 삶에 가능한, 그리고 가능해야만 하는 유일한 태도일 수도 있다. 이백사십 년에 걸쳐, 혹은 이천사백 년에 걸쳐 이어지는 삶이 우리의 유한한 생에서도 가능한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기억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확장 덕분일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미래의 기억'인 이유는 타인의 기억이란 결코 온전한 내 것일 수 없는, 제대로 도착한 적 없고 경험을 말할 수 없는 '미래'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 문학동네, 2022)의 할아버지는 그런 것이 '사랑'의 정의라고 말한다. 3 그러나 이와 같은 '미래의 기억'이 다름 아닌 나와 너의 무한한 다시 쓰기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사랑의 선언이 남기는 찜찜하고 불가해한 질문들이 있어야 한다. 질문을 남기지 않는 사랑은 타인의 기억을, 그리하여 미래를 소유했다는 거대한 착각에 불과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신실한 믿음의 수호자로서가 아니라 비로소 온전히 아버지, 아내, 아들, 동생이 된 자리에서 그들은 신, 아버지, 남편, 형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호와 하느님은 왜 그랬을까? 아버지 아브라함은 왜 그랬을까? 어떻게 자식을 죽이라고 명령하며, 어떻게 그 명령에 순종하며 자식을 죽이고자 했을까? 남편 아브라함은 어떻게 당신의 자식을 버릴 수 있었을까? 이삭은 왜 에서를 편애했을까? 온통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부조리극과도 같아 보이는 창세기 이야기들은 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변모한다. (337쪽) “온통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부조리극과도 같아 보이는 창세기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우리 세계의 맨얼굴이기도 하다. 충만한 기쁨보다는 부당한 부조리만을 더 많이, 더 자주 남기는 세상을 향해 섣부른 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동시에, 우리가 앞서 살핀 사랑의 방식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방법”이 “문장의 반복을 통한 단계적이고 점층적인 추론"(339쪽)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각오』가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우리 시대의 작품들은 모두 이 문장의 반복을 통해 단계적이고 점층적인 추론을, 무엇보다도 그것을 촉발할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면 각오-방식-질문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과정이 '사랑의 각오'라는 최종의 형식을 향해 운동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랑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내재한 위험성과 그 위험성을 통과하는 데서 발생하는 고통을 인지해야 하고, 나아가 그것을 기꺼이 감내할 의지가 매순간 새롭게 선언되어야 한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무서운 고통'"(37쪽)이다. 그러나 사랑의 징표인 고통과 고통의 표식인 사랑은 인과의 논리를 거스르고 선후관계를 마구 뒤집으며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을 추적하는 이들에게 사랑은 그 존재를 쉽사리 증명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은 그것을 감내하며 다른 생성을 추동하려는 투지, 말하자면 사랑의 방식을 이행하고 질문을 이어가려는 “시간 속으로의 참여"5)를 마주하는 이에게만 긍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비평가가 작품이라는 우연성과의 마주침을 “시간 속으로의 참여"로 내던질 수 있는 계기는 단어와 문장, 그로 인한 삶들의 겹침에 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비평가가 발견한 '눈'의 겹침은 사랑의 '각오'를 촉발한 한 사례로 보인다. 이때 눈은 악몽의 근원인 폭력적인 현실과 참혹한 역사를 주시하는 몸이다. (중략..) 그때 눈은 흉포한 폭력의 현장을 마주하는 몸이자 그날의 참혹한 현장을 기억하고 증언할 최후의 보루로서의 몸이기도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내'가 눈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끔찍한 고통의 현장과 폭력의 역사를 주시하기 위해서는 눈의 통증을 피할 길이 없다. 이 아픈 눈과 함께 '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4쪽) 눈은 하늘에서 내려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올라간 많은 먼지와 재가 결합한 것이고, 하얀 눈송이 안에는 수많은 결속을 통해 이루어진 텅 빈 공간들이 있고 그것 때문에 가볍다는 것은, 눈이 근본적으로 죽음과 어둠을 이겨내는 비상의 동력을 가진 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니 눈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통스러운 시련을 환기시키는 매개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날아오르는 힘이기도 하다. 검은 나무들을 심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흰 천 같은 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그 나무들을 덮어주기를 기대했던 것도, 눈이 갖는 잠재적 비상의 힘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33쪽) 한강의 작품에서 '눈'은 "악몽의 근원인 폭력적인 현실과 참혹한 역사를 주시하는 몸"이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든 '통증'은 같은 소설 속 세계에서 "죽음과 어둠을 이겨내는 비상의 동력을 가진 새"와 같은,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날아오르는 힘"이 되기도 한다. '눈'이라는 고정된 단어는 역사적 의미에 철저히 종속된 무엇인 동시에, 그 의미를 스스로 초과하고 다른 의미를 파생하는, 단지 유한하지만은 않은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를 그저 발견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눈'과 '눈'의 겹침으로 발견을 다시 쓰는 비평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 사랑의 선언을 "다시 선언"하는 일과 같다. 장르와 문법,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제시되는 이 사랑의 선언들은 반드시 "다시 선언"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사랑은 스스로를 지속하기 위해 "지점들, 시련들, 시도들, 새로운 사실들의 출현이 존재하며, 매 순간 '둘이 등장하는 무대'를 재연(再演)해야 하며, 새로운 선언에 필요한 용어들을 다시 찾아내야만 하"6)기 때문이다. 사랑에 각오가 필요한 이유, 그 방식을 끊임없이 새로이 고안해야 하는 이유, 무엇보다 질문을 생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신성할 만큼 총체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재발명되는 것으로 지속되는 무엇이다. 랭보와 바디우의 연이은 이 선언에 더해 『사랑의 각오』의 비평가는 메리 올리버의 질문을 되새기며 사랑의 선언을 다시 선언한다. “질문은 오직 하나뿐,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184쪽) 1) 이 글은 황도경의 비평집 『사랑의 각오』를 다룬다. 이하 문장을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2) 알랭 바디우, 조재룡 역, 『사랑 예찬』, 도서출판 길, 2010년, 27쪽. 3) 알랭 바디우, 조재룡 역, 위의 책, 같은 쪽. 4) 알랭 바디우, 조재룡 역, 위의 책, 55~57쪽. 5) 알랭 바디우, 조재룡 역, 위의 책, 59쪽. 6) 알랭 바디우, 조재룡 역, 위의 책, 62쪽.
1. 향수와 전원 취향을 넘어 박광배의 『서천 가는 길』(상상인, 2024)은 소리내어 읽어보면 텍스트의 속살에 한결 더 가까이 다다갈 수 있는 구어적(口語的) 속성의 시집이다. 그만큼 그는 살아있는 말의 오롯한 생동감을 살려 그 입말의 주인공들을 시의 전면으로 초청해 들이는 시인이다. 민초들의 다양한 언어는 시인의 이러한 의지에 의해 첨예한 구체성으로 재현되고 번져간다. 또한 시인은 등단 30년이 되어 첫 시집 『나는 둥그런 게 좋다』(시인학교, 2013)를 펴내더니, 이번에도 11년 터울이라는 만만찮은 간극을 둔 두 번째 식솔을 탄생시켰다. 그야말로 삭히고 삭힌 언어가 아름다운 시간의 문양을 만들어낸 셈이다. 그런가 하면 그의 시에는 좌고우면이나 머뭇거림이나 언어적 세공이 거의 없다. 당당하고 의연하고 몸에서 직접 솟구치는 언어가 말하자면 박광배의 시다. 그 안에는 흉내 내기 어려운 그만의 해학도 있고, 너무도 깊은 한(恨)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공동체적 통증도 소홀치 않게 들어 있다. 그렇게 이번 시집은 우리 근대사 전체를 집약한 다성악(多聲樂)으로 다가온다 할 것이다. 박광배 시인은 이번 시집을 두고 “만사 제치고 우선 고향 이야기부터 남긴다.”(「덧붙이는 말」)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시집의 줄기는 고향 ‘서천(舒川)’을 향한다. 물론 그의 고향 가는 길은 소박한 향수(鄕愁)나 전원 취향 같은 범주에 결코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시집은 고향에 대한 사랑을 소환하면서 고향 사람들의 내밀한 삶 바닥까지 그려낸 풍경첩으로 찾아온다. 오랜 기억으로부터 풀어낸 언어를 통해 시인은 존재론적 기원(origin)에 관한 지극한 회상과 사랑을 우리에게 흘려보낸다. 고향에서 경험했을 고통과 기쁨에 대한 반추 과정도 환하게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감상 과잉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긍정의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퍽 인상적이다. 2. 내 그리운 고향 시집의 1부는 고향을 이런저런 면모로 호출하고 있다. 원래 그리움은 대상 부재에 따르는 일종의 결핍감을 말한다. 대상에 대한 애착을 숨기고 있지만 이제는 그 대상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실제적 만남을 욕망하지는 않는다. 시인은 그리움의 이러한 필연성과 항구성을 통해 고향 사랑의 마음을 풍요롭게 들려준다. 그만큼 그의 시편은 시간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존재론적 기원을 찾아가는 일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들판 멀리 불빛 두런대는 어름 버스 타고 지나다 더듬네. 불빛 꺼진 지 오랜 고향집. 허물어져 들고양이 불 켜고 섰겠네. 할매 혼령 떠다니겠네. ― 「내 그리운 고향」 전문 그리운 고향은 들판 멀리 두런대는 불빛의 잔상(殘像)으로 존재한다. 버스 타고 지나다 겨우 더듬어볼 뿐, 불빛 꺼진 지 오랜 고향집은 허물어져, 이제 들고양이만이 그곳에서 불을 켜고 있다. 그렇게 “떠돌다 떠돌다 고향집에 가면”(「고향」) 시인을 반기는 것은 떠다니는 “할매 혼령”이다. “엄마랑 논둑길을 걸어오는”(「밤하늘에 흐르는 흰 점」) 환영도 오랜 시간의 지층을 뚫고 가까스로 보일지 모른다. 그만큼 고향은 공간적으로는 지척에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너무 멀리 있다. 하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고향에는 양도할 수 없는 기억과 그리움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바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풀씨가 뒤를 따랐고 나무가 길을 내었다. 들꽃들이 달려가자 벌 나비가 뒤를 쫓았다. 바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산새가 누군가를 부른다. 다람쥐 가족이 기어들었다. 노루가 돌아다보았다. 돼지가 고목에 몸을 부빈다. 풀섶을 헤치며 약초꾼이 나타났다. 바람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해가 비추고 구름이 흐르고 달이 뜬다. 여전히 풀꽃은 나무들과 길을 떠난다. 저들과 하염없이 걷는다. 엄마가 막내랑 토방에 앉아 강낭콩을 까고 있는 오두막이 나올 때까지. ― 「오솔길」 전문 시인이 바라보는 오솔길에는 고향에서 경험하고 기억한 모든 일들이 함축적으로 배어있다. 그 “바람이 다니는 길”은 언제나 ‘풀씨’와 ‘나무’와 ‘들꽃들’과 ‘벌 나비’를 품고 있었다. 과거의 한 눈부신 영상이었을 이 생명체들의 그물망은 고향의 원초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그 길은 ‘산새/다람쥐/노루/돼지/약초꾼’이라는 동물 혹은 인간의 네트워크로, 지금은 ‘해/구름/달’이 있고 여전히 ‘풀꽃/나무’가 함께 거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때 저들과 함께 걷는 시인은 “엄마가 막내랑 토방에 앉아/강낭콩을 까고 있는/오두막이 나올 때까지” 그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고향은 시인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순간으로 결속한 ‘충만한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바람이 다니는 길”에서 ‘바람’이 가지는 유동성이야말로 고향을 바라볼 때마다 돋아나는 스스로를 향한 시인의 심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노래를 들어 보셨나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가만가만 우는 귀뚜라미 눈먼 악사가 떠나는 우리를 전송합니다. 어매 치맛자락 잡고 군산엘 갈 때나 역전에서나 사람 모이는 곳이면 언제나 울리고 있었지요. 그 고물 기타는 내가 커서 푸른 제복을 입고 나왔을 때도 거기 그렇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보청기를 낀 노인네가 기타 가락에 덩실덩실 춤추는 걸 보고 하마터면 울 뻔도 하다가 무심코 주머니를 뒤져 그의 손가방에 천 원 한 장을 넣어 주고는 부두로 부리나케 빠져나왔었지요. 약장수도 사람은 다르지만 구성지게 입품을 팔었쌓고 다라이 가득 생선이랑 감 배추 혹은 감자 멸치를 인 아주머니 행렬은 거기 그대로 있는데 그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뿐이 아닙니다. 눈먼 그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귀뚜라미 노래를 부릅니다. 죽은 어매가 둘러선 사람들 틈에 보입니다. 한쪽 구석에 할아버지도 단장을 짚고 계시는군요. 어딘가 있을 겁니다. 초롱한 눈망울 굴리며 두리번거리는 어린놈. 큰 머리를 놀림 받던 맑은 눈. ― 「장님 악사 - 장항 군산 간 뱃전에 서서」 전문 이 아름다운 시편은 시인이 가슴에 어떤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실감 있게 보여준다. 장항 군산 간 뱃전에서 바라본 ‘장님 악사’가 그 기억의 주인공인데, 그의 애절한 노래는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떠나는 우리를 어디서나 전송하는 듯했다. 그가 노래 부를 때마다 켜던 “고물 기타”는 시인이 성장한 후에도 울리고 있었다. 보청기 낀 노인이 그 기타 가락에 춤추는 걸 보고 울 뻔도 했는데, 어느 날 다른 이들은 그대로 보이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 옛날 그의 노래와 기타 소리를 듣던, 이제는 돌아가신 어매, 단장 짚고 계신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인은 어딘가에 분명히 “초롱한 눈망울 굴리며/두리번거리는 어린놈./큰 머리를 놀림 받던 맑은 눈.”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그때 환청으로 들리던 “눈먼 그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부르는 “귀뚜라미 노래”야말로 고향을 환기하는 가장 또렷한 예술 형태였을 것이다. 지금도 “표지석 하나 없는 아름다운 마을”(「영화배우 김진규」)을 그 노래와 악기 소리가 비추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박광배 시인은 고향에 대한 때로 선명하고 때로 흐릿한 기억을 한결같이 구상화하면서 거기에 미학적 의장(意匠)을 부여해간다. 그의 시는 이렇게 스스로의 존재론적 기원을 펼쳐가는 현장으로 존재한다. 그러니 그에게 기억이란 그때-그곳을 구성해내는 힘으로 살아나고 있다. 나아가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실존 형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거기서 비롯되는 유한자(有限者)로서의 자기 확인을 수행해간다. 그래서 그가 겪는 모종의 박탈감은 극단의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고 세계내적 존재로서 가지는 고유한 긴장으로 안착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일회성을 본질로 하는 시간관(觀)에 저항하면서 근원적 시간의 회복 가능성을 탐사해간다. 그를 끊임없이 돌아가게 하는 고향의 힘이 바로 그러한 순간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3. 살아있는 ‘지금-여기’의 이야기 시집의 2, 3부는 이 아름다운 서정시집에 깃들인 ‘소(小)서사시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고향 주변의 수많은 인물과 사건, 습속과 전통이 여기 등장하는데, 시인은 “내가 아는 만큼 썼다.”(「덧붙이는 말」)라고 하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인의 고향 토착어를 실감과 감동으로 만나게 된다. 그의 시는 시인이란 부족방언을 세련화하여 구성원들에게 인지적, 정서적 충격을 선사하는 존재라는 규정을 최대치로 실현한다. 그만큼 토착어의 풍요로움은 그가 발굴하고 성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것이다. 이때 ‘토착어(vernacular)’란 공식 언어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현재형으로 쓰이는 언어를 의미한다. 지역어라는 의미 외에도 살아있는 언어의 원형을 뜻하기도 한다. 그는 방언에 담긴 해학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역설적 페이소스를 결합해간다. 그만큼 구어적 활력이 넘치는 방언을 채굴하고 재현하면서 비타협적 언어 미학을 건설해간 것이다. 이 부분만 분석해도 제법 긴 평론이 쓰일 것이다. 어쨌든 그의 시에는 민며느리로 시집오신 교하 노씨 증조모로부터 시작하여 “주먹쟁이 욕쟁이 상무식꾼이 자랑스런 내 조상”(「家傳」)이라는 고백에서 보이는 고령 박씨 계보가 낱낱이 나타난다. “전쟁도 훨씬 전 왜정 때 이야기”(「그 추운 날」)도 펼쳐지고, “귀신이 흐느끼는 땅”(「귀신이 흐느끼는 땅」)에서 벌어진 “갑오난리”(「갑오난리 때 말이다」), “학교서 조선말도 쓰지”(「공출」) 못했던 시절, 증조할아버지 돌아가신 이듬해에 터진 “전쟁”(「전란」), “『소년중앙』에 그때 이야기 만화로”(「1970년 무렵 금강하구」) 나오던 시절, 그때 그들의 ‘유사(遺事)’가 깨알 같은 세목을 거느린 채 퍼져간다. 이때 ‘시인 박광배’는 역사의 기록자로서 그 역할을 선명하게 견지한다. 이 시편들을 하나 하나 검토해야 제대로 된 박광배론(論)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는 아쉬운 대로 두 편의 가편(佳篇)을 읽어보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 같다. 네 증조할아버지는 일거리가 생기면 동네서 가장 가난한 집부터 일을 주셨다. 명절이 오면 가난한 집들에 일꾼을 시켜 쌀 두어 말씩 돌렸다. 그저 명절 쇠라고. 우리 집은 그럭저럭 밥 안 굶는 중농이었다. 또 할아버지가 학식이 있는 분도 아니었다. 그때는 그리 살았다. 네 할아버지가 인공 때 안 돌아가신 것도 할아버지가 쌓은 덕이었나 싶다. ― 「두레」 전문 ‘두레’는 힘든 일을 함께 나누는 공동 노동 풍습을 의미한다. 시인은 누군가 자신에 들려준 “네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넨다. 할아버지는 일거리가 생기면 가장 가난한 집부터 주셨고, 명절 때면 가난한 집들에 쌀을 돌리셨다. 학식도 별로 없고, 밥 안 굶는 정도로 사시면서도 “그저 명절 쇠라고” 가난한 이들을 도왔던 할아버지의 선한 일을 두고 “그때는 그리 살았다.”고 하는 누군가는 “네 할아버지가 인공 때 안 돌아가신 것도/할아버지가 쌓은 덕” 때문이 아니었나 하고 말한다. 평소에 쌓은 덕이 잔혹한 전쟁의 피해를 피하게 해주었다는 기억의 마디에 시인은 ‘두레’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세상 모든 일이 공동으로 나누는 사랑과 선행의 그물망임을 강조하고 있다. 길산천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할머니는 나씨 가문으로 시집간 큰딸을 보러 떡 보따리를 이고 막내고모를 업고 천방산을 바라보며 이 길을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갈밭 길을 걸으며 마흔세 살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선린학교 태극기 사건에 연루되어 초주검이 된 큰고모부 옥바라지하러 할머니는 애달복달 장항선 열차 타고 고모네 신혼집을 오르내렸다 한다. 젖먹이 안고 울고 있는 큰딸 오로지 청상과부 될까 하여. 이 강을 타고 소정방이 뻘에 길을 내며 상륙했다 한다. 왜구 떼가 들이닥쳐 온 들판에 송장이 즐비했다 한다. 갑오난리 때 동학군 관군들의 송장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했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걷는다. 갈숲과 억새와 기러기 떼 아우성치는 겨울 들판을 걷는다. 목을 간지럽히는 바람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언젠가 내 자식이 이 길을 걸을 것이다. ― 「서천 가는 길」 전문 시집 표제작인 이 시편은 길산천 따라 걷고 또 걷는 시인의 고향 회상록이다. 여기에는 ‘할머니’와 ‘큰고모’ 그리고 ‘막내고모’가 등장한다. 시집간 큰고모 보려고 보따리 이고 막내고모 업고 천방산 바라보며 마흔세 살 할머니는 이 길을 걸었다.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초주검이 된 큰고모부 옥바라지하러, 젖먹이 안고 우는 큰딸이 청상과부 될까 봐 그곳까지 애달복달 오르내린 것이다. ‘소정방’과 ‘왜구 떼’들 침입이 있었고 ‘동학군 관군들’ 송장이 즐비했던 그 공간을 지나 ‘나’도 할머니가 걷던 길을 걷는다. “갈숲과 억새와 기러기 떼 아우성치는/겨울 들판을” 말이다. “언젠가 내 자식이 이 길을 걸을 것이다.”라는 결구(結句)는 이러한 걸음이 누대(累代)의 역사로 축적되고 반복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서천’은 “단발령도 창씨개명도 관계없는 고집불통들”(「문헌서원」)이 사시던 곳이지만 이 모든 것은 살아있는 ‘지금-여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서천’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인물과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시인 박광배’는 다음 시편에서 모처럼 스스로에게 돌아온다. ‘우리’에서 ‘나’로 이월해온 이 미래 예측의 시편은 사실 현재 자신의 삶을 에둘러 설파한 1인칭 고백 장르로서의 서정시인 셈이다. 고향 샛강 가에 오두막 한 채 지을 거다. 지붕은 갈대로 해 이를 거다. 그러고 거기 강가 갈대숲에서 낚시를 할 거다. 해 쨍쨍한 유월 어느 날, 갈바탕에 낚시 드리운 채 꾸벅꾸벅 졸다 숨을 놓을 거다. 메기가 낚싯대를 휘청이며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할 때. 향년 얼마냐고? 95세에. 어때, 그럴듯하지 않은가. ― 「나의 임종」 전문 고향 샛강 근처에 지을 ‘오두막 한 채’, ‘갈대 지붕’, ‘한적한 낚시’ 등이 세속의 번쇄를 벗어난 삶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시인은 해 쨍쨍한 유월 어느 날, 95세에 그럴듯한 ‘나의 임종’을 맞으리라 상상해본다. 처사의 삶이 유유자적한 말년으로 이어지는 넉넉한 소망 시편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버전도 있다. 고향 샛강가, 갈대로 지붕 해 이른 오래된 초막. 책더미서 꾸역꾸역 기어 나와 낚시를 드리울 거다. 299살이 되는 해, 말짱한 6월 어느 날 갈바탕 한가운데서 꾸벅꾸벅 졸다 숨을 놓으면 ― 「추리대마왕」 중에서 셈이 달라져 예상 향년(享年)이 세 배로 커졌다. 전자면 장수이고, 후자면 문자 그대로 판타지다. 시인은 “그렇게 참나무랑 막걸리 한잔하고”(「뒷동산 참나무 구멍 꿀 익는 내음」) 살다가 진짜 ‘서천’으로 가고자 한다. 이렇게 『서천 가는 길』은 시인이 경험한 여러 순간에 대한 언어적 재현의 결실로 나타나고 있고, 이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사물이나 상황을 고유하게 해석하고 판단하는 시인의 활달한 기억이다. 이번 시집은 이러한 미학적 원리를 구체적 기억 속에서 다양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시인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보편적 삶의 화폭을 구축하게 된다. 나아가 시인은 그러한 순간들이 어떠한 파생적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하는데, 특별히 근원적 존재 자체를 궁구하려는 의지를 통해 근원적 생의 가치를 묻고 있는 것이다. 4. 삶을 가능케 한 역설적 토양으로서의 기억 기억이란 대체로 자기 충족적이다. 하지만 박광배의 기억은 사사로운 맥락을 벗어나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이들을 불러오면서 그것을 수많은 영혼의 파문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시간의 실핏줄까지 채워간 이러한 기억의 역동적 동선(動線)이 시집 안에 참으로 가득하다. 모든 시간이 소멸해가는 고향 가는 길에서 시인은 비관으로 기울지 않고 삶의 궁극적 긍정으로 귀결해간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처연한 빛을 뿌릴 때에도 그것을 순리로 받아들인다. 시인은 그러한 기억이 삶을 가능케 한 역설적 토양이었음을 마음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소멸이 있어야 불멸도 있는 법이다. 시인은 소멸해가는 어떤 시간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삶의 심층을 유추할 수 있는 현재형을 궁극적 긍정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론적 기원과 앞으로 가닿아야 할 궁극으로의 서정적 귀환을 아름답게 이루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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