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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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그 질문들은 여성의 어떤 경험은 미학적인 재현을 경유한 것으로, 어떤 경험은 미학적 매개 없는 ‘날것’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그런 구분이 외려 어떤 여성의 경험 - 소설은 혹평을 받아야 할 것으로 어떤 여성의 경험 - 소설은 상을 받아야 할 것으로 판정하는 데에 활용되기도 한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나’가 도용당했다 되찾은 소설은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가해진 추행의 기억을 고백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그것을 쓴 ‘나’의 경험이든 그렇지 않든, 한 여성이 소유하는 경험을 발화하고 있다. 그 경험은 소설가로 활동해 온 ‘나’의 이름으로 앤솔로지에 실렸을 때 크게 주목받지 못하며, “한줌 될까 말까 한 독자들”에게는 “기획을 너무 의식해서 재미가 없어진 소설”(403)로 평가받는다. 그러한 평가에서 이 소설 속 경험은 경험이 아니라 기획되고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소설적 허구’로 여겨지고, ‘재미’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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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주관적 오류’의 발생장소는 느낌의 경험 자체에 있지 않다. 느낀 것은 느낀 것이며, 경험한 것은 경험한 것이다. 한 개인의 감성적 주관이 사태 자체와의 마주침을 통해서 겪은 순수한 경험 그 자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설령 어떤 동일한 사태 혹은 현상(가령 그것이 하나의 예술작품이든 한 그루의 나무이든 간에)과의 마주침에서 여러 감성적 주관이 서로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들 자체는 그 동일한 사태가 보여주는 다양한 질적 특성들에 대한 각자의 고유한 경험일 뿐, 그중의 한 경험만 ‘맞는 경험’이고 다른 경험들은 ‘틀린 경험’일 수 없다. 현상과의 진정한 마주침이라 할 수 있을 모든 감성적 경험은 그 자체가 전체적 진리일 수는 없지만, 반쪽의 진리 혹은 전체적 진리를 향한 잠재적 가능성이며, 여기서 오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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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이 나와야만 할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의 시작. 누구도 그 경험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 의지 없인 획득되지 않는 헌혈의 처음. 그러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의 포만감을 가져다준 분류할 수 없는 낯선 체험. 처음이 처음일 수 있는 것은 두 번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부터는 그 경험의 역사는 자신의 기록을 써내려가게 된다. 첫 경험이 시작된 것은 그 처음이 두 번째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고, 헌혈이 내게 두 번째를 약속할 만큼 매력적인 경험이 된 것은 첫 경험이 만들어냈던 예기치 않은 감각들 때문이다. 터지는 선명한 피의 색감과 내 팔에 닿았던 내 피의 따뜻한 온기, 팔을 죄어 온 외부 압력에 의한 고통과 낯선 타인의 경계 없는 호의. 그 대화, 그 감촉, 그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