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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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매화누이
암전. 3장 매화나무 옆, 누이 혜경이 앉아 있다. 한구석엔 시동이 말없이 누이를 따르고 있다. 혜경 오라오라 봄바람아 내울가 처녀 울렁이게 하는 봄바람아 오라오라 치마 가득 봄을 담아 소매에도 봄을 담아 내 방 깊숙이 가져와 호두상자 안에 담아 놓고 겨울 오면 한 움큼씩 꺼내 보려 하노니 오라오라 봄바람아 오라오라 장욱 집 안에만 있어 답답했지? 혜경 오라버니 오십니까? 장욱 아직 날이 찬데 왜 나와 있느냐? 혜경 오라버니께서 언제 오시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약주 드셨습니까? 장욱 미안하구나. 이젠 내가 어머니의 빈자리도 채워야 하는데, 네게 너무 소홀히 했어. 혜경 오라버니께 짐이 되는 거 압니다. 그게 더 죄스럽습니다. 장욱 말하는 걸 보니, 철이 다 들었구나. 시집 가도 되겠어─. 혜경 누가 저 같은 병신을 데려가겠습니까. 장욱 그런 소리 마라. 혜경 하지만 사실인걸요. 장욱 그럼, 내가 평생 데리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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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혜순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혜순과 나는 늘 아옹다옹 다투곤 했는데, 주말의 영화를 볼 때만큼은 뜻이 잘 맞는 다정한 자매였다. 우리는 좋아하는 영화가 거의 비슷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든지 〈해바라기〉 같은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의 유방은 부풀었고 엉덩이는 벌어졌다. 남대문시장에서 밤늦도록 녹두빈대떡을 팔다 돌아온 어머니가 코를 골며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며시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는 건 언제나 혜순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두려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직도 안 자고 뭣들 해. 돈이 남아 도냐?” 어머니는 코를 골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재빨리 텔레비전을 끄는 것도 혜순이었다. 맏이라는 이유로 잘못이 있을 때마다 야단을 맞던 나는 적어도 그 일만은 동생에게 미루고 싶었다. 어머니는 하필 주인공들이 열정적으로 키스하거나 포옹하는 장면에서 깨곤 했다. “계집애들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전기세 많이 나오니까, 당장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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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극특집] 부부의 식탁
혜 연 더 있다가 가세요. 미 숙 아냐, 가서 점심해야지. 다들 집에 있어서. 규철 어색한 자세로 서 있고 혜연은 미숙을 따라 나선다. 미 숙 그럼 내일 봐. 혜 연 예, 감사해요. 미 숙 무슨. 내가 고맙지. (규철의 눈치를 보며) 그럼 나 갈게. 혜 연 네, 안녕히 가세요. 문이 닫힌다. 혜연 들어온다. 규 철 (빈정대듯, 미숙을 흉내 내며) 무슨. 내가 고맙지. 혜 연 그러지 마. 좋은 분이야. 규 철 뭐,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나? 규철 어깨를 으쓱하고는 거실로 가서 TV를 켠다. 채널 넘어간다. 혜연 싱크대에 기대 규철을 본다. 혜 연 나 세례 받으려구. 규 철 (채널을 넘기며) 세례? 혜 연 응. 규 철 성당? 혜 연 아줌마가 대모를 서주신다네. (짧은 사이) 종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프로야구 중계에서 채널이 멈춘다.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