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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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비판의 비판
그렇기에 비판적 지성(혹은 자연과학적 지성)은 유동적이고 관계적인 느낌의 경험(항상 구체적인 관계의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보여주는 미묘하고 구체적인 실재적 성질들을 무시하면서, 귀납적 일반화를 목표로, 그러한 질적 느낌들을 지성의 고립되고 고정된 도식적 형식에 들어맞는 측정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양적이고 추상적인 감각자료들로 환원시켜 버리는 경향성을 갖는다. 문학비평의 한 가능한 과학인 유비의 과학은 그렇게 구체적인 질적 느낌을 추상적인 양적 감각자료로 환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귀납적 일반화를 일차적 목표로 하지도 않을 것이며, 혹은 귀납적 일반화에 기초한 연역적 증명이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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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안전의 방향 (2)
이를테면 그 질문들은 여성의 어떤 경험은 미학적인 재현을 경유한 것으로, 어떤 경험은 미학적 매개 없는 ‘날것’의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그런 구분이 외려 어떤 여성의 경험 - 소설은 혹평을 받아야 할 것으로 어떤 여성의 경험 - 소설은 상을 받아야 할 것으로 판정하는 데에 활용되기도 한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나’가 도용당했다 되찾은 소설은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가해진 추행의 기억을 고백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그것을 쓴 ‘나’의 경험이든 그렇지 않든, 한 여성이 소유하는 경험을 발화하고 있다. 그 경험은 소설가로 활동해 온 ‘나’의 이름으로 앤솔로지에 실렸을 때 크게 주목받지 못하며, “한줌 될까 말까 한 독자들”에게는 “기획을 너무 의식해서 재미가 없어진 소설”(403)로 평가받는다. 그러한 평가에서 이 소설 속 경험은 경험이 아니라 기획되고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소설적 허구’로 여겨지고, ‘재미’의 대상으로 위치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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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글틴 회상
내게 글틴은 작품을 완성하고 발표한다는 경험, 독자를 가져 보는 경험, 선생님의 평가나 의견과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 모두 가능한 최초의 공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일기 폴더 옆에 '시'나 '소설' 같은 폴더를 만들어 그러한 형식과 유사한 무언가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문예창작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일기 속에는 "시를 쓰고 싶다"거나 "이건 소설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문장들이 자주 출몰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인터넷 유령이었던 내게 글틴은 일종의 고등학교 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문학이란 결국 세상을 부유하는 자의식의 유령들이 다니는, 그들을 위한, 그들에 의해 지속되는 학교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틴에 이 학교의 신입생들이 여럿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당시 글틴에는 '궁냥궁냥'이라는 이름의 자유게시판이 있었고,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