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비평 아카이브
- 계간 문학인 2024년 여름호(제14호)
건강하고 명랑하게 ― 1930년대 중후반 쓰인 김기림 시와 평론에 부쳐, 김기림의 「故 이상의 추억」 읽기
1. 그는 좋은 사람이다
김기림은 호인이었다. 적어도 이상은 그렇게 평가했다. 그가 쓴 본인의 인물평을 보고 박태원, 정지용, 김유정이 흡족하게 여겼을 것 같지는 않다. 이상에 따르면 박태원은 타인을 웃는 얼굴로 대하지만 그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속으로만 불만을 품는 유약한 타입이고, 정지용은 겉으로만 결기를 보이다 적당히 물러나는 비겁한 축에 속하며, 김유정은 머리보다 몸이 앞서 객기를 부리는 유형이다. 반면 김기림에 대해서 이상은 호의적으로 쓰고 있다.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이라.”1) 물론 이상은 이들 모두 교만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꼬집으면서 입바른 소리를 하나, 그가 보기에 김기림은 문인 특유의 괴팍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일본대학 문학예술과를 수료하고 스물세 살 나이에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게 된 경험이 온화한 처세술의 바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누구라도 그렇지만, 특히 문인과 긴밀한 교류를 맺으면서 취재해야 하는 학예부 기자가 문단에서 함부로 적을 만들면 곤란한 법이다.
김기림이 호인을 연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을 보든 사람을 대하든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예리한 안목으로 정평이 난 이상이 그의 가식을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조선 시단의 모더니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던 김기림은 ‘시의 과학’이라는 냉철한 시론을 주창한 이로 문학계에 알려진 면모와 별개로, 실제로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상이 세상을 떠난 1937년 그를 애도하기 위해 발표한 글에서도 이러한 성격이 여실히 엿보인다. 추도문에는 김기림이 경계한 센티멘털리즘이 녹아 있다. 절친한 벗의 죽음과 맞닥뜨려 깊은 슬픔에 빠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감상에 매몰되기보다 그것 자체의 객관화를 개진한 자타공인 조선의 일급 모더니스트 아닌가. 이상의 시 쓰기를 가리켜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든가, 그의 존재성을 “세속에 반항하는 한 악한(?) 정령”이라고 비유한 문구는 김기림하면 떠오르는 이지적인 이미지와 대비되어 흥미롭다. 마냥 그러한 것은 아니다. 비평가답게 그는 이상의 타계가 개인의 비극에 그치지 않고,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임을 선언하며, “오늘 시단이 갑자기 반세기 뒤로 물러선 것을 느낀다.”라고 진단한다. 2)
보성고보 동문이라는 인연이 있으나, 1930년대 중반 구인회 동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친목을 맺은 두 사람의 우정은 햇수에 비해 단단한 밀도를 구축하였다. 이는 서로를 지지하는 문학적 동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컨대 이상은 김기림의 첫 시집 『기상도』(창문사, 1936)를 편집하고 장정했는데, 관련한 내용은 그가 김기림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이상의 서신 9편 가운데 무려 7편이 김기림에게 보내는 전언이다. 살펴보면 사무적인 소식은 적고 김기림의 안부를 물으면서 자신의 복잡하고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상은 김기림과의 서신 왕래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주 편지해달라고 부탁한다. 김기림의 따뜻한 격려에 기운을 얻은 덕분이다. “졸작 「날개」에 대한 형의 다정한 말씀 골수에 스미오.”3) 골수에 스민 고마움을 그는 『기상도』의 꼼꼼한 교정과 지금 보아도 세련된, 검은 바탕에 세로로 긴 은색 직사각형 두 줄을 덧댄 장정으로 보답하였다.
『기상도』 출간 무렵 김기림은 동북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일본 센다이에 머물고 있었다. 시인 자신에게는 기념비가 될 만한 첫 시집 출판 작업을 이상에게 위임하고 그와 편지로 교류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여기에 있다. 『기상도』 출간 후 이상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두 사람은 1937년 3월 동경에서 드디어 재회한다. 이상은 피폐한 모습으로 골방에서 김기림을 맞았다. 한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상은 본인 작품을 향한 세간의 평을 거론하며 흥분한다. 이에 김기림은 “벗이 세평에 대해서 너무 신경 과민한 것이 벗의 건강을 더욱 해칠까 보아서 시인이면서 왜 혼자 짓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세상이야 알아주든 말든 값있는 일만 정성껏 하다가 가면 그만이 아니냐 하고 어색하게나마 위로”4)한다. 이상이 그 말에 위로를 얻은 여부와 무관하게, 나는 그것이 김기림이 견지한 문학 정신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굳건한 의지 없이 모더니즘 시 운동의 이데올로그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부화뇌동하지 않고 그 길만 꿋꿋하게 걸었다.
재미있는 점은 병약해진 이상을 대할 때마다 김기림이 느끼는 부끄러움에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상(箱)의 앞에 설 적마다 나는 아침이면 정말체조(丁抹體操: 덴마크 보건 체조—인용자)를 잊어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늘 부끄러웠다. 무릇 현대적인 퇴폐에 대한 진실한 체험이 없는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늘 상에게 경의를 표했다.”5) 과연 김기림은 건전한 생활인다운 습관의 소유자였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격언에 따라, 매일 아침 덴마크 보건 체조를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 힘쓴 그가 이상처럼 “현대적인 퇴폐에 대한 진실한 체험”을 했을 리 만무하다. 함께 모더니즘을 옹호하였으나 둘의 양상은 판이하였다. 김기림의 표현에 의하면 이상은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 즉 식민지 모던의 모순을 온몸으로 앓다 파열에 이른 인물이다. 김기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식민지 모던의 모순을 이성으로 포착하였고 시화하기 위하여 애썼으나, 이것이 실제 자기 인생을 황폐화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 사실을 김기림과 이상 모두 잘 알고 있었을 테다. 동지이되 자신에게 결핍된 요소가 상대에게 있었으므로 상반된 기질의 두 사람이 오히려 친밀해질 수 있었다.
2. 운동하는 아침: 현대시의 피지컬
비유하건대 ‘한밤의 시론’에 몰두한 이상과의 관계에서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바 김기림은 건실한 문인이었다. 김기림이 “오전의 시론”을 전개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1935년 4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그의 초기 시론에 대해서는 서구 모더니즘의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약점이 그간 지적 되어왔다. 현 시대의 새로운 시를 긍정하기 위하여 과거의 유산—낭만주의와 프로문학을 단순하고 편향적으로 도식화하는 문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이 김기림에게 매료된 태도의 건강함이 ‘오전의 시론’에 집약되어 있으므로 이 글을 좀 더 들여다보려 한다. 엄밀한 논증보다는 단상 형식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독자가 충분히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도 장점이다. 해당 평문에서 김기림은 앞으로 도래할 시에는 인간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에는 인간이 배제되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인간적 감격과 비판이 참가하지 아니한 시는 문자의 장식에 지나지 않을 게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허공에로 눈을 돌리고 아름다운 황혼이나 찬란한 별들의 잔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일이다. 모두 대낮에 피로한 오후의 심리다.”6)
오후가 활기 넘치는 시간이라는 통념과 반대로, 김기림은 그때를 한낮에 이미 체력이 소진되어 피로에 물든 시기로 규정한다. 그러니까 오후의 상태에 머무는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 “허공에로 눈을 돌리고 아름다운 황혼이나 찬란한 별들의 잔치”라는 형이상학적인 탐구에 매달려 허무한 시를 쓴다는 것이다. 이에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바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인간 세계의 현실을 똑바로 보는 생동감 넘치는 시의 구현이다. 이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의 활력이 그대로 보존된 작품을 가리킨다. 이처럼 김기림은 시의 과학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인간성 소거와 등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의 시각에서 시의 과학화는 시를 둘러싼 미신을 제거하고 합리성을 지향하는 과정이지, 시에서 인간이라는 주체를 없애버리는 극단적 결정이 아니었다. 김기림은 또 다른 비유를 제안한다. “고전주의에 의하여 대표되는 지성을 시의 골격이라고 하면 육체로서 대표되는 ‘휴머니즘’은 근육이요 혈액일 것이다. 완전한 시란 결국은 골격과 근육과 혈액이 한 개의 전체에 의하여 통일된 건강한 체격을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7)
지성과 휴머니즘을 결합한 시가 김기림이 소망하는 시적 이상이라는 점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골격‧근육‧혈액 같은 몸에 관한 비유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오전의 시론」과 동일한 시기 발표한 시론에는 아예 “현대시의 육체”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제는 “감상과 명랑성에 대하여”이다. 이 글에서 김기림은 감상을 배격하고 애매함을 비판하면서 명랑성을 드높인다. 그는 있지도 않은 의미를 있는 것처럼 장식하는 데에서 애매함이 발생하고, 과하게 슬픔을 표출하는 것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꾸미지 않고, 느낌을 과장하지 않는 솔직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유쾌하고 활발한 시적 결과로 이어진다. “그(명랑한 시—인용자)의 표정은 활동 속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는 표정이다. 오늘 밤 속에서 내일 아침을 빚어내는 사람의 얼굴이다. 결국 완전한 정신은 완전한 육체에 깃들어서 비로소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진리다. 여기에 건강하고 명징한 명랑성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그러한 세기말적인 아무것도 그것은 거절할 것이다.”8)
비슷한 시기, 흡사한 논리가 담겼다는 면에서 「오전의 시론」과 「현대시의 육체」는 사실상 연결된 입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침을 맞으려 하는 자는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 같은 감상과 애매함의 포즈와는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는 관점의 근저에는 “시인의 꾸준한 지적 활동”이 자리한다. 김기림은 이렇게 덧붙인다. “통제되고 계획된 질서 이외에 마저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으면 그 부분이 애매성을 가져온다. 또한 시를 감정에게 맡겨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감정은 늘 혼돈하려고 하고 비만하려고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 감정의 비만이 다시 말하면 감상이다. 시를 이러한 비대증에서 건져 내서 그것에게 스파르타인과 같은 건강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이 오늘의 시인의 임무다.”9) 주지주의 다이어트를 통해 기존 시의 지방을 제거하여 “스파르타인과 같은 건강한 육체”로 현대시를 거듭나게 한다는 김기림의 주장은, 매일 아침 덴마크 보건 체조를 빼먹지 않으면서 챙긴 그의 건강성과 명랑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김기림 자신이 「오전의 시론」에서 그와 같이 서술하였다. 시에는 시인 생활의 그림자가 어떤 형태로든 깃든다고. 더불어 본인의 체험에 비추어 시인과 비평가가 삶과 작품을 대하는 차이를 짚어 냈다. “시인의 편에서는 그의 시를 될 수 있는 대로 개성 생활에서 절단시켜서 독립한 객체를 만들려고 한다. 완성되어 한 번 그의 손을 떠난 한 편의 시는 그와는 아무 관련 없이 그것 자체의 독창성에 의하여 호흡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비평가의 편에서 본다면 어떠한 시도 그 작자의 정신, 더 적확하게 말하면 생리의 일부분으로서 비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시는 시인 생활의 표착물이거나 결실이다. 그러니까 비평가는 어떤 시든지 그 시와 작자의 인간관계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서는 그 시 속에 담긴 인간적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10) 이 구절에 근거하면 김기림은 비평가 포지션에서 시를 창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론부터가 “시인 생활의 표착물”이자 그 “결실”로서 탄생하였고, 그 시론에 뿌리를 두고 『기상도』가 집필되었다.
3. 태풍이 지나가고 나타나는 태양의 후예
『기상도』는 총 7편의 시—「세계의 아침」‧「시민 행렬」‧「태풍의 기침 시간」‧「자취」‧「병든 풍경」‧「올빼미의 주문」‧「쇠바퀴의 노래」로 이루어진 장시이다. 국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날씨 변화가 아닌 세계 전체에 드리운 태풍을 조명한다는 점이 이색적인 작품이다. 김기림은 태풍이 오기 이전의 상황과 태풍 발생 및 진행 경과,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의 광경을 제시하면서 당대의 국제적 문명 기상도를 형상화하였다. 이 시는 생경한 외래어의 남용과 파편화된 이미지의 나열 등이 한계로 꼽힌 바 있지만, 열렬한 모더니즘 지지자로서 역사의식과 결합한 그의 언어적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는 평도 받았다. 이때 태풍은 근대에 내재한 폭력성의 발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폐허가 된 도시의 재건과 일상의 회복을 희망하며 종결되기에 주목을 요한다. 「올빼미의 주문」까지는 김기림이 적대시한 세기말적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의 분위기가 아른대지만, 마지막 시 「쇠바퀴의 노래」에서는 김기림이 역설한 “건강하고 명징한 명랑성”으로 반전한다. 시 일부를 아래에 옮긴다.
태풍이 짓밟고 간 깨어진 ‘메트로폴리스’에
어린 태양이 병아리처럼
홰를 치며 일어날 게다.
하룻밤 그 꿈을 건너다니던
수없는 놀람과 소름을 떨어 버리고
이슬에 젖은 날개를 하늘로 펼 게다.
탄탄한 대로가 희망처럼
저 먼 지평선에 뻗치면
우리도 사륜마차에 내일을 싣고
유량한 말발굽 소리를 울리면서
처음 맞는 새 길을 떠나갈 게다.
(……)
예지의 날개를 등에 붙인 나의 날음은
태양처럼 우주를 덮을 게다.
아름다운 행동에서 빛처럼 스스로
피어나는 법칙에 인도되어
나의 날음은 즐거운 궤도 위에
끝없이 달리는 쇠바퀴일 게다. 11)
굳이 공들여 분석하지 않더라도 이 시는 “오늘 밤 속에서 내일 아침을 빚어내는 사람의 얼굴”이 전면화된다. 아직 오지 않았으나 와야 할 당위로서 “어린 태양”이 부상하고, 이와 결부하여 ‘나’도 “처음 맞는 새 길을 떠나”, 지혜롭고 밝은 마음을 더하여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 한다. 그러는 한에서 “어린 태양”은 곧 ‘나’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의 날음은 / 태양처럼 우주를 덮을 게다.”라는 시구가 이를 방증하고, “즐거운 궤도 위에 / 끝없이 달리는 쇠바퀴”의 유비도 해의 둥근 이미지와 겹친다. 소제목 「쇠바퀴의 노래」는 실상 ‘태양의 노래’인 셈이다. 이와 같은 기조는 두 번째 시집 『태양의 풍속』에 고스란히 계승된다. 서문부터 그러하다. “그 비만하고 노둔한 오후의 예의 대신에 놀라운 오전의 생리에 대하여 경탄한 일은 없느냐? 그 건장한 아침의 체격을 부러워해본 일은 없느냐? (……) 그러면 너는 나와 함께 어족과 같이 신선하고 깃발과 같이 활발하고 표범과 같이 대담하고 바다와 같이 명랑하고 선인장과 같이 건강한 태양의 풍속을 배우자.”12)
시가 시인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김기림 본인의 지론에 따르면, 본문에서 언급한 「오전의 시론」·「현대시의 육체」·『기상도』·『태양의 풍속』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그의 건강성과 명랑성이 빛나던 시절의 반영이다. 그는 근면한 기자·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았고, 무엇보다 견실한 시론 정립과 그 증명으로서 시 창작에 몰입한 문인이었다. 한편으로 이제 나는 김기림하면 덴마크 보건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기 관리에 힘쓰는 청년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화를 내지 않는 너그러운 성품의 원천은 그러한 루틴에 의해 충전된 에너지 덕분이리라. 그리고 그는 이것을 필요한 상대에게 적절하게 전했다. 이를테면 동경에서 ‘날개’가 부러진 이상과 다시 만났을 때처럼.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싶어 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페이디아스(Pheidias)의 제우스 신상 같구려’ 하고 웃었더니 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13)
- 1) 이상, 「김유정」, 『청색지』, 1939.5, 89쪽. 이하 본문의 모든 텍스트 인용은 현대어에 맞게 표기와 어법을 일부 수정하였다.
- 2) 김기림, 「고(故) 이상의 추억」, 『조광』 제3권 6호, 1937.6, 312~313쪽.
- 3) 이상, 「편지」, 『이상 전집 4: 수필』(권영민 엮음), 태학사, 2013, 167쪽.
- 4) 김기림, 「고(故) 이상의 추억」, 위의 책, 313쪽.
- 5) 위의 책, 314쪽.
- 6) , 「오전의 시론—제일편 기초론 (4)」, 조선일보, 1935.4.24.
- 7) , 「오전의 시론—제일편 기초론 (6)」, 조선일보, 1935.4.26.
- 8) , 「현대시의 육체—감상과 명랑성에 대하여」, 『시원』 제2호, 1935.4 ; , 「감상에의 반역」, 『시론』, 백양당, 1947, 157쪽.
- 9) 위의 책, 157~158쪽.
- 10) , 「오전의 시론—기초편 속론 (5)」, 조선일보, 1935.6.7.
- 11) , 「쇠바퀴의 노래」 부분, 『기상도』, 창문사, 1936, 24~26쪽.
- 12) , 「어떤 친한 ‘시의 벗’에게」 부분, 『태양의 풍속』, 학예사, 1939, 4쪽.
- 13) 김기림,「고(故) 이상의 추억」, 위의 책,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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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20년대의 가장 자주적인 평론집 내 박사논문의 주제는 1970년대 민족문학이다. 내가 논문 주제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군부독재 시절 민족문학은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때는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지식인들이 민족문학에 관심을 보이고 문학인들 자신도 진보적 사회운동에 앞장서던 시절이었다. 만약 앞의 두 문장이 옳다면 민족문학에 대한 복기는 문학사 서술에 기여할 뿐 아니라 문학과 사회운동의 관계에 대한 예비적 검토로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생각한 연구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1970년대 민족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문이라든가 평론은 그럭저럭 나왔지만, 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곱씹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1980년대~1990년대 문학에 관한 연구는 계속 갱신되는 반면, 1970년대 민족문학에 관한 논의는 정체됐다는 느낌도 든다. 예컨대 황석영의 「객지」의 미학이나 지향점에 대한 단독 논문은 지금까지도 전무하다. 어쨌든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가 사산된 현재의 학계와 문단은 보고 있자면, ‘민족문학’이 1970~80년대 무렵 인기를 끌다가 종결된 ‘구호’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민족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은 문학의 사회적 응전력이 약해졌다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에도 줄곧 문학은 사회문제에 개입해왔다. 다만 사회의 진보를 염원하는 작가와 독자들도 민족문학에 무관심하다. 따라서 ‘민족문학’은 한국의 진보적 문학운동을 통칭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문학관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지만 민족문학 운동을 주도했던 이론가로 손꼽혔던 백낙청, 최원식, 염무웅은 여전히 꽤 많은 글을 쓰고 있다. 민족문학 담론이 사산된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들의 글은 낯선 느낌을 자아내는데, 그래서 되려 ‘참신’하게 읽히는 구석도 있다. 염무웅 평론가의 이번 평론집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도 그렇다. 이 책은 여러모로 최근 문학장의 경향을 벗어나 있다. 지난 10년 동안 문단에서 문학과 현실을 연결하는 담론으로 가장 원용된 것은 페미니즘일 것인데, 이번 염무웅의 책에 「고은 문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가 수록됐다는 사실은 이 책이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음을 얼마간 방증한다. 물론 이 글은 고은 시인의 논쟁적 사항에 대한 평가나 변호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염무웅 평론가는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문학인을 다뤄낸 것에 불과하리라. 「시인 김지하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와 남긴 유산」 또한 유사하게 볼 수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김지하는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고, 그 이후에도 줄곧 출중한 작품을 쓴 것으로 인정받는다. 허나 그의 말년 행적은 뭇사람들의 질타를 받았고, 특히 김지하는 『창작과 비평』(를 대표하는 평론가로서의 백낙청)을 자극적인 언어로 비판했던 적이 있다. 염무웅의 입장에서는 서운함과 씁쓸함을 느꼈을 법도 한데, 이번 평론집에 수록된 글 「시인 김지하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와 남긴 유산」은 그런 부분에 대한 비판 없이(그리고 1980년대 이후 김지하의 글에서 종종 보이는 ‘신비주의적’인 측면을 크게 비판하지도 않는 논조로) 김지하의 문학사적 성취를 찬찬히 되짚을 뿐이다. 이런 글들까지 포함하여 보건대 염무웅의 이번 평론집은 저자의 관점을 기반으로 삼아 문학의 역사성을 조망하는 일에 집중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염무웅 평론가의 관점은 무엇이며 이번 책에서 그 관점은 어떻게 발현됐는가. 2개의 질문에 차례로 답해보자. * 염무웅이 1979년에 출간한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창비)은 유신독재 시기 민족문학론의 결산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염무웅의 첫 번째 평론집은 그로부터 3년 전에 출간된 『한국문학의 반성』(민음사)이다. 『한국문학의 반성』은 저자 자신도 마냥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그래서인지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의 저자 소개란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허나 이 책은 사회의식을 기준으로 삼아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정도까지의 내성적 문학을 개괄한 구체적 비평들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반면 『민중시대의 문학』은 동세대의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 평가보다는, 한국문학사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개론적 성격의 글들이 돋보인다. 지금의 시점으로 보자면 『민중시대의 문학』은 동세대 작품을 대상으로 삼은 ‘현장비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염무웅의 책이 가진 유별난 특징이 아니다. 민족문학운동의 태동기에 나온 평론집으로 손꼽을 수 있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백낙청, 1977)이라든가 『민족문학의 논리』(최원식, 1982) 같은 책을 봐도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설과 평가보다는 한국문학(과 ‘민족문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거시적 논의가 주를 이룬다. 이 사실은 민족문학에 대한 뭇사람들의 선입견을 반박하기 위한 논거로 유용하다. 1970년대부터 민족문학 운동의 비판자들이 주로 제기한 논점은, ‘민족문학론’이 동세대의 작가들에게 특정한 스타일의 작품을 쓰게끔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때의 민족문학 진영으로 분류된 평론가들은 어떤 작품을 쓰라고 요청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주로 탐구한 문제는 한국에서 문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1970년대까지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더욱이 이 나라의 대통령은 쿠테타로 집권한 군인 출신으로 무려 20년 동안 장기통치를 했다. 한국의 시급한 과제는 ‘근대화’로 요약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많은 경우 ‘근대화’란 단어는 서구의 ‘선진국’을 본받자는 사대주의적인 주장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들 또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갖고 있다. 또한 그 나라들의 번영이 약소국을 착취한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는 힘들다. 민족문학론자들은 이런 사항들을 지적하고, 마냥 외국의 문학이론을 참조하는 대신, 한국문학의 전통에 주목하자고 했다. 요컨대 민족문학론은 ① 해외의 부르주아적인 문학론은 한계가 있으니 ② 따라서 한국의 전통을 자각하며 문학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①에 대해서는 동세대의 뛰어난 평론가들 또한 동의했을 것이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②였다. 가령 김현과 김우창은, 민족문학론이 국수주의적인 아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또한 그것이 서양의 리얼리즘론(반공이 국시였던 시대였음에도 김현은 ‘리얼리즘’을 자주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동일시했다.)에 대한 추종으로 귀결되리라 지적했다. 또한 민족 문학론이 국수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 또한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1970년대 이후 학계와 문단에서는 줄곧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 중(혹은 번역서를 부지런히 읽는 사람들 중) 누가 외국의 담론을 누가 먼저 참조하고 소개하는지를 경쟁해 왔다. 이제 한국도 어떤 면에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전통’을 복기하고 이론화하려는 사람들은 희소하고, 외국의 이론을 한국문학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외국 이론에 대한 경도는 과거보다 오늘날 훨씬 심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어쩌면 민족문학론이 오늘날의 문단과 학계에서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채 외면당하는 까닭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주창자들이 말한 한국문학의 ‘전통’이란, 복고적으로 내려져오는 제반 문화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식민지 시기의 작가 한용운에게 주목했다. 주지하듯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부재하는 ‘님’에 대한 마음을 간절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때의 ‘님’은 연정의 대상일 수도 있겠지만 화자가 간절히 바랐던 모든 것들을 지칭한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본다면(그리고 한용운 본인이 독립운동가에 고승이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님의 침묵』은 부정적인 현실을 직시하려는 의지를 내세운 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염무웅을 비롯한 민족문학론자들이 그때부터 한용운을 민족문학의 전거로 삼았던 것은, 독립한(그리고 분단된) 대한민국에서도 줄곧 현실의 불편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인지,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에 수록된 글 「민족문학의 시대는 갔는가」에서도 한용운 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1970년대의 민족문학운동이 동세대의 문학에 맞선 저항이었다고 한다면, 21세기의 민족문학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할까? 염무웅은 혈통주의적 민족 개념이 와해되는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민족분단의 현실이 엄존하고, 문학은 이 현실에 기여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그리고 박복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끌어안은 작가들에게 헌사를 바치고 있다.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의 1부와 2부는 대부분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에 할애되어 있고, 특히 2부에서 (하나의 인터뷰를 제외한) 비평문들은 전부 고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단순히 염무웅 평론가가 자신에게 익숙한 연배의 작가들만 다뤄서 그러진 않을 것이다. 이번 책의 서문과 인터뷰 등등에서 알 수 있듯, 그는 한국의 현대사를 의식하면서 문학을 해온 작가들에 주목했고, 그러다 보니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한 문학인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염무웅의 비평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한국의 전체적인 사회상황을 조망하면서 문학인의 삶이 역사와 포개지는 지점을 찬찬히 짚어낸다는 것인데, 이번 책에 수록된 작가론과 작품론들에서도 그런 특징은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염무웅은 김지하, 신경림, 김수영, 김남주, 송기숙 등등을 이전의 책에서 다뤘던 적이 있는데, 이번 평론집에서 재평가하는 글을 새로 수록했다. 그 글들은 작가의 오랜 관심과 애정이 묻어나거니와, 작가들과의 경험에 대한 저자의 증언까지 함께 포함하고 있으니, 후대 연구자들이 참조해야 할 주요한 텍스트가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의 3부는 한국문학 자체에 대한 개괄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의 문제를 메타적으로 다룬 글들로 채워져 있다. 아무래도 저자가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담아내고 발표한 평문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이 또한 한국의 고유한 현실과 역사적 관점으로 ‘민족문학’을 조망하겠다는 문제의식을 응축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상의 사항을 거꾸로 말하면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은 2010년대 이후 급변하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상황에 대해서는 사려 깊게 다룬다고 보기 힘들다. 어쩌면 그것 또한 ‘자주적’인 시각만으로는 독해하기 어려워진 21세기의 문단 상황을 방증하는 예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저자)는 민족과 민족문학에서 배타주의의 독선을 걷어내면 쓸만한 요소가 아직 적잖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7쪽)라고 했고, 이번 평론집은 그런 문제의식을 오롯이 구현해낸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만약 민족문학론이 동세대의 젊은 작가가 쓴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고 제시해야 한다면, 그 작업은 후대의 평론가들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염무웅의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은 한국의 현실에 밀착해서 살아온 작가들의 삶을 웅숭깊게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전통’을 복원(혹은 창조)해낸 ‘자주적’인 비평집으로 독자성을 인정받을 만하다.
끈의 감각, 금의 시선 ―오은경, 『둘이 거리로 나와』 한 권의 시집을 열어 하나의 세계로 진입한다. 시인이 세심하게 배열해 놓은 시의 지도를 따라 걷다 보면, 세계와 교호하는 내면 풍경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오은경의 세 번째 시집 『둘이 거리로 나와』는 어떨까. 그 길의 초입에 그녀는 끈을 손에 쥐여 준다. 오은경은 첫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에서 타자―외부와의 접점에서 개인이 느끼는 모호한 윤곽을 가늠해 왔고, 두 번째 시집 『산책 소설』에서는 산책자의 시선으로 다층적인 삶의 이야기를 포착하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시집에서는 끈으로 상징되는 관계의 시작과 변용, 그 이후의 상태를 망원경과 현미경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처럼 조망하고 밀착하여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나와 너 혹은 나와 나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과 거리, 변해버린 감정의 결이 포착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서시 「공중제비」와 바로 그 뒤를 잇는 「끈」, 시집의 마지막에 위치한 「두 눈으로」를 경유하여 살펴보려 한다. 이건 미래이고, 손에 잡힌 건 정체불명의 노끈이다. 미래가 노끈의 형태라면 미래란 얼마나 작고 가벼운가? 아니, 미래란 왜 이렇게 헐거워져버렸을까? 작은…… 미래, 꿈꾸던 내 모습이 아니었어. 나는 나를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미래에는 당연히 나를 만나게 되리라고 예상했는데, 어디에도 나는 없었네. 그렇다면 지금이 미래가 아니라는 소린가? 잠깐 의심했지만, 노끈이 되어버린 미래는 여전히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노끈을 사용한 적 없었고 무언가를 묶거나 무언가에 묶인 적 없었다. 노끈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노끈은 바람에 흔들렸지만, 떠내려가지 않았다. 땅에 단단히 박힌 상태였다. * 아무도 끈을 사용하지 않았다 ― 「공중제비」 전문 「공중제비」의 미래는 시간의 저편에 아득하게 존재하는 가능성의 영토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고 없이 도착한 현실이자, 감각할 수 있는 사물로 손안에 놓여 있다. 이 시의 미래가 당혹스러운 이유는 이것이 “정체불명의 노끈”이기 때문이다. 원대한 포부나 반짝이는 약속 같은 기대를 배반한 미래는 값싸고 흔한, 아무렇게나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질감을 가질 따름이다. 미래를 손에 쥐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정녕 그것이 미래가 맞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낯섦과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나 독자에게나 기이한 경험을 선사한다. 마치 갑자기 공중제비를 넘는 것처럼. 공중제비는 화려한 도약이자 제자리를 맴도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순간적으로 세계를 거꾸로 볼 수 있지만, 이내 이전과 똑같은 지점으로 돌아와 착지하는 운동. 괄호 안에 담긴 ‘나’의 독백은 어지러운 회전을 중계한다. 과거의 예상(“나를 만나게 되리라고 예상했는데”)과 현재의 발견(“어디에도 나는 없었네”) 사이에서 “그렇다면 지금이 미래가 아니라는 소린가?”라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짧은 의심을 품는 일. 이는 공중제비의 정점―세계가 거꾸로 휙 지나쳐 보이는 면면과 유사하다. 그러나 역전은 길지 않다. 손으로 만져지는 노끈을 체감하면서 이내 현실로 착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각이 뒤흔들린 ‘나’는 도무지 노끈으로 구현된 눈앞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노끈은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릴 만큼 가볍지만 질기게 현존한다. “땅에 단단히 박힌 상태”라는 시구를 보라. 동시에 “아무도 노끈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를 겸하여, 노끈의 정체는 수수께끼로 남겨진다. 그렇게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노)끈은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끈을 잡아당겼다. 흙먼지가 일었다. 황사였다. 풀 몇 포기 마른땅에 나 있었다. 풀이 아니라 허물 같았다. 동물 사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냄새도 없었고 날개 달린 것들, 파리나 독수리, 참새 떼도 나타나지 않았다. 예견된 일이었거나 전에 한 번은 겪어본 일 같았다. 지금, 내 손은 핏기 없이 창백한데 이렇게까지 당길 이유가 없었다.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여기가 아닌지도 몰랐다.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통행금지 구역에 내가 와 있으며…… 하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다. 수풀 우거진 배경은 기억에 없었다. 여름, 풀독이 오를까 봐 걱정되었는데 백구들이 논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수지가 먼저 강아지들 쪽으로 향했다. 철책도 없는 논밭, 지난 계절의 벼와 새 떼, 메추리를 날려 보낸 다음 다시 볼 수 없었다. 나는 백구와 토끼를 구분하지 못했다. 수풀 사이사이 토끼가 숨어 있다는 것도. 전부 수지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 있었다. 내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바깥은 위험하며 나를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고 했다. 기다리라고 말했던가? 하지만 시간을 일러주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는지, 아니면 내가 찾으러 가면 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수지는 어디를 간다고 했지? 어디에 있지? 내게 장소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 손바닥에는 실금 같은 주름이 얽혀 있었다. 손은 소금빵 같았다. 먼지와 피가 달라붙어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끈을 당겨야 했다. 끈을 당길 나머지 손이 필요했다. 팔은 바게트 같았다. 끈을 힘주어 당길 필요는 없었다. 잡고 있기만 하면, 놓지 않기만 하면 되었다. 나 스스로 만든 규칙이었다. 끈은 새끼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 ― 「끈」 전문 이 시의 끈은 ‘수지’와 연결된 기억의 매개체다. 「공중제비」에서의 시제가 사적 서사로 전환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헐거웠던 노끈은 더 질긴 “새끼줄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러한 끈을 잡아당겨 마주하는 것은 숨 막히는 “흙먼지”와 “황사”뿐이다. “허물” 같은 풀이 돋아난 건조한 땅. 사체를 처리할 “파리나 독수리, 참새 떼도” 보이지 않는 황량함은 시간이 멎은 듯한 정적을 암시한다. 생명의 역동성뿐만 아니라 죽음의 자연스러운 과정마저 정지된 상태는 한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기억의 복잡한 층위를 드러낸다. 그 중심에 수지가 있다. 수지는 “내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은 통제라기보다 불안에서 비롯된 과잉보호에 가깝다. “바깥은 위험하며 나를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던 수지는 위험이 제거된 안전한 장소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제 수지는 찾을 수 없다. 이 시의 후반부는 세계에 내던져진 ‘나’의 신체가 어떻게 감각되는지 기록한다. “먼지와 피가 달라붙어 있었”던 손과 팔은 “소금빵”과 “바게트”로 비유된다. 무력함 속에서 ‘나’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나 스스로 만든 규칙이었다.”라는 고백에 있다. 이전까지 ‘나’는 수지가 만든 규칙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었으나, 규칙의 제정자가 수지에서 ‘나’로 바뀐 까닭이다. “잡고 있기만 하면, 놓지 않기만 하면 되었다.”라는 최소한의 머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이 미래를 방기하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라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 손으로는 미래를 단단히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과거와 이어진 현재를 어루만지면서 ‘나’의 시선은 천천히 바깥을 향한다. 무엇을 “두 눈으로” 응시하는 것일까. 유리의 조각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이는 것은 빛이 전부였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느라 세상을 분간할 수 없었어. 세상에는 너도 있다, 통유리로 된 복도 바깥에 네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너를 발견한다고 해도 만날 수 없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바로 이곳이 처음이기 때문 아닐까? 다른 말로는 길 잃음. 헤맴, 너와 손잡고 거리를 거닐었을 때 진짜 즐거웠는데. 안심되었으니까. 그때는 세상이 미로 같았고, 너와 나는 퍼즐 조각 같았지. 한 번도 바깥에 나가본 적 없는 것처럼. 자꾸만 날씨를 상상하고 싶어져. 그리고 깨닫고 만다. 떠난 것은 네 쪽이라는 것을. 적어도, 너와 둘일 때는 멈춰 있었던 적이 없고 내가 복도에 누워 잠들었던 적도 없지. 빛이 이렇게나 밝고 아름다운데 굴절되는 만큼 유리에 금이 가 있었다. ― 「두 눈으로」 전문 ‘나’는 “통유리로 된 복도” 안에 있고, 그 너머에 “너”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내가 나갈 수 없”기에 “너를 발견한다고 해도 만날 수 없”다. 볼 수는 있으나 가닿을 수 없는 유리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이 시는 ‘나’와 “너”를 포함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양자의 변모 양상을 되짚는다. 세상이 방향을 알 수 없는 “미로 같았”을 때, 둘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퍼즐 조각 같았”기에 길을 잃지 않았다. 길을 잃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헤맴, 너와 손잡고 거리를 거닐었을 때 진짜 즐거웠는데. 안심되었으니까.” 그런데 “너”를 떠나보낸 뒤 ‘나’는 진짜로 길을 잃는다. 미로를 즐겁게 탐험하던 동반자가 사라졌으니, 세상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혼돈으로 뒤바뀐다. 이에 ‘나’는 “굴절되는 만큼 유리에 금이 가 있었다.”라고 서술한다. “금”은 “너”와의 지난날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영원한 필터가 되었다. 필터는 이미지를 왜곡한다. 아름다운 “빛”도 그러한 균열을 통과하면서 휘어서 꺾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금”은 선명히 드러난다. 추억을 떠올리는 행위가 행복이 깨진 현재의 상처를 아프게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두 눈으로」가 응시하는 삶의 이면이다.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은 한쪽 눈으로는 환했던 기억(“빛”)을 보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금”)을 같이 바라보는 일이다. 두 개의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사건은 관계의 실패에 대한 뼈아픈 기록만은 아니다. 한 관계가 남긴 흔적을 자기 일부로 수용하고 이후의 나날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태도다. 외면하지 않기는 스스로에게 부과했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규범과 통한다.
광장의 흔적, 흔적의 광장 『유리 광장에서』(빠마, 2024) 하혁진 문학평론가 광장은 경합의 장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첫째, 서로 다른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갈등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 같은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불화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때 후자의 불화는 전자의 갈등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멀리서 보면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가까이서 보면 크고 작은 균열과 차이를 품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샹탈 무페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올바르게 사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부정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근본적 부정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민이 다양하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인민이 분할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인식한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말하며, "이런 분할은 극복될 수 없다"1)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공동체란 '동일성'을 기반으로 구성되지만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이질성'과 '타자성'을 인정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광장의 목소리는, 설령 그것이 하나의 광장이라 하더라도, '구호'라는 '몫'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다. 광장은 언제나 저마다의 '기도'라는 '나머지'를 남긴다. '우리'는 각자의 기도를 조금씩 양보하는 한에서만 우리이며, '너'와 '나'는 서로의 '날씨'를 조금씩 양해하는 한에서만 우리라는 '기후' 속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양보와 양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아서, 광장은 영원할 수 없다. 광장은 필연적으로 이별이 예정된 장소다.2) "나의 국경 안이 당신이 국경 밖"(「영원과 하루」)이라는 깨달음, 그 당연한 깨달음이 영원과 하루 사이에 만들어졌던 광장을 야속하게 흩어버린다. 그래서일까. 윤은성의 '유리 광장'은 고요하다. 시합이 끝난 경기장처럼, 관객이 떠난 공연장처럼, 찬란한 빛과 흥겨운 노래가 모두 꺼진 놀이공원처럼 깊은 침묵 속에 있다. 논쟁도 농담도 노래도 사라진 자리에 시적 주체만이 "웅성거림으로 가득찬 손이 되"(「시인의 말」)어 우두커니 남아 있을 뿐이다. "목이 잠긴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부르지 못했어요"라는 고백을 통해 드러나듯이, 광장이 남긴 웅성거림은 좀처럼 시가 되지 못한다. 너무 많이, 너무 크게 외친 탓일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올까.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어지는 다음 구절, "이전의 내 노래들은 / 부를수록 마음속 미움이 살아나서 / 누구에게도 선물을 할 수가 없었고요"(「화답」)라는 고백 때문이다. 이 느닷없는 미움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무래도 두 번째 시집 역시 첫 번째 시집의 질문을, "우리는 어째서 서로와 더불어 희귀해지지 못했는가"3)라는 질문을 꼭 쥐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채 / 혼자 되돌아"(「같은 시」)와야 했을까. 많은 것을 함께 했던 '우리'는 왜 변변찮은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급히 이별할 수밖에 없었을까.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라진 광장부터 복원해야 한다. "깨진 조개껍데기, 병뚜껑, 진흙에 박힌 깃털"처럼 사소한 파편들을, 그 모든 '나머지'를 전부 그러모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사라진 광장을 똑같은 형태로 재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윤은성의 시는 한때 '나'의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나'의 곁에 없는 존재들, 결코 잊은 적이 없음에도 잃어버린 존재들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주체는 기울어진 시소에 앉은 것처럼, 기억의 조각을 맞춰볼 대상도 없이, 홀로 "측량할" 수 없는 "거리"를 재어보고 "떠올릴 수 없는" "날씨"(「우재」)를 헤아릴 뿐이다. 막막한 상실의 크기는 뜨거웠던 광장의 온도에 비례한다. 더욱 곤란한 것은 이토록 쓸쓸한 '기억하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이유는 사적이다. 기억마저 포기하면 혹시라도 "네가 스쳐지나갈 때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너'를 잃었지만 기억마저 포기하면 잃은 너를 영영 잃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공적이다. "기록되지 않거나 / 유실에 처한 기억들" 때문에 "화형의 장면과 별을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진실을 목격한 이들이 포기한 기억만큼 광장은 오염될 것이고, 기회를 기다린 "야비한 표정이 거리에 반복"(「같은 시」)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 없는 광장을 복원하기 위한 윤은성의 '기억하기'는 불가능한 만큼이나 불가피하다. 주체는 불완전한 기억에 기대어 '너' 없는 기록을 써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 간절한 기억과 기록은 차라리 기도에 가까운데, 시인은 시와 기도 사이의 낙차만큼 괴롭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거기서 나의 할머니를 봤어. 미싱을 돌리고 계시더라. 손녀의 원피스를 고치고 계시더라. 내가 잃은 게 젊음이나 사랑, 우정 같은 거였나? 이끼와 고양이, 큰 개, 아껴둔 옷, 편지들. 다시 돌아간다면 얼굴을 그저 만지려나. 나는 살아 있고 모르는 게 많은데. 서늘한 바람이 불고 나는 길에 그냥 앉아봐. 나는 고향에서 살지 않고 그건 나와 할머니의 비슷한 점이지만 같다고 할 수 없지. 같다고 할 수 없네. 망설이며 말을 고르고 옷을 입는 게 무엇 때문일까. 너무 멀었냐고 얼마나 어둡냐고 묻지 못하고 말았네. 자두나무 환하고 푸릇하고 누구도 깨우지 못하는 깊고 밝은 잠에서 할머니, 나의 옷을 걷는 일은 잊어도 이제 괜찮은데 바늘귀 안을 들여다볼 때는 크고 무서운 마음이 잠깐씩 깊어진다. 너무 길거나 짧아서 외롭지 않았어? 할머니도 나를 봤어? 할머니는 많은 빛 속에서 길을 착각하지 않고 있어? 다니러 가보지 못했던 땅에서는 새로운 강아지와 언니들을 모두 다 알아봤어? 언덕 위에서 총성 없이 쉬고 있어? - 「남안」 전문 인용한 시에서 '할머니'는 '나'의 원피스를 깁고 있는데, 옷에 난 구멍을 메우는 할머니의 바느질은 '나'가 기억을 더듬는 행위와 겹쳐진다. 후회 섞인 어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나' 또한 시간의 틈새로 사라진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 반복되는 "같다고 할 수 없"다는 고백은 '할머니'와 '나'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때 '나'의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나'의 곁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화자는 텅 빈 거리에 홀로 앉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존재들을 떠올리며, 그때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되새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질문들이 즉각적인 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기도와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나'가 할머니에게 건네는 말들의 유일한 청자는 바로 '나'다. "너무 길거나 / 짧아서 외롭지 않았어?"라는 물음도, "많은 빛 속에서 길을 착각하지 않고 있어?"라는 물음도, "새로운 강아지와 언니들을 모두 알아봤어?"라는 물음도, 전부 '나'가 말하고 '나'가 듣는 독백이다. 따라서 응답의 주체 역시 '나'가 되어야 한다. "망설이며 말을 고르고 옷을 입는 게 무엇 때문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화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 대답이 될 수 있는 시들 중 한 편이 「물 긷는 아이들이 지나가」이다. "선언문 초고를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저녁이 왔어"라고 말하는 화자는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화자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불면의 원인을 다만 추측해 볼 수는 있는데, 아마도 그건 "다시 방문할 수 없는 여행지"를 향한 그리움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공간, 관계를 누적하다 끝나는 것이 삶이라면 선언문과 시가 다 무슨 소용일까. 주어진 상실에 비하면 이 노동은 지나치게 무용하다. 그러나 시인의 노동만 특별할 이유는 없다. 세상에는 "먹게 될 사람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곡식을 수확"하는, "슬픔에 빠진 적 있는 아가씨"가 있다. 또한 "절반을 흘릴 걸 알면서도" "물을 걷기 위해 먼 길을 다녀오"는, "상심을 아낀 채로 / 남은 가족에게" 돌아가는 "어린 소녀와 소년들"도 있다. 그들의 노동은 버려짐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목수"가 "작고 안전한 가구"를 만들듯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 사소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상실보다 "한 박자 빠르거나 늦게 오는" 우산을 쓰고 묻는다. 그것들은 '아주 작은 사랑'을 발견할 만큼은 유용하다. 아주 복잡하진 않을 거야. 어쩌면 그리 많은 힘이 필요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고, 내 사랑은 아주 작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를 잘 지키려고 해. 딱 그만큼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고 내가 쬐는 햇볕은 그 자리 그대로 남겨두고 떠날 수도 있어. 나는 쉴 수 있고, 또 나는 움직여.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내내 찾지 못했어. 내가 앓는 마음이 PTSD인지 pre-PTSD인지 나는 진단하지도 못하겠어. 들려오는 말이 없을 땐 그냥 귀를 열어놓은 채 잠에 빠져. 매일 그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가 열린 채 깨어나지. 매일 밤 나도 모르는 내가 창밖을 바라봐. 멀리 다녀오기도 해. 그럼 또 기다리는 거지. 소식이 계속 있어. 그게 올리브 잎 같은 건 아냐. 내가 듣고 싶은 말도 아냐. 어쩌면 더 두려운 것. 어쩌면 뜻밖에 안전한 것. 어쩌면 지키지 못했던 너무 큰 사랑 같은 것. - 「몬순」 전문 불가능하고 불가피했던 '기억하기'는 인용한 시에서 "아주 복잡하진 않을" 일로 그려진다. '나'의 목표가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작은 사랑'을 발견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자신이 "앓는 마음"이 이미 지나간 상실(과거 = PTSD) 때문인지 혹은 아직 오지 않은 상실(미래 = pre-PTSD) 때문인지조차 진단하지 못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인다. 흥미로운 것은 주체 역시 이러한 행위의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귀를 열어놓은 채 잠에 빠지"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가 열린 채 잠에서 깨"기도 하는데, 그 결과 주체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 예컨대 "더 두려운 것", "뜻밖에 안전한 것", 나아가 실제로는 "지키지 못했던 너무 큰 사랑 같은 것"과 마주하게 된다. 귀를 열어둔다는 것만으로도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우연성'은 시의 제목인 '몬순monsoon', 즉 계절풍처럼 '너'와 '나'의 경계, '안'과 '밖'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불어온다. 매일 아침 쌓이는 새로운 소식들은 그러한 교통의 증거다. 장-뤽 낭시는 "'무위'에 분명 '비-행동'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지만 그 고유의 주체를 변형시키는 어떤 행동"4)이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윤은성의 시에 나타나는 '열어두기'는 불가해한 마음들이 도래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행위라는 점에서 낭시가 말한 '비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불가능한 기억과 불가피한 재현이라는 막막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내렸던 결정이, 오히려 주체를 "그 도래와 그 근원과 그 사건의 무한한 차원으로 열리게 하는" 것이다.5) 체념의 순간 찾아오는 역설적인 구원, 주체는 다시 한번 '너'를 향해 마음을 연다. 예컨대 「봄 방학」에서 "침대 밑에 들어간 고양이"처럼 한참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사라진 광장의 기억에만 골몰하던 '나'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전등 빛 명도가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벽을 넘어 전해져 오는 타인의 기척이 주체의 일상을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바꿔놓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밀실로 흩어졌던 '나들'은 끝내 자기 안에 머물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바깥'을 향해 기울어진다.6) 그 기울어짐은 동시적이고 상호적이다. 계속해서 물어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요 비가 오면 노아의 방주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이곳에 마스크를 쓰고 모였어요 완전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 눈을 보고 있다고 위로도 해보지만 우리는 말없이도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우린 다 달라요 각자의 날 선 마음을 휘두를 수도 있고요 한 자리에 모여서 무거운 비구름 앞에서 산이 불타고요 죽이고 잡아먹고요 우리의 이웃이 움직이지 못할 동안 가닿지 못한 채로 값싼 식사를 하고 아프고 힘든 소식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절에 어둑해 도로를 확인하기조차 어렵기도 합니다 바닥을 향해 시선을 내리거나 어둑한 하늘을 향해 올려다보면서 어디를 향해 사죄할지 찾아보려는 동안 울고 싶은데 울 수 없을 것 같아요 확인해야 하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서로에게 말해주며 안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할 테니까 여기선 서로를 구하지 못하고 우는 일을 애통이라고 슬프고 아픈 일이라고 말합니다 - 「구름이 있는 광장에 모여서 우리는」 전문 그리고 기울어짐의 끝에는 '동료'들이 있다. 윤은성의 시에서 동료는 서로의 '차이'와 '취약함'까지 나눠 갖는다는 점에서, '같은 뜻을 함께 한다'는 의미의 '동지'보다 애틋하다. "이전에는 불러보지 않았던 / 새로운 이름을 자꾸만 붙여주면서" 걸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은, "손을 잡고 또 때론 놓으면서"(「생일 세계 공원」) 걸으면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놓을 수 있기에 끊어지지 않는 느슨하고 단단한 연대, 그 연대가 '광장의 흔적'을 '흔적의 광장'으로 만든다. 과거의 우리를 헤어지게 만들었던 차이와 취약함이 현재의 광장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흩어졌던 동료들은 어느새 다시 모여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겹치게 될지도 모르는 / 구간을 상상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이 모든 게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를 이상한 단계들"(「선반 달기」)이라 하더라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가 자신을 비추는 '빛'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 서로에게 말해주며" 끊임없는 안부를 묻는다. 물론 이 광장도 언젠가 흩어질 것이다. 그들은 다만 "서로를 구하지 못하고 우는 일을 / 애통이라고 / 슬프고 아픈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세계에서, "아프고 힘든 소식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절을 보내는 우리가, 슬프고 아픈 일을 '함께'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다면, 거기에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구호와 기도 사이에서, 서로와 각자 사이에서 흔들린다. '너'와 '나'의 '안'과 '밖'을 헤매고, "혼자라는 걸 믿지 말라"는 말과 "혼자라는 것만이 단 하나의 진실이라"(「겨울과 털 공과 길고 긴 배웅과」)는 말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멀리서만 기도할 수 있는 사람"(「마음 닫기」)이 될지언정 서로를 향하는 마음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찌를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는 마음을 "여미고 열"며 "당신에게로 기울어"(「창문을 열다가」)진다. 우리가 헤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뜻이고,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다시금 광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므로, 광장이 남긴 흔적은 또 다른 광장이 되어 우리를 부를 것이다. 이 이상한 순환에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섣부른 대답 대신 오래전에 밑줄을 그어두었던 한 시인의 문장을 옮기며 글을 맺는다. 문학적 경험으로서 아름다움에 접속하는 것, 그것은 거의 가장 온전한 위로의 방식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참담한 자리. 구원을 떠올리게 됨에도 구원의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 경험, 문학적 경험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7) 1) 샹탈 무페, 서정연 역, 『경합들』, 난장, 2020, 23쪽. 2) "모든 질서는 우발적 실천들의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절합이다. 사태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질서는 다른 가능성의 배제에 근거해 있다." 위의 책, 32쪽. 3) 윤은성, 「해(解)와 파열」, 『주소를 쥐고』, 문학과지성사, 2021. 이와 관련해 오연경은 "시집 전체를 통해 사라진 얼굴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얼굴들, 근황과 안부가 궁금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현실이라는 미지수에 집어넣고 온 힘을 다해 풀이에 집중하는 시인의 언어를 목격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연경, 「'주소 없는 거주자'의 목소리」,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2년 봄호. 4) 장-뤽 낭시, 박준상 역, 『무위의 공동체』, 그린비, 2022, 7쪽. 5) 위의 책, 8쪽. "그 행동은 어떤 물러남 가운데, 어떤 받아들임, 나아가 엄격히 비-심리학적 의미에서의 어떤 수동성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 수동성은 열림과 같으며, (...중략...) 우리와 무한히 보다 더 멀어지면서 우리에게 도래하는 것을 '도래하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6) 이와 관련해 시인은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 속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세상의 소식들로부터 모종의 영향을 받아버리게 되곤 할 때, 그 일은 내 존재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이 마음의 지대야말로 외부와 나를 연결하고, 나의 주체성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타자와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마음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것이 폐쇄적인 일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윤은성, 「시대와 마음-촛불혁명과 시와 나」, 『작가들』, 2025년 봄호. 7) 윤은성,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문학적 경험과 비(非)구원적 구원」,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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